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다

2014.1.5. 자가용을 타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숱한 빛과 바람을 모두 놓치고 말곤 합니다. 무엇보다 ‘아무런 책도 못 읽고’ 말아요. 굳이 자가용을 탈 까닭이 없어요. 자가용을 몰아 보셔요. 두 손은 손잡이를 잡아야지, 책을 손에 쥐지 못해요. 자가용을 모는 이 옆에 앉아 보셔요. 혼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먼길을 달릴 적에는 자가용을 모는 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또 졸지 않도록, 두런두런 말을 걸어 주어야 해요. 그러니, 자가용을 모는 이뿐 아니라 자가용을 타는 이까지 책을 읽지 못해요. 자가용을 타면, 종이책뿐 아니라 삶책 또한 못 읽어요. 다른 자동차를 살펴야 하고, 길알림판을 찾아야 하며, 이래저래 앞 찻길만 한참 쳐다보아야 해요. 자동차를 모는 이와 자동차를 함께 탄 이 모두 둘레를 살피지 못해요. 게다가, 자동차 소리만 들어야 할 뿐, 자동차가 지나가는 마을이나 숲이나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퍼지는 숱한 소리는 하나도 못 들어요. 아니, 다른 소리에 마음을 기울일 틈을 못 내지요. 봄에 봄내음을 자동차에서 못 맡아요. 가을에 가을내음을 자동차에서 못 느껴요. 자가용에서 내려야 비로소 봄빛과 가을빛을 온몸으로 누려요. 자가용하고 헤어져야 비로소 종이책과 삶책 모두 가슴으로 안을 수 있어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도 좋지만, 들하고 나무하고 숲하고 바다하고 하늘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기울여 봐요. 기계가 들려주는 노래는 살그마니 내려놓고, 우리 목소리를 가다듬어 스스로 예쁘게 노래를 불러 봐요. 우리 이야기를 동무한테 들려주고, 동무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요. 풀밭을 거닐며 풀내음을 맡고, 나무 곁에 서서 나무를 포옥 안으며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요. 언제나 우리 둘레에 있는 책을 읽어요. 늘 우리 곁에서 따사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숱한 책을 사랑스레 누려요.


2019.5.26. 출판사는 ‘믿음’으로 우리 책을 내주지 않고, 우리는 출판사에 ‘믿음’으로 우리 글꾸러미를 보내주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마음이 이어진 둘은, 그동안 서로 지켜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새길을 그렸기에, 반가이 만나 기쁘게 책을 짓는 길을 함께 뚜벅뚜벅 걷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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