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그녀의 꽃들
루피 카우르 지음, 신현림 옮김 / 박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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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33


아픔을 사랑으로 노래한 이주민 여성 목소리
― 해와 그녀의 꽃들
 루피 카우르 글/신현림 옮김
 박하, 2018.4.26.


젖가슴
이라고 남자애들이 말할 때
그 말이 싫었다
내가 그 말을 하면서 창피한 것도 싫었다
그 말은 내 몸을 가리키지만
내게 속한 말이 아니고
그 아이들에게 속한 말이었던 게 싫었다 (98쪽)


  시집 《해와 그녀의 꽃들》(루피 카우르/신현림 옮김, 박하, 2018)을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이 시집을 어떤 사람들이 읽었을까요? 이 시집을 옮겨서 펴낸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읽을까요?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시를 쓴 분은 이녁 시를 누가 읽어 주기를 바랄까요? 여성 이야기를 여성이 읽기를? 아니면 여성이 걸어온 길과 걸어가는 길과 걸어갈 길을 ‘남성이라는 이웃’이 읽기를 바랄까요?


나는 바람을 질투해
지금도 너를 보고 있으니 (25쪽)

우리 부모님은 저녁에 우리를 앉히고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한 분은 늘 일을 하셨고 한 분은 너무 피곤하셨다. 아마도 이민자의 삶이란 그런 것 같다. (142쪽)


  오늘날에도 더러 볼 수 있습니다만, 예전에 한국에서는 ‘사내 아이를 높이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사내를 못 낳는 어머니는 쫓겨나기도 했고, 사내를 못 낳는 대서 새어머니를 들이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이런 모습은 한국에만 있지 않았더군요. 서양에서도 이런 흐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양이 한국보다 성평등을 한결 헤아린다고 하지만, 서양에서도 성차별은 곳곳에서 불거진다고 해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어 본다면, ‘동양에서 온 여성’을 따돌리는 모습도 적잖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나라나 모든 사람이 이웃을 이웃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따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을 테지만, 알게 모르게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 고단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스라한 옛날이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 고달픈 사람이 있어요. 이러한 목소리를 시집 《해와 그녀의 꽃들》을 읽으면서 느낍니다.


내가 태어날 때
엄마는 말씀하셨다
네 안에 신이 계셔
그녀가 춤추는 걸 느낄 수 있니 (207쪽)


  인도 이주민 집안에서 태어난 작은 가시내는 가난한 살림을 늘 지켜보고 살다가, 어른이 되면서 ‘알게 모르게 와닿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느낍니다. 이러면서 이녁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되새기고, 이녁 아버지가 이민자로서 집안을 꾸리려고 얼마나 힘겹게 싸워야 했는가를 돌아봅니다.

  힘들 때마다 하느님(신)을 떠올립니다.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에 흐르는 하느님입니다. 어머니는 어린 글쓴이를 바라보며 “네 안에 하느님이 있다”고 이야기했대요. 아버지는 바깥일로 너무 바쁘고 힘들어 거의 이야기를 못 들려주었다지만, 몸으로 말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대요. 이러는 동안 글쓴이는 학교에서 마을에서 사회에서 ‘이주민 동양 여성’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말·몸짓·모습을 하나하나 받아들여서 삭여야 했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 ‘젖가슴’이라는 낱말을 놓고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시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당신은 거울이다
당신이 계속 사랑에 목말라하면
당신을 목마르게 할 사람만 만날 것이다
스스로 사랑에 흠뻑 적시면
온 우주도 당신을
사랑해 줄 사람들을 보내 줄 것이다 (233쪽)


  다만 시집 《해와 그녀의 꽃들》은 무언가 까밝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픈 이야기를 적지만 따지려 하지 않습니다. 고달프게 살아오고, 가슴에 맺힌 생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기는 하더라도 미워하려고 하는 마음은 아닙니다.

  아프면서 배운 이야기를 차분히 적으려고 합니다. 나를 아프게 한 네가 누구인지 차분히 헤아리면서 이러한 걸음걸이에서 배운 이야기를 가만히 적으려고 합니다. 고달프거나 힘겹게 살면서 지친 이야기를 적되, 힘들다는 목소리가 아닌, 힘겨운 나날을 지내면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가를 적어서, 내 곁에 있는 너하고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새롭게 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적으려고 합니다.

  무엇에 목마른 채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시로 그립니다. 무엇이 목마르다면 왜 이러한 삶일까 하고 다시 생각하고 살피면서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남이 입으로 읊는 ‘사랑해’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살림자리에서 길어올릴 ‘사랑스러울 하루’를 짓는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받을 여성도, 이주민 여성도 아닌, 고운 손길을 받으면서 고운 손길을 뻗을 즐거우며 새로운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태어난 첫날부터
그녀는 이미 자신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단지 세상이 그렇지 않다고 그녀를 설득했을 뿐 (237쪽)


  시집 《해와 그녀의 꽃들》은 여러모로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집에 흐르는 번역말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옮긴이는 영어 운율에 맞추어 한국말로 옮기려면서 좀 엉성하다 싶은 대목이 자꾸 드러납니다. 이 가운데 한 대목을 짚어 보고 싶습니다.


[신현림 님이 옮긴 말]
아버지는 모음이 무언지도 모른 채
어떻게 우리 가족을 가난에서 꺼내셨을까 생각하곤 한다
어머니는 영어 문장 하나 완벽하게
만들 줄도 모르면서
네 명의 자녀를 길러내셨다

[옮김말을 한국 말씨로 손질하기]
아버지는 홀소리가 무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을까 생각하곤 한다
어머니는 영어로 글 한 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면서
네 아이를 길러내셨다


  “무언지도 모른 채”는 “무언지도 모르는 채” 꼴로 고쳐야 하는데, 글흐름을 보자면 “무언지도 모르면서”로 고치면 한결 낫습니다. “모른 채”처럼 안 씁니다. “① 야구도 ‘모른 채’ 야구를 보니?”라 안 하지요. “② 야구를 ‘모르는 채’ 야구를 보니?”라 합니다. 부드럽게 말하자면 “③야구를 ‘모르면서’ 야구를 보니?”라 말합니다. ①은 한국 말씨로 보자면 틀립니다. ②로 적어야 한국 말씨에 맞습니다. ③이 가장 어울리면서 입말입니다. ①은 때매김(시제)이나 말틀(문법) 모두 어긋납니다. ‘채’를 붙일 수 있는 자리를 제대로 살펴야 합니다.

  영어로는 “가난에서 꺼내다” 같은 말씨가 있는지 모르나, 한국말로는 이렇게 안 합니다. 한국말은 “위기에서 꺼내다”나 “위험에서 꺼내다”라고도 안 합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벗어나게 하다”라고 합니다. “영어 문장 하나 완벽하게 만들다”도 번역 말씨입니다. “영어로 글 한 줄 제대로 쓰다”라 해야겠지요. “네 명의 자녀”도 번역 말씨이자 일본 말씨예요. “네 아이”처럼 써야 한국 말씨입니다.

  이주민 여성이 겪은 아프며 슬픈, 그렇지만 마냥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않겠노라고 당차게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를, 참으로 아름다이 한국말로 여미어 줄 수 있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2018.5.2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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