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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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가 됐을까.

 

책을 다 읽고서 일단은 판단중지(에포크)를 내렸다책의 내용과 구성이 내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우선 마치 신나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목소리를 따라 받아 썼다는 신나이 류의 책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면 개소리라고 생각한다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사기에 불과할 뿐이다그러나, <미움받을용기>에 그런 혐의를 지울 수는 없다둘째로 예상과 달리 이 책은 심리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나는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선 무지하다예전에 심리 상담사 자격증을 따기위해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이름만 대충 들어봤을 뿐이다. (자격증을 따긴 했는데 그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세계는 단순하다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이런 류의 언급들 때문에 아마도 신나이를 연상했던 것 같다미안하지만 이런 류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아들러의 트라우마에 대한 비판은 가장 통괘한 순간이었다단어는 사유를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이면서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마치 방패처럼 사용한다우리는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불행을 인간 스스로 선택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아들러 심리학을 흔히 용기의 심리학이라고 말한다아들러는 인간이 변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음이 가능한 이유가 용기라고 말한다즉 우리는 지금 당장 용기만 있다면 행복해 질 수 있다하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간의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에서만 비롯된다는 주장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다아들러 입장에서 개인에 국한되는 고민내면의 고민이라는 주장은 존재할 수 없다만일 내가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왜 나는 없지 않고 있는 것일까를 고민한다면 나는 인간이 아닌 셈이다.

 

아들러는 인간의 일반적인 심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단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아들러는 인간의 인정욕구를 부정한다. ‘인정욕구를 지니지 않은 인간도 있을까인정욕구는 성욕만큼이나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이 아닐까아들러의 주장대로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자유롭게 살 수 없지.“

 

아들러가 보기에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향한 것이다각자의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우리는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그것이 공동체에 공헌하는 길이다.

 

과도한 낙관주의는 위험하다아들러는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 수용을 말한다자기 긍정이란 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할 수있다”, “나는 강하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행위다이는 거짓이고 우월 콤플렉스에 빠지거나 아니면 반대로 극단적인 비관에 다다를 수도 있다이에 반해 자기 수용이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삶은 키네시스적 인생(kinesis)임에 반해 춤을 추는 인생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적 인생이다키네시스에는 시점과 종점이 있다반면 에네르게이아란 지금 하고 있는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된 운동을 말한다달리 말하면 과정 자체를 결과로 보는 운동이다춤을 추는 것이나 여행처럼.

 

춤을 추듯 살아라지금여기를 충실히 살아라라는 가르침은 니체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한편으론 에크하르트 톨레나 신나이혹은 사이비 종교를 떠올리게 한다.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을 말할땐 타자에 대한 환대를 중요시했던 레비나스를 연상시킨다.

 

한마디로 아들러 심리학은 심리학이기 보다는 당위의 철학이다우리는 더 이상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멈추고자신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타인에게 공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용기를 내면 가능할 일이고분명 감동적이고 존경할만한 가르침임에는 분명하나거기에 이르는 길은 희붐하다이렇게 말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누군가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신과는 관계없습니다내 조언은 이래요당신부터 시작하세요다른 사람이 협력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말고.”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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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7-1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시이소오님은 별점이 후하다고 하셨던게 생각납니다!
리뷰만 읽고 보면 두어개 정도 주셨을 것 같은데 곱배기를 쏘셨네요^-^

시이소오 2016-07-10 09:17   좋아요 0 | URL
과보단 공이 더 많다고 할까요,?
^^

alummii 2016-07-1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인기는 제목도 한 몫 한것같아요 ㅋ

시이소오 2016-07-10 09:33   좋아요 0 | URL
한국인들의 무의식을 쿡 찔렀기 때문일까요?ㅎ ㅎ

마음대로대왕 2016-07-1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좋게 본 책입니다. 처음에는 이 것봐라 하는 마음에 봤고 두번째 읽을때는 제 오류를 수정하는 피드백도 받았구요. 하지만 시이소오님 리뷰를 보니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이야기는 아닐수도 있겠네요.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에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그렇듯 행동으로 얼마나 이어지느냐죠.

시이소오 2016-07-10 10:42   좋아요 0 | URL
저도 좋게본 책입니다. ㅎ 마음대로대왕님 말씀
처럼 행동이 관건이겠네요 ^^

북다이제스터 2016-07-1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이소오 님이 별 하나 주실 것으로 예상했는데, 제겐 의외입니다. ^^
제가 뭔가 잘못 읽은 거 같습니다.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제가 책 내용 중 넘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중한거 같습니다.

시이소오 2016-07-10 19:50   좋아요 0 | URL
ㅋ 다이제스터님의 평가를 믿으세용 ^^

stella.K 2016-07-1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담사 자격증이 있으시군요.
저는 예전에 한 때 심리학이 좋아서 자격증 말고
상담사 수료증이 있어요.ㅋ
그때 아들러를 좋아했지요. 프로이드나 융은 넘 어렵고
만만해 보이더라구요.
근데 언제부턴가 심리학에 별 흥미를 못 느끼겠더군요.
그래서 이 책도 당연히 안 읽었는데 의외로 평들이 좋아 관심이 가더군요.
그런데 님이 이렇게 쓰시니 안 읽어 볼 수가 없겠군요.^^

시이소오 2016-07-10 21:26   좋아요 0 | URL
상담사 자격증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하더라구요.
심리학과를 다녔어야 했는데 ㅋ. 예전부터 아들러 를 좋아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기시미 이치로 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

호호야날다 2016-07-12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제가 찾아다니던 말인데 여기서 보게 되네요.

시이소오 2016-07-12 01:19   좋아요 0 | URL
좋은 표현 같아요. 할수없는 나조차도 수용하는거잖아요 ㅎ ㅎ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판 한국 현대사 산책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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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선공산당은 민족통일 자주독립촉성 서울 시민대회를 개최한다. 반탁 집회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도부에서 갑자기 찬탁지지를 결의한다.

 

115, ‘미국의 소리샌프란시스코 방송은 박헌영이 <뉴욕타임스> 특파원 리차드 존스턴에게 소련일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지지하며 장래에 조선이 소연방의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민당 등 51개 우익단체들은 박헌영 타토국민대회를 개최하고, 박헌영 목에 30만 엔의 현상금까지 내건다.

 

117, <서울 신문>은 로버트 콘월의 증언을 보도했다. 콘월은 박헌영이 조선인이 조선인을 위해 다스리는 조선을 원한다고 말했을 뿐 다른 말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군정의 내부보고서도 박헌영은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했으며, 박헌영 발언은 완전히 왜곡되어 보도되었다고 기록했다.

 박헌영 발언은 미군정의 여론공작이었다.

 

125, 소련은 타스통신을 통해 오랫동안 조선의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미국이고, 조선의 신속한 독립을 주장한 것은 소련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는 남한 신문들이 타스 통신 보도를 못하도록 검열했다.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전쟁은 우익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홍구는 이렇게 말한다.

 

즉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기 보다는 민족해방운동에 좀더 충실했던 세력이었으며 자주독립의 옹호자였기 때문에 대중적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탁통치 논쟁을 계기로 친일파를 포함한 우익은 민족 대 반민족의 구도로 전개되어 온 식민지 시기 이래의 정치지형을 좌익 대 우익의 대립으로 바꿔놓는데 성공했다.”

 

친일파들에게 신탁통치 문제는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가 아니었을까. 일제 35년간의 수탈을 겪어 온 대다수 국민들이 탁치에 찬성할 리가 없다. 친일파들은 반탁은 애국, 찬탁은 매국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국민을 위해 반탁을 주장한 것일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반탁은 애국을 주장한 친일파들과 우익들이 한반도를 두 동강 낸 단정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찬탁 세력 아닌가.

 

1945년은 쌀 풍년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쌀값이 무섭게 폭등했다. 미군정은 45105일부터 자유시장정책을 실시하여 투기를 불러 일으켰다. 친일파 대지주들, 친일파 경찰들이 쌀을 매점매석한 것.

 

125일 미군정은 미곡수집령을 발표한다. 식량을 공출하겠다는 것. 배급량은 총독부 시절보다 반이 줄어든 11홉이었다. 당시는 쌀 구하기전쟁이었다. 쌀을 살 수 없는 남편이 아내와 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미군정은 멍청한걸까, 사악한걸까.

 

214, 미군정에 의해,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이 출범한다. 이른바 민주의원. 의장은 이승만, 부의장은 김구와 김규식이었다.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이즈음 임정은 이미 해체되어있었다.

 

민주의원에서 좌익은 배제되었다. 좌익은 바로 다음날 215,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한다. 이른바 민전. 민전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 파시스트, 민족분열자 등을 배제한 민주주의 민족통일체임을 선언, 조선의 완전 자주독립, 민주주의 공화제 실시, 파시즘 근절, 남녀평등, 토지, 농업 문제의 시민적 해결, 여덟 시간 노동제, 최저 임금제 실시,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임정을 떠난 김원봉, 김성숙, 장건상, 성주식 등이 민전에 참여한다. 민전의 공동의장엔 여운형, 허헌, 박헌영, 백남운, 김원봉 등이 추대된다.

 

민주의원과 민전의 갈등은 첨예화되어 3.1절 기념식 행사마저 따로 따로 치뤘다.

 

한편 북한에서는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할 것을 요구하며 조만식에게 대통령 자리까지 제시하지만 조만식은 끝끝내 지지를 거부한다.

 

28일 소련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킨다. 위원장에는 김일성이 선출된다.

 

31, 평양역 앞에서 3. 1운동 27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염동진이 이끄는 전문 테러 단체 '백의사'가 김구와 신익희의 지시에 따라, 김일성을 암살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김일성 폭탄 테러 미수 사건이 임정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증거를 확보한 김일성은 김구와 더불어 이승만을 격렬히 비난한다.

 

35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령을 발표한다. 김일성은 지주들로부터 빼앗은 토지를 전체 농촌 인구 70%인 소작농들에게 무상으로 재분배한다.

 

320일 모스크바 삼상회의 내용을 실현하기 위한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된다. 미소공동위원회는 공동성명 5호를 발표한다. 지금까지 반탁투쟁을 해왔어도 삼상회의 결의에 지지를 표명하면, 과거의 반탁행위를 불문에 붙이고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협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김구는 완강히 거부한다. 이승만은 찬성한다. 여러 가지 문제로 미소공위는 58일 무기휴회로 들어간다.

 

54일 미군정은 군정법령 제 72호를 공포, 이른바 인천 공작을 자행한다. 미군정 방첩대(CIC)<인천신문>을 급습해, 사장 이하 60여명의 언론인들을 연행한다. 좌익에 대한 미군정의 공세였던 것.

 

515, 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이 터진다. ‘정판사는 일제 시대에 근택인쇄소라는 이름으로 조선은행권을 인쇄하던 곳이었는데, 해방이 되자 조선공산당이 재빨리 접수해 당 본부 간판을 걸고 기관지인 <해방일보>를 발행했다.

 

54일 위조지폐단이 뚝섬에서 검거되었다. 용의자 중에 김창선이라는 인물 때문에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었다. 김창선은 조선공산당 당원이었으며, 조선정판사에서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조선공산당 본부를 수색, 공산당 기관지인 <해방일보>를 무기 정간시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좌익 진영은 공개적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조선정판사 사건은 이후 경찰과 중정, 안기부, 국정원의 숱한 조작사건, 특히나 간첩조작사건의 원형이었던 셈이다. 역사를 보면 친일파 세력, 독재협력 세력들은 똑같은 짓거리를 수없이 반복한다. ‘조선정판사 사건을 본받아 이들이 벌인 간첩 조작 사건만 수 백건이다.

 

529일 미군정은 신문 기타 정기간행물 허가에 관한 건을 공포한다. 발행의 허가제로 일제 강점기로 회귀한 것. 미군정은 좌익 계열의 정기간행물 신청은 불허했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퍽이나. 최근 박근혜 정부는 신문법 시행령이라는 해괴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5인 미만의 인터넷 신문은 강제로 퇴출된다는 것.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5인이면 언론이고 4인이면 사이비 언론이다? 이승만의 사사오입 패러디인가??

 

언론의 어뷰징(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같은 기사를 제목이나 내용만 조금 바꿔 반복으로 전송하는 행위)과 선정성 기사, 그리고 협박성 기사를 이용해 광고를 따내는 등 언론 환경 파괴 행위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저런 짓거리는 주로 <조선일보><동아일보>의 특기 아닌가? 5인 이하 언론이 무슨 힘이 있어 협박을 한다고?? 언론인들은 5인 이상 상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매출 1억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 가난한 언론은 다 죽이겠다는 심보? 정부 입맛에 맞는 기사만 써라?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개수작인데. , 놔 또 헌법 공부해야 하는 거얌??

 

대한민국 헌법 제21


1.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박근혜 정부의 신문법 시행령은 상위법인 헌법을 위반하는 짓거리다. 위헌이다. 집시법으로 집회, 결사의 자유마저 침해하더니, 이제 아예 언론 출판의 자유까지 막으려고 지랄발광이다새누리당과 박근혜에게 민주주의는 과분하다. 북한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빨갱이 새뀌들.

 

최근 새누리당은 주로 이승만 정권 때를 학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봐도 이건 사사오입패러디다. 민주주의 정권에서 정당을 해산시키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해냈다. 2014년 통진당을 해산시켰다. 그런데 55년 전에 이승만이 먼저 했다. 심지어 진보당 대표인 조봉암은 빨갱이로 몰려 사형당했다. 2011년에 와서야 대법원 전원 합의판결로 조봉암에 대한 무죄가 선고되었다.

 

새누리당의 머릿 속은 이렇다. 더 이상 전두환, 박정희처럼 독재적인 방식으로 통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민들을 착취하고 수탈할 것인가? , 이승만이 있었지. 이승만은 국회가 있었음에도 어떻게 지 멋대로 할 수 있었을까? 실로 대단한 독재자구나! 이승만을 국부로 추켜세우고, 우리도 이승만 독재체제를 답습하자!

 

전두환은 12.12 쿠데타를 준비하면서 하나회 장성들과 골방에 모여 <삼국지>를 읽었다고 하는데, 새누리당 지도부들 역시 골방에 모여, 이승만 체제에 대해 스터디를 하는 거겠지. ‘뉴라이트도 만들고. 빨갱이 새퀴들. ‘민족반역자 처단법 특별 제정해 새누리당, 친일파, 독재협력세력, 단정세력 전부 다 극형에 처해야 한다.

 

 

525, 좌우합작이 시도한 첫 회합이 열렸다. 우익 쪽에선 김규식, 원세훈, 좌익 쪽에는 여훈형과 황진남, 미국 측에선 버치와 선교사이자 배제학교 교장인 아펜젤러가 참여했다.

 

63, 이승만은 전라북도 정읍 유세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이승만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강준만은 대중의 이승만 지지는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왜 이승만의 단정론을 대중들이 받아들였을까?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일을 원하는 국민은 90%가 넘었다. 단독정부라면 통일은 물 건너 가는 건데, 대중들이 이승만을 추종했다?? 이승만의 행태를 보아, 유세장에 우익 청년 단체가 가세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대중이 이승만을 지지했다기 보다는 지지하는 척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이쯤에서 우익 청년단체를 정리해 보자.

 

우익 청년단체는 46년 봄 대한민주청년동맹(대한민청)으로 통합되었다. 감찰부장은 김두한이었다. 김두한은 <백의사> 조직원이기도 했다. <백의사>는 염동진이 만든 테러조직이다. 영화 <암살>의 이정재가 맡은 염석진은 아마도 염동진을 모델로 했을 것이다. 염동진, 본명 염웅택은 독립운동가였다가 나중에 일제의 밀정 노릇을 했다.

 

김두한의 활약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걸리면 살아도 청년단에 걸리면 죽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니. 한홍구는 권력과 주먹패가 본격적으로 야합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지만, 단초는 이미 일제 강점기에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임권택의 영화 <장군의 아들> 때문에 나는 김두한에 대해 오해했다. 김두한은 한갓 양아치였던 것

영화인들, 제발 양아치들 미화하는 영화 좀 그만 만들어라.

 

731 전국학생총연맹(전국학련)이 결성된다. 이승만, 조소앙, 김성수, 정인보 등이 참석하여 축사와 격려사를 남발한다. 전국학련은 이철승이 주도했다.

 

1130일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선우기성서북청년회(서청)가 결성된다. “서청! 하면 울던 아기도 울음을 그친다는 유행어가 나돌았을 정도라고. 혹시나 했더니 좃선일보 주필 선우휘가 선우기성의 일가 아우뻘 되는 관계였다고.

 

109일 미군정에 의한 조선민족청년단(족청)이 결성된다. 족청의 단장은 조선광복군 사령관을 지냈던 이범석이 맡았다.


이승만과 김구를 지지했던 우익 청년단체 조직원 수가 총 322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남성 노동자의 하루 평균 임금은 61원이었던데 반해, 청년 테러단원은 하루 300~500원을 받고 동원되었다. 우익 정치가들은 밥을 미끼로 제 욕심대로 폭력을 행사한 셈.

 

미군정은 무허가 학교 폐쇄령을 공포, 민족적이고 진보적 성향의 학교, 학원, 강습회를 폐쇄시켰다. 심지어 문맹퇴치운동까지 금지시켰다. 서울 17개 학교 학생들이 궐기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미군정 발표만으로 4만 명 이상이 참가하였다.

 

822일 미군정은 국립서울종합대학안(국대안)을 확정 공포하였다. 국대안이란 경성대학과 서울 및 근교 9개 전문학교를 통합한 종합대학교 설립을 뜻한다. 국대안에 대한 반대로 학생 840명 중 총 4956명이 제적, 교수와 강사는 429명 중 380명이 교단을 떠났다. 국대안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교육출세론확산이었다고 강준만은 말한다.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갔고, 고급 일자리는 이제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학력과 학벌은 친일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기도 했다. 학력이 출세의 결정적 도구였다. 오욱환은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자녀들은 일제 식미지 시대에 갖가지 위협과 경제적 어려움의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며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지만, 친일 인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십분 활용하여 자녀들에게 학교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었으며 사회 진출의 발판을 제공하였다. 친일, 부일 인사들은 자녀들에게 높은 학력을 성취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경제적 특권을 후손들에게 대물림하였다. 이러한 재생산 과정의 영향은 해방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국립대학이 아예 없던 상황에서 왜 하필 한국에서 종합대학교를 설립하려 했던 것일까?

 

한편 북한은 828일 북조선로당당, 약칭 북로당을 출범시킨다. 위원장엔 김두봉, 부위원장엔 김일성이 선출되었다

 

722일 남한에선 민주의원()과 민전()을 주축으로 한 좌우합작 회담이 진행되었다.

 

816, 인민당 중앙위원회는 여운형이 불참한 가운데 4831로 합당 결의를 통과시켰다.

 

943당의 좌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남조선로동당, 약칭 남로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한다.

 

816일 미군정은 전평(조선노동자전국평의회) 서울 본부 습격, 박헌영, 이강국, 이주하 등의 체포령을 내리고 <인민보>, <현대일보>, <중앙신문>을 폐간시킨다.

 

913일 서울 용산의 철도노조원 3천 명이 기본급 인상등을 토대로 한 요구안을 미군정에게 제시했다. 이때 명언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인도인들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도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


- 운수부장 코넬슨.

 

시장에는 고기도 있고 다른 잡곡도 있지 않은가. 쌀이 없으면 다른 것이라도 사야지 삶이 없다고 굶는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 농산부장 헐츠.

 

쌀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 , 위대한 미국인들. 물론 원조는 마리 앙트와네트다. “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으라 하세요.” (루소에 따르면 케이크가 아니라 브리오슈라고) 우리 박근혜 각하도 빠지지 않는다.유신이 정말 나쁘다고 생각했다면 그때 얘기를 했어야지,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이런, ㅁ ㅊ ㄴ을 봤나. 그때 얘기했거든. ‘유신 정말 나쁘다고 말했다가 고문당하고 사법 살인으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걸까. 아우, 뒷골 땡겨. 이런 ㅁ ㅊ ㄴ이 내 나라 대통령이라니!

 

미군정은 이승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 정신과 의사 미팅을 주선했다는데, 누가 좀 우리 각하에게 유능한 정신과 의사를 소개시켜 줘라. 우리 박근혜 각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제 정신이 아닐 뿐이다.

 

925일 출판노조 1300여명과 대구우편국 종업원 4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한다.

 

극소수의 대자본가와 대지주, 모리배, 정상배를 제외하고는 120만 시민에게 돈이 떨어진 지 이미 오래다. 더구나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일해도 아내와 자식들은 죽도 못 먹고 굶고 있다. ”


- 경성지방 출판노동조합 총파업투쟁위원회. <시민에게 고함>

 

926일 전평은 남조선 총파업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본격적 투쟁에 돌입했다.

 

927, 서울 중앙우편국 600, 중앙전화국 1천 명이 파업에 들어갔고, 교통, 체신, 식료,전기, 토건, 조선, 금속, 해운 등 전평 산하 각 산별 노조원이 파업에 합류했다.

 

미군정은 공산주의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고 비난했다. 926일부터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된다. 930일 미군정은 경찰, 우익 청년 단체를 동원, 전평의 남조선 총파업투쟁위원회를 습격한다.

 

이 전쟁에서 가장 맹활약을 떨친 건 김두한과 대한민청 단원들이었다. 수도청장 장택상으로부터 김두한은 총 300여정 과 수류탄 세 상자를 넘겨받았다. 김두한은 자신이 전평 간부 8명을 죽였다고 떠벌였다. 장택상이 그랬다지. “김두한 동지! 당신이 나라를 구했소.”

 

전평에 맞서 미군정과 우익은 310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을 결성한다. 이른바 대한노총. 이름과 달리 대한노총은 노동자 조직이 아니라, ‘우익 정치집단으로서 일종의 테러리스트 조직이었다.

 

101일 대구 항쟁이 터진다. 9월 말 쌀값은 1500원으로 불과 1년 전만 해도 140원이었던 것이 무려 10배 이상 올랐다. 당시, 전매청 연초공장에서 담배를 말아 불이는 데 쓰는 풀이 나오면 직공들이 그 풀을 다 먹어치울 정도로 심각한 기아 상태였다고 한다. 역시 미군정은 명언을 잊지 않는 센스.

 

조선에는 빵, 고기, 과일 등이 많은데 왜 쌀만 요구하느냐

 


101, 대구 시청 앞에 약 1 천 명의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모여 쌀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 발포로 시위대 가운데 한 명이 사망했다.

 

102, 시위대 숫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시위대는 대구 경찰서를 점령해 무기를 탈취 대부분의 파출소를 점령한다.

 

대구 항쟁은 직접적으로는 식량 문제와 더불어 친일 경찰에 대한 불만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친일파 중에서도 친일 경찰이 가장 심한 증오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해방 직후 거의 다 자취를 감추었던 친일 경찰들이 미군정의 부름을 받아 전보다 더 큰 권력을 누리면서 횡포를 일삼는 것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극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후 6, 미군정은 대구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대구 봉기는 진압되었으나, 11월 상순까지 전국 90개 군 이상에서 항쟁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대구에서는 진압 후에도 김두한의 대한민청을 비롯한 우익 청년단원들이 사설 유치장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 가두면서 폭력을 행사했다.

 

12월까지 전국적으로 확대된 10월 항쟁에는 약 300만명이 참여, 경찰 200명 이상이 피살 되었고, 죽은 민간인 수만 천 여명이 넘었다. 체포된 사람은 3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김삼웅은 대구 항쟁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처벌되기는커녕 당당하게 재등장하는 친일파, 토지개혁의 지연, 미소공위 결렬로 통일정부 수립 기대에 대한 좌절, 미군정의 공장 접수, 만연하는 실업난과 물가고, 귀환동포에 대한 무대책 등이 민중들에게 극심한 좌절감과 분노를 안겨주었고,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일제의 공출이나 다름없는 미군정의 하곡, 추곡에 대한 강제매입과 극심한 식량난이었다. ”

 

10월 항쟁은 결과적으로 공산당에게 타격을 입혔으며 궁극적인 피해자는 농민이었다.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봉기의 결과가 가져온 한국 빈농들의 가장 큰 손실은 그들의 이익을 지켜 주었던 지방 조직들의 붕괴였다.”

 

미군정에 의해 결성된 좌우합작위원회는 107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한다. 대지주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민당의 토지정책은 유상매수, 유상분배였고, 무상분배를 내세운 좌우합작 제 3항에 대해 한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김병로, 김약수와 같은 원로급 당원들 270명이 탈당한다.

 

1023조미공동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7회에 걸친 회의동안 주된 논의는 경찰 문제였다. 친일 경찰 조병옥은 이렇게 말했다.

 

경무부장인 내가 친일 경찰관들을 많이 등용하였기 때문에 민심이 이탈, 폭동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친일은 두 가지로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직업적인 친일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연명책으로 관리가 된 경우입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출신 수사국장 최능진의 생각은 달랐다. 최능진은 국립 경찰을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축출된 부패한 경찰관들을 포함해서, 일본의 훈련을 받은 경찰과 반역자들의 피난처라고 불렀다.

 

조병옥은 최능진에게 사표를 요구했고, 최능진은 사직했다.

 

미군정은 10월 하순 45명의 민선 대의원을 뽑는 선거를 실시한다. 좌파 세력은 참여를 거부했고 한민당원 12, 이승만 독립촉성국민회원 17, 김구의 한국독립당원 4, 무소속 13, 기타 4명이 당선된다. 무소속은 거의 한민당 계열이었다.

 

공정한 선거일 리가 없었다. 김규식이 비민주적 선거 절차에 대해 미군정에게 공식적인 서한을 보냈고, 이에 우익인 한민당은 김규식을 강력하게 비난한다.

 

미군정의 입법의원에 반대한 여운형은 1112일 사회노동당(사로당)을 결성한다. 그러나, 북로당이 남로당에 대한 절대 지지를 표명하자, 사로당 간부들이 탈당하고 창당 3개월 만에 사로당은 해체된다.

 

115일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를 거두자 이승만은 도미 의지를 불태운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다 공화당원이라고. 이승만은 미국 여행의 여비로 1억원 헌상 운동을 벌인다. (이 당시 1억이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얼말까?) 이 기부금을 내지 않은 가정에는 쌀 배급을 정지하였다니. 국민들은 쌀이 없어 풀을 먹고 있었건만. 자기 여행 가는데 왜 국민들이 돈을 내야 하는 걸까?? 이런 흡혈귀 같은 버러지를 국부라고!

 

47, 이승만은 자신의 정적들을 하나하나 암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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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7-0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한권 읽은 느낌입니다..

시이소오 2016-07-08 08:29   좋아요 0 | URL
이 해도 사건이 많았네요.^^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판 한국 현대사 산책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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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을 상상해 볼까. 이미 삼십년이 넘도록 일제 치하에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도둑같이 해방이 찾아왔다. 영화 <암살>의 염석진의 말처럼 그 누가 해방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절대다수의 민중들은 포기하고 살았고, 소수의 독립운동가가 있었고, 또한 소수이지만 절대 권력을 차지한 친일파 무리들이 있었다.

 

해방을 맞아 거의 모든 국민이 울고 웃고 서로 얼싸안고 껴안고, 너무 좋아 마당에서 뒹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녀노소가 기뻐 날 뛸 때, 친일파들은 얼마나 어리둥절하고 막막하고 무서웠을까. 특히나 친일파 경찰들, 거의 전부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쳤다.

 

그러나, 역사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미군정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들어와 산속 깊이 도망친 친일파들을 다시 불러들여 정부요직을 맡겼다. 반민족 행위로 총살을 당했어야 할 이들이 살아남아 대를 이어 현대의 대한민국 상위 1%가 되다니.

 

마르크스는 말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마르크스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에게 식민지가 되었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거의 수백 번 이상 똑같이 반복되었다. 희극 따윈 없었다. 끝없는 비극만이 펼쳐졌다.

 

똑같은 비극들이 무수히 되풀이 되었음에도 나는 몰랐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내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며 얼마나 통곡을 했던가. ‘그랬구나, 내가 이렇게 몰라서 저들은 또 똑같은 살육을 저질렀구나. 국민들이 모르니까 저들은 백만 명의 국민을 학살한 독재자를 국부라 칭하며, 오늘도 끊임없이 빨갱이 타령으로 아무 죄 없는 국민들을 학살했고, 학살하고, 학살하겠구나.’


현대사에 대한 무지를 참회한다.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1945년부터 정리해보겠다. 산책이라? 한국 현대사를 과연 산책하는 심정으로 읽을 수 있을까? 읽을 때마다 부들부들 떤다. 저절로 눈물이 터진다. 국민들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살육한 살인마인,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협력세력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여전히 대통령을 해쳐먹고 제1야당을 해쳐먹고 있다니! 그들을 지지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게 도무지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과연 제대로 된 역사책을 읽고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걸까. 역사책을 읽고도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독재협력 세력들이 오늘도 역사책을 바꾸려고 기를 쓰고 혈안이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복수하는 최소한의 방법은 책을 손에 드는 것이다. 수량화된 데이터가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해 그 시대를 직접 느끼는 것.

 

나치는 흔히 유대인 600만 명을 살해했다고 알려져 있다. 600만 명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 간다.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하라>에서 사사키 아타루는 이렇게 말했다.

 

“1942년부터니까 2년여에 걸쳐 600만 명을 죽인다고 하면 대체로 하루에 만 명꼴입니다. 하루에 만 명을 죽인다는 말은 곧 하루에 만 구의 시체가 생산된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만 구의 시체를 어떻게 소각했을까요?”

 

스티븐 핑커처럼 역사를 단지 숫자로, 데이터로 환원한다면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역사란 죽어가는 만 명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이다. 차가운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죽어야 했던 304, 한 명, 한 명의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는 것. 반복한다. “타인에게 가해진 비인간적인 행위는 내 안에 있는 인간성을 파괴한다.”





 

1945;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810,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해 무조건 항복을 결정했다. 조선총독부는 송진우, 김준연에게 거절당하고 여운형에게 행정권을 이양한다. 그러나, 38도 선 이북을 소련이 점령하고, 이남은 미국이 점령할 것이 확실해지자, 총독부는 행정권 이양을 거부한다. 그러나, 여운형은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한다. 816일 건국치안대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제일 먼저 경찰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던 친일파 경찰들을 추방한다. 일본인 경찰이 그대로 있었던 반면 친일파 경찰 약 80프로가 도망쳤다.

 

86일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에, 그리고 8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16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조선인 4만명 포함)

 

814, 30분 만에 두 대령이 지도에 38선을 그어 맥아더에게 보냈다. 815일 소련이 제안을 수락한다. 생각해보면 희한한 일이다. 전범 국가인 일본 땅을 나눠 먹어야지 왜 한국을 나눠 먹은 걸까. 한국은 일본 대신 분단된 셈이다.

 

소련군이 824일 평양에 입성했다. 북에서 소련군은 강간과 약탈을 일삼는다. 북한에선 좌우 대립이 없었다. 북한은 친일파에 관대하지 않았다. 우익과 친일파들은 죄다 남한으로 탈출했다.

 

지금이야 공산주의자는 빨갱이라 불렸지만, 이 당시에 공산주의자 = 애국자로 통하던 시기였다. “한국 공산주의의 가장 위대한 영도자로 불렸던 박헌영93일 조선공산당을 재건한다. 건준에서 박헌영의 영향력이 커지자 우파인 안재홍이 떨어져 나가고 건준은 좌경화된다. 건준은 96. ‘조선인민공화국수립을 선포한다. 이른바 인공.

 

97일 미군이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의 지위로 인천항을 통해 남한으로 들어온다. 미군정은 인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를 인정했을뿐. 미국은 한국인을 야만인으로 경멸했다. 한국인을 gook라고 불렀다지. 먹을 걸 얻어 가는 아이를 향해 총을 쏘는 미국인들이 비일비재 했다고. 

 

94일본과 협력한 한인 집단을 주축으로 한민당이 창설된다. 미국이 점령군인 해방정국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통역관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대지주 출신인 친일파, 해방후엔 친미파, 정당으로 보자면 한민당. 좌파 일색인 인공을 분쇄하기 위해, 미군정이 실시한 대책은 정당은 오라는 성명을 내건 정당신고제. 1개월 내에 40~50개의 정당이 난립했다고.


미군정에서 주요 직책들은 한민당, 친일파 세력에게 돌아갔다. 조병옥, 장택상, 김용무, 이인. 미군과 친일파들은 도망친 친일파 경찰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친일파 경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문 수사였으니. 오늘도 거리를 거닐다가 무언가를 보고 움찔했다. 경찰이었다. 왜 경찰복을 보면 저절로 움츠러들까. 친일 경찰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친일파 경찰들이 공권력을 장악했다는 것. 이후 한국사 고비고비마다 끔찍한 살육의 씨앗이 아니었을까.

 

104일 국부 격 살인마 이승만이 귀국한다. 당시 이승만의 인기를 따라올 사람은 없었다고. 우파든 좌파든 이승만을 옹립하려고 난리였다니. 이승만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친일파 거부 백낙승으로부터 매달 50만원, 박흥식으로부터 2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는다. (이 당시 쌀 한가마니는 750)

 

1023.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초당파적인 모임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창설되고, 회장엔 이승만이 추대된다. 박헌영이 친일파 제거에 의한 민족통일 원칙을 주장하자, 이승만은 되레 공산당을 비판하면서 친일파를 두둔한다. 이때부턴가? 빨갱이 타령은? 세상에, 1945년부터 지난 71년간 우려먹다니. 21세기까지 독재협력세력인 새누리당과 가스통 할배, 일베들의 끊임없는 레퍼토리.

 

116일 중앙극장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른바 전평이 결성된다.

 

1112일 인공의 좌경화를 깨닫고 여운형은 조선인민당을 창당한다.

 

1123, 임정 요인 환국 제1진이 귀국한다. 김구, 김규식, 이시영, 김상덕, 엄항섭, 민영완, 장준하, 윤경빈, 유진동 등 15.

 

미군정은 임정의 명망을 이용하기로 하고 따듯히 환대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임정은 인공과 조공에 대해선 선을 긋는다. 그러나 친일 협력자에 대해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1945년에 김구 역시 이승만처럼 친일파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다.

 

장준하는 임정 요원들 앞에서 임정에 폭탄을 던지고 싶다고 폭탄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임정의 내분은 심각한 지경이었다. 해방 후 임정의 내분은 더 악화되었다. 그중에서도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맡은 약산 김원봉이야말로 피해자가 아닐까. 임정의 제 2인자였지만 환국 후 약산은 김구, 이승만, 김규식에 이어 4인자로 소개된다.

 

한편 북한에선 113조만식조선민주당을 창당한다. 1217일 김일성이 책임비서로 선출된다. 김일성의 권력이 강화될수록 남한에서 좌익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진다. 미군정은 우익 청년단체들을 동원해 인민위원회를 습격하고, 인공을 해체시킨다.

 

1228일 미, , 영 세나라 수도에서 한국의 신탁통치에 관한 내용을 주로 한 모스크바 결정이 발표된다. 신탁통치 방안은 결정되지 않은 것이었다. 임시정부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면 신탁통치를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한민당이 주축이 된 <동아일보>가 사건을 저지른다. 오보를 터뜨린 것.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서가 발표되기 하루 전에, 동아일보의 관측 보도였던 것.

 

<동아일보><조선일보>가 오보를 쏟아내자, 선동된 대중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신탁통치에 다소 열린 의견을 피력했던 송진우는 암살당한다.

 

1230일 임정은 미군정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킨다. ‘임시정부 포고 제 1호 및 제2를 발표한 것. 임정은 미군정청 산하의 모든 한인 직원들은 임정의 지휘를 받을 것모든 국민은 임정의 지휘 아래 반탁 운동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이른바 임정의 주권선언이었다.

 

1231, 서울운동장에서 대규모 반탁대회가 열린다. 30만 명의 시민이 운집했었다고. 당시 서울 인구는 120만 명. 이 당시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사상은? 사회주의였다. 자본주의 13%, 공산주의 10%, 사회주의는 70%였다. 만일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미국이 분탕질을 치지 않았더라면, 이승만같은 버러지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복지국가가 될 수 있지도 않았을까. , 그럴 순 없었겠다. 미국이 절대로 그렇게 놔두지 않았겠지.

 

<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에서 마르케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정도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미국을 구세주로 보는 철부지 영혼들이 있습니다. ”

 

이 땅엔 아직도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 생각하는 철부지 영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긴 대다수 우매한 미국인들도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착각하고 산다.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미국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들을 학살했는지 숱하게 보게 될 것이다. 어디 대한민국뿐이겠는가.

 

도둑처럼 해방은 찾아왔으나, 점령군 미국에 의해 애초부터 대한민국은 뒤틀려가고 있었다

1946, 좌우의 갈등은 점점 첨예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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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7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07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6-07-07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아더 영화를 보면,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난 뒤 미국이 전승국 연합군 대표 자격으로 일본을 점령하고 전후복구에 영향력을 끼치는데 소련 대표가 일본 영토의 분할 통치를 제안했다가 맥아더한테 단번에 거절당하는 장면이 있더군요. 소련이 결국 사할린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여러 생각이 들지만 맥아더가 우리나라를 잘 몰랐기 때문에 애착이 없었을 겁니다. 모두가 반대하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서 성공시킨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고 그의 강단을 엿볼 수 있죠. 하지만 1950년 년말에 트루만 대통령과 전략회의 자리에서 중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낮음을 보고한 것만 봐도 당시 미국이 정보력이 부실했고 정세 파악이 형편없었다고 볼 수 밖에 없어요. 미국은 안일했고 민주주의 수호보다 점령지 경계 땅을 지키기에 급급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 경계 안에 있었고요. 이런 게 엇갈리는 운명일까요.

시이소오 2016-07-07 08:48   좋아요 2 | URL
제가 이해한 세계사로 보자면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한적이 없습니다. 독립이후 민족 지도자 암살은 거의 공식이더군요. 1950년대 미국은 중국을 개입시키려고 일부러 북한으로 쳐들어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미국은 사악하지 멍청하진 않은듯하네요 ^^

오거서 2016-07-07 09:07   좋아요 0 | URL
북한으로 쳐들어갔다는 주장은 맥아더의 주장이 와전된 것이 아닐까요. 한반도를 완전히 회복하려면 압록강을 넘어야한다고 맥아더가 주장했다죠. 트루만 정부는 중국과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서 반대했고요. 만약 맥아더의 의지가 관철됐다면 역사는 어땠을까, 상상이라도 해봅니다. ^^

시이소오 2016-07-07 09:30   좋아요 0 | URL
그 부분을 정확히 모르겠어요. 좀 더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

samadhi(眞我) 2016-07-07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구가 강제해방을 두고 두고두고 한스러워 한 것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갔더라도 우리 손으로 이미 망조가 든 일제를 끝낼 수 있었는데.
남의 손으로 끝나서 여전히 양키랑 왜놈에게 그리고 그 놈들에게 붙어먹던 놈들에게 휘둘려 살지요.

시이소오 2016-07-07 08:51   좋아요 1 | URL
독립군이 몇일만 일찍들어왔어도 ^^;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말이 왜이리야속한지요 ~

samadhi(眞我) 2016-07-07 08:57   좋아요 1 | URL
국치일에 밎춰 국내진공작전을 펼치려 거지요. 미국놈들이 귀띔 좀 해 줄 것이지.

시이소오 2016-07-07 09:04   좋아요 1 | URL
대악마 미국이 그럴리가요 ^^;

samadhi(眞我) 2016-07-07 09:1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그 큰 엉덩이를 흔들며 지가 제일이라고 자기 외 모든 나라를 개무시하지요. 우리처럼 듣도 보도 못 한 나라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으면 나라 곳곳에 살육의 피를 뿌렸을까요. 그때만 해도 울 나라 사람들 사슴같은 눈망울을 한 순박한 이들 이었을 텐데. 여태 밝혀지지 않은 일들 천지고. 밝혀져도 미쿡놈에게 비벼대는 기득권들 덕에 별 일 없이 산다. 구요. 양키 고 홈 좀 하자니까 박할매는 제 아비보다 더 못 한 짓을 하고. 전작권을 준대도 마다하는 정신없는 할매. 에휴

시이소오 2016-07-07 09:15   좋아요 0 | URL
새누리당 전작권 달라고 하면 빨갱이란말에 어이가 없ㅇㅓ서.
저 매국노들의 망언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할런지요

포스트잇 2016-07-0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면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해 잘 몰랐다는 부끄러움과 후회, 절망스러운 한탄, 분노...지금도 별다를 것 없는 현실에 답답..
저는 저 `해방은 도둑같이 왔다`는 말도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한 말인가?
정말이라면 정말 부끄러운 말 아닐까요. 얼마나 안일하게 잠들어 있었으면 자신들의 운명이 바뀌는 것에 그렇게 둔감할 수 있었을까요?
김기협의 해방일기도 섭렵해보고 싶은데 ...날잡아야 할 것 같네요.

시이소오 2016-07-07 09:21   좋아요 0 | URL
함석헌 쌤이 하신 말씀이지요. 해방후 나라꼴이 워낙 개판인지라 정신차리라는 맥락에서요

이 책은 여전히보수적 관점을 취합니다. 강준만 쌤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신듯. 서중석 쌤의 시각은 다릅니다. 해방후 여운형을 비롯한 건준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시고 저 역시 서중석 쌤의 시각을 더 신용하구요^^

포스트잇 2016-07-07 09:42   좋아요 0 | URL
네,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잘 봐야할 것 같아서요. 저말이 누구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사용되는지...그런거요.
해방후 정국 상황은 열심히 파봐야 할 시대라고 생각해왔는데(또 한 시대를 꼽자면 조선말이겠지요)..깊이 천착하는 성격이 못되어서리..ㅠ
저는 당시 진짜 우리 역량은 어땠는지, 국제적 상황이라는 것도 있지만 왜 우린 또다시 그렇게 패했는지.. (물론 긍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많지만요) 한번 파보고 싶더군요. ...

시이소오 2016-07-07 10:57   좋아요 1 | URL
이 책을 보면 주로 서중석 쌤 의 책들을 참고합니다. 그러고보면 서중석 쌤이야 말로 한국 근현대사의 거목이라 할까요. 그분이 최근 새로 쓰신게 인터뷰 형식의 현대사 이야기죠.

이 책도 독후감을 꼭 남기고 싶네요 ^^

이시스 2016-07-0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길에 읽는 시이소오님의 글... 언제나 저에겐 활력소에요~ 팬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시이소오 2016-07-07 10:53   좋아요 0 | URL
아, 앞으로 아침에 꼭 올려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이시스님도 날씨와 무관하게 활기찬 하루 보내세요 ^^

깊이에의강요 2016-07-0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작권을 돌려 받아야 한다는 야당 전대표님의 발언에 새누리당과 정부의 논평은 브렉시트로 나라가 혼란한데 네팔에서 한가한 소리 하고 있다고 했었죠.그게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하는 당과 정부라니...

글고 저도 시이소오님 팬입니당^^

시이소오 2016-07-07 12:57   좋아요 0 | URL
지들 때문에 매일 매일 혼란스러운데 말이죠
. 저도 강요님 팬이에요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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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시민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따라서 그가 글을 잘 쓰는지 못 쓰는지 알지 못한다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알게 됐다특히나 공산당 선언의 번역문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공산당 선언>의 강유원 번역은 이렇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즉 교황과 차르메테르니히와 기조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관은 이 유령에 대항하는 신성한 몰이사냥을 위해 동맹하였다.

 

유시민의 번역은 이렇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낡은 유럽의 모든 권력이교황과 차르메테르니히와 기조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비밀경찰이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한 신성동명을 체결했다.

 

유시민은 이오덕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글 역시 말하듯 써야한다고 주장한다나는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다이러니 글이 제대로 써질 리가 없다유시민은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 중 세 권의 책을 먼저 소개한다두 세 번이 아니라 열 번을 읽어도 좋다고세 권의 책은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이런다 안 읽어본 책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유시민에 따르면 훌륭한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못난 글을 쓰지 않으면 된다.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바르고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제 나름의 멋진 스타일을 입힐 수 있다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음을 정확하게 듣지 못하면 바이올린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이 없으면 훌륭한 문장을 쓰지 못한다.

 

유시민에 따르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쉽고 간단한 방법은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내 경험으론 어떤 책들은 마치 톱밥을 삼키는 것처럼 꺼끌꺼끌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그런 책은 분명히 어딘가 잘못된 글이다이 책은 작년에 읽었던 고종석의 <문장>과 비슷한 글쓰기 가르침을 전한다중국말 남용일본식 조사의 남용( ‘에로의’ ‘의로부터의’) 서양말의 오남용(완료시제와 피동형 문장)만 경계해도 못난 글을 쓰지 않을 수 있다고또한 복문보다 단문 쓸 것을 권유한다.


 

롤랑 바르트의 <롤랑 바르트마지막 강의>를 읽다가 그처럼 사토리(순간적인 깨달음)를 일으키는 문장을 만났다.

 

"즉 어떤 관점에서 삶 프로그램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다시 말해 글쓰기의 쾌락글쓰기의 행복을 경험한 사람에게는(거의 첫 번째 쾌락처럼새로운 글쓰기의 발견 말고는 다른 새로운 삶이 없을 것입니다. "

 

나는 글쓰기의 쾌락을 이미 맛본 사람이다죽을 만큼 괴로울 때면 글 쓰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다어쩌면 죽지 않기 위해살아남기 위해 글을 썼던 걸까그런 경험은 완성의 순간을 꿈꾸게 한다.

 

한 인간의 삶에서 –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삶에서 – 모든 것이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책이 쓰이고우주가 조용해지고존재들이 휴식을 취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남은 일이라고는 그 순간을 알리는 일뿐이다.”

 

모리스 블랑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유시민의 추천 책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김영사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리처드 파인만 강의폴 데이비스 서문,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락원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우물이있는집

스티븐 핑커 외 지음존 브록만 엮음, <마음의 과학와이즈베리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바오

신영복, <강의돌베개

아널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동서문화사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한국경제신문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르답다>, 문예출판사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홍신문화사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재레드 다이아몬드, <,,>, 문학사상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어크로스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갈라파고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책세상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홍신문화사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책세상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이후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서해문집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은행나무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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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책의 목록을 보니 유시민님 글쓰기 수업은 스타일 만들기에 그치지는 않겠네요.

시이소오 2016-07-06 20:2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올바른 사유로 이끌어주는 책들이 많네용 ^^

희망찬샘 2016-07-0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제게 도서관에서 토지를 빌리게 만든 분이 바로 이 분이셨군요! 실패하긴 했지만... 언젠가 다시 도전! ^^

시이소오 2016-07-06 20:48   좋아요 0 | URL
저도 토지를 읽겠다고 마음 먹은지가 꽤 됐네요. 책이 너무 많아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시가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시란 일종의 진부한 표현을 거부하는 장르이지 않습니까.
시의 장점 중 하나는 표현의 다양성이 아닐까 싶습니디ㅏ.

시이소오 2016-07-06 21:27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많은 소설가들이 작품을 쓰기전에 하루 일과를 시 읽기로 시작한다는군요. 저도 따라해보다 게을러 요즘은 안 하는데 곰발님이 자극을 주시네요.
다시한번 시를 읽어야겠어요^^

samadhi(眞我) 2016-07-06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지가 그렇게 재미없더라구요.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꾹 참고 끝까지 읽긴 했는데, 오직 ˝재미˝를 찾는 성미여서
지루하기 짝이 없던 토지 속에서 정작 글에는 집중하지 못 했어요. 빨리 읽어치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다시 읽지는 못 할 듯합니다. 조정래 역사 3부작은 다시 읽을 수 있지만요.

시이소오 2016-07-06 22:5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재밌는 줄
로만 알았는데요. 재미도 없는데 그걸 다 읽으시다니, 대단하세요 ^^

samadhi(眞我) 2016-07-06 22:58   좋아요 0 | URL
토지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제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ㅋㅋ
근데 21권이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무료했답니다.

시이소오 2016-07-06 22:59   좋아요 0 | URL
ㅋ 지나님 핑계로 토지 건너뛸까봐요 ㅎ ㅎ

samadhi(眞我) 2016-07-06 23:02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에겐 맞을지도 몰라요. 저는 차라리 전형적이고 신파(?) 가득한(?) 김약국의 딸들은 좋았어요. 그때만 해도 박경리 소설이 재밌다고 생각했지요. 김약국... 이 극적이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지만요.

시이소오 2016-07-06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김약국의 딸들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 박경리 선생님 소설은 대체로 재밌지 않나요?
^^

samadhi(眞我) 2016-07-06 23:09   좋아요 0 | URL
토지는 죽기 전에 읽어야 하는 소설인 줄 알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재미있어질 거라고 조금 더 읽어보면 재밌겠지 하다가 나중엔 모든 헛된 마음을 버리고 그저 마지막 장만을 향해 글을 흘려 읽었어요. 제가 쾌락주의라 그런 걸 테고 토지를 좋아하는 분들 많을 거예요. 제게는 밋밋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박경리가 20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 해 쓴 글이라 저도 참고 읽었어요.

시이소오 2016-07-06 23:19   좋아요 0 | URL
일단 1권을 읽어보고 결정해야 겠습니다 ^^

samadhi(眞我) 2016-07-06 23:25   좋아요 0 | URL
그러셔야지요. 시이소님은 워낙 무섭게(?) 읽으시는 분이니 후딱 해치우실(?)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몇 권 보시라고 말씀드리려 했어요.

시이소오 2016-07-06 23:35   좋아요 0 | URL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아 행복한 고민이네요^^

2016-07-0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잘쓰셔요. 그누가 만권을 읽어가며 쓰는 사람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답니까? 매일 써주세요. 잘쓰려면 읽어야 한다며 거의 외서를 권하는 게 뭔가 핀트가 두 개로 갈라진 듯한 느낌이라 쫌 그렇습니다마는 저자의 갖춘 덕이야 충분히 미더우니 그렇구나 하고마는 저에게는 시이소오님께서 읽으시고난 이야기 계속 이렇게 써주시는 그게 바로 최고의 글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만 납니다. 흐~ ^^

시이소오 2016-07-07 00:40   좋아요 0 | URL
아, 힌님 격려의 말씀, 감사드려요 ^^ 매일 쓸께요 ^^

2016-07-0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나 복문이죠? 사람의 일상적인 말이 진정 단문인가 하는 의심을 하는 중이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복문은 진정 일상에는 없는 말인가 자꾸 해본다니까요 헤헤

시이소오 2016-07-07 00:59   좋아요 0 | URL
사실 복문은 쓰기가 굉장히 어렵죠.
사유가 깊어야만 가능하다고 봐요. ^^

qualia 2016-07-07 0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건 몰라도 윗글에서 《일본식 조사의 남용(‘에로의’ ‘의로부터의’)》이라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혹시 “의로부터의”는 “으로부터의”를 잘못 적은 것은 아닌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로의”, “~으로부터의” 따위는 일본식 조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것들이 일본식 조사라는 주장은 이오덕 선생님이나 이수열 선생님한테서 처음 나왔을 겁니다. 그 뒤로 많은 글쓰기 책 저자들이 두 분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일종의 정설 아닌 정설로 굳어졌고, 이제는 글쓰기 책 저자들의 ‘습관적인’ 주장/레퍼토리가 돼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옳은 주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걸 논증하려면 아주 긴 글을 써야 하는데 사정상 여기선 생략하고, 간략히 두어 가지만 적겠습니다. “~에로의”, “~으로부터의” 따위가 일본식 조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말의 교착어적 특징을 망각했거나 인식하지 못한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말은 언어 유형학적으로 교착어에 해당하는데요. 이 교착어는 실질 형태소인 어근에 형식 형태소인 접사/조사를 붙여서 ⑴ 파생어를 만들거나 ⑵ 문장 성분 간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중심적 특징입니다.

예컨대 “그의 완벽한 성공에로의 집념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와 같은 예에서 “성공에로의”는 [성공+에+로+의]나 [성공+에로+의]로 분석할 수 있는데요. 이것은 [명사 어간+조사+(보)조사+관형격 조사]나 [명사 어간+복합조사+관형격 조사]와 같은 형태소 결합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식의 형태소 결합은 교착어로 분류되는 우리말의 중심적/근본적 특징입니다. “암흑으로부터의 탈출”과 같은 사례도 똑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암흑+으로+부터+의]는 [명사 어간+조사+(보)조사+관형격 조사]와 같은 형태소 결합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말은 아주 대표적인 교착어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교착어적 특성이 아주 잘 드러나는 “~에로의”, “~으로부터의”와 같은 2중/3중의 복합조사를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말 말법/문법에 비춰볼 때 아무런 잘못이 없는 표현이고 용법이라는 것이죠. 도대체 뭣 때문에 쓸 수 없다는/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사실이 이러한데 저런 용례들을 모두 일본식 조사로 규정하고 일본어 번역투로 폄하하는 것은 억견이자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로의”, “~으로부터의”와 같은 유형의 2중/3중 복합조사는 축약 표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우리말글을 풍부하게 하고 우리말 문법의 새로운 (혹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영역을 열어줍니다. 이런 기능적 장점과 풍부함, 가능성이 깃들어 있는데 저런 유형의 알짜 성분들을 일본식 말글로 잘못 규정하고 퇴출시킨다면 그것처럼 어리석고 애석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무엇무엇의 무엇무엇의 무엇무엇”과 같이 관형격 조사 “~의”가 두 번, 세 번, 심지어 네 번까지 반복되는 구절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의”라는 조사는 현대 우리말글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성분/요소가 되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젠 완전한 우리말 조사입니다. “무엇무엇의 무엇무엇의 무엇무엇”과 같은 표현 유형이 문맥에 비춰볼 때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되지 않고, 문법상 오류가 없고, 좀 더 축약적인 표현을 가능케 한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얘깁니다. 구체적 분석과 논증 없이 습관적으로 습관적인 주장을 하는 글쓰기 책들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댓글을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시이소오 2016-07-07 04:27   좋아요 0 | URL
허걱, 퀼리아님 대단하시네요.

저는 아직 문법에 문외한이라서요.

그렇군요. 모르던 걸 또 배우네요. 감사합니다.^^

qualia 2016-07-07 11:39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 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주장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비판적으로 읽어주세요.

그런데 제 댓글 중 밑에서 둘째 단락 둘째 문장 뒤에 덧붙일 문장이 하나 더 있어요. 해서 여기에 적어둡니다.

“섬세하고도 미묘한 의미 분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시이소오 2016-07-07 12:55   좋아요 0 | URL
뭘 알아야 비판적으로읽을텐데요.
맞춤법 공부할 때 염두해
두겠습니다 ^^

이야기꾼 2016-07-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최근에 유시민님의 책을 한권 읽고 맘에 들었기에 그 다음책을 물색 중이었는데 이렇게 추천이~~ ㅎㅎ 급 땡기네요;^^

시이소오 2016-07-08 16:1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이야기꾼님,
실망하지 않으실 책이죠ㅎ^^
 
사냥꾼들
제임스 설터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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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터의 소설 <스포츠와 여가>, <올댓이즈>, <가벼운 나날>을 읽었으나, 아직 리뷰를 쓰지 못했다. <스포츠와 여가>가 설터의 첫 소설인 줄 알았는데, <사냥꾼들>이 설터의 첫 소설이었다. <사냥꾼들><스포츠와 여가>보다 무려 10년 전에 씌여졌다. 생텍쥐페리도 조종사였지만 설터는 전투기 조종사였다. 특히나 설터는 한국전에서 100번 이상 출격해, 미그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즉 이 소설의 주된 배경은 한국이다. 외국 작가의 소설에서 한국 지명을 접할 때면, 왠지 초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비행기 공중전을 소재로 한다는 점, 또한 설터의 첫 소설이란 점이 우려스러워, 여차하면 미련 없이 발 뺄 준비를 하고 조심스레 발을 담궜다.

 

어라, 재밌네.



 

비행기 공중전 영화를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진주만> 예외),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하다. 이 소설 이후로 설터는 소설보다는 시나리오를 주로 썼다. imdb를 찾아보니, 설터는 7편의 영화에 시나리오 작가로 크레딧을 올렸다.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는 시드니 루멧 감독, 오마 샤리프, 아누크 에메 주연의 <the appointment>가 아닐까.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작업한 셈. 소설과 내용은 다르지만, 설터가 시나리오를 쓴 동명의 제목인 <the hunters>는 로버트 미첨이 주연을 맡았다. 설터는 영화 <three>를 연출하기도 했으나, 쫄딱 망한 듯.



 

주인공 클리브는 타고난 조종사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적군이 있고, 아군 내에서도 갈등이 벌어지지만, 설터는 자기 극복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어떤 전쟁이든 자기 자신과의 전쟁이므로.

 

그는 죽음 가까이까지 이르고 싶다는,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순결함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을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인 양 이따금 떠올리곤 했다. 그는 인간의 자기 극복과, 자기 극복이 이루어지는 숭고한 금욕의 세계를 언제나 존중했다.

 

- P 20.

 

비행기 조종사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미그기가 그들의 전부다. 몇 대의 미그기를 잡았느냐만이 가치를 결정한다. 미그기 다섯 대를 잡은 조종사는 에이스로 불리며, 모든 조종사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대대장을 맡은 클리브는 부하인 들레오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을 읽으니, 설터 사유의 원형을 엿본 듯하다. <스포츠와 여가>를 읽을 땐 딱히 제목에 대해 고민해 보질 않았다. <스포츠와 여가>는 알려진대로 <쿠란 57장 무쇠의 장>에서 연유한다.

 

현세의 삶이란 한낱 스포츠와 여가일 뿐임을 기억하라.”

 

클리브는 돌레로와 함께 일본의 요정에서 아가씨들의 접대를 받으며 전쟁 따위는 잊고 한가로운 나날을 보낸다. 클리브는 돌레오에게 말한다. “여기 또 오면 안 돼”. 들레오가 이유를 믿자 클리브는 대답한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삶이야

 

아주 깨끗한 공간에서 중세의 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의 꿈속에 들어와 있는 거야. 어른의 천국이기도 하지. 유일무이한 그 무엇, 실은 그게 뭔지 나도 잘 모르지만, 여하튼 그 소중한 것의 마지막 남은 몇 조각을 우리가 지금 몰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네. 하지만 그것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자가 영웅이야.”

 

설터에게 여가란 순수 한 것이고, ‘어린아이같은 것이며, ‘섹스혹은 사랑’, ‘자유같은 것이다. 반면 여가의 반대편엔 스포츠가 있다. ‘스포츠란 한마디로 삶의 목표고 일이다. 경쟁을 통해 승리해야 하는 것.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의무, 책임을 뜻한다. 설터는 삶이란 것은 스포츠와 여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스포츠와 여가 사이의 변증법 ?

 

소설에 나오는 여러 캐릭터들은 대부분 전쟁(스포츠)에 매몰되어 있다. 미그기를 잡기위해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펠이 대표적 캐릭터다. 장교들은 펠이 동료를 죽인 과정에 대해 묻지 않고, 오로지 미그기를 잡은 결과만을 중시한다. 클리브는 미그기가 대량 출몰한 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짝사랑하는 일본 여자를 떠나, 황급히 전쟁터로 돌아간다.

 

승리의 순간을 위해 이곳에 왔지만 어떤 의미에선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승리를 갈구하는 것에 초연하기를, 승리를 거머쥐어야 하는 필요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에 다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는 이미 전쟁의 포로였다. 미그기를 잡지 못하면 제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는 실패자가 되는 것이었다.”

 

클리브는 자신의 부하를 죽인 소련의 전설 같은 조종사 케이시를 결국 잡는다. 그러나, 윙을 맡은 부하 헌터는 착륙 중 전사한다. 그는 자신의 공을 헌터에게 돌린다. 클리브는 승리했으나, 만족감은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무감각만이 남는다.

 

클리브는 쓸쓸한 평온을 느꼈다. 유년 시절을 지나 비로소 성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것이 한때 자신을 온통 사로잡았던 찬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였음을 그는 뼈아프게 깨달았다. 대가는 값비쌌다. 그러나 자신에게 아무리 큰 희생을 강요했을지라도 그는 이상을 굳건히 지켰다.

 

p 219.

 

클리브는 시스템이 강요하는 승부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존재의 고원으로 비상한다. 사냥꾼들은 그의 몸에 무수한 총알을 박아 넣는다. 전쟁터에서 자기 극복의 의지는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승부욕을 버리고 부하 동료인 헌터에게 공을 돌린 클리브는 전쟁에서 실패했으나, 인간으로서 승리한 것이 아닐까.



 

20. 실로 현세는 유희와 오락에 불과하며 허식과 권세도 풍성한 재산과 자손도 그러하거늘 그것을 비유하사 식물을 성장케 하여 농부를 기쁘게 한 후 벼가 내려 시들어 누렇게 되고 메말라 부스러지고 지푸라기가 된 것과 같더라. 그러나 내세에서는 사악한 자들에게 가혹한 응벌이 있으되 하나님께 헌신한 자 하나님의 관용과 기쁨을 받노라. 실로 현세의 삶은 현혹된 향락에 불과하다.

 

- < 성 쿠란> 57장 하디드 p 1053.

 

혹시나 해서 <코란>을 찾아봤더니, 나는 완전히 오해했구나. ‘스포츠와 여가유희와 오락이었던 것. 현혹된 향락. 스포츠는 여가와 대립된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 몇 일 지나, 과연 오해인 걸까란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설터는 스포츠와 여가의 덧없음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스포츠)에서 여가를 구원하려 했던 것일까. 이 의문은 <스포츠와 여가>의 독후감에서 해명할 수 있기를.

 


다음 생이 있다면, 가수가 되거나 댄서가 되거나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날아오르고 싶다

 

비행대대는 삶의 요약판이다. 당신은 어려서 그곳에 처음 당도한다. 그때는 기회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모든 것이 새롭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고통스런 배움의 나날과 환희의 날들이 지나가고 어느덧 성인기에 접어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날 문득 당신은 이미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주위는 온통 생소한 얼굴과 관계 뿐, 당신은 그 속에서 반갑지 않은 존재가 된다.

p69.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부수적인 것과 핵심을 구분하는 거야. 자네 경우엔 코치가 부수적인 부분이지. 역사는 자네를 수학 교사로 기억할 뿐 그 밖에 부수적인 건 모두 잊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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