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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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8.11.

인문책시렁 196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난다

 2017.7.1.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난다, 2017)을 예전에 읽었다. 딱 ‘요즘스러운 글과 책’이겠으나 ‘오래갈 만하지는 않을 글’이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과 책이 오래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눈을 뜨지 않거나, 삶을 서울스러운 틀이 아니라 스스로 푸르게 가꾸며 바라보는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이러한 글과 책이 오래가기도 하겠지요.


  겉을 꾸미려고 걸치는 옷이라면 삶을 누비거나 누리지 못합니다. 삶을 누비거나 누리려고 걸치는 옷이라면 어떤 옷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삶에는 왼쪽이나 오른쪽이 없고, 가운데나 바깥이 없습니다. 삶에는 서울이나 시골이 없고, 잘생기거나 못생긴 얼굴이 없습니다.


  삶에는 오직 삶이 있습니다. 바람을 한 줄기 마시면서 바람을 쓰면 됩니다. 새벽빛을 보며 새벽을 쓰면 됩니다. 아이랑 놀다가 아이다운 놀이를 쓰면 되고, 풀벌레를 손바닥에 얹고서 지켜보다가 풀벌레하고 동무하는 하루를 쓰면 됩니다.


  요즈막 사람들이 왜 이렇게 겉글(겉치레 글쓰기)에 사로잡히면서 속글(스스로 마음을 사랑하는 글)은 밀쳐낼까 하고 생각하다가, 삶부터 겉멋이 가득한데 속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생각조차 못하거나 안 하니 그럴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삶은, 우리가 스스로 울거나 웃거나 노래하거나 춤추기에 달라집니다. 안 울거나 안 웃거나 안 노래하거나 안 춤추면 삶은 쳇바퀴나 수렁에 갇혀서, 남(우두머리나 먹물붙이)이 시키는 대로 길들기 마련입니다.


ㅅㄴㄹ


어느 커다란 무덤 앞에서 당신이 내 손바닥을 펴더니 손끝을 세워 몇 개의 글자를 적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손바닥을 접어 주었다. 나는 무엇이 적힌 줄도 모르면서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15쪽)


손 편지를 주고받은 지가 오래다. 가장 최근에 받은 편지는 지난봄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혼여행을 보내고 있는 새신랑에게서 온 것이었다. “사랑하는 詩人께”로 시작되어 “여기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있자니 그저 어디에서건 살아지는 게 답답하고 또 좋습니다. 여백이 많지 않습니다”로 끝맺는 짧은 편지였다. (24쪽)


그리고 그날들이 다 지나자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게 해달라고 스스로에게 빌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47쪽)


지금도 종종 뵙는, 종로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고 계시는 한 선생님에게서는 서울의 노포老鋪들과 다양한 독주를 배웠다. (62쪽)


요즘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오늘 하루만 해도 두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썼고 잡지에 실을 인터뷰 글을 썼다. 오후에는 서대문에 있는 출판사에 들러 윤문을 할 원고 꾸러미를 잔뜩 들고 왔다. 주말에는 낡은 차를 몰고 경남에 있는 한 사찰로 취재를 가야 한다. 제법 돈이 되는 일도 있고 돈을 생각했다면 하지 않았을 일도 있다.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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