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숲의 거인
위기철 지음, 이희재 그림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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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5


《우리 아빠, 숲의 거인》

 위기철 글

 이희재 그림

 사계절

 2010.5.24.



아빠와 결혼하기 전, 엄마는 통조림 회사에 다녔어요. 코끼리 통조림을 만드는 회사였대요. 엄마는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오후 여섯 시에 퇴근했어요. (6쪽)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절대 안 돼!” 했는데도 엄마는 숲에 가서 아빠를 계속 만났어요. 외할아버지는 화가 났어요. 그래서 “절대 안 돼!”를 백 번 외친 다음, 엄마를 새장에 가둬 버렸어요. (42쪽)


엄마 아빠는 아파트에서 함께 살게 되었어요. 물론 불편한 점이 몇 가지 있기는 했어요. 아빠한테는 말이지요. 하지만 어디서든 다 좋을 수는 없잖아요? (64∼65쪽)


어느 날 엄마가 소리를 질렀어요. “이건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숲의 거인이었어!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아아, 여보, 당신이 이렇게 되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뭔가 잘못되고 말았어.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91쪽)



  우리 누구나 숲사람이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총칼이 없이 사랑스레 지내던 날을, 우두머리도 벼슬아치도 없이 조용조용 지내면서 곁님하고 아이를 즐겁게 아끼던 날을, 이웃을 반기고 언제나 잔치처럼 하루를 누리던 날을, 땅을 더럽힐 일도 없고 바다를 망가뜨릴 까닭이 없던 날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누구나 숲사람이던 무렵에는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짓는 말을 쓰겠지요. 숲사람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어느 누구도 깎아내리지 않을 뿐 아니라 구태여 치켜세우지 않습니다. 숲사람이 들려주는 숲말은 사람 사이에서도 빛나지만, 들짐승이며 풀벌레 사이에서도 환합니다.


  어린이문학 《우리 아빠, 숲의 거인》(위기철·이희재, 사계절, 2010)은 숲사람이던 넋을 잊거나 잃은 채 서울사람으로 살아가는 오늘날 모습을 넌지시 비춥니다. 코끼리를 통조림에 넣는다는 빗댐말처럼 숲하고 등진 길을 걷는 오늘날이요, 가시내를 노리개로 삼거나 억누르는 오늘날이며, 가시내를 억누르거나 노래개로 삼듯 사내도 스스로 바보스레 나뒹구는 오늘날이에요.


  숲사람 아닌 서울사람으로 지내는 동안 우리 손이나 입에서 어떤 말이 흐르나요? 서로 아끼거나 돌보는 말이 흐르는가요? 거짓말이나 장삿말이 춤추지 않나요? 겉발림말이나 겉치레말이 판치지 않나요? 꾸밈말이나 숙덕말이 나돌지 않나요?


  아버지만 숲사람일 수 없어요. 어머니만 숲사람일 수 없지요. 스스로 잊거나 잃은 숨결을 되살려내어 바람을 읽고 구름을 타며 햇살을 밥으로 삼을 적에 비로소 따사로이 사랑이 샘솟으리라 느껴요. 비를 마시고 꽃을 벗삼으며 물살을 신나게 헤엄치는 몸짓일 때에 바야흐로 삶을 새롭게 지을 테고요.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만 숲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바보나라가 푸른별을 휘감기에 숲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총칼을 공장에서 찍어낸 사람은 바로 우리요, 아이들한테 총칼 장난감을 사주는 사람도 바로 우리입니다. 군대하고 전쟁무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도 바로 우리요, 입시지옥을 그대로 두는 사람도 남이 아닌 우리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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