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1994.12.11. “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미친 거 아냐?” “선배, 나는 미친놈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한 일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야, 그 말이 더 미친놈 같다.” “하. 제가 보기에는 날마다 소주 두 병은 마셔야 한다는 선배야말로 미친놈 아니에요? 제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날마다 소주 두 병은 못 마시겠습니다. 날마다 꼭 마셔야 한다면 소주로 치면 한두 잔이면 좋겠고, 맥주로 치면 두어 병쯤? 그러나 아무리 술이 좋아도 날마다 마시지는 못하지요. 어떻게 술은 그렇게 날마다 마시면서, 스스로 바라거나 이루려는 꿈은 날마다 못 하는데요? 전 그게 참말로 미친놈이라고 생각해요.” “으이그, 술이나 처먹어.” “아니요. 저는 날마다 마음에 새긴 길이 있어요. 하루에 책 열 권은 읽어야겠거든요.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글을 적어도 열 꼭지는 써야겠고, 하루에 스무 꼭지쯤 새 글을 써야 비로소 잠들 수 있어요. 그러니 오늘은 더 마시지 않겠습니다.” “으이고, 잘났다. 이 미친놈아.”


2004.6.4. 하려고 하면 다 하지만, 하기 어렵다고 여기니 다 어려울 뿐이다.


2014.7.18. 그냥 해서 되는 일이 있기도 하다.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고요히 다스리면 그냥 해도 무엇이든 다 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아닐 적에는 어떤 일을 해도 다 안 될걸?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제대로 그리고 날마다 쳐다보고 언제나 되새길 적에라야 비로소, 스스로 해보면서 스스로 이룬다고 느낀다.


2019.1.8. “저는 이제 예전처럼 바보같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바보같이 책을 읽다니요? 무슨 말인가요?” “예전에는 날마다 하루에 열 권이나 스무 권은 읽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네? …….” “그렇게 읽어도 나쁘지 않기는 한데, 그렇게 스무 해 넘게 살고 보니, 종이로 묶은 책에서는 제 목마름을 채울 수 없더군요. 그러나 이제는 길을 새록새록 찾아요.” “…….” “예전에도 알기는 했으나 살갗으로 못 느꼈는데, 무엇인가 하면, 책은 종이책만 있지 않아요. 아주 마땅하지요. 살림책에 사랑책에 사람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풀책에 나무책에 바람책이 있어요. 아시나요? 날마다 바람이 우리 몸을 들락거리면서 얼마나 수다쟁이처럼 떠드는지를? 우리가 늘 숨을 쉬는 바람하고 말을 섞거나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아마 종이책을 안 읽을걸요? 그뿐일까요? 영화도 연속극도 신문도 방송도 안 보겠지요.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얼마나 놀랍고 재미있는데요. 조약돌이나 모래알이나 풀잎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대단해요. 풀벌레나 개구리나 참새나 제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엄청나지요. 종이책이요? 제비하고 마음으로 말을 섞으니까 말이지요, 종이책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아주 잘 알겠어요. 그러나 아직 이렇게 숲책을 마음으로 읽는 길에 오롯이 접어들지는 못했어요. 앞으로는 이 길을 가려고요. 그리고 이렇게 숲책을 읽다가 어느 때쯤 되면, 숲이 들려준 이야기를 붓으로 종이에 살며시 적어 볼는지 모르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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