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4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자유문학사

 1989.1.20.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헌책집이란 곳은 “새빛이 되려고 기다리는 책이 가득한 보금터”라고 느꼈다면,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가득한 여러 헌책집을 날마다 다닐 적에는 책집단골인 할배들이 “모름지기 책을 골고루 깊으면서 넓게 알려면 새책만 봐서는 안 되고 반드시 헌책을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책집단골인 할배들은 한문·영어·일본말은 쉽게 하고 몇 가지 다른 외국말까지 곧잘 하셨는데 “자네들은 새로 나왔다는 책이 막상 예전에 다 나왔던 책이고, 옛날에 나온 헌책이 바탕이 되어야 새책이 나올 수 있는 줄 아는가?” 하고도 짚어 주었습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처음 나온 뒤, 마광수 님이 법정에 설 무렵, 그리고 숨을 거둔 뒤 난데없이 비싼값이 붙었지만, 세 고비를 빼고는 헌책집에서 버려지다시피 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이 책이 궁금해서 어느 날 폈더니 “어떤가? 대단하지 않나? 너무 일찍 태어난 천재야.” 하는 말을 책집단골 할배가 속삭이고 지나갑니다.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눈부시게 피어날 사랑을, 남녀라는 틀 없이 사람이라는 길을 담은 책은 언제쯤 고갱이대로 읽힐 만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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