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도 서점 이야기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지음, 류순미 옮김 / 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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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5.12.

인문책시렁 183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류순미 옮김

 클 2018.11.5.



  《오후도 서점 이야기》(무라야마 사키/류순미 옮김, 클, 2018)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 마을책집 이야기’를 우리 손으로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려나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이곳저곳 조금 다녀 보고서 가볍게 쓰는 사람은 제법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나 쉰 해를 고이 책집마실을 이으면서 이 발자취를 차곡차곡 그리거나 펼치는 사람은 몇 손가락으로 꼽기조차 어렵지 싶습니다. 예전부터 이 대목을 느꼈어요. 제가 처음 책집마실을 다닌 때는 또렷하지 않으나 두 가지가 떠올라요. 하나는 우리 언니가 만화책을 사오라고 시킨 적이 있고, 둘은 우리 어머니가 여성잡지를 사오라고 시킨 적이 있어요. 두 때에는 제가 볼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직 저 혼자서 주머니에 돈을 움켜쥐고서 심부름을 했어요. 심부름이지만 혼자 집부터 마을책집까지 갔고, 거스름돈은 잘 챙겼는지, 언니하고 어머니가 시킨 대로 잘 샀는지를 헤아리면서 손바닥이 땀이 잔뜩 났어요. 일고여덟 살이나 예닐곱 살이었을 텐데, 예전에는 이만 한 나이인 어린이도 심부름을 곧잘 했어요. 마을가게를 다녀오는 일이니 모두 이웃이요, 마을길이니 눈에 선하거든요. 다만 언니나 어머니가 손을 잡고 이끌지 않기에 두근두근하지요.


  이때부터 치면 제가 책집마실을 다닌 지는 마흔 해가 넘을 텐데, 이동안 들르거나 거친 즈믄(1000) 곳이 넘는 숱한 책집하고 얽혀 ‘우리나라는 일본하고 비슷하면서 사뭇 다른 결’이 있어요. 고장마다 다 다르게 흐르는 책집 숨결이 있습니다. 《오후도 서점 이야기》에 나오기도 하는데, 어느 나라 어느 책집이건 마을에서 함께 나이가 들고 철이 들고 삶이 흐릅니다. 함께 늙고 함께 자라며 함께 노래하지요. 기쁘거나 슬프거나 같이 누려요. 오래오래 흘러 먼지나 더께가 쌓이기도 하지만, 오래오래 흐르기에 외려 반드르르 빛이 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책집을 닫은 숱한 지기님,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숱한 지기님, 이제 막 책집을 연 푸릇푸릇한 지기님, 이러구러 스무 해 남짓 책집살림을 지은 여러 지기님, 이 모든 책집지기님은 마을지기이자 마을이웃입니다. 마을사람이자 마을일꾼이에요. 그렇기에 《오후도 서점 이야기》 첫자락에 나오고 줄거리를 받치는 ‘책도둑’ 이야기를 놓고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책도둑을 붙잡고서 외려 새뜸(신문)이나 누리집(인터넷)에서 손가락질을 받은 책집지기’를 그렇게 따스하 보듬으려고 하는 눈빛이 흐른다고 느껴요.


  책을 훔쳐서 돈을 모으려고 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뒷삶이 있겠지요. 책을 훔치기까지 해서라도 돈을 모아야 한다고 얽매였겠지요. 그러나 책은 아무나 못 훔칩니다. 책을 읽고 아는 이가 아니고서는 못 훔치지요. 팔아서 값이 될 만한 책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책을 못 훔치거든요. 그렇다면 이들은 왜 책도둑이 될까요? 책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한 탓입니다. ‘책은 읽었으되 삶을 사랑하는 몸짓’은 기르지 못한 탓입니다. 책을 읽어 ‘좋은 이야기’는 두루 누렸으나 막상 마음으로 하나도 못 삭인 탓입니다.


  큰고장을 떠나 시골에서 새롭게 책집지기가 된 젊은이를 그리는 《오후도 서점 이야기》입니다. 끝맺음이 좀 엉성했는데, 이러구러 이 젊은이는 꼭 큰고장 책집지기가 아니어도 좋은 줄 깨달아요. 책집에는 책손이 더 많이 찾아와야 하지 않고, 책집은 책을 더 많이 갖추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아채지요.


  마을책집은 큰책집이 아닙니다. 마을책집은 마을책집이에요. 마을사람이 언제든지 가뿐하게 찾아와서 ‘한 자락을 사도 좋’고,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몇 마디 해도 좋’은 쉼터입니다. 책집은 어른한테도 쉼터이지만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더없이 좋은 쉼터입니다. 둘레를 보셔요. 어린이나 푸름이가 마음놓고 찾아갈 만한 곳이 마을에 어디 있나요? 찻집이나 술집이나 밥집은 어린이나 푸름이가 혼자 찾아가서 쉴 만한 데가 못 됩니다. 노래집도 그렇지요. 가만히 하루를 돌아보고 마음을 차분히 달래면서 다리를 쉬고 생각을 가다듬을 싱그러운 쉼터는 바로 마을책집입니다. 이 마을책집 곁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면 아주 좋을 테지요.


ㅅㄴㄹ


책 한 권을 도난당하면 그 책값을 메우기 위해 다른 책을 도대체 몇 권이나 팔아야 하는 것인지. (36쪽)


“그까짓 책 도둑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치들은 상식도 없고 상상력도 없는 멍청이야.” (70쪽)


“내용에 감동받아 이 책을 팔고 싶다고 생각하는 서점 직원이 만드는 띠지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런 띠지를 보면 소노에는 눈이 부셨다. 손으로 만지면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았다.” (123쪽)


‘아니다. 책은 서점 서가에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생물과 마찬가지다.’ (186쪽)


“오후도가 없어져도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지만 노인과 어린아이는 그럴 수가 없어요.” (192쪽)


오후도는 손님과 마음을 키우는 서점이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문화를 키우고, 고향 사람들에게 좀더 나은 생활과 행복한 삶을 안겨주고 싶은 바람을 품고 존재하는 서점이었다. (274쪽)


“저는 시간을 들여 조금씩 《4월의 물고기》를 판매할 생각이니 염려 마시고요. 말 그대로 오후도의 명물,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책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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