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47


 걸음


  아기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선 뒤에 걷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걸음을 떼고는 아장아장 기우뚱기우뚱 신이 나서 걸음놀이를 누립니다. 아기들 걸음걸이인 ‘아장걸음’은 아기 몸짓을 그릴 뿐 아니라, 어떤 일이 아직 서툰 몸짓을 나타낼 만합니다. 처음 발을 뗀 몸짓인 ‘첫걸음’을 지나 한동안 용을 쓰듯 좀 어수룩해 보이지만 대견한 모습을 ‘아장걸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아장걸음을 지났어도 느긋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아기는 어른한테 대면 걸음이 느립니다만, 어른도 굳이 빨리 안 걸을 수 있어요. ‘느린걸음’이라든지 ‘천천걸음·찬찬걸음’으로 삶을 고요히 돌아볼 만합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구나 싶어, 때로는 ‘더딘걸음’이 되기도 합니다. 애써 해 보았으나 쓴맛을 보고 말아 ‘쓴걸음’이라든지 ‘헛걸음’을 할 수 있고요.


  그만 허방에 빠진 ‘허방걸음’이 있어요. 늪이나 수렁에 빠지는 ‘늪걸음’이나 ‘수렁걸음’도 있지요. ‘가시밭걸음’이나 ‘쑥대밭걸음’도 있을까요? 어느 날은 신바람을 내며 ‘신바람걸음·신명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요. ‘춤걸음’이나 ‘노래걸음’을 뗀다면 무척 즐거워요. 이때에는 ‘기쁜걸음’이겠지요.


  그리고 ‘슬픈걸음’이나 ‘아픈걸음’이 있어요. 첫걸음이 있다면 마무리를 짓는 ‘막걸음·끝걸음’이 있을 테고, 한 발짝 뗀대서 ‘한걸음’이, 두 발짝 뗀대서 ‘두걸음’이, 새로 힘쓴대서 ‘새걸음’이 있을 테지요.


  우리는 걷습니다. 하루를 헤아리며 ‘하루걸음’이요, 삶을 살피며 ‘삶걸음’입니다. 늑장을 부리는 ‘늑장걸음’이나 ‘늦걸음’이 될 때가 있고, ‘서툰걸음’이나 ‘잰걸음·날랜걸음’이 될 때가 있어요. 굳이 ‘빠른걸음’이어야 하지 않되, 바람처럼 가볍게 ‘바람걸음’으로 피어날 때가 있습니다.


  꽃길을 걷는다면 ‘꽃걸음’이고, ‘글걸음’이나 ‘책걸음’이나 ‘배움걸음’으로 하나하나 익힙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 여러 ‘걸음’을 했지.”나 “세 걸음째인데 안 되더라.”나 “다섯 걸음째에 이루었어.”라 말할 만하네요. 2018.3.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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