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너질

1991.4.6. “야, 너 말이야 …….” “저기 죄송합니다만, 선생님은 저를 언제부터 알고 보셨다고 자꾸 ‘너너’라 하십니까?” “응? 뭐라고?” “아무리 교사하고 학생 사이라고 해도, 교사가 학생한테 반말을 하면서 ‘너너’라고 부를 권리는 없습니다.” “뭐야?” “다른 교사라면 이런 말을 굳이 안 합니다. 어차피 들을 생각도 마음도 없이 주먹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교사한테는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입니다만, ○○○ 선생님은 학생을 그래도 학생답게 마주하겠다고 하셔서 이런 말씀을 여쭙니다.” “…….” “자, 보세요. 학교에서 학생은 다 왼가슴에 이름표를 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교사 가운데 왼가슴에 이름표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학생은 마치 죄수하고 똑같다는 뜻입니다. 학생은 마치 죄수하고 같으니 너너질을 해도 된다고 여기시는 듯한데요, 잘 생각해 보세요. 학교라는 곳에서 교사들은 교사 이름을 모른다면 막 성을 내요.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이 어른이든 아이이든 어떻게 이름을 다 알거나 외워요? 교사도 왼가슴에 이름표를 달아야 이름을 알지 않아요? 그렇다고 교사인 분들 가운데 ‘이름 좀 알려주셔요’ 하고 물을 적에 상냥히 이름을 알려주는 분이 있나요?” “…….” “○○○ 선생님, 제 왼가슴에 제 이름이 적혔어요. 읽으실 수 있지요? 학생한테 어떤 부름말을 써야 할는지 모르시겠으면 배우세요. 학생한테서도 배울 줄 아는 사람이라야 교사다운 교사입니다.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사람이 교사가 아닙니다. 교과서는 교과서대로 쓰고, 여태까지 학생보다 길게 살아왔다는 나날을 바탕으로 삶을 보여주고 알려주면서 이야기로 이끄는 사람이 교사입니다. 자, 저뿐 아니라 모든 학생한테 똑같아요. 왼가슴에 붙인 이름표에 있는 이름을 부르세요. ‘○○○ 학생’이라 부르면 됩니다. 말을 놓든 말든 이 사회는 나이 어린 사람한테 막하는 슬픈 모습이니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너너’란 이름이 아닌 ‘○○○’란 이름이 다 따로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사람으로 본다면 ‘너너’도 ‘번호표’도 아닌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1998.4.7. “어라, 너 어떻게 ‘文’ 자를 알아? 너 이 책 어디서 찾았어? 이야, 되게 오래된 책이네.” “여보세요, 아저씨, 아저씨는 저를 어디에서 보고 알았대서 첫밗부터 ‘너너질’입니까?” “뭐야? 뭐야?” “전 ‘뭐야’가 아니고 제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저씨보다 어리거나 젊어 보이는 사람한테 함부로 ‘너너’ 하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저씨가 얼마나 똑똑한 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저씨만 한자를 읽거나 아저씨만 한자 빼곡하고 깨알같은 글씨가 새카만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배운 사람이라면 다 알지요.” “이 새끼 뭐야?” “저는 ‘뭐야’도 아니지만 ‘새끼’도 아니에요. 아저씨는 아저씨한테 오랜 스승님이 있다면 그 스승님 아이나 손자한테도 ‘너너질’이나 오늘처럼 이런 말씨를 쓰시려나요? 대통령이라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대통령 아들이나 손자한테도 너너질을 하거나 오늘같이 이 말씨를 쓰십니까?” “……” “아저씨 어딜 달아나려 하세요? 달아나지 마세요. 아저씨가 쏟은 물을 주워담고 가야지요. 사람을 함부로 여긴 잘못을 저지르셨으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가야지요. 그리고 좀 배우시기 바랍니다. 아무한테나 너너질을 했다가는 큰코 다치십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차마 부끄럽고 창피해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못 숙이시더라도, 다음부터는 어디 가서 그렇게 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아저씨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한테든 늙어 보이는 사람한테든 똑같이 고개숙여 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거든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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