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쓸거리

글로 쓸 거리는 누구나 우리한테 알려준다. 글쓰기 강사나 이름난 글꾼이 알려주지 않는다. 살아가며 부대끼거나 겪거나 맞이하는 모든 자리에서 온갖 쓸거리가 비롯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머리카락이 긴 사내가 꽃치마를 좋아해서 치마차림으로 다닐 수 있다. 뒤에서 이 ‘치마사내’를 가시내로 알아본 사람이 “앞에 가시는 여자 분?” 하고 부르는 일을 겪을 수 있다.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바지 입기를 좋아하는 가시내를 어떤 사람이 사내로 잘못 여겨 “옆에 계신 남자 분?” 하고 엉뚱하게 부르는 일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일을 짜증이나 우스개로 여길 수 있고, 글쓸거리로 삼을 수 있다. 기쁜 삶도, 슬픈 살림도, 아픈 하루도, 신나는 일도, 무덤덤한 얘기도, 늘 해먹는 밥차림도 얼마든지 글쓸거리가 된다. 마음을 열어 바라보면 모든 삶을 수수하게도 쓰고 뾰족하게도 쓰고 삿대질로도 쓰고 헛발질로도 쓰고 노래로도 쓰고 다툼질로도 쓴다. 받아들여서 삭이는 마음이 있다면 모든 걸음걸이는 글쓸거리로 피어난다. 1995.12.3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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