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읽기랑 그냥외기



  ‘모르는 나’를 고이 받아들이려고 마음을 열 적에 비로소 귀를 열고 머리를 열면서 새로운 숨결을 받아들입니다. ‘모르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는 척하는 나’를 섣불리 겉에 내세우는 모습이 될 테니, ‘아는 척’은 마음을 못 열고 귀도 머리도 못 여는 터라, 받아들이는 모습하고는 동떨어진 채 새로운 숨결을 모두 멀리하고 맙니다. 배움읽기입니다. 그냥외기 아닌 배움읽기입니다. 그냥외기를 하면 남이 시키거나 보이는 대로 길들어서 믿음을 굳히고 말아요. 이른바 종교나 철학이나 이론이나 정치나 질서나 권력이나 사회가 됩니다. 그냥외기에는 새로움이 없습니다. 그냥외기에는 종살이 하나만 있어서 늘 쳇바퀴를 도는 하루로 흘러갑니다. 배우는 사람은 젊은데, 안 배우는 사람은 안 젊습니다. 나이가 어리기에 젊을 수 없습니다. 배우기에 비로소 젊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안 배우는 사람은 고리타분하면서 ‘애늙은이’라 하지요. 안 배우려 하는 이는 귀도 머리도 마음도 꾹꾹 닫아걸고 제 좁은 울타리에 가둔 믿음만 둘레에 퍼뜨리려고 하니, 사람들은 모두 이런 ‘고리타분 애늙은이’한테서 멀어지려고 해요.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은 눈도 귀도 마음도 머리도 열면서 새로 배우는 즐거운 사람 곁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스스로 길들어 스스로 종살이를 하며 스스로 쳇바퀴질을 하는 줄 깨닫지 않을 적에는 ‘배우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배우는 사람’한테는 종교도 철학도 이론도 정치도 질서도 권력도 사회도 없습니다. 배우는 사람한테는 오로지 하나 ‘배움읽기’만 있어요. 배우려고 마음을 읽고, 배우려고 바람을 읽으며, 배우려고 숲을 읽지요. 배우려고 사랑을 읽고, 배우려고 삶을 읽으며, 배우려고 옷밥집 같은 살림살이를 읽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늘 삶이라는 앎을 말하지만, 안 배우는 사람은 늘 믿음이라는 굴레(종교라는 쇠사슬)를 욀 뿐입니다. 2018.7.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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