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헌책방 책갈래는 어떻게 나누는가


 책은 우리 손으로 펼쳐서 우리 눈으로 읽는 가운데 우리 머리로 새겨서 우리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다른 이가 책을 쥐어 펼쳐 줄 수 없습니다. 다른 이 눈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 머리로 새길 수 없습니다. 다른 이 마음으로 곰삭일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책읽기는 오로지 우리 스스로, 우리 힘만으로 하는 일이나 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어울려 놀 때는, 놀이규칙을 저희들끼리 잡습니다. 놀 곳도 저희들끼리 찾습니다. 놀 사람도 저희들끼리 부르고 모읍니다. 누가 시킨다고 놀 수 있지 않아요. 누가 시킨다고 더 잘 놀 수 있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내켜서 하는 놀이요, 스스로 신나기 때문에 즐기는 놀이입니다.

 반갑게 손에 쥐어 읽을 책이라면 우리 스스로 찾아낼 때, 신나게 뛰면서 이마에 땀이 맺힐 놀이라면 우리 스스로 뒹굴 때 가장 반갑고 좋지 싶습니다. 때때로 다른 사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책이든 놀이든 늘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즐길 때가 가장 재미나고 뿌듯하고 보람이 있다고 느낍니다.

 널찍한 큰 책방에 가든 도서관에 가든, 가만히 골마루를 누비며 책꽂이를 살피다 보면, 책갈래를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우리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따로 누구한테 묻지 않아도 책이 저절로 보입니다. 꽂혀 있는 책에 따라 우리 몸이 맞춰지니까요.

 일본으로 나들이를 떠나거나 인도로 나들이를 떠나거나 이집트로 나들이를 떠날 때는, 일본을 느끼고 인도를 살피고 이집트를 부대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파리를 간다면 파리사람들을 만나고 파리밥을 먹고 싶기 때문입니다. 코펜하겐에서는 코펜하겐에만 깃든 모습을 보고 싶으며, 부다페스트에서는 부다페스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모습과 함께하고 싶겠지요. 책방 교보문고를 간다면 교보문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책을, 책방 영풍문고를 간다면 영풍문고에서만 만날 수 있을 책을 느낄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싶어요. 우리가 미국 모습을 느끼고 싶어 일본을 찾지 않잖아요. 이집트에 가서 프랑스밥을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요. 헝가리에 가서 독일 문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고향동무를 만날 때에는 고향에서 나고 자란 살가움을 나눕니다. 학교동무를 만날 때에는 함께 학교를 다니며 부대낀 옛이야기를 나눕니다. 일터동무를 만날 때에는 같은 길을 걸으며 느끼는 온갖 세상과 삶을 나눕니다. 사랑동무를 만날 때에는 서로한테 느끼는 애틋함을 부대낄 테고요.

 새책방을 갈 때에는 새책방 책을, 도서관을 갈 때에는 도서관 책을, 헌책방을 갈 때에는 헌책방 책을 만납니다. 부대낍니다. 손에 쥡니다. 찾고 살피고 헤아립니다. 자연스럽게. 같은 새책방이라지만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다릅니다. 대전 대훈서적과 전주 홍지서림이 다릅니다. 인천 대한서림과 광주 충장서림이 다릅니다. 같은 도서관이라지만 국립중앙도서관과 사직동 도서관과 대학교 도서관은 다 다를 테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헌책방이라지만 서울 청계천과 부산 보수동이 다릅니다.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과 용산에 있는 헌책방이, 대전 원동에 있는 헌책방과 청주 중앙로에 있는 헌책방이 다릅니다. 제주시에 있는 헌책방과 춘천시에 있는 헌책방이 같을까요. 다 다르겠지요.

 꼭 찾아야 할 책이 있어서 쪽지에 책이름을 적어 놓고 찾아간다면, 책방마다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책살림을 꾸리는지 살필 일이 없습니다. 그냥 책이름을 부르고, 그 책이 있으면 사고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꼭 찾아야 할 책이 아니라, 내 마음을 움직이는 즐거움과 보람을 선사하는 책을, 그러면서 아직 내가 모르는 책을, 어렴풋이 스친 적은 있으나 제대로 속살을 맛보지 못한 책을 찾는 몸가짐이라면, 책방을 찾는 우리들 눈에 들어오는 책이 다릅니다. 책방 나들이도 한결 다릅니다. 널찍한 교보문고에서 서너 시간 또아리를 틀고 책을 살피겠지요. 조그마한 헌책방구석에서 네다섯 시간 쭈그리고 앉아서 책을 살피겠지요.

 넓은 새책방과 도서관이라 해도, 좁은 헌책방이라 해도, 이삼십 분 느긋하게 죽 둘러보면 책갈래를 어떻게 나누었는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은 여기에 있고 저런 책은 저기에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와닿을 책을 바라는 마음으로 둘러보면 온갖 책이 다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사려는 어떤 책이름 몇 가지만 머리에 넣고 있으면 책꽂이가 안 보입니다.

 요즘 사람들 책방 나들이 모습을 지켜보면, 다리품을 팔거나 시간을 들여서 자기가 읽을 책을 찾는 분들이 자꾸자꾸 줄어드는구나 싶습니다. 다른 이들이 추천하고 칭찬하는 책, 흔히 좋다고 하는 책을 찾아서 읽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남들 말이 아닌 자기 말로, 그러니까 남들이 좋다고 하든 싫다고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한테 가장 좋을 책을 찾는 눈매와 손길이 자꾸자꾸 사라집니다. 어쩌면, 유행 따라 살고 유행 따라 옷 갖춰 입고 유행 따라 머리 손질 하고 유행 따라 돈버는 일자리 바꾸는 요즘 사람들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큼직한 책방 교보문고를 찾아가는 까닭이, ‘교보문고가 갖춘 수많은 책을 두루 구경하기’가 아니라 ‘마일리지 쌓기’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동네책방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주문해서 받아 볼 수 있는 책을 구태여 먼 나들이를 하며 교보문고에서 사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책방에 주문한 뒤 택배로 며칠 뒤에 받아 보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동네책방에 전화한 다음 손수 책방을 찾아가서 찾아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견주면 어느 쪽이 더 알뜰할까요. 요새는 동네책방에 책 주문을 넣어도 하루나 이틀이면 책방으로 들어옵니다. 다만, 동네책방에 주문을 넣으면 자기 몸을 움직여야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동네책방이 어디 먼 외딴곳에 있나요. 가게에 장보러 오가는 길에, 일터에 오가는 아침저녁 길에, 동무를 만나러 나들이하는 길에 동네책방에 잠깐 들를 짬이 안 날는지요. 컴퓨터 자판 또닥거리며 주문을 넣는 시간이 참말로 ‘짧’을까요.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같은 책을 사도 좀더 값싸게 살 수 있어 좋기도 합니다. 책을 값싸게 사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값 싸게 얻는 일에만 마음을 쓴다면, 헌책방 나들이를 아무리 오래도록 많이 즐겨도 ‘싸구려’ 하나만 얻을 뿐입니다. 인터넷책방으로 책을 주문하는 일이 다리품을 덜어 준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마음을 써서 세상을 부대끼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오로지 ‘손쉽게’ 살아가는 길만 느낄 뿐입니다. 헌책방 나들이는, 첫째,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본 책을 사는 일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책이지만, 이 모든 새책이 새책방 책꽂이에 고스란히 꽂히지 못합니다. 팔리면 살아남고 안 팔리면 곧바로 사라집니다. 언론매체에서 눈길을 두며 소개해 주는 책은 그야말로 몇 가지 안 됩니다. 그러면 이 책들은 ‘안 읽을’ 만하기 때문에 소개도 못 받고 팔리지도 못한 채 사라져야 할까요. 헌책방은 이런 모든 책을 푸대접하지 않고 모두 똑같은 대접으로 받아들여 주는 곳입니다.

 둘째,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사서 읽은 뒤 내놓은 책을 샛장수와 헌책방 임자 두 사람이 ‘다시 새숨을 불어넣어 팔 만한 값어치가 있구나’ 하고 느끼며 갖춘 책을 사는 일입니다. 사람마다 보는 눈길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며 품은 생각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읽을 책이 다르고 읽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릅니다. 이 다름이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가로지를 수 있다면 헌책방 책꽂이에 살아남습니다. 쉰 해가 지난 책이라 해도, 책겉이 다 낡은 책이라 해도, 나라밖 말로 된 책이라 해도.

 셋째, 어떤 책을 읽으면 좋다고 할 때, 모든 사람이 온돈을 주고 사서 보지 않아도 좋도록 나눔을 베푸는 일입니다. 도서관은 책 문화를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이어 주는 곳입니다. 문을 열어 주는 곳입니다. 책을 꼭 돈 주고 사서 읽어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참말 좋은 책인데 비싸서 버겁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됩니다. 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기가 참 어렵습니다. 모든 책을 두루 갖춰 놓고 있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은 얼마나 많은가요. 이리하여 도서관에서마저 버리는 아까운 책을, 한 번 버려지면 다시 찾을 길 없는 책을, 새책방에서 판이 끊어진 뒤 자취를 알 수 없는 책을, 어디에서 만날까요. 어디에서 찾을까요. 바로 헌책방입니다. 헌책방이 없다면 ‘판이 끊어진 책’과 ‘도서관에서 버린 책’을 만날 길이란 영영 없어지는 우리 나라입니다. 도서관은 책 살 돈이 없는 우리들한테 고마운 나눔터 몫을 하는데, 헌책방은 마냥 빌려서 읽기만 하기에는 어려운 책을, 그리고 새책보다 눅은 값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합니다.

 넷째, 소중한 자연 자원을 덜 쓰도록 하며 ‘다시쓰기’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책 한 권을 한 사람만 읽도록 만든다면 자연 자원은 너무나 많이 들어야 합니다. 책 한 권을 두 사람이 읽을 수 있다면, 열 사람이나 백 사람이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주머니돈을 털어서 사 읽는 책이라 해도, 나중에 다른 누군가가 읽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아끼고 돌볼 수 있으면 좋습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는, 우리가 사들인 책이 누구 손에 갈까요. 우리가 살아 있는 날만 생각한다면 자연 삶터는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다섯째, 지역에 읽을거리가 돌고 돌도록 하면서 스스로 지역 문화를 가꾸는 일입니다. 헌책방은, 이 헌책방이 깃든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읽고 즐기는 책이 있는 곳입니다. 지역 헌책방을 보면 그 지역 사람들 책문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동네책방이 잘되는 곳은 헌책방도 잘됩니다. 동네책방이 죽을 쑤거나 사라지는 곳은 헌책방도 죽을 쑤거나 사라집니다. 동네새책방과 동네헌책방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라면 동네 문화, 곧 지역 문화도 따로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돈이 으뜸이요, 이름값 날리며 자기 혼자만 떵떵거리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는 동네새책방과 동네헌책방이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책읽기란, 언제까지나 자기를 낮추며 배우는 일이기 때문에, 책읽는 소리가 조곤조곤 마을을 감도는 곳에는 늘 싱싱한 기운이 감돌고 젊음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책읽는 소리가 사라진 마을은 술주정 소리와 고기굽는 소리로 뒤덮일 뿐입니다.



 여섯째,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겉보다 속을 살피는 눈길을 가꾸며, 우리 스스로 자기한테 참답게 무게를 두며 돌보고 사랑하고 아낄 곳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즐거운 삶인지 돌아보도록 하는 일입니다. 김치국물이 튀었다고 해서 책 줄거리에 김치국물이 묻지 않으니까요. 낡은 갱지로 찍은 책이라 해서 책 줄거리가 낡아 버리지 않으니까요. 빳빳한 종이에 찍은 책이라고 줄거리도 빳빳해지나요? 곱고 하얀 종이에 찍는 책이라고 줄거리도 곱고 하얗던가요.

 나눌 줄 아는 마음, 기꺼이 자기 것을 함께할 수 있는 마음, 언제라도 고개숙일 줄 알며 자기가 모르는 것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 마음, 껍데기나 유행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곱다시 자기 줏대를 지키며 튼튼하고 다부지게 추스르고 매만질 수 있는 마음을 얻거나 나누는 곳이 헌책방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헌책방들은 저마다 책갈래가 다릅니다. 크기도 다 다른 헌책방이고, 마을마다 책갖춤새도 다를 뿐 아니라, 헌책방 꾸리는 분들 마음과 생각도 다 다릅니다. 이리하여 그 작은 헌책방들도 책꽂이 매무새를 살피자면 느긋하게 이삼십 분 둘러보아야 합니다. 바삐 살피는 눈으로는, 건성으로 스쳐 지나가는 몸으로는, 쪽지에 적은 책이름만 읊으려는 입으로는, 조용히 우리들을 부르는 책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귀로는 헌책방 헌책을 느낄 수 없습니다.

 헌책방 한 곳 책꽂이를 느끼는 일은, 그 헌책방 한 곳을 꾸려나가는 책살림을 보는 일인 한편, 그 헌책방이 깃든 마을 문화를 헤아리는 일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는 책흐름을 짚는 가운데 자기한테 가장 알맞을 책 하나를 건져올려야 하는 몸바침이고, 먼저 임자-샛장수-헌책방 임자 이렇게 세 사람 손길을 느끼는 일입니다.

 헌책방 책갈래 살피는 일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거리를 찾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으려면 자기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아무 책이나 대충 고를 수 없겠지요? 적어도 한두 시간은 들여서 읽는 책인데, 대충대충 유행하는 책을 찾아서 읽어야 할까요? 그럴 바에는 아예 아무 책도 안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자기한테 반가울 책을 찾아서 읽어야 좋잖아요. 자기 삶을 가꿀 책을 찾아서 읽어야 좋잖아요. 자기한테 즐겁고 재미가 넘치는 책을 읽어야 좋잖아요. 남들이 읽어서 좋았다는 책이 아니라, 내가 읽어서 좋을 책을 찾아서 읽어야 좋잖아요. 그러자면, 헌책방 책갈래 나눔은 우리들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 스스로 느껴야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거나 바라는 책이 다른 만큼, 자기가 좋아하거나 바라는 책은 어느 자리에 얼마만큼 꽂혀 있는지, 얼마나 갖추고 있으며 어느 때에 들어오는지 느껴야 좋습니다. 한편, 자기가 딱히 좋아하지는 않으나 자기 생각과 머리를 가꾸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어느 자리에 어떻게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겠지요. 내 이웃을 느끼듯이, 내 동무를 생각하듯이, 내 어버이와 내 딸아들을 헤아리듯이.

 헌책방 책갈래는 우리들이 사서 읽은 책을 중심으로, 그 다음으로는 우리가 사서 읽은 뒤 기꺼이 내놓는 책을 중심으로 갖추어 놓고 나누어 놓습니다. 헌책방 책갈래가 엉성해 보인다면, 또 흐지부지 어수선해 보인다면, 또 거의 나눔이 없어 보인다면, 이런 모습으로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헌책방 책갈래가 퍽 꼼꼼하고 알뜰하며 재미있다면, 이런 모습으로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파리에는 파리 문화가 있고 도쿄에는 도쿄 문화가 있습니다. 헌책방에는 헌책방 문화가 있습니다. 신촌 ㅈ헌책방에는 ㅈ헌책방 문화가 있습니다. 노량진 ㅈ헌책방에도 ㅈ헌책방 문화가 있습니다. 인천 ㅇ헌책방에는 ㅇ헌책방 문화가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대구 ㄷ헌책방을 찾아가면서도 ㄷ헌책방 문화를 느끼거나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맛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원 ㅇ헌책방을 찾아가면서도 수원 ㅇ헌책방에만 있는 문화를 돌아보거나 만나거나 부대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만날 수 있는 책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어떤 책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헌책방 나들이를 해서 얻는 보람이나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4340.1.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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