행복한 왕자 - 오스카 와일드 동화집 재미있다! 세계명작 9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지민 옮김, 홍선주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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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동화책 / 숲노래 어린이책 2023.1.30.

맑은책시렁 282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이지민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3.12.25.



  《행복한 왕자》(오스카 와일드/이지민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3)를 아이들하고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만한 책은 뜻밖에 매우 적으나, 아예 없지는 않고, 또 이래저래 찾아보면 제법 있습니다.


  왜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지필 책이 적을까 하고 돌아보면, 아이들은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어른들도 굳이 책이 없어도 됩니다. 몸으로 뛰놀고, 마음으로 이야기하면 넉넉해요. 몸으로 함께 살림을 짓고, 마음으로 같이 사랑을 그리면 즐겁습니다.


  굳이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까닭은 있어요. 이 아름다운 삶빛을 씨앗으로 남겨서 언제 어디에서나 되돌아보고 아로새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애써 글을 쓰거나 책으로 엮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님이 남긴 씨앗 가운데 돋보이는 ‘제비’하고 ‘큰사람(거인)’ 이야기가 있어요. 이녁은 ‘임금’이라는 자리가 ‘자리·이름·허울·힘’을 쳐다보려 할 적에는 고약할 뿐 아니라 스스로 좀먹어 죽음길로 가는 줄 꿰뚫어보고서 글로 남겼습니다. 이녁은 ‘아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빛나면서 상냥하고 즐겁게 뛰놀면서 꿈꾸는 이야기로 잇는 길인 줄 알아차리고서 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말로 옮긴 분들은 “행복한 왕자”로 이름을 붙였으나, 가만가만 헤아린다면 “즐거운 아이”나 “기쁜 아이”쯤이면 돼요. 우리는 ‘왕·왕비·왕자·왕녀’ 같은 허울을 이제 버릴 때입니다. ‘아이’라는 숨빛을 바라볼 때입니다. 겉멋을 부리는 말씨인 ‘행복’이 아니라 ‘기쁨·즐거움’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고서 노래하는 하루를 지을 노릇이에요.


  글을 읽고 싶다는 아이가 있다면, 저마다 어른스레 어진 눈빛을 밝혀 먼저 열 해쯤 날마다 신바람으로 집살림을 가꾸면 됩니다. 열 해쯤 신바람으로 집살림을 가꾸고 나면 저절로 글길을 열 수 있어요.


  글을 쓰고 싶은 이웃님이라면, 오늘부터 열 해 동안 붓종이를 치워버리고서 기쁘게 집안일을 도맡으면 됩니다. 열 해쯤 기쁘게 집안일을 도맡으면 바야흐로 스스로 샘솟는 사랑으로 글자락을 여밀 수 있어요.


  글쓰기란 쉽습니다. 그저 삶을 쓰면 되는데, ‘그냥 삶’이 아닌 ‘스스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푸르게 품은 삶’을 쓰면 돼요. 다들 ‘그냥그냥 쳇바퀴로 맴도는 삶’만 너무 서둘러 조바심으로 얼른 써내고서 ‘작가·예술가’란 이름으로 겉멋을 부리려 하니 망가질 뿐입니다.


  제발 “행복한 왕자”가 되지 맙시다. “기쁜 아이”로 살고 “즐거운 아이”로 오늘을 노래해 봐요. 이렇게 하면 누구나 글님이요 그림님이자 삶님이고 살림님으로 빛나다가 문득 사랑님으로 피어납니다.


ㅅㄴㄹ


직조공은 날카롭게 소리질렀습니다. “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지요. 다만 내가 누더기를 입고 다닐 때 주인은 좋은 옷을 입고 있고, 내가 배가 고파 기운이 없을 때 그는 좀 너무 먹어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 말고는 그와 나 사이에는 차이가 없지요.” “이 나라는 자유로운 땅이고 너는 노예가 아니잖아?” 하고 왕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직조공은 대답했습니다. “전쟁 때에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노예로 만들지만, 평화시에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종으로 만들지요. 우리는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살아갈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적은 임금밖에 주지 않아요.” (43쪽)


“너는 높은 나무 꼭대기를 날 수 있으니 온 세상을 볼 수 있지? 말 좀 해줘. 우리 어머니가 보이니?” 그러자 방울새는 “네가 장난삼아 내 날개를 부러뜨렸는데 내가 어떻게 날 수 있겠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아이는 전나무 속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다람쥐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어디 계시니?” 그러자 다람쥐는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어머니를 죽였는데 이제 네 어머니도 죽이려고 찾는 거니?” (127쪽)


“사랑은 지혜보다 낫고 보물보다 귀중하고, 인간의 딸들의 발보다 좋은 것이라오. 불은 사랑을 파괴하지 못하고 물도 사랑을 식히지 못하도다.” (201쪽)


#OscarWilde #TheHappyPrince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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