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4.20.

숨은책 520


《베르사이유의 장미 2》

 마리 스테판 드바이트 글

 노희지 옮김

 소년문화사

 1979.12.15,



  ‘만화방’을 처음 찾아간 어린 날 무척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우글우글한데, 만화책 하나를 몇으로 가르고 까만 끈으로 꿰어서 까만 고무줄에 척 얹더군요. 낱책 하나를 그냥 두면 한 아이가 오래 본다면서 부러 너덧으로 쪼개어 30원을 받습니다. 이러면 아이들이 더 많이 보고, 그만큼 돈을 더 번다지요. 서서 읽도록 실꼬리를 달아 줄에 묶고요. 멀쩡한 책을 쪼개는 손짓이 끔찍해서 만화방에는 다시 안 갔습니다. 동무들이 가자고 잡아끌면 “난 싫다. 차라리 돈을 모아 낱책을 사서 읽을래.” 했어요. 동무들은 《수학의 정석》이나 두꺼운 배움책을 으레 갈라서 들고 다니지만, 저는 아무리 두꺼운 배움책도 통째로 건사했습니다. 줄거리를 읽는 책은 종이꾸러미로 그칠 수 없어요. 일본 만화책을 참 많이 몰래 베낀 우리나라인데,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놓고 몰래책이 갖가지로 나왔어요. 어느 몰래책도 ‘이케다 리에코’라는 이름을 안 밝히더군요. ‘글·옮긴이’는 밝혀도 ‘그린이’는 안 밝히는 눈가림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준 셈일까요. 배고프니 훔친다지만, 배고프면 손수 짓거나 손을 벌리는 동냥을 하면 됩니다. 그나저나 안 찢기고 살아남은 1979년치 만화책이 드문드문 있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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