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와 버들잎 소년 - 한국 전래 동화집 1 창비아동문고 23
손동인.이원수 지음 / 창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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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2.8.19.

맑은책시렁 265


《연이와 버들잎 소년》

 이원수·손동인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0.7.10.첫/2004.12.10.26벌



  《연이와 버들잎 소년》(이원수·손동인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0)이란 옛이야기 글모음이 있습니다. 이제는 백희나 님이 빚은 그림책으로 “연이 버들잎” 이야기가 확 퍼진 듯한데, 아무리 새 그림책이 나오더라도 옛이야기 줄거리하고 얼거리하고 삶넋부터 찬찬히 읽고 돌아볼 노릇이라고 봅니다.


  우리 옛이야기는 모두 수수한 순이돌이 삶을 담습니다. 잘나거나 이름나거나 돈있는 벼슬아치나 글바치나 임금붙이 이야기는 안 담지요. 왜 그럴까요? 돈바치·벼슬아치·글바치·임금붙이는 그야말로 돈·이름·힘에 얽매여 스스로 죽음길로 달려갑니다.


  이와 달리 수수한 순이돌이는 삶·살림·사랑을 숲에서 스스로 짓는 슬기로운 하루를 짓고 나눠요. 우리 옛이야기는 바로 삶·살림·사랑하고 숲·스스로·슬기를 어른하고 어버이부터 되새기면서 아이들이 이 숨결을 고이 이어받아서 새롭게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옛이야기는 심심풀이가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글꽃(문학)이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 삶이자, 말이자, 넋이자, 오늘이자, 꿈이자, 사랑이에요.


  아이를 앉히고서 사근사근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나 어버이는 이녁부터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 상냥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숨결로 서려 합니다. 어른이나 어버이 곁에 앉아 귀를 쫑긋쫑긋 세우는 아이는 앞으로 새롭게 피어날 꿈씨앗을 마음에 품고서 스스로 즐겁게 맞아들일 말빛을 새록새록 듣고 새기지요.


  “연이 버들잎” 옛이야기에는 미움이 없습니다. 오직 삶하고 살림하고 사랑만 흐릅니다. 새어머니는 새어머니대로 아프고 고단한 삶이 있는 나머지, 새아이한테 사랑을 미처 들려주지도 보여주지도 못 합니다. 새어머니를 맞이한 아버지도 똑같아요. 낳든 기르든 사랑이 바탕일 노릇이나, 두 사람은 어른도 어버이도 아닌, 늙은이로 치닫지요. 연이한테는 낯선 남일 수밖에 없는 버들잎인데, 아주 모르던 남남이 처음 숲에서 만나는 곳에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마음을 열기에 낯선 남도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고 짝꿍이 됩니다.


  마음을 안 열면 한집에서 살아도 남남으로 등돌립니다. 연이하고 버들잎은 새어머니를 미움으로 다스릴 마음이 없어요. 그저 사랑으로 달래거나 녹일 마음뿐입니다. 백희나 님이 새로 빚은 그림책에는 뜻밖에도 사랑이 아닌 미움이 가득하더군요. 옛이야기를 읽고 되새겨서 새 그림책을 얼마든지 낼 수야 있다지만, 막상 삶도 살림도 사랑도 등지고, 숲도 스스로도 슬기도 모르쇠로 넘어간다면, 오늘날 어른하고 아이는 무엇을 듣고 돌아보면서 오늘을 짓는 밑씨앗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비록 나라밖에서 대단한 보람(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런 허울·겉모습·치레를 모조리 내려놓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마음을 읽고 사랑을 빛낼 사람입니다. 연이하고 버들잎 두 아이가 어른(새어머니·아버지)을 미워하다가 앙갚음을 하면 삶이 즐거울까요? 앙갚음하고 미움은 늘 되돌아옵니다. 사랑은 모두 녹여 흙으로 돌아가도록 북돋아 숲을 푸르게 가꾸는 밑거름이나 씨앗이 됩니다.


  옛이야기가 왜 옛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어질게 읽는 어른이 늘기를 바라요. 옛이야기를 오늘 어린이한테 새롭게 들려줄 적에 언제나 사랑하고 숲을 스스로 돌보는 살림빛을 품을 노릇입니다.


ㅅㄴㄹ


“이놈아, 넌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냐?” “아니에요. 나는 아버지 말처럼 선생님 하라는 대로만 했단 말예요. 그리 하는 것이 글 배우는 법이라고 했잖아요. 그리 했는데도 선생님이 공연히 화를 내시니, 저 선생님이 나빠요. 그리고 아버지도 나빠요.” (18쪽)


연이는 무서운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도 집에 돌아가서 계모에게 야단을 맞고 매를 맞을 걸 생각하니, 산이 무섭다는 생각은 차차 사라져 버리고 어디든지 춥지 않은 곳에서 몸을 좀 녹일 수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2쪽)


‘나를 살려 보내 주시오. 나를 살려 보내 주시오.’ 어부는 그 잉어가 엄청나게 큰 때문인지,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이렇게 큰 잉어라면 잡아죽이는 건 못할 일이야.” (92쪽)


“암만 기운이 세면 뭘 하나? 사람이 반쪽만으로 어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나? 병신으로 남의 구경거리나 됐지.”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수군거리는 동안에도 반쪽이는 쑥쑥 자라서 드디어 다 큰 청년이 되었습니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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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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