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할 말만 하는 책



  사람들은 저마다 저 할 말만 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를 어렴풋이 느꼈으나 곁님이 어느 날 이 대목을 똑똑히 밝혀 준 뒤로 제대로 마음으로 푹 꽂힙니다. 어버이하고 아이 사이에서도, 동무랑 동무 사이에서도, 가까운 이웃 사이에서도, 좋은 뜻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에서도, 참말로 사람들은 제 뜻을 펼 뿐이에요. 얼핏 보면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지만, 가만가만 살피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맞추어 저 하고픈 말’을 생각해 내어서 폅니다. 그리고 이처럼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 할 말을 곰곰이 생각해서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저 할 말’이 아닌 ‘남 눈치를 보는 말’이나 ‘남 입맛에 맞는 말’이나 ‘남을 따르는 말’을 한다면 어떠할까요? 이때에 이야기가 될까요? ‘내 생각’이 아닌 ‘남 생각’을 ‘내 입’을 거쳐서 내놓으면 서로 어떤 이야기가 될 만할까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서로 말을 나눌 수 있는 까닭은 저 할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까닭도 저 할 말을 하기 때문이지요. 책이란, 바로 글쓴이 나름대로 펴는 글쓴이 말이자 생각이자 뜻이자 꿈이자 사랑입니다. 글쓴이가 남 눈치를 보고서 글을 썼다면, 이런 책은 읽을 값어치가 없습니다. 그림이나 사진도 남 눈치를 보며 멋들어지거나 그럴싸하게 꾸몄다면, 이런 그림이나 사진이 깃든 책도 읽을 일이 없어요. 우리 마음에 스며들면서 생각을 새로 지피고 아름답게 북돋우는 책이란, 글쓴이·그린이·찍은이 모두 ‘글쓴이 나름대로 저 할 말을 신나게 편’ 책입니다. 2018.7.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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