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더워



생각을 열고 마음을 틔우면, 다른 어느 것도 보지 않아도 된다. 생각을 열고 마음을 틔워 부엌에서 도마질을 할 적을 떠올리자. 오직 도마질만 바라보면서 우리 둘레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도 안 보인다. 책읽기를 되새기자. 생각을 열고 마음을 틔워 책을 손에 쥐면 ‘글씨’가 아닌 ‘글씨에 깃든 글쓴이 숨결’만 보이면서, 내가 시외버스에 있는지 비행기에 있는지 감옥에 있는지 교실에 있는지 침대에 있는지 숲에 있는지 몽땅 잊는다. 게다가, 이렇게 잊고 못 볼 뿐 아니라, 추위나 더위도 잊는다. 아니, 추위나 더위를 아예 안 쳐다보고 안 느끼며 안 받아들인다. 생각을 열고 마음을 틔울 적에는, 가난한 살림도 가멸찬 살림도 안 보고 안 느낀다. 그렇다고 바보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어느 곳에든 생각을 열고 마음을 틔울 줄 알 적에는 휘둘리거나 휩쓸리거나 사로잡히거나 흔들릴 일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스스로 즐겁게 걸어갈 길을 찾아서 생각을 열고 마음을 틔우는 몸짓이 된다면, 무슨 일이나 놀이를 하더라도 언제나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글을 쓰려면 “한여름에 안 덥다고 느끼면서 에어컨 없이 선풍기나 부채도 없이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면 된다. 한겨울에도 이와 매한가지이다. 이때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쏟아질 뿐 아니라, 글을 쓸 겨를도 매우 넉넉하다.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껏 다 쓸 수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