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판 한국 현대사 산책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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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부터 반민특위의 검거 작업이 시작된다. 화신 재벌 박흥식, 250명의 독립투사를 밀고한 <대한일보> 사장 이종형, 최린, 친일 변호사 이승우, 남작 이풍한, <매일신보> 사장 이성근, 친일 경찰 노덕술, 이광수, 최남선 등이 검거되었다.

 

노덕술을 총애한 이승만은 노덕술의 석방을 요구하나, 반민특위는 거절한다.



 

124일 테러리스트 백민태가 서울지검을 찾아가 암살 음모 사건을 고발한다. 반민 특위 간부 15명을 38선까지 유인해 살해한 뒤 월북하려 해 사살한 것으로 위장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친일파들의 암살 음모는 미수로 그쳤으나, 이후 친일파들의 공작은 계속 된다.

 

내각 구성에서 이승만에게 배신당한 한민당은 신익희와 지청전 세력을 흡수 2, 10일 민주국민당 (민국당)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승만은 곧이어 학도호국단을 창설한다. 대한민국 국적이 있는 18세 이상 모든 남녀는 모두 국민회에 가입해야 했고, 성년 여성은 대한부녀회, 청년은 대한청년단, 학생은 학도호국단에 가입해야만 했다. 이승만은 국민회비를 내지 않으면 식량배급 통장이나 물자의 배급을 중지한다고 위협했고, 청년단비를 내지 않으면 38선에 보낸다고 위협했다. 학도호군단은 안호상이 맡았다.

 

1월 중순, ‘수원청년단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이른바 대한 관찰부가 저지른 것이었다. 현대의 국정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한관찰부100여 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대통령 암살 혐의로 체포, 고문했을 뿐만 아니라 경찰과 군에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였다. 대한관찰부는 487월부터 493월까지 9개월 동안 21천여 만원의 예산을 썼다. 이 당시 상공부 예산이 2억 원이었다고.

 

520, 반민특위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던 소장파 의원,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 등이 체포되었다. 이들이 남로당과 연결되어 국회에서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혐의였다. 이른바 국회 프락치사건. 친일파들은 반민특위를 빨갱이 집단으로 악선전한다.

 

66, 중부경찰서장 윤기병이 지휘하는 무장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 반민특위 요원 35명을 체포한다. 이승만은 그 전에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 김상덕은 이승만의 청을 거절한다. , 반민특위 습격은 이승만의 보복이었던 셈.

 

국회 프락치 사건은 재탕, 확대된다. 앞으로도 누누이 보게 되지만 이승만은 좌, 우를 구분하지 않고 토사구팽을 이어간다. 이문원은 한독당원이자 대동청년단원, 노일환, 친일파로 호남 지주 출신의 한민당원, 박윤원은 광복청년단 지방가부, 강욱중, 민족청년단원, 김병회는 독립촉성국민회원, 김약수는 한민당 간부였다.

 

이승만 정권과 친일세력은 공소시효를 49831로 단축하는 반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 통과시킨다. 77일 반민특위 전원이 사임한다. 반민특위는 출발 당시 반민자 7천여 명을 파악해 놓고 있었지만 기소는 221건에 불과했고, 재판이 종결된 것도 38건에 지나지 않았다.

 

강준만의 말처럼 반민특위는 너무 늦게 시작되었다. 해방 후 3년 여동안 친일파는 막강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친일파들은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 반민특위 제 1조사부장 이병홍은 이렇게 증언했다.

 

친일 거두의 집에서 흔히 일본 황제의 사진이 벽상에 조심스럽게 걸려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어떠한 자는 태연하게 우리들 앞에서 이완용의 위대한 민족애를 강조하고 동상 건립의 필요를 역설까지 하였다. ”

 

65일 이승만은 국민보도연맹을 만든다. 보도연맹을 직접 입안안 인물은 친일파 검사 오제도였다. 보도연맹 가입을 거부하면 폭력과 테러는 물론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다. 경찰과 우익청년단체 특히나 대한청년단은 지역마다 할당된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온갖 패악질을 저지른다. 가입비 300, 회비 200원을 거두기도 했고, 서울에서는 5만원을 받는 곳까지 있었다.

 

6.25 전쟁 때 학살된 보도연맹의 수는 최소 20만 명이 될 것이라 한다.



 

626, 김구가 경교장 2층 거실에서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 당한다. 김구의 국민장엔 100만 명이 넘는 문상객이 조의를 표했고 장례일에 서울에서만 40~50만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김구 암살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한독당 간부 7명에게 살인교사죄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 이상하지 않은가. 박근혜가 암살당했는데, 새누리당 의원 7명에게 살인교사죄를 적용한 것과 마찬가지. 김구 암살은 이승만 정권 정보장교였던 김창룡이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두희는 6.25가 발발하자 육군 소위로 복직한다. 51년엔 대위로 진급한다. 소령으로 예편했으며, 예편뒤에는 군납업자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안두희가 복직된 후에 이승만은 이 사람의 인사이동은 내 허락이 없이는 하지 말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2001년 발굴돼 공개된 미국 정보장교 소령 조지 실리의 보고서는 미국 배후설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49년 대한민국은 인권유린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수사 기관이 십 여개 난립하면서 서로 건수 만들기 경쟁을 벌였다. 어느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았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른 경찰서에서도 데려갔다. 이른바 뺑뺑이 취조라 불린다. 감옥은 죄수들로 흘러 넘쳤다. 모든 형무소는 정원보다 몇 배 많은 인원을 수용했다.

 

형무소 바깥도 편안한 건 아니었다. 서민들이 내야 하는 세금 종류만 무려 40여 종이나 됐다.

 

현금을 받아가는 것이 대한부인회비, 대한청년단비, 대한청년단 작어비, 민보단비, 지서수리비, 지서방야비, 비상경비, 본도비상사태대책위원회 기본보도 비상대책비, 국방협회비, 발란비, 소방협회비, 사회교육협회비, 가축할가축보전비, 축구공제 특별가축비, 농화비, 후생협회비, 수구비, 순가 혹 사망에 경하는 비용, 그 다음에는 국세에 정한 국세의 비용이 가옥세, 차량세, 면새 기타 10여 점, 또 그 다음에 현물로 받아 가는 것이 원공출수량은 내야 됩니다.”

 

그 공출 수량을 뺏긴 뒤에는 군용곡량이라고 하고 보리하고 나락을 받아갑니다. 소학교에 대한 선생을 또 무어한다고 보리하고 나락을 받아갑니다. 소학교.....그리고 중학교도 역시 보리와 나락을 양차로 받아 갑니다. 또 도정료 무어라 해서 보리와 나락을 받아 갑니다. 또 구장료 무어라고 해서 보리와 나락을 받아 갑니다. 또 선생을 구제한다고 보리와 나락을 받아 갑니다. 도 산림계에서 환료경제한다고 매 가호에서 700원씩 그 화구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받아갑니다. 종종보면 심지어 대통령 사진 비용까지도 받아 갑니다. ....무병잡비용이 스물한 가지, 국세애 대한 비용이 열 한가지, 40여 종의 부담입니다.”

 

이외에도 서민들은 기부금을 내야했다. 권력기관이나 그 근처 단체들은 수건과 비누등을 강매하고 안 사면 공산당이라 위협했다. 극장표를 무더기로 맡기거나 식량을 내게 하기도 했다. 기부금을 안 내면 협박, 구타, 감금, 침입수사 등이 이러졌고, 군까지 가세했다.

 

서민들은 기부해야 했고 공출당했으며 고문당했고, 또한 이승만을 숭배해야만 했다. 학교마다 이승만 초상화가 내걸리고, 이승만 생일에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해야 했다.

 

이 당시 유행한 말이 사바사바. 물가는 엄청나게 치솟아 올랐다. 물가 폭등은 모리배들에겐 일확천금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바사바는 갈수록 더 성행했다.

 

통역 정치의 다른 한쪽엔 기독교 정치특히 개신교 정치가 있었다. 개신교 신자는 10만 명 인구 대비 비율 0. 52%에 지나지 않았지만 46년 미군정 최고위직에 임명된 한국인 50명 가운데 35명이 개신교 신자였다. 이승만, 김구, 김규식이 모두 개신교 신자였다.

 

한국기독교청년 연합회(기청)은 서북 청년회와 연합한다. 영락교회 청년회는 서북청년단 발족을 주도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 개신교는 귀축미영(귀신과 짐승인 미국과 영국)을 박멸하자를 목이 터져라 외친, 가장 강력한 반미 세력이었다고 하는데, 해방 후엔 어쩌다가 친미로 돌아선 것일까.

 

오기영은 개신교가 일제 치하에서 하느님과 돈과 일본이라고 하는 삼위를 섬겼다고 비판한다.

 

신사 참배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예수교에서 얼마나 많은 대일협력자를 내었는가. 얼마나 많은 미영타도의 용감한 투사를 내었는가. 그뿐이 아니다. 진실로 그뿐이 아니다. 서로 일본에 친하기 위하여, 그 앞에 무릎을 꿇기 위하여 서로 싸우고 모해하며 서로 더 황민화의 공적을 나타내기에 노력하지 아니 하였는가.”

 

일제 강점기엔 반미를 부르짖던 친일파 개신교가 해방 후엔 친미파로 변신한 것은 하느님의 하심을 역사하신 걸까.

 

49년 봄부터 38선 근처에선 무력충돌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이승만은 연일 북진통일론을 외쳐댔다. 1230일 기자회견에서 이승만은 우리는 새해에 통일을 이룩해야 하며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북한에선 48년 가을 이후 모택동 군대에서 싸운 수천명의 조선인 병력이 북한으로 돌아왔다. 504월에만 약 12천명의 조선인 병사들이 돌아왔다. 북한은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남한엔 탱크 한 대도 없었다

 

이승만의 도발에 의해, 한국전쟁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 전쟁에서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를 포함한 인명 손실은 3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나 되었으며, 1천만 명이 가족과 헤어졌고 500만 명은 난민이 되었다. 이 전쟁은 ”20세기의 그 어떤 전쟁보다도 민간인 희생 비율이 높은 더러운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그 잔인성에 있어서 20세기의 국제전이나 내전 과정에서 발생한 다른 어떤 학살을 능가하였으며,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쟁 백화점이었으며,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무참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살아 있는 인권 박물관이자 교과서였다.“ 전쟁 중 이승만은 너무도 무능했고 부패했고 잔인한 모습을 원없이 보여주었다. 과연 이승만 정권은 국가였을까? ”

 

지옥을 살아가고 있던 한국의 국민들과 북한의 국민들,

그들 앞엔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더 끔찍한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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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5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은 역사 연표를 잘 만드실 것 같습니다. 만약에 역사 연표 같은 알라딘 굿즈가 나온다면, 그거 사지 마세요. ㅎㅎㅎ

시이소오 2016-07-15 12:07   좋아요 0 | URL
ㅎ 저야 강준만 쌤 책을 정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

yureka01 2016-07-15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승만에 대해 알아가면 갈수록 화딱지나는 인물은 드물듯..

시이소오 2016-07-15 13:47   좋아요 2 | URL
동감입니다. 이게 과연 인간일까 싶어요.

이승만을 국부라는 것들도 인간같지가 않아요. 무슨 흡혈귀가 아니고서야 ~~

겨울호랑이 2016-07-15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짜여진 각본처럼 모든 것이 맞물려 전쟁으로 몰아가는 거 같네요. 이런 삶속에서 전쟁이라는 탈출구 선택은 자연스러운 흐름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7-15 15:13   좋아요 2 | URL
이 당시의 상황이 현재랑 비슷한것 같아요. 누군가 사드 배치로 지옥문이 열렸다고 표현했는데 동감입니다. 사드 배치이후 두번째 한국전쟁이 발발할 조건들은 완벽히 갖춰지게됩니다. 한국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요?

회의적이네요. 한국전쟁으로 손해본 정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승만, 김일성도 체제를 더 공고히 할수 있었던건 전쟁 덕분이었거든요.

아무죄없는 국민들만 수백만명이 학살당했죠.

사드배치는 미친짓이에요.

한국에서 또다시대리전 하겠다는건데, 사드배치에 찬성하는 국민이 있다니 통탄할 일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7-15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아울러 지금 동유럽에서 NATO와 러시아 갈등, 남중국해에서 미국(필리핀)과 중국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등 세계적으로 불안하네요. 더구나,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 vs 미국, 일본 구조라 2배로 걱정이네요. 더구나 우리 나라 마음대로 전쟁을 하거나 멈출수도 없으니 참담합니다.....

시이소오 2016-07-15 15:25   좋아요 2 | URL
지금 세계 정세가 정말 심상치가 않아요.

삼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문제는 어디냐는건데, 한반도도
분명 강력한 후보지들 중 하나라고 봅니다 .

겨울호랑이 2016-07-15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최근 들어 정부에서 국민들 정치의식과 역사의식을 많이 함양해 주어서 참 고마워하면서 내년 대선을 기다리고 있는데, 기회를 안 주는 거 같네요...

시이소오 2016-07-15 15:33   좋아요 2 | URL
섬찟한건 새누리당이 내년 대선은 포기한것처럼 보인다는거죠. 대선을 포기하면서도 낄낄대는 이유가 뭘까요?

단지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으면 좋겠어요



2016-07-15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15 15:59   좋아요 2 | URL
단지 그것뿐이라면 다행입니다만, 거기서 그칠것 같지가않아요.

중국, 러시아가 미쳐날뛰니 미국은 일본이란 사냥개 목줄을 풀었습니다. 일본이 북한의 목을 물어 뜯으면 중국이 달려올거고 미국도 뛰어들겠죠.
또 다시 미중 전쟁이 한반도에서 이뤄지겠죠.

애초에 강대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게 아니니, 38선 유지한채로 또다시 휴전, 한반도 사는 사람들만 개죽음 당하겠죠. 에효

겨울호랑이 2016-07-15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맞습니다. 시이소오님 말씀이 충분히 근거가 있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다만, 그렇게 안 되길 바라야겠지요. 다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를 바라보고 판단을 바로하는 것 같아요.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 할거 같네요^^

시이소오 2016-07-15 16:09   좋아요 2 | URL
중요한 말씀 이네요. 전쟁을 막기위해 우리들 각자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할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6-07-15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시이소오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항상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시이소오 2016-07-15 16:13   좋아요 2 | URL
저도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도 즐거운 불금되시길 ^^

2016-07-16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17 11:37   좋아요 1 | URL
정신병자라는 말에동의합니다. 오죽하면 미군도 일국의 대통령을 정신과 의사와 상담시키려 했을까요. 지금 박그네도 제가 보기엔 정신병자. 치료가 시급합니다. 엄마. 아빠. 다 총 맞아 죽은 이후로 미쳤어요.
저런 ㅁㅊㄴ을 대통령 시켜 놨으니 나라도 미쳐가죠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판 한국 현대사 산책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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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민간인 학살의 원년. 48년 이후로 백 만명의 국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희대의 살인마를 국부라고.

419 혁명을 통해 국민이 쫓아낸 독재자가 이승만이다. 이승만을 국부라 칭한다는 건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가 되는 419를 부정한다는 말이다. 또한 이승만의 백만  명 학살을 지지한다는 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이게 빨갱이 아닌가.) 이승만을 국부라 부르는 것들, 법으로 엄정히 다스려야한다. 국회의원들은 왜 멍하니 있는 걸까.

 

 

17, 인도인 의장 메논을 위시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입국했다.

 

27, 남로당은 강경 투쟁의 일환으로, 2.7 파업을 일으킨다.

 

210, 김구는 남한만의 단독정부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312, 유엔위원단은 찬성 4개국, 반대 2개국, 기권 2개국으로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찬성한다. 한민족의 분단을 반대한다는 연설을 했던 의장 메논은 이승만이 계획한 모윤숙의 미인계에 마음을 돌린다. 모윤숙은 대표적인 친일파 작가기도 했건만, 한민족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패륜을 저질렀다.

정경모는 한국의 진짜 건국의 아버지는 인도인 메논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같은 날, ‘7거두 공동성명이 발표된다. 7거두는 김구, 김규식, 홍명희, 조소앙, 조성환, 조완구, 김창숙 등을 일컫는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는 동족상잔의 참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

 

214, 공창제도가 폐지된다. 공창은 폐지되었으나, 매춘부 2천 여명은 대부분 사창으로 전업한다. 육체적 매음과 정신적 매음 중 무엇이 더 더러운까. 채만식은 <낙조>에서 춘자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지.

 

난 양갈보야 난 xx놈한테 정조를 팔아먹었어. xx놈의 자식이 애 뱄어. 그러니까 난 더런 년야.......그렇지만서두 난, 누구들처럼, 정신적 매음을 한 일 없어. 민족을 팔아먹구 민족의 자손까지 팔아먹는 민족적 정신 매음은 아니했어. 더럽기루 들면 누가 정말 더럴꾸? 이 얌체빠진 서방님네들아!”

 

제주 4. 3 항쟁

 

43,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내 12개 지서를 공격한다. ‘제주 4. 3항쟁의 시작이었다. 당시 제주도민은 30만 명으로 알려져있다. 이중 10%3만 명이 빨갱이라는 죄명으로 살해당했다. (8만명이 살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473. 1 사건 이후 제주도민과 친일 경찰들이 자주 충돌했었다고 한다. 3월 우도와 중문리 사건, 6월 종달리 사건, 8월 북촌리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483, 청년 3명이 경찰의 고문으로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여 민심이 동요하였다.

 

422일부터 경비대와 무장대의 평화협상이 체결된다. 그러나 협상 사흘만에 우익청년단이 제주읍 오라리 마을을 방화하는 세칭 오라리 사건이 벌어진다. 53일 미군이 경비대에게 총공격을 명령한다. 협상 결과만 믿고 산에서 내려오던 사람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한다. 당시 경비대 연대장 김익렬은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폭동진압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과오와 죄상을 은폐하기 위하여 오히려 폭동을 조장, 확대하려고 하였다. 경찰은 폭도를 가장하여 민가를 방화하고는 폭도의 소행으로 선전하고 다녔고, 이렇게 되자 폭도들도 산에서 내려와 각 지서를 습격하여 중지되었던 전투가 다시 개시되었다.”

 

김익렬이 경찰의 행동을 의심할만한 증거물과 사진첩을 제시하자, 경무부장 조병옥은 김익렬을 빨갱이로 몬다. 김익렬은 해임되고 서울에 가서 경비대사령관 준장 송호성에게 보고한다. 김익렬의 보고를 들은 송호성은 제주도 사람은 이제 다 죽었구나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51511사단이 제주도로 들어온다. 기존의 9연대는 11연대에 합편된다. ‘무차별 체포작전을 펼친 박진경은 미군의 인정을 받아 대령으로 진급하지만 하사 손선호에게 살해당한다. 손선호는 박진경 살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화북이란 부락을 갔을 때 15세 가량 되는 아이가 그 아버지의 시체를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살해하였다. (중략) 사격 연습을 한다고 부락의 소 기타 가축을 난살하였으며 폭도의 있는 곳을 안다고 안내한 양민을 안내처에 폭도가 없으면 총살하고 말았다. 또 매일 한 사람이 한 사람의 폭도를 체포해야 한다는 등 부하에 대한 애정도 전연 없었다.

 

본격적인 학살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인 4811월 중순부터 49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발생하게 된다. 미군정은 군대, 경찰, 서북청년단을 위시로 한 우익 청년단체의 토벌을 레드 헌트로 명명했다.

 

419, 김구는 남북 협상을 위해 북행길에 오른다. 이후 홍명희, 조소앙, 조완구, 엄항성, 김규식 등이 북으로 출발한다.

 

430일 김두봉의 집에서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의 ‘4김 회동이 열린다.

 

510,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실시된다. 김구, 김규식은 거부한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대승리라고 선전했지만 실상과는 거리가 너무도 먼 이야기 였다. 한 외신기자는 이렇게 보도했다.

 

민간 경비대원은 도끼자루, 야구배트, 곤봉 등을 휴대하고 있었고 모든 조선 경찰은 미국 카빈 총으로 무장하였다. 선거일은 휴일이나 분위기는 계엄하의 도시와 같았다. ”

 

친일경찰 문제로 조병옥을 비판했다가 사직한 최능진은 5. 10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갑구에 출마해 이승만과 대결을 벌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측의 방해공작으로 등록 무효 선고를 받아 이승만은 무투표 당선되었다.

 

중도파와 좌파들의 선거 보이코트는 과연 옳았을까? 대다수의 사학자들은 선거 보이코트가 결과적으로 이승만의 합법화 길을 열어 주었다고 평가한다.

 

712,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여 717일에 공포했다. 720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8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내외에 선포하는 기념식이 거행된다. 이승만의 기념사는 주로 맥아더에 대한 찬양의 말 뿐이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찬사는 없었다. 1212일 유엔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했다.

 

99일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이 선포되었으며,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각료가 구성된다. 김일성의 국토 완정론에 따르면, 평양은 임시 수도이고, 남한 공산화를 통해 서울을 수도로 삼아야 국토의 완정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대한민국 역시 무력을 통해 북한을 흡수하겠다는 흡수통일론을 제시한 바, 남북간의 갈등과 대결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친일파들의 무수한 방해질에도 불구하고, 922일 드디어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된다. 반민법에 근거, 국회 내에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이른바 반민특위가 구성된다.

 

130만 명의 단원을 둘 만큼 급팽창한 이범석의 족청을 견제하기 위해 이승만은 대한청년단을 발족시킨다. 단장은 신성모, 감찰국장은 김두한이 맡았다. 경남 거창에선 대동 청년단이 조직된다.

 

여수항쟁 

 

1015일 여수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제 14연대는 육군 사령부로부터 19일 오후 6시를 기해 대대를 제주도로 출동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14연대 사병들은 월북, 선상 반란, 여수 봉기롤 고민하다, 여수에서의 봉기를 결정한다. 이들은 우리는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을 반대한다를 구호를 외치면서, 제주에서의 진압군을 포기하고 반란군을 택한다. 불과 네 시간 만에 여수를 장악한 반란군은 순천, 벌교, 보성, 고흥, 광양, 구례를 거쳐 22일 곡성까지 점령한다.

 

미군정과 군경의 잔인한 보복극이 시작된다. 진압작전은 1026일부터 시작된다. 전 육군 병력의 3분의 15개 연대, 7척의 해군 함정, 전 공군력에 해당하는 10대의 비행기까지 총 동원된다. 진압군이 막상 여수에 진입하고 보니 시내는 텅 비어 있었다. 반란군은 이미 산 속으로 도주했던 것. 엄청난 병력과 장비를 동원했건만 군경은 웃음거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반란군을 찾을 수 없게 된 진압군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보복을 자행한다.

 

진압군은 여수 서국민학교에 4만 명을 집결 시켜놓고 보복 대상자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마구잡이식 보복이었다. 예컨대, 당시 가담자들이 신발공장에서 찌까다비(일할 때 신는 신발)을 신었다는 소문을 듣고 진압군은 그 신발을 신은 청년은 무조건 사살했다. 학생복을 입었다고, 머리가 짧다고, 국방색 러닝 셔츠를 입었다는 죄로 살해되었다.

 

반란군의 잔인성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5연대 지휘관 대위 김종원의 행태였다. 5연대는 상륙 작전을 하면서 마구잡이로 쏘아댄 박격포탄에 의해 12연대 수색대가 맞아 중대장과 하사관 한 명이 전사한다. 김종원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돌산섬을 비롯해 여기저기를 뒤져보지만 반란군은 이미 종적을 감춘 후였다. 이에 김종원은 군내리에서 3, 남면 안도에서 20명을 죽이고, 중앙국민학교에서는 붙잡혀온 청년들에게 칼 시험을 해본다는 이유로 일본도로 7명의 청년을 베어 죽였다. 김종원은 이후 6.25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문교부는 문인들을 현지에 파견 시찰을 시킨 다음 정부에 유리한 글을 쓰게 했다

박종화, 이헌구, 정비석, 최영수, 김 송.

 

여순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2600명이 넘었다. 미국은 여순사건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숙군이 시작된다. 군의 약 5%에 달하는 4749명이 숙청당했고, 이중 2천명이 총살당했다. 숙군 작업 와중에 소령 박정희도 체포된다. 여순사건이 터지나 박정희는 토벌사령부에 작전장교로 차출되었었다. 박정희는 남로당 프락치였다.

 

만주군에서 광복군으로, 좌익에서 우익으로 변신한 박정희는 군부 내 남로당원의 명단을 모두 털어놓아 결국 목숨을 건진다.

 

929일 내란행위특별조치 법안이 다시 등장하여 국회 본회의에 제출된다. 이 법은 곧 국가보안법으로 이름이 바뀐다. 야당 국회의원 조헌영은 이렇게 말했다.

 

속담에 고양이가 쥐를 못 잡고 씨암탉을 잡는다는 격으로 이 법률을 발표하고 나면 안 걸릴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 놈 시대와 같이 잡아다 물 먹이고 이 놈 자식이 그랬지 하면 예예 그랬습니다. 이래서 거기 다 걸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

 

국가보안법은 한민당과 이승만 지지세력 연합에 의해 1120일 국회를 통과해 121일 공포된다. 국가보안법은 곧 괴력을 발휘한다. 494월까지 국가보안법으로만 체포된 숫자는 89700명이었다. 49년 한 해에만11만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7개 일간지와 1개 통신사가 폐간 및 폐쇄당했다. 많은 기자들이 체포되었고 발행인 및 편집자들이 제거되었다. 방송은 아예 정부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제주에서의 인간 사냥

 

4811월 중순부터 493월까지 제주도 160여개 마을 가운데 130여개 마을의 수만 주민들이 학살당한다.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군정 치하보다 학살은 더 잔인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017일 제 9연대장 송요찬은 포고문을 발표한다. “ 1020일 이후 군 행동 종료 기간 중 전 도의 해안선부터 5km 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를 포고함. 만일 차 포고에 위반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이유 여하를 불구하고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악명높은 초토화 작전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살해하겠다는 것.

 

1018일 제주 해안이 봉쇄된다. 1019일 제주에 파병될 예정이었던 14연대 1개 대대는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1117일 제주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이승만이 앞장서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경찰이나 경비대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초토화 작전에 투입된다.

 

이승만은 1210일 서북청년회 총회에 참석, “제주도 4. 3 사태와 여수, 순천 반란 사태로 전국이 초비상사태로 돌입했다. 이 국난을 수습하기 위하여 사상이 투철한 서북청년회를 전국 각지에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서청 단원들은 473.1 사건 직후부터 제주로 들어왔다. 김종민에 따르면, 서청단원은 주로 엿장수를 하다 이승만 사진과 태극기를 강매했다. 4.3이 발발하자 서청은 경찰 또는 군인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과거에 이승만 사진과 태극기를 사지 않았던 사람들은 총살되었다.

 

12월 말 토벌대가 9연대 (연대장 송요찬)에서 2연대 (연대장 함병선)로 교체되면서 서청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 광기가 펼쳐졌다. 13살 소년을 고문해서 죽게 만든 사건이 915일 자 중앙 언론에 보도 된 이후, <경향신문> 제주지사장 현인화, <서울신문> 제주지사장 이상희, <제주신보> 편집국장이 총살당했다.

 

집단 광기의 조짐은 사태 초기부터 있었다. 김종민에 따르면, 처음엔 말 태우기뺨 때리기가 유행했다. 토벌대는 할아버지와 손자를 마주 세워놓고 서로 뺨을 때리도록 했다. 또한 가족들을 총살 당할 때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치게 했다.

 

대살도 행해졌다. 가족 중 청년이 사라진 집안 사람들은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총살당했다. 1213일 대정면 상모리와 하모리 주민 48명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총살당했다. 이 마을에서는 주민들을 집결시킨 후 총살극을 구경시켰다 하여 이 사건을 관광총살이라고도 부른다.

 

49117일 북촌리 학살 사건에선 장교들이 군인들에게 사살 연습을 시켰다.



 

미군과 이승만은 왜 이토록 잔인한 방식으로 인간 사냥을 해야만 했을까?

 

20031015일 제주 4.3 사건 위원회(위원장 총리 고건)가 확정한 <제주 4.3 사건 진상보고서>는 유혈 사태를 초래한 초토화작전 및 집단 인명피해(집단학살)의 최종 책임은 당시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이승만에게 있다고 지적했으며, 1031일 대통령 노무현은 사건 발생 55년 만에 당시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200643, 58돌을 맞은 제주 4. 3 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최근 제주도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서북청년단을 다시 조직하려고 안달이다.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연쇄살인마 단체를 허용할 것인가? 서북청년단은 단순한 우익 단체가 아니다. , 우익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의 잣대로 바라봐야 한다. 서북청년단은 한국 역사상 가장 악랄한 살인마들 중 하나다


독일은 네오 나치 집단인 하얀 늑대단을 불법단체로 규정, 10개 주에서 소탕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한국 역시 서북청년단같은 학살 집단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48720, 런던에서 개최된 제14회 국제 올림픽에 한국은 최초로 참가한다. 58개국 가운데 32위를 차지한다. 축구에서는 스웨덴에게 120으로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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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4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4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7-14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슴아픈 한국 현대사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7-14 13:08   좋아요 3 | URL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모르고 잘도 살아왔어요.

그러니, 이승만 같은 쓰레기를 국부라 하는 것들이 설쳐대는 거겠죠.

같이 읽어주셔 저도 감사드려요.
쓰는게 너무 고통스러웠거든요 ^^

singri 2016-07-14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뜩하네요 진짜 ! 이승만이 국부라고ㅡ 아후 우리나라 ㄱㅅㄲ들 너무 많습니다

시이소오 2016-07-14 13:11   좋아요 1 | URL
그들은 자기들을 ㄱ ㅅ 끼 로 생각지 않잖아요.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니까, 국민들 몇 백만명이 죽어도
잔인하게 살해한 이승만을 국부라고 떠드는 거겠죠

이승만을 국부라 떠드는 것들, 국민들이 기록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지, 아는지.
언젠가 댓가를 치를거라 봅니다.

singri 2016-07-14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6.25 전쟁 읽는 중인데 이승만 거짓말로 싸우고 밑으로 도망다니기 바쁨 . 부관참시 ㅡㅡ

시이소오 2016-07-14 13:18   좋아요 0 | URL
정말어이없죠. 북진통일 부르짖다 전쟁터지니까 혼자 도망다니기 바쁨. 부관참시도 관대하죠^^;

겨울호랑이 2016-07-14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업무상 제주도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가는 길에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가볼 계획입니다. 보도연맹사건 등을 비롯해서 알지 못했던 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이나마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이소오 2016-07-14 13:22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런생각이 드네요. 숱한 분들의 희생덕택에
그나마 제가 살아갈수 있다구요. 저는 최근에야 43기념관 있는 걸 알았네요. 저도 제주도에 가면 꼭 방문해야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악이죠... 이승만.....

시이소오 2016-07-14 13:29   좋아요 0 | URL
이승만에 비하면 전두환도 피래미로 보여요. 사악하고 비열하고 뻔뻔하고 오만하고. 이게 정녕 사람인가 싶어요

samadhi(眞我) 2016-07-14 13:30   좋아요 0 | URL
명박이 롤모델이죠 승만영감탱이. 명박이는 승만이형처럼 되고 싶어서 온갖 더러운 짓, 도둑질은 다 했지요.

시이소오 2016-07-14 13:33   좋아요 0 | URL
명박이 명줄도 기네요. ~~

기억의집 2016-07-14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정상적인 나라에 사는 게 아니라나깐요. 화가 나요...

시이소오 2016-07-14 17:08   좋아요 0 | URL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살고있죠 ^^;

기억의집 2016-07-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릴 때 어떤 영화인지 모르지만 저 사진처럼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주인공이 죽은 척 하나그러는데.. 설마 이승만이 백만 학살한 사건을 다룬 건 아니겠죠.. 혹 영화로 만들어지진 않았죠?

시이소오 2016-07-14 19:22   좋아요 0 | URL
정확히 모르겠지만
영화도 아직 소설만큼 너무부족하네요 . ^^;

2016-07-15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15 10:09   좋아요 0 | URL
흐흐. 죄송해요 ^^;

빈수레 2016-07-2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승만 묘지가 왜 있는거죠? ㅜ.ㅜ

시이소오 2016-07-20 13:15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국립묘지에 파헤쳐야할 묘가 한 두개가 아니네요ㅠ ㅠ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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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을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 개의 별들이 얼음처럼 부서진다.”

 

어휴, 시인들은 이런 연서를 쓴단 말이지. 장석주가 박연준에게 쓴 연애 메일의 첫 문장이란다. 뭔가 반칙 같은 느낌이 든다. 곧장 장석주 시인에게 달려가 (임채무처럼 82 가르마를 하고는) 옐로우 카드를 번쩍 치켜들고 싶다. 저런 문장에 안 넘어가는 여자가 이상한 거 아닐까.

 

박연준 시인은 얼음을 주세요란 제목으로 시를 썼다지. 얼음을 달라니, 아니, 그걸로 뭐 하실려고? 아우, 왜 이리 에로틱하냐. 나만 그런 것일까.

 

처음 읽는 책임에도 기시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블로그 이웃이나 북플 이웃들 서평이나 리뷰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왜 이리 반가운지. 특히나 이 책은 박연준 시인의 문장이 쏙쏙 박힌다. 그러니까 이제 문장들은 박연준의 것도, 당신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이란 말이지?

 

문장에 콩깍지가 씐다.

 

대개 사랑은 콩깍지가 씐 상태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콩깍지가 벗겨졌는데, 그것도 한참 전에 벗겨졌는데도 그 사람이 좋은 것이다.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키는 것, 이해 불가능한 상태가 사랑이다.

 

- P 52

 

롱 블랙이라. 아메리카노와 비슷하다는데.

 

내 멋대로 긴 긴 밤이라고 의역도 해봤다. 긴 긴 밤 한잔이요! 얼마나 멋진가? 밤을 한 잔 마시는 시간이라니. 커피 속에 기다란 검정도, 기다란 기차도, 기다란 밤도 넣어보며 홀짝였다. 이름이 중요한 법이다. 무엇이든 호명하고, 불러주고, 사랑해주는 순간 빛나게 된다. 완전히 달라진다.

 

- P 70.

 

한 달 동안 시드니에서 살 수 있다니.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어우 부러워. 글은 장석주, 박연주지만 기획은 김민정 시인인 듯하다. 김민정 시인의 오지랖은 왜 이리 사랑스러운 걸까. 이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야. 나에게도 오지랖을 가해주었으면.

 

(김민정 시인, 요즘 이뻐지셨던데? 얼굴에 칼 대신 건가요? 아니면 이제야 화장술을 배우신건지요?? 아무쪼록 줄기차게 이쁜 짓해주세요^^)

 

  

걷기는 안에서 무엇의 길을 트고, 시간 안에서 무엇을 구멍낸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신비한 결속>에 나오는 구절이다......목적 없이 걷는 사람은 도착할 곳이 없다.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한곳에 머무는 사람, 그가 머무는 곳은 자신의 생각 속이다. 종착지는 생각의 끝이 될 것이다. 생각의 끝에서 길이 멈추고, 비로소 이 생기는 것이다.

 

- P74

 

모든 밤이 지극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밤은 너무나 지극해서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식물의 키가 밤새 줄어드는 소리나 전깃줄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까지, 몰래 접어둔 걱정 한 덩이가 뒤척이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들어라, 사랑하는 이여, 걸어오는 밤의 / 부드러운 발자국 소리를 들어라.” 보들레르의 시구처럼 , 밤은 고요를 안개처럼 끌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 P 92.

 

알베르 카뮈는 산문집 <여름>에서 나는 바다에서 자라 가난이 내게는 호사스러웠는데, 그후 바다를 잃어버리자 모든 사치는 잿빛으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라고 쓴다.

 

- P 134

 

1730년에 신부 카스텔은 이렇게 쓴다. “파란색은 하늘의 색깔이므로 하느님의 빛깔이다. 하느님은 출발점의 음이므로 옥타브의 첫 번째 음인 도에 해당한다. 따라서는 도는 파란색이다. ”푸른 하늘의 음계는 .

 

- P 140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이라고 쓴다.

 

- P147

 

날마다 1백억 개의 세포가 죽고 죽은 세포들은 새 세포들로 교체된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아포토시스apotosis라고 말한다. 아포토시스 과정이란 날마다 세포 단위에서 겪는 작은 죽음들이다. 인간은 그런 작은 죽음들 끝에 큰 죽음과 만난다.

 

나란 존재는 장강 같은 생명의 긴 역사에서 찰나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물방울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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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7-13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연준 쪽이 더 좋았죠? 사랑엔 역시 망설임과 어려움이 좀 있어야^^

시이소오 2016-07-13 08:58   좋아요 2 | URL
맞아요. 거의 8대 2 수준으로 박연준이 더 좋았어요.
사랑이라니, 부러울 따름이에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민정 시인은 확실히 문학판의 마당발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시이소오 2016-07-13 11:06   좋아요 0 | URL
문학계의 대모라 할까요. 한국의 거투르드 스타인? ㅎ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


이 문장 제가 매우 좋아하는 릴케의 시입니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인가.. 두이노의 비가인가.. 둘 중 하나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 전체가 정말 뛰어나죠. 내 인생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시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이소오 2016-07-13 11:03   좋아요 0 | URL
두이노의 비가죠.
장석주시인이 예전에 청하출판사 했었잖아요. 저도 청하출판사 판으로읽었더랬죠 ^^

samadhi(眞我) 2016-07-14 00:32   좋아요 0 | URL
청하 출판사 저도 좋아해요. 장 그르니에, 「섬」도 청하출판사에서 나왔죠.

시이소오 2016-07-14 00:35   좋아요 0 | URL
아, 그러네요. 니체도 좋았죠 ^^

2016-07-13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4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판 한국 현대사 산책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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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호남선 열차 안에서 미군 4명이 일반 객실에 들어와 다른 승객들을 내쫓고 조선 여인 3명을 강간했다. 2명은 젖먹이까지 거느린 가정주부였다. 미군정 재판부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463월엔 4명의 미군에게 한 부녀자가 집단윤간 당했다. 4833일엔 두 명의 미군이 15세 소년을 윤간하려다 반항하자 목을 졸라 질식시키고 달리는 열차 창밖으로 내던져 살해했다. )

 

구국의 미군? 한국 정치 지도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214~ 17, 김구는 국민의회를 결성한다.

 

221, 22일 북한에선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새로운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한다.

 

31, 3.1 절 기념식은 46년과 마찬가지로 우파와 좌파 따로따로 치러졌다. 기념식을 마치고 행진을 벌이던 두 세력은 남대문 근처에서 충돌했다. 정체불명의 총기 발포로 2명이 사망했다.

 

31, 제주에선 3.1 기념 제주도대회가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열렸다. 3만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기마 경관이 탄 말에 어린이가 채어 작은 소란이 발생한다. 아이가 채인 사실을 몰랐던지 기마 경관이 그대로 가려고 하자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경찰은 경찰서를 습격하려는 줄 오인, 발포하여 6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310일 경찰에 항의하여 민관 총파업이 시작된다. 경찰의 20%마저 파업에 동참한다. 충원은 서북청년단 단원들로 이루어진다. 이 사건이 다음 해에 일어난 제주 4. 3 항쟁의 씨앗이 되었다.

 

322, 좌익은 전평 주도하, 24시간 총파업을 벌인다. 29일 까지 2천여 명이 검거되었는데, 이 때 독립투사이자 임정 2인자 김원봉도 검거된다. 김원봉은 친일 악질 경찰 노덕술에게 고문 당한다.

 

312, 미국에선 트루먼이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한다. 트루먼은 미국의 목적은 소수파가 독재정치를 강요하는 공산 침략주의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영토보전을 위해 투쟁하는 세계의 모든 국민을 원조하는 것이라 선언한다. 이승만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고.

 

419,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이 2시간 2539초 대회신기록으로 우승한다.

 

65일 하버드 대학에서 국무장관 조지 마셜이 이른바 마샬 플랜을 선언한다. 미국의 대소 봉쇄정책이 가시화된다.

 

623, 김구와 이승만은 반탁시위를 주도한다.

 

710, 2차 미소공위도 결렬된다.

 

미군정은 63일 남조선과도정부를 공식 출범시킨다. 과도입법위원은 313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 처단 특별법을 본회의에 상정한다. 72일에 통과된다. 극우 진영 및 경찰이 곧장 반격을 가한다.

 

73일부터 김규식과 안재홍을 용공분자로 모는 삐리가 나돈다. 경찰들과 우익 청년들의 방해로 1127일 러치 군정장관은 친일파처벌법을 폐기시킨다.

 

719, 여운형이 암살당한다. 45818일부터 시작된 테러로부터 11번째 테러에 목숨을 잃었다. 암살범은 백의사멤버 한지근이었다. 이 시기 미국은 냉전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더 이상 소련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졌다. 미군정으로선 좌우 합작위의 여운형이 이제는 부담스러워 졌겠지. 테러는 극우 청년 단체가 실행했지만 사주는 미군정과 이승만에 의한 것이었다


대다수 사학자들은 김구보다 여운형의 치적을 더 높이 평가한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누구보다 힘쓴 정치인이었다.

여운형을 기억하자.  





 

122일엔 장덕수가 암살 당한다. 김구가 배후로 지목된다. 김구는 이승만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이승만이 어디 그럴 놈인가. 이 일을 계기로 김구와 이승만의 밀월 관계는 깨진다.

 

47년 최고의 히트 가요는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었다. <베사메무쵸> 역시 인기를 끌었다. 한복남의 <빈대떡 신사>도 히트곡이었다.

 

47년엔 다방 붐이 일었다. 문인들의 아지트로 <마돈나>가 유명했다. 당대의 명가수들이 애용한 <모나리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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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13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읽으니 좌절이.....

시이소오 2016-07-13 14:29   좋아요 0 | URL
이 다음 해 48년은 실로 제 정신으로 읽기 힘들 정도에요.

이승만의 민간인 학살의 원년이랄까요. 419 혁명으로 물러나기까지 12년동안 거의 백만명을 학살합니다. 625를 포함하면 이승만 때문에 죽은 국민이 오백만명이네요. 히틀러 같은 악마를 국부로 미화하는 것들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게 수치스럽네요 ^^;

진짜역사 2016-08-1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군정과 이승만이 여운형을 죽였다? 미군정을 거기 집어 넣는건 무슨 황당한 소설인가요? 미군정의 하지중장은 이승만,김구,이범석등 우익을 극독로 싫어했습니다. 파시스트와 같이 생각했구요. 여운형이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여운형의 좌.우 합작을 밀었고, 빨리 좌.우 합작 정부 탄생시키고 손 땔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이 미국가서 반공여론 일으키고 미국 정부의 여론을 등에 엎고 돌아 오닌까 하지중장은 열받아서 이승만 집도 빼앗아 버렸어요.

그리고 백의사는 이승만 보다 김구쪽에 더 가깝습니다. 김구가 백의사 단원들 시켜서 북한가서 김일성 테러시도 한거 아시죠?

시이소오 2016-08-15 12:12   좋아요 0 | URL
여운형 암살에 미군정은 모르는 일이다? 그럴수도 있겠네요.
 
레비스트로스의 말 -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조르주 샤르보니에 지음, 류재화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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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한 일이 아님에도 민음사에서 나오는 < 누구누구의 말 씨리즈>를 다 읽게 된다. 부끄럽게도 아직 레비스트로스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보르헤스 와 달리, <레비스트로스의 말>은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레비스트로스 사상의 정수를 엿보았다, 라는 느낌 따위도 없다. 그럼에도 <레비스트로스의 말>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인류학자의 연구 대상이 되는 사회와 우리가 사는 사회 사이의 기능과 구조를 말할 수 있는가?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사회를 외부에서 보느냐, 내부에서 보느냐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부에서 볼 때 하나의 죽음은 진부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과 친척들에게는 하나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일 수도 있다.

 

속도와 위치, 두 가지 모두를 알 수 없는 물리학자의 입장이랄까. 인류학자 역시 가능한 방식은 외부에서 다른 사회와 비교, 분류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레비스트로스는 서구 사회가 원시 사회보다 더 뛰어나다는 관점을 수용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오히려 원시 사회를 더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시는 문화에 비해 질서를 더 적게 만듭니다.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미개발 민족이라고 부르지요. 그러나 이들은 사회에서 훨씬 적은 엔트로피를 생산합니다. 대략적으로 보면 이런 사회는 평등해요.....문명화의 가장 큰 문제는 격차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식민주의, 제국주의, 다시 말해 끊임없이 사회 한가운데서 혹은 정복한 민족을 예속시키면서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사이의 격차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 p 57.

 


예술에서도 중요한 것은 합리적 사유가 아니라 야생적 사고다. 현대 미술이 미술의 진보가 아니듯 현대 사회는 원시 사회에서의 진보가 아니다.

 

초현실주의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통해 그의 사상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듯 하기도. 뒤샹의 을 예로 들어, 레비스트로는 이렇게 말한다.

 

말하자면 어떤 오브제든 상관없고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 오브제 자체가 반드시 이런 잠재 가능성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맥락에 어떤 오브제가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렇다고 오브제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오브제 자체가 예술 작품이 아니에요. 오브제들 간의 어떤 배치, 배열, 서로 가까이 놓음으로써 대조와 조화를 만들어내고 어떤 연관성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게 예술 작품이죠. 언어에서 단어들 같은 거예요. .....단어는 문장 안에 있을 때만 그 의미가 가득 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예술가에 대해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것이지, 그들이 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그것을 생각하건 생각하지 않건 중요하지 않아요. 미적 창조 행위를 분석하는 심리학자에게는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겁니다.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제가 보기에 가장 위험한 것은 나는 새로운 기호 체계를 만든다’, ‘나는 새로운 코드를 만든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만든 게 아니고, 아마 유사 코드를 만든 거겠지요. 고백하자면 저는 추상주의, 이른바 추상적이라고 불리는 회화 앞에서 흔히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 아마 추상화에는 기호 체계가 있을 겁니다. 이 기호 체계는 오브제에 비해 임의적이지요.

 

- p 142


레비스트로스의 말에 동의한다. 한마디로 추상회화는 쓰레기라는 것. 현대의 팝 아트는 두말하면 잔소리.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제프 쿤스의 작품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이런 걸 예술이라고?? 현대 미술의 천박함이 극에 달했다. 막스 에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지. “추상화 애호가가 많다면 그건 대단한 재산이 가진 계층이 나섰기 때문이다. 이것이 추상화의 영향력이다.” 5초에 한 명 씩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마당에, 소수의 자본가들은 돈을 주체할 수 없어 쓰레기 같은 오브제에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하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한다.

 

레비스트로스의 일차적 관심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언어가 아닐까. 언어에 대한 인터뷰 내용은 그리 많지가 않다.

 

저는 모든 문제가 언어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예술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그것 역시나 언어 체계입니다. 언어는 나에게 가장 탁월한 문화적 실체로 보입니다. 여러 호칭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우선 언어는 문화의 일부분이고, 우리가 외부 전통으로부터 받아들인 능력 혹은 습관의 하나입니다. 언어는 본질적인 도구이며, 우리가 집단 문화에 동화될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수단입니다.

 

- P 183

 

아무래도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이해보다는 호기심을 자극 하는 책이다. 무지를 까발리는. 레비스트로스를 향해 핸들을 한 번 꺽어야겠다. ‘신비한 결속을 느끼고파.파, 파~~ 

 

 

p11. 레비스트로스는 용어는 음악 용어든 미술 용어든 그것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관계들이라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 사유의 한 키가 이 말에서 엿보인다. 명사화, 범주화, 분류화, 서열화보다는 일종의 자유 연합이다. 레비스트로스가 강조한 관계들은 논리적, 인과적 관계가 아니라 세분을 거부하거나 초월해버리는 원시인의 야생적 사고에 가까운 신비한 결속이다. 그것은 환유적 연상 작용이다. 비현실적이며 신화적인 세계, 그러나 바로 그곳에 생이 있다.

 

p14. 연언적으로만 존재한다고 했던 자연 실재계의 단절된, 불연속적인 것들을 가로 연산적 통합축으로, 세로 층위 승수적 계열축으로 사고하여 논리적 건축물을 지어내는 것이 인간의 사고 구조라고 보고 그러한 방법론으로 수많은 분석을 시도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이 분석 체계의 축조물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 축조물을 통해 차이가 아닌 닮은 차이, 즉 다르나 결국 같은것을 환기하는 것이 목표다.

 

가령 토테미즘이 종교라는 신성 체계가 아니라 환유법에 가까운 인간의 정신 작용과 그 소산에 불과한 이유가 이런 식으로 설명된다. “곰은 내 보족이다라고 말할 때 내 부족의 등가 관계는 등치가 아니라 대등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라는 종과 혹은 나의 부족이라는 사회집단이 유사적 연쇄의 통합축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대체나 치환이 가능한 근접성의 환유 관계, ‘계열축에 각각의 층으로 놓이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곰과 나는 a=b의 관계가 아니라 a:b의 관계다. 이것이 바로 닮은 차이. 서로 다른 층위에 놓여 있으면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를 수 있다. 만물은 이런 식으로 실제한다.

 

우리는 합리주의적 사고를 하기보다 야생적 사고를 한다. 주술적, 신화적 사고를 한다. 끊임없이 은유, 환유 관계를 연상함으로써 몽상을 하고 예술을 한다. 예술은 느닷없는 난입이며 교란이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증가시키면서 허무라는 구멍을 끊임없이 파는 일이다. 이미 실재라는 거대한 허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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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열대>를 한 번도 읽어봤습니다. 뭣도 모르고 덤비다가 포기한 적 있습니다. ㅎㅎㅎ

추상회화가 한때 유행했고, 그림이 비싼 가격이 거래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비평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이었습니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현대미술 편에 보면 추상회회에 관한 내용이 있어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린버그라는 비평가는 잭슨 폴록을 띄워줬는데, 폴록이 죽은 뒤에는 로스코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팝 아트를 대놓고 무시했죠.

시이소오 2016-07-11 15:25   좋아요 0 | URL
슬픈 열대 어렵나보군요.
다른 입문서를 봐야겧어요^^

cyrus 2016-07-11 15:39   좋아요 0 | URL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주제나 책의 분량이 잠을 부르게 합니다. 조금만 더 두꺼웠으면 베개로 안성맞춤이었을 거예요. ^^

시이소오 2016-07-11 15:52   좋아요 0 | URL
잠자기전에 읽어야 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