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책 -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
이소영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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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16


《식물의 책》

 이소영

 책읽는수요일

 2019.10.25.



《동경식물학잡지》에 발표될 당시 미선나무의 이름은 우치와노치, 우리말로 부채나무였어요. 우리나라 국명인 미선나무는 나무의 열매가 미선부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50쪽)


제가 소나무 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느꼈던 점은 늘 우리 가까이 있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오히려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57쪽)


아마 우리나라에 쑥이 24종이나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워할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종에 따라 잎이나 꽃 모양이 모두 달라요. (132쪽)


바닐라는 꽃도 워낙에 짧게 피고, 바닐라빈을 생산하는 과정에 손도 많이 가기 때문에 향료 중 유난히 비싼 편에 속합니다. (168쪽)


한쪽에서는 은행나무를 자연유산으로 삼고 보존을 위해 DNA를 채취하는 등 후계나무 육성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또 다른 한편에선 그 나무가 스스로 번식하는 것조차 막고 있는 것입니다. (195쪽)



  흔히들 ‘서양민들레’가 ‘토종민들레’보다 잘 퍼지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서양민들레이든 토종민들레이든 나라밖에서 들어오기는 마찬가지요, 둘은 퍼짊새가 다릅니다. 서양민들레는 봄 여름 가을에 내내 꽃을 피운다면, 텃민들레는 봄에만 꽃을 피워요. 그런데 있지요, 봄에만 꽃을 피우기에 덜 퍼지지 않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텃민들레를 살림풀이나 나물로 삼느라 뿌리까지 샅샅이 캐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사라져요.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고 씨를 날린대서 서양민들레가 더 퍼지지는 않아요. 그저 사람들이 안 캐고 안 쓰니까 더 퍼지는 듯 보일 뿐입니다.


  살림풀이나 나물로 흰민들레를 캔다 하더라도 한두 송이나마 씨앗을 날리도록 놓아준다면 흰민들레가 이처럼 빠르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또는 한두 뿌리나마 그대로 두고서 잎하고 줄기만 훑어도 흰민들레가 이토록 확 줄어들지는 않아요. 두 가지 민들레를 캐서 쓰면 알 텐데, 흰민들레는 대단히 오래 살고 뿌리가 매우 깊습니다. 흰민들레를 고이 건사한다면 이 풀꽃 한 송이가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을 만합니다.


  풀꽃 그림을 담은 《식물의 책》(이소영, 책읽는수요일, 2019)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 흐르는 풀꽃 그림은 지난날 서양에서 돌판에 새긴 풀꽃 그림을 닮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자라나는 풀꽃 빛깔이나 결이나 모습하고는 퍽 달라요. 꽃하고 잎하고 뿌리까지 두루 그림 한 칸에 담으려 하노라니, 아무래도 풀꽃을 캐내어 그림으로 옮길 텐데, 흙에 뿌리를 둔 풀꽃은 대단히 싱그럽고 푸른 빛깔이 보드랍거나 깊습니다. 그러니까, 《식물의 책》에 깃든 풀꽃 그림은 ‘살아서 싱그러운 풀꽃’이라기보다 ‘차츰 시들어 가는 풀꽃’인 셈입니다.


  가게에 남새나 나물로 나오는 풀하고 풀밭이나 숲에서 스스로 흙을 머금으며 살아가는 풀은 대단히 다릅니다. 밭에서 기른 배추라든지 시금치는 뿌리째 뽑아서 가게에 여러 날을 두어도 좀처럼 시든 빛이 안 들지요. 이와 달리 풀꽃이나 숲꽃은 뿌리까지 고스란히 캐어 꽃그릇에 옮기거나 물그릇에 담가도 이내 시들어 버립니다. 오롯이 풀밭하고 숲터에 어울리도록 씨앗이 싹트고 줄기가 오르고 뿌리가 뻗는 터라, 아주 살짝 건드리거나 옮겨도 이들 풀꽃은 아프고 괴로워하다가 죽어 가지요.


  이 대목을 헤아리면서 그림을 그린다면, 풀꽃을 섣불리 캐지 않고서 그립니다. 또는 뿌리까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풀꽃을 풀밭이나 숲에서 살살 캐고서 사진을 찍은 다음에 바로 그자리에 다시 심어서 북돋아 줄 노릇이에요. 이렇게 한다면 풀꽃도 살리고 그림도 싱그러운 빛으로 얻을 만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하면, 풀꽃도 사람이며 벌레이며 짐승하고 똑같이 ‘목숨이 흐르는 이웃’이거든요.


  풀꽃을 그림으로 담은 《식물의 책》인데, 아무래도 그림님이 ‘식물학’이라는 틀에서 ‘식물자원 꼼꼼그림’을 담으려 하다 보니, 풀꽃을 풀꽃답게 그리기보다는 ‘자원으로 새롭게 쓰는 길’에 걸맞게 바라보는구나 싶고, 풀꽃하고 얽힌 이야기도 다른 책이나 도감에서 따오네 싶어요. 그러나 풀꽃하고 얽힌 이야기라면 김종원이란 분이 엮은 《한국식물생태보감》을 읽으면 됩니다. 《한국식물생태보감》을 펴면 풀꽃하고 얽힌 가장 깊고 너른 이야기를 익힐 만합니다.


  거듭 말하자면, 《식물의 책》은 굳이 다른 책이나 도감에서 ‘정보 옮기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님 스스로 풀꽃을 마주하면서 어떤 숨결을 느꼈는지를 적으면 되고, 풀꽃하고 마음으로 나눈 말과 생각과 느낌을 옮기면 되어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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