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라는 산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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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6.28.

인문책시렁 191


《그림책이라는 산》

 고정순

 만만한책방

 2021.3.12.



  《그림책이라는 산》(고정순, 만만한책방, 2021)은 그림책을 빚는 길을 걸어가는 분이 돌아본 나날을 차곡차곡 담습니다. 그림책을 어떻게 만났고 읽었으며, 어떻게 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보여줍니다. 그림책으로 밥벌이를 하며 고단하거나 지치는 하루를 밝히고, 스스로 무엇을 그림책에 담아내려 하는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에 모두 다르게 말합니다. 이 다른 말을 ‘사투리’라고 합니다. 서울말이라서 좋지 않고 사투리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거꾸로 사투리라서 좋지 않고 서울말이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삶이 다르기에 말이 다를 뿐입니다.


  더 나은 밑천이란 없고, 더 빼어난 붓이란 없습니다. 더 좋은 글이란 없고, 더 알찬 책이란 없습니다. 다 다른 눈빛으로 다 다르게 살아내며 길어올린 이야기를 다 다른 말씨이자 그림씨인 사투리로 풀어낼 뿐입니다.


  그림님 고정순 님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읽다가 “전쟁 사진을 보며 전쟁 이야기를 다룬 그림을 그린다”는 대목에서 멈칫합니다. 아무래도 여느 삶터에서는 싸움판을 겪거나 치르거나 마주할 일이 없으니 다른 이가 남긴 사진이나 영화로 싸움판을 헤아릴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돈·이름·힘이 없는 모든 사내가 싸움판(군대)에 끌려가서 개죽음 같은 나날을 보냅니다. 싸움판(군대)에서는 멀쩡한 사내한테 총칼을 쥐어 주고는 서로 죽이는 짓을 가르치고 길들입니다. 싸움판(군대)에서는 가시내를 삶벗(동반자)으로 여기기보다는 속풀이(욕구해소)를 하는 노리개로 가르치고 길들입니다.


  싸울아비(군인)가 있는 곳에는 돈이 흘러넘칩니다. 나라(정부)에서 대는 돈으로 멀쩡한 젊은 사내가 가시내를 곁짝 아닌 노리개로 부리는 바보스런 짓이 판칩니다. 나라(정부)는 일부러 싸움판(군대)을 키우고 함박돈을 댄다고 느낍니다. 사내한테 사랑 아닌 싸움과 미움과 노닥질과 바보짓에 길들도록 내몰아, 온나라에서 가시내하고 사내가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을 짓는 꽃길을 짓밟는구나 싶습니다.


  맨주먹이어서 싸움판(군대)에 끌려가야 한 수수한 아저씨가 그림책을 그리면 좋겠어요. 스스로 겪은 슬픈 맨몸을 그림 한 자락하고 글 한 줄로 풀어내면 좋겠어요. 눈물젖고 멍울이 진 사내를 토닥이는 가시내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구렁텅이에서 뒹굴어야 한 사내가 뒤집어쓴 구정물을 따뜻한 눈물로 씻어 주는 가시내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림책은 왜 멧부리(산)일까요? 굳이 멧부리를 넘어야 하지 않아요. 멧자락에 씨앗 한 톨을 심어 나무가 자라도록 지켜보고 돌보면 돼요.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타고 놀면서 숲을 푸르게 노래하면 돼요. “전쟁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나무를 타고 놀면서 그림을 그린다”면, “따뜻한 눈물로 이웃 멍울을 살살 씻고 달래고 녹이는 손길로 그림을 그린다”면, 우리는 바로 맨주먹인 수수한 숨결로 오롯이 사랑을 들려주는 그림책도 글책도 노래책(시집)도 넉넉히 지어서 나눌 만하지 싶습니다.


  그림책은 숲입니다. 그림책은 바다입니다. 그림책은 샘물입니다. 그림책은 뒤꼍입니다. 그림책은 꽃밭입니다. 그림책은 빈터요 골목입니다. 그림책은 앞마당이고 멍석입니다. 그림책은 풀밭이자 구름송이입니다. 그림책은 눈물꽃이 맺은 웃음씨앗이요, 그림책은 웃음꽃으로 얼싸안는 눈물바람입니다. 


ㅅㄴㄹ


내 밑천을 보는 일이 괴로웠다. 유행 지난 옷을 간직한 그 친구는 자신의 미약한 시작을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견디기 어려웠다. (15쪽)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림을 그렸다. 정신을 차리니 여긴 제주도. 컵라면 먹고 다시 마우스와 토느북. 엄마가 전화로 저녁 뭐 먹었냐고 물어서 갈치조림 먹었다고 둘러댔다. (79쪽)


얼마 전 출판사에서 인터넷서점에 출간 기념 이벤트를 하면서 ‘이 시대의 작가’라고 날 소개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웃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정말 이 시대의 작가가 되고 싶다. (89쪽)


강의를 계속하면 일정 기간 고정수입이 생겨 좋다. 하지만 집중력의 밀도가 낮아진다. (135쪽)


전쟁 장면을 그리던 어느 날, 꼬박 밤새고 날이 밝는 걸 지켜본 적이 있다 … 마감보다 전쟁 사진을 보는 게 더 어려운 숙제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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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 2021-09-0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 부분에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적으시고는 뒷부분에는 왜 그림책이 산이냐 산 아니고 숲, 바다라고 적으셨네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도 필요하지만 전쟁을 담은 그림책도 필요합니다. 빛 만 보려고 한다면 어둠 속에서 아파하는 사람은 외면하게 되는 거예요. “눈물 젖고 멍울이 진 사내를 토닥이는 가시내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구렁텅이에서 뒹굴어야 한 사내가 뒤집어쓴 구정물을 따뜻한 눈물로 씻어 주는 가시내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성차별적인 글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혹시 이 글의 사내가 본인은 아니신지요. 시야를 넓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런 글을 책의 리뷰에 적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본인 만 알겠지요.

숲노래 2021-09-08 02:13   좋아요 0 | URL
˝전쟁을 담은 그림책˝은 아주 많습니다. ˝전쟁을 어떻게 담느냐˝일 뿐입니다.
빛을 보려면 어둠을 볼 노릇이고,
어둠을 보려면 빛을 보아야겠지요.
˝빛을 보는 이야기˝가 ˝어둠에서 아파하는 사람한테서 등돌린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어둠에서 헤매며 아프기에 빛을 보며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책이란 ‘어른만 보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누구나 보는 책‘입니다.
어른한테만 읽힐 책을 빚으려는 그림책이 아닌,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그림책을 빚으려 할 적에는
˝전쟁을 다루는 그림책˝에서 멈출 노릇이 아닌
˝전쟁을 어떻게 다루어 사랑으로 녹여내어 새길을 빛으로 빚느냐˝를 바라보고서
이 길을 열어야겠지요.
고정순 님 그림책을 읽으시는 만큼
˝전쟁을 사랑으로 녹여내어 새길을 빛으로 빚는 숱한 아름책˝을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를테면 이와사키 치히로 님 <꼬마 도깨비 오니타>가
이런 그림책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전쟁 이야기에 스스로 다가서서 고백하는 남자 그림책 작가˝가 너무 적은데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쟁 한복판을 살아낸 ˝남자 그림책 작가˝가 그들 스스로부터
사랑으로 녹여내어 밝히기도 해야겠지요.

전쟁 이야기를 ˝전쟁 사진만으로 그려내는 일˝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불구덩이요 죽음수렁인가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