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달>로 만난 듣보잡 작가, 가쿠타 미쓰요. 일본에서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서평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가쿠타 미쓰요는 1990년 <행복한 유희>로 제 9회 가이엔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23살에 등단했다. 당시 편집자는 가쿠타 미쓰요에게 무슨 책을 읽었는지 연신 물었다지. 그녀는 솔직하게 안 읽었다고 대답했다. 당시의 편집자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계속 쓰고 싶다면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대부분의 한국 신인 작가라면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너나 잘 하세요, 읽던 말던 무슨 상관이야, 노땅들이. ’
가쿠다 미쓰요는 이렇게 생각했다.
“처음 잡지에 감상문을 쓴 것은 그 직후였다. 신인상을 준 출판사의 잡지에서 서평 일을 의뢰해 왔다. 서평이라는 일이 있다는 걸 처음 의식하고, 이때 나는 수상식날 밤에 일어난 일을 또렷이 떠올리며 결심했다. 서평, 감상문, 북 리뷰, 신간 소개, 부르는 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책을 읽고 무언가 쓰는 일이라면 앞으로 절대 거절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게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다큐멘터리든 그림책이든 만화든, 하여튼 쓸 수 있다면 뭐든지 썼다.”
역시, <종이달>을 쓸 정도의 내공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2010년 까지, 지난 20년 간 써온 가쿠다 미쓰요의 감상문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서평이기 때문일까, 해가 넘어 갈수록 글의 온도가 점점 더 가열되는 느낌이 든다. 초반부가 다소 밋밋하지만 점점 달아오른다. 3부에 접어들면 가쿠타 미쓰요의 펜은 작두를 탄다. 언어는 풍성해지고 깊어지고 넓어진다. 감상이 아니라 어엿한 문학이라 부르고 싶다. 그녀가 서평을 쓴 수 백편의 책 중 내가 읽은 건 고작 몇 십권. 책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구나.
1부. 책이 있는 세상이라 다행이야
책은 사람을 부른다
어릴 때부터 가쿠다 미쓰요는 그랬다지. “옷은 필요없어. 책을 사 줘.” 온갖 책들을 다 재밌게 읽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재미없는 책을 읽었다고. 고등학교 2학때 때, 친구가 준 책을 그녀는 재밌게 읽는다. 그런데, 어디선가 읽었던 느낌이 나서, 기억 해보니 9년 전에 재미없다고 팽개친 책이었다. 그 책은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고. 그 이후로 그녀는 재미없는 책을 읽게 되더라도 ‘시시하다’고 단정하지 않게 되었다고. 시시하다고 치워버리는 것은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시한 책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가쿠다 미쓰요는 문학부 문예과 출신인지라 지인들과 언제나 책 이야기를 하게 되었나 보다. 대학 졸업 후에 만난 편집자들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었단다. 자신보다 오백 배 정도 책을 더 많이 읽은 사람이 수두룩했다고.
지금 나는 이야기를 따라잡기 위해, 순수하게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지는 않는다. 15년을 걸려 깨달았다. 세상에는 나보다 오백 배, 천 배 책을 읽은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건 소용없다. 그렇게 뒤만 좇을 바에야 지식 따위 없어도 상관없다. 나를 부르는 책을 한 권 한 권 읽는 편이 낫다.
그렇다. 책은 사람을 부른다.
그렇다. 자신을 부르는 책과 만나면 충분한 것 아닐까. 어떤 책을 읽을 때면 마치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 나는 이 책을 읽기로 예정되어 졌어.’ (안 그런가요?)
미의 신앙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고등학교 때 가쿠타 미쓰요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를 엄청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15년 후 그녀는 스리랑카로 떠나는 길에 편집자로부터 야스나리의 문고판 <호수>를 선물받아 읽는다. <호수>에서 ‘못’에 관한 묘사에 꽂힌 가쿠타 미쓰요는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이즈의 무희>를 펼쳐본다. 고등학생 때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대사는 이제 ‘감정의 움직임을 툭 하고 어린애처럼 내던지듯이 보여 주는’ 대사로 다가온다.
“어른이 되지 않으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을 수 없다. 성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추악한 것이나 번잡한 것, 절망과 불안과 질투와 체념 같은 것들이 소용돌이친다. 그러한 것들, 혹은 그러한 낌새를 머리가 아닌 몸이 알지 못하면 그의 소설은 읽을 수 없다. ”
- P 26.
동감이다. 뭐랄까. 나이에 어울리는 책들이 있는 것 같다. 10대, 20대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을 좋아한다? 왠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야스나리의 책을 읽고 싶다. ‘미’에 흠뻑 취하고 싶어.
강한 소설, 다자이 오사무
가쿠타 미쓰요는 중고등학생 시절 다자이 오사무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몰입이 안 되는 소설이 있었으니 <사양>이었다고. 삼십대에 <사양>을 읽고 가쿠타 미쓰요는 푹 빠져든다. 그리고 다자이에 대한 기존의 인상을 전면 수정한다. 그녀가 보기에 다자이는 더 이상 ‘계집애 같은 응석받이’가 아니었다.
언어의 새로움, 스토리의 치밀함, 치말하게 공들인 소거, 그리고 인간이 가진 역겨움, 날것의 냄새에 대한 온화한 긍정. 삶에 얽히는 번거로움, 모순, 잔혹함, 여의치 않음,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그것과 싸우거나 나약해지는 모습을 나는 이 작가의 언어에서 본다. 다시 읽지 않았다면 아마 쭉 볼 수 없었을 모습이다.
몇 년 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을 읽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개’를 소재로 한 단편이었는데 매 문장마다 포복절도 할 만큼 너무 너무 웃긴 거다. 아, 다자이가 웃기다니. 다자이 오사무 전집 출간을 기회로 전작을 다짐했건만 아직 못 읽고 있다. 읽을 책은 끝이 없다. 얼마나 다행인지.
지루한 틈의, 겹겹의 현실 / 오사키 미도리.
오사키 미도리? 생전 처음 듣는 작가다. 주로 연애 소설을 쓰는 작가인 듯. <지하실 안톤의 하룻밤>의 주인공 쓰치다 규사쿠는 말한다.
“올챙이에 대한 시를 쓰려고 할 때 실물인 올챙이를 보면 시 따윈 쓸 수 없게 돼 버립니다.”
과연 그런가? 시인들은 그럴까? 가쿠타 미쓰요는 ‘약간의 왜곡된 기억이야말로 오사키 미도리적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궁금하네. 아직 한국에는 미 번역된 작가인 듯.
“읽고 있는 동안 쭉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내 방에 있든, 전철 안에 있든, 대강의실 구석에 있든 그녀가 쓴 문장을 한 줄 읽는 것만으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하는 느낌이라는 건 독서라는 행위에 크든 작든 존재하지만, 여행지 장소가 그녀의 작품일 경우 그곳은 좀 더 불가사의하다. 마치 반석의 현실에 숨겨져 있던 위장된 문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 그 위장된 문 너머에는 아주 조금 초점이 어긋난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한 작품을 다 읽고 강의실이나 내 방에 돌아오면 현실은 아주 조금 모습을 바꾸고 있다.”
- p 41
인간의, 날 것의 냄새 / 하야시 후미코 <뜬 구름>
역시나 금시초문의 작가.
“산다는 게 이런 거잖아 하고 소설 자체가 위협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 힘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버린다. 한심한 유키코와 도미오카의 모습이 다 읽고 나면 무척 가깝게 느껴진다. 자신의 손톱 밑 때 냄새만큼”
생활의 저력, 일기의 위대함/ 다케다 유리코 <후지일기>
작가의 남편이 죽고 나서 출간된 일기라고 한다. 역시 한국에선 미번역된 작가인 듯.
“이 책이 주는 것은 훔쳐 읽는 재미가 결코 아니다. 나는 늘 다케다 유리코라는 사람은 작가가 되기 전부터 이미 작가였다고 생각한다. 무구한 시선, 자유로운 정신, 독자적인 감성, 원래 갖고 있던 이러한 보물 같은 것들을 모두 잃지 않고 언어로 옮겨내는 기술을 이 작가는 체득하고 있다. 나는 재능이라는 말에는 언제나 회의적이지만, 이 작가에 한해서는 그 말을 쓰고 싶어진다. 위대한 재능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
쇼와의 색기 / 무코다 구니코
“무코다 구니코의 소설에는 어떤 여자가 잘린 손톱을 밟고선 ‘남자들의 손톱은 단단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남자와 여자의 다름이다. 남자의 손톱은 단단하고, 여자의 팔뚝은 차갑고 말랑하다. ”
p 50
시(詩)라는 자유/ 오사다 히로시 <고양이에게 미래는 없다>
가쿠타 미쓰요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오사다 히로시의 에세이 <고양이에게 미래는 없다>를 읽고 나서는 왠지 이 책이 결혼의 본질을 담은 것 같아 결혼하는 친구에게 선물했다고. 어느 추운 날, 술을 거나하게 마신 가쿠타 미쓰요는 작업실로 돌아와 고타쓰 위의 종이 뭉치를 읽었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울고 있었다고. 오사다 히로시의 시집이었다. 마치 자신만을 위해 쓰인 것 같았다고.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도 가쿠다 미쓰요는 비슷한 경험을 한다. 마티스의 <춤>을 보았을 때. 그녀의 말처럼 ‘아아, 이건 틀림없이 나를 위해 여기에 있는 거야’라는 행복한 착각을 전해주는 경험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이웃님들은 어떤 책이 그런가요?)
나도 얼른 나만을 위해 쓰여진 듯한 시와 만나고 싶다.
풍족함이라는 것 /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을 읽었을까. 아마 안 읽지 않았을까. 1868년에 출간되어 폭발적으로 판매되었다고 하는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푹 빠져 읽었다고. 가쿠타 미쓰요는 네 자매의 매력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역할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네 자매의 어머니는 걸핏하면 가난한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부드럽게 타이르고, 과거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맞서는 법을 가르친다. 풍족함이라는 것은 물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가르친다. ‘인생에 가짜 따위는 없다’, ‘우리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을 힘껏 살 수밖에 없다’, ‘풍족함이라는 것은 약간의 궁리로 손에 넣을 수 있다’....어머니의 가르침은 그대로 소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
p. 62
홀든과 나/ <호밀밭의 파수꾼>
가쿠타 미쓰요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어릴 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홀든을 어릴 때 그냥 남겨두고 온다. 나이가 들어 가쿠타 미쓰요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캐쳐 인 더라이>를 읽는다. 그녀는 홀든이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루키가 번역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싶네.
더티 올드맨의 거대한 그림자 / 찰스 부코스키
아, 여자들이 부코스키를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 왜일까, 나는 그의 작품 중 단편소설을 가장 좋아하는데, 무척 짧고, 사건이랄 사건이 없고 때론 엉망진창인 그 작품을 읽고 있다 보면 기묘하게 마음이 술렁거리는 감각, 평소 그다지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내 안의 가장 말랑한 부분을 직접 건드리는 듯한 감촉을 느낀다. 그런 작가는 부코스키가 유일하기 때문에 역시 읽을 수밖에 없다.”
가쿠타 미쓰요는 부코스키 작품 전부가 ‘드러냄의 본질’을 지닌다고 말한다. 사람은 이데올로기, 경력, 지위, 돈을 갑옷처럼 몸에 두르지만, 부코스키는 그런 무장을 완전히 거부한 작가라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부코스기 문장은 이렇다.
“시인으로서 나는 나 이외의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정치도 종교도 관계없다. 글에 여러 이데올로기를 갖다 붙이려고 하니까 어설픈 농담이 되는 것이다. 특정 지위에 속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다. ”
“내가 천재이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나는 무언가의 일부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다.”
(부코스키, <주정뱅이 전설>)
나는 부코스키에 동의하지 않지만, 부코스키가 부럽다.
2부 책 읽는 방, 2003 ~ 2006
일상에 녹아든 만화경 세계, 나가시마 유, <탄노이 에딘버러>
가장 눈길을 끄는 단편은 <바르셀로나의 인상>이라고. 호텔의 더블 룸과 싱글룸을 예약한 세 사람은 매일 밤 교대로 싱글룸을 사용한다. 구제불능의 인물들이 많은데, 다 읽고 나면 격렬를 받는 느낌이라고.
증식하는 ‘내’가 일그러질 때, 기리노 나쓰오, <그로테스크>
정말 징글징글한 소설이다. 카쿠다 미쓰요는 이 소설의 핵심을 정확히 짚는다.
“타인을 이기고 싶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싶다, 그런 점을 많은 이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하는 의미가 없다. 그들이 미칠 듯이 그렇게 생각하는 원인이 된 가혹한 학교 생활은 이 나라의 교육 혹은 사회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개인을 키우고, 개인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정작 중요하게 키워진 것은 ‘나’라는 ‘아집’이었던 것은 아닌가. 그렇게 증식한 나는 이렇게도 무르고, 일그러지기 쉽다.”
언제나 손 끝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점액질의 소설. 아직 기리노 나쓰오의 읽지 않은 책들이 있다니, 위로가 된다.
향기가 풍부한, 아름다운 소설 ,가와카미 히로미, <빛나 보이는 것, 그것은>
향기가 풍부한 소설이라. 바나나 소설 풍일까? 앗, 읽었다. <고 만물상>의 작가
행동과 의지의 틈새, 후지노 지야, <그녀의 방>
뭔가 안 읽었어도 알 것 같은 느낌.
“사람과 엮이지 않는다면 이 공백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과 엮이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들이 엮이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때로는 이해를 뛰어넘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존재다. 선의도 악의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정의한다.”
세계는 거대한 미로다.폴 오스터, <빨간 공책>
폴 오스터 미로의 도착지는 절대적인 희망이라? 그랬던가. 폴 오스터가 말하는 만남이나 인연은 과연 사실에 기반한 걸까? 구라일까? 무턱대고 믿자니, 너무 황당무계한 일들이 많아서.
죽음과 삶은 연동되고 있다, 요코야마 히데오, <종신 검시관>
나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와 <사라진 이틀>을 읽었다. 계속 읽고 싶은 작가.
가쿠타 미쓰요의 소개를 믿자면, 이 작품도 재미있을 듯. 다행히 번역되었다.
한 여성의 혁명, 가모이 요코, <가모이 요코 컬렉션 1~3>
가모이 요코는 멀쩡히 다니던 신문사를 때려치우고 여성 속옷을 만들었다고. 그 속옷이 궁금하다.
바람직한 연애가 파괴하는 것, 미우라 시온,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배를 엮다>의 미우라 시온. 작중 주인공인 무라카와는 중년이 되어도 끊임없이 연애를 한다니. 부러워.
익숙한 곳에 있는 사랑, 나쓰이시 스즈코, <애정일지>
역시나 국내 미번역 작가.
“에로를 다루든 좀스러운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루든 이 저자가 쓴 글에는 언제나 품격이 있다. 저자가 그려내는 사랑은 어딘가 머나먼,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식기장 안과 같은 익숙한 곳에 있다. 저자는 부풀리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것을 빈틈없이 실물 그대로 그린다. 작품의 의연한 품격은 아마 그러한 점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여백에서 스며 나오는 감정, 가타야마 가즈히로 편저, <편지의 힘>
마쓰모토 세이초와 같은 유명인들의 편지를 소개한 책이라고.
옅게 흐르는 불온한 공기,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회전하는 세계의 정지점>
끊임없이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니. 올해 <캐롤>을 읽고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에 실망했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직 이 작품은 국내 미 번역 같은데, 하이스미시의 다른 소설에 도전해 봐야겠다.
단절과 연결의 틈 사이에서, 나가시마 유,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
단편집. 표제작 <울지 않는 여자는 없다>의 무쓰미가 일하는 회사는 공장가에 있어서 전철에서 내린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만 걷는다고 한다. 대화도 없이 홀로, 줄지어. 무쓰미는 비오는 날 이런 생각을 한다고. ‘우리들은 연결되어 있으면서 단절되어 있다’ 엄기호가 말했잖은가. ‘단속사회’라고.
천천히 졸음을 부르는 듯한 이야기, 구리타 유키, <오테르 몰>
불가사의한 소설이라고. 어린 시절 어른이 머리맡에서 읽어주던 동화책 이야기 같다고. 읽다보면 잠드는 책일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한동안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읽다 잠들곤 했는데. 반납했당. 아, 왜 난 불안하지 않은 것이냐.
행의 시간은 꿈의 시간, 나카지마 교코, <이토의 사랑>
증조부의 수기를 찾아 나선 여행이라고. 증조부는 여성 탐험가 이자벨라 L 버드의 통역을 맡았던 소년이었다. 소년은 영국인 여성을 짝사랑하고.....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모리 에토,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세 남매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파헤치는 소설.
영원보다 더 단단한 것, 후지노 지야, <베지터블하이츠 이야기>
연립주택에 사는 주민들 이야기라고 한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마을에서 살아간 여성의 인생사, 우베 팀, <카레소세지>
재밌을 듯.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 레나는 젊은 해군 탈주병을 숨겨주게 된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레나는 그 사실을 탈주병에게 말하지 못한다.
“정확한 기록만이 전쟁의 기억을 전하는 수단은 아니다. 그것을 얼마나 잘게 씹어 소화해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는가. ‘즐거운 시기였다’고 노파가 회상하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전쟁으로 인한 변화를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소화했던 그 시대를 도려냈다.”
모두 연애에 발버둥치고 있다, 히라타 도시코, <2인승>
중년의 연애 이야기.
“다들 제대로 발버둥치고 있다. 연애에 비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리는 그들의 연애는 미화되지 않았고 그렇다고해서 질척거리지도 않는, 일상에 바짝 다가가 있는 무언가이다. 부엌에서 나는 냄새나 봉투에 담긴 단팥빵 같은, 불단에 놓은 꽃이나 끈질기에 시작을 알려주는 고장난 시계와 같은 계열의, 사람이 사는 곳에 있는 것. 결코 그림이 될 수 없고 아름답지도 않지만, 그들이 발버둥치는 모습은 프라이팬이나 다리미가 있어야 할 곳에 늘 있는 그런 안도감을 전해 준다.”
그들을 가족으로 만들어 주는 것, 미츠바 쇼고, <아빠는 가출중>
아빠가 가출하고 가출한 장남이 돌아온다. 가쿠타 미쓰요는 이 책의 4장을 좋아해서 다시 읽곤 한단다.
터진 부분을 읽게 만드는 이야기, 리처드 브라우티건, <불운한 여자>
아직 브라우티건을 읽지 않았다니!
“약 이십 년 전에 숨진 작가의 이십 년도 더 전에 쓰인 소설이다. 놀라운 것은 이십 년 따위를 한순간에 날려버릴 정도로 이 작가의 언어는 지금 더욱 새롭고, 따끈따끈하고, 포근하다는 점이다.”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 이사카 고타로, <마왕>
한국에도 팬덤 층이 있는 작가 아닌가. <골든 슬럼버>,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을 읽고, 더 이상 안 읽어도 되는 작가로 분류했다. 가쿠타 미쓰요의 서평을 읽었지만, 생각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안 드넹.
쇼와사를 산 여성을 그린 ‘큰 소설’, 히메노 가오루코, <하루카 에이티>
1920생인 모치마루 하루카의 반생을 다룬 소설이라고 한다. 너무 재밌어서 정신없이 읽었다고.
예술의 신은 존재하는가, 이이다 조지, 아즈사 가와토, <도작>
재밌는 내러티브. 시골 마을에 사는 평범한 여고생 아야코는 어느날 영감에 의해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한다. 그림이 일본 전역에 널리 알려지지만, 완전히 똑같은 그림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야코는 ‘도작자’로 몰린다. 그런 아야코에게 이제 음악의 신이 내린다. 곡을 만들지만 이번에도 똑같은 곡이 이미 만들어져 발표되었다.
언어는 하나밖에 없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자서전>
가쿠타 미쓰요의 말처럼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충격이었다. 헝가리 태생인 아고타는 어린 시절 독일어를 사용했다. 1년 후 러시아에 점령되어 사람들은 러시아 어를 써야만 했다. 스물 한 살 오스트리아로 망명한 그녀는 또 다시 독일어를 쓴다. 그후 스위스로 가게 되어 프랑스어를 쓴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알려진대로 불어로 씌였다.
열한 명의 ‘선택받지 못한’ 여자들, 요시다 슈이치, <여자는 두 번 떠난다>
요시다 슈이치의 <분노>와 <사랑에 난폭>을 읽었다. 나한테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작가.
<여자는 두 번 떠난다>엔 열한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매력적인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다 읽고 난 후 열한 명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듯한 착각에 휩싸인다. 덧없기도 하고 듬직하기도 한 그 뒷모습은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눈에 강렬하게 새겨진다.”
세상과 접촉하는 건 불가능한가, 고카미 쇼지, <헬멧을 쓴 너를 만나고 싶어>
전공투 세대의 운동권 후일담?
미래라는 희망을 지키는 소녀의 이야기, 신시아 카도하타, <풀꽃이라 불린 소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캘리포니아. 주인공 소녀 스미코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이후, 강제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여든 살의 연애를 초월한 삶, 로렌초 리카르치, <그대가 나에게 준 별이 빛나는 밤>
노인의 연애 이야기. 여든 살의 사랑은 단지 연애 이야기일 수는 없겠지.
시대를 영양분으로 살아온 여자의 일대기, 모로타 레이코, <게이코>
스토리가 왠지 <빙점>을 떠올리게 한다.
환상적인 여행 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움, 쓰카사 오사무, <브론즈의 지중해>
프랑스를 사랑한다면.
“저자는 후지타 쓰구하루와 보부아르가 본 파리, 벤야민이 본 마르세유를 인용하면서 엿보여주고, 세잔느가 살았던 엑상프로방스, 달 리가 사랑한 페르피냥 역, 마티스가 생활했던 니스를 선명하게 재현한다. 전쟁이, 아니 시대가 무엇을 빼앗았으며 무엇을 빼앗지 못했는지가 환상적인 여행 속에서 나타난다. ”
정론은 아니지만 통괘한 진실, 사노 요코, <기억 나지 않아>
사노 요코의 에세이는 일본에서도 인기인 듯. 사노 요코 에세이를 읽다보면 가쿠타 미쓰요의 말처럼 통쾌하다.
한편 찔리기도.
사람은 모두, 톱니바퀴인가, 이케이도 준, <하늘을 나는 타이어>
오호, 대단하다. 대형 트레일러의 타이어가 갑자기 빠져 아이를 데리고 보도를 걷던 주부를 덮친다. 주부는 사망. 호프 자동차 회사는 책임을 외면한다. 읽고 싶다.
“아카마쓰는 ”결국 모든 인간은 톱니바퀴다“라고 중얼거린다. 기업과 사회에서 톱니바퀴에 불과한 우리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획득하는가, 그 과정이 쓰여 있다. 실로 흡인력 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이고, 동시에 인간성을 의심할 만한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는 현재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진심을 담아 말하는 대화집과 이름없는 위인 열전
모리야마 다이도, <낮의 학교 밤의 학교> / 무카이 도시, <와세다 헌책방 거리>
사진학교 학생들의 질문에 사진가 모리야마 다이도 씨가 답하는 형식의 대화집이라고.
<와세다 헌책방 거리>는 와세다 헌책방의 역사를 담았단다.
우정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 오시마 마스미, <무지개빛 여우비>
수상쩍은 일상과 바싹 마른 고독
이노우에 아레노, <볼품없는 아침의 말>
나카지마 교코, <긴 짱의 실종>
3부 책 읽는 방, 2007 ~ 2009.
강하고 열려있는 소설과 명석함을 뛰어 넘은 문장
오시마 마스미, <파란 리본>
오타케 신로, <네온과 화구가방>
“이전 소설 <날개의 소리>나 <슬픔의 장소> 등에서는 등장인물과 공간이 어딘가 번진 수채화철머 옅은 느낌이었는데, 요즘 작품에서는 갑자기 그들의 윤곽이 마치 유화처럼 강한 색채가 되었다. 그리고 독자를 향해, 혹은 현실 세계를 향해 크게 열렸다.”
“오타케 신로의 문장은 직접적이고 시각적이며, 명석하다는 단어보다 더 명석하다. 그리고 독특하다. 이런 문장은 문필가들은 쓸 수 없다고 두 손 들고 말게 된다. ”
산다는 것은 이처럼 모순적이다, 가모시다 유타카, <술이 깨면 집에 가자>
알코올 중독 때문에 병동에 입원하게 된 ‘나’와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의 이야기.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가 떠오른다.
사람이 죽어도 살아남는 ‘집’의 힘, 가토 유키코, <집의 로맨스>
오백 평이 넘는 정원이 딸린 대 저택의 이야기.
티 없는 선의 앞에 놓인 것, 소노 아야코, <빈곤의 광경>
저자 소노 아야코가 빈곤에 허덕이는 지역을 실제로 방문해 빈곤의 정체를 파헤쳐 간다고.
시간과 공간을 오고가는 기억과 쇼와라는 광경
야스오카 쇼타로, <칼라일의 집>
가와모토 사부로, <명작사진과 걷는, 쇼와의 도로>
“읽다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문장은 흔치 않다. 투명하고 맑아 잡스러운 맛이나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목마를 때 마시는 물처럼 술술 몸에 들어온다.”
“모든 사진이 흑백 사진이라 오히려 더욱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에 곁들여진 짧은 저자의 말은 날카로운 단편소설처럼 인상 깊다. (<로버트 카파의 도쿄>의 문장을 읽고는 울어 버렸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불온함, 이노우에 아레노, <학원의 퍼시먼>
‘퍼시먼 레드’는 오렌지빛이 나는 빨강색이라고 한다. 왠지 온다 리쿠의 소설이 연상되는 이야기.
‘생각하고 싶다’ ‘알고 싶다’라는 것의 깊이
우치자와 준코, <세계 도축 기행>
하시구치 조지, <Couple>, <Father>
우치자와 준코는 동물이 어떻게 음식이 되는지를 파헤친다고. 전 세계의 도축장을 취재하다니!
가쿠타 미쓰요는 사진집에 대한 서평도 꽤나 남겼다.
책과 사람이 뜨겁게 연결되던 행복한 시대, 하세가와 이쿠오, <예문 왕래>
말 그대로의 교유도 있다면, 서적을 통한 교유도 있다. 출판사 ‘교유서가’는 그런 뜻이었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그린 두 타이 작가
랏타웃 라프챠룬삽, <관광>
마낫 짠용, <아내 잡아먹는 남자>
가쿠타 미쓰요는 랏타웃 라프챠룬샵의 <관광>을 ‘빛이 흘러넘친다’고 말한다.
“빛은 난반사하듯 흩어져 그 빛의 입자의 아름다움에 눈을 크게 뜰 수 없다.”
마낫 짠용은 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듯. 그러고보면 한국엔 태국 작가의 소설이 얼마나 번역되어 있을지.
사진과 문장이 호응하는 생의 단편
호시노 히로미, <미아의 자유>
사나이 마사후미 사진, 요시다 슈이치 글, <우리즌>
사진 책인 듯. 유레카 님이 좋아하실 듯. 가쿠타 미쓰요는 요시다 슈이치가 평범함을 그려내는 것에 빼어나다고 말한다. 그러한가? 사진과 소설이 결합된 책이라. 재밌는 시도일 듯.
농밀한 시간을 내포한 재생의 이야기.
기리노 나쓰오, <메타볼라>
존 어빙, <일 년 동안의 과부>
<일 년 동안의 과부>는 읽었고, 올 여름엔 <메타볼라>를 읽어볼까. 가쿠타 미쓰요는 <메타볼라>는 읽는 동안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열에 들뜨며 읽은 ‘관계 소설’
후지노 지야, <중등부초능력전쟁>
에쿠니 가오리, <잡동사니>
미우라 시온, <그대는 폴라리스>
후지노 지야의 <중등부초능력전쟁>의 스토리를 읽으니 정세랑 작가의 <재인, 재욱, 재훈>이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을 안 읽게 되었다. 너무 읽어서 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읽어볼까.
보잘 것 없는 리얼한 세계와 몽상적이고 기묘한 장소
토니 애보트, <제시카와 함께한 날들>
마쓰야마 이와오, <고양이 풍선>
토니 애보트의 <제시카와 함께한 날들>은 ‘서서히 마음에 스며드는 훌륭한 소설’이라고.
산다는 것의 무서움과 우스움과 강건함
이노우에 아레노, <즈무 데이즈>
사이바라 리에코, <매일 엄마 4 : 소박데기 편>
사이바라 리에코의 만화엔 ‘사람과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되는 순간’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가쿠타 미쓰요는 큰 소리로 울었다고.
인간의 삶의 행위로서의 다이어트
가타노 유카, <다이어트를 그만둘 수 없는 일본인 몸을 추적하다>
다이어트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란다. 그러고보면 참 이상하다. 왜 수십 가지 다이어트 방법이 생기는 걸까. 시대마다 유행하는 다이어트 방법은 왜 달라지는 걸까.
모어와는 다른 언어로 쓰인 훌륭한 소설
이윤 리, <천년의 기도>
샨사, <측천무후>
둘 다 72년생 중국 작가.
“모든 단편이 숨이 멎을 정도로 결말이 훌륭하다. 영리하게 거리를 둔 시선으로 모순과 부조리, 고독이 담긴 새을 그리면서도 마지막 문장에서 이 작가는 독자에게 생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해방하듯 보여준다.”
<측천무후>도 너무 재미있어 어디에나 책을 가지고 다녔다고.
읽는 거리, 보는 거리, 줌파 라히리,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아직 못 읽었다.
“줌파 라히리의 이 소설이 많은 호응을 얻은 이유는 그녀의 글이 이국간의 아이덴티티라는 국지적인 테마가 아니라 장소와 시대를 넘는 보편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함이라는 개성과 시의 힘
후지노 지야, <사야카의 계절>
엘리자베스 스파이어스, <에밀리 디킨슨 가의 생쥐>
디킨슨 가에 살던 생쥐 에머라인은 어느날 에밀리의 시를 읽고 충격을 받는다. 에머라인도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에밀리와 서신 교류가 시작된다고. 재밌을 듯.
커다란 체험과 개인적 체험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숨통>
야마다 다이치 글, 구로이 겐 그림 <릴리언>
아디치에의 소설을 읽고 싶다.
“ <사적인 행위>가 수작이었다. 이모네 집을 방문한 여대생이 시장에서 폭동에 휘말린다. 도망치다 들어간 폐가에서 다른 종교를 가진 다른 민족 여성과 만나게 되고 몇 시간을 함께 지낸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 나눌 수 없었던 말이 진중할 정도의 고요함 속에서 그려진다.”
빛이 아닌 그늘에 있는 청춘
니시무라 겐타, <다시는 가지 못할 마을의 지도>
가이코 다케시, <푸른 월요일>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책이 가이코 다케시의 <푸른 월요일>이었다. ”나에게 있어 소년시대와 청년시대는 늘 끝없는 숙취였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전쟁 중, 후에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던 저자의 말하자면 청춘의 책이다.”
일상이 이미, 기묘한 선생이다.
이토 히로미, <그 시절, 선생님이 있었다?
미우라 시온, <기절 스파이럴>
가쿠타 미쓰요는 너무 재밌어서 외출할 때는 절대 미우라 시온의 에세이를 갖고 나가지 않는다고.
“저자의 일상은 언뜻 특별할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특별할 게 없는 것’의 재미랄까 무시무시함이랄가, 독특함 같은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뮤지션이 육성으로 말하는 삶이라는 싸움
요시이 가즈야,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서>
요코야마 겐, <마이 스탠더드>
“이 책이 재밌는 이유는 글쓴이가 성공한 뮤지션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인생과 격투할 수밖에 없다는 걸 꾸미지 않은 말로 쓰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두 권의 책을 읽고 생각했던 건 개인은 슬플 정도로 개인인 채로 머문다는 것이다. 개성은 존중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 사람의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핵심’이란 결코 독창성이나 창조력 같은 것이 아니라 좀 더 투박하고 때묻지 않은 그 무엇이고, 산다는 것은 나와 다른 것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핵심과의 싸움인 게 아닐까. ”
용서 받고, 용서 하다.
사노 요코, <나의 엄마 시즈코 상>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이 떠오른다. 사노 요코와 리베카 솔닛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았다. 두 엄마 모두 딸에게 인자하지 않았다. 치매를 통해 딸들은 엄마와 화해한다.
‘특수’ 하지 않으면 ‘개성’이 아닌가
하시구치 조지, <17세 2001~ 2006>
다카다 유, <페이보릿>
하시구치 조지의 책은 17살 아이들만 찍은 사진집이다. 다카다 유의 <페이보릿>은 미스테리 소설만 쓰던 작가의 첫 연애 소설이라고. 마치 빛을 두른 듯한 소설이었단다.
비합리와 합리의 틈 사이에서
호시노 히로미, <바보, 중국을 가다>
가와카미 히로미, <풍화>
사진작가 호시노 히로미의 중국 여행 이야기.
눈과 코와 입과, 손과 발과 머리와
가이코 다케시, <일언반구의 전장 : 더 썼다! 더 말했다!>
역시나 듣보잡 작가이거늘, 가쿠다 미쓰요가 ‘경애하는 작가’라고.
“이 작가의 가장 큰 특색은 본질을 맨손으로 붙잡아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무엇도 놓치지 않고 쓴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러한 것이라고 딱 잘라 정의한다. 거기서 우리들은 사물의 본질을 본다. 그렇다면 이 작가는 어떻게 본질을 파악하는가. 자신의 육체를 사용한 경험으로부터다. ......인간을 혐오하는 면, 하지만 인간을 속수무책으로 사랑하고 있는 면, 장난기 많은 면, 비장한 면, 약한 면, 모두를 포함해 너무나 짙은 사람 냄새가 풍긴다. 마치 독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든다......단언할 때에는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어쨌든 말로 끼워 맞춰 버린다. ”
성가신 세상을 긍정한다는 것
모리 에토, <런>
나가시마 유, <나는 침착하지 못해>
고아인 다마키, 어느날 우연히 마라톤 팀에 들어간다. 열정도 없는 팀원들이 풀마라톤을 목표로 좌충우돌 연습을 시작한다. 가쿠타 미쓰요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소설 임에도 필사적인 모습이 전혀 없어 좋다고 말한다. 땀 냄새 대신 뒤풀이의 술 냄새가 더 강하다나.
인간의 행위 끝에 있는 심원
나카무라 사토시, <위대한 간호>
오바 미나코, <칠리호>
노숙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마지막 머무는 ‘희망의 집’에 관한 취재기.
<칠리호>에 대해 가쿠타 미쓰요는 ‘인간의 모든 행태의 끝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호수에서 우리들에게 보내온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세계의 폭과 여운
테스 갤러거, <부엉이 여인의 미용실>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레이먼드 카버의 두 번째 아내인 테스 갤러거. 아직 한국에는 미번역이다. 시인인줄만 알았다.
“나에게 있어 좋은 단편 소설이란 마지막 한 문장을 다 읽은 후 갑자기 팟 하고 미지의 세계가 열리는 듯한 소설이다. 바꿔 말하자면 깊은 여운이 남는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단편집에는 분명히 그러한 종류의 소설들만이 수록되어 있다.”
나 역시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얼마나 낄낄대며 읽었던가. 가쿠타 미쓰요는 역시나 핵심을 찌르는 적확한 감상을 남긴다.
“모든 사람의 나날은 쓸모없다. 우리들은 무언가 희망을 갖거나 엄청난 걸 생각하면서, 하지만 하루하루의 자질구레한 일을 좀스럽게 처리하면서 지내고 있다. 저자의 아무럴 것도 없는 매일을 읽고 있으면 어마어마한 무언가를 접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어마어마함은 나를 안심시키고, 이와 동시에 경건하게 한다. 매일은 좀스러울지라도 그것이 연속되면 ‘생’이라는 어마어마한 무언가로 변화하는 것이다.”
삶의 고요한 출렁임
줌파 라히리, <그저 좋은 사람>
“그려지는 것은 점이 아닌 선이다. 삶의 고요한 출렁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탓에 나는 운명에 대해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모든 소설이 슬픈 결말을 맞지만 읽고 나서 깔끔할 정도로 시원시원한 느낌이 드는 까닭은 그러한 엄청난 것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좋은 단편 소설이란 실제 페이지 수의 몇 배로 세계가 부풀어 오르는 소설이다. 한창 읽고 있는 동안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소설도 있고, 다 읽자마자 왈칵하고 세계가 넓게 퍼지는 소설도 있다. 라히리의 소설 <그저 좋은 사람>에 수록된 모든 단편은 그 넓이를 맛보게 해준다.”
보통 내기가 아닌 사람들
구리타 유키, <귀뚜라미>
가노 슌 , <고엔지 헌책 술집 이야기>
헌책도 파는 술집이라. 술 마실 수 있는 서점에 가고 싶다.
‘보통’ 환상과 멀리 떨어져
나쓰이시 레이코, <오늘도 역시 처녀였습니다>
아가와 사와코, <남는 건 식욕>
아가와 씨의 식食에 관한 에세이라.
인연이나 운명이나
오자와 세이라, <시즈카의 아침>
‘나는 나’라는 인생
이토 히로미, <여자의 절망>
호사카 가즈시, <소설, 세계를 연주하는 음악>
“프로야구 선수가 집에 돌아와 하는 맨손 투구 오백 번 등의 연습은 소설가에게 있어서 무엇에 해당하는지 묻는다면 ”나에게 그것은 ‘소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썼듯이, 글쓴이는 무의식이 짠 틀과 전제를 신중하게 배제하면서 성실한 사고와 언어로 소설의 주변을 빙글빙글 걷는다. 가만히 한곳에 앉아 생각하기보다는 걷는 듯한 동작이 있는 사고다. 독자인 나도 그래서 함께 생각하게 된다. ..다만 ‘생각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움직임이 있는 행위이며, 읽기 시작하기 전과 후에는 다른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타인의 머리를 빌려 생각하는 듯한, 다른 책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극도 있다.”
삶의 시간
에쿠니 가오리, <좌안>
우치자와 준코, <아저씨 설명서>
“언뜻 보면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개성 없는 아저씨들이지만 머리 벗겨진 모양도 다르고 귀밑털도 다르게 생겼다. 자유로운 만큼 그들은 개성이 넘친다. 그 부분을 간파해 그린 우치자와 씨의 통찰력이 대단하다.”
‘나의 세계’로 덮쳐오는 또 다른 세계
사쿠라바 가즈키, <패밀리 포트레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에 대하여>
“현실감이 느껴지는 소설이란 우리들이 보고 있는 것과 무척 닮은 세계가 소설 안에서 전개되어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있는 현실과 소설의 현실이 뒤섞여 버리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사쿠라바 가즈키 씨의 소설은 모조리 깨부숴 준다. 내가 아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라 하더라도 그것이 색다른 힘을 갖고 있다면 내가 보고 있는 현실로 침식해 온다는 것을 나는 이 작가의 저작을 읽으며 깨달았다.....이 터무니없고 거대한 세계를 가진 소설은 모든 책을 향한, 책을 펼요로 하는 사람들을 향한 장대한 러브레터가 아닐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바나나의 소설을 다시 읽어볼까.
“ 사는 것과 죽는 것, 빛과 어둠, 구원과 절망에 대해 다루면서도 결코 무겁고 답답하게 짓누르는 듯한 소설은 아니다. 결말을 향해 가면서 놀랄 만큼 슬픈 사실을 알게 되지만, 다 읽은 후에 남는 것은 슬픔도 절망도 아닌 삶에 대한 깊은 신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포개지며 영원을 향해 퍼져간다
마이클 온다체, <디비사데로 거리>
무라야마 유카, <더블 판타지>
마이클 온다체도 내겐 미지의 영역.
“ 한 사람이 사는 인생의 시간은 유한하다. 우리들은 절대적인 영원이라는 것을 스스로는 체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겹쳐지며 연결되었던 누군가의 시간이 꿰매어져 무한으로, 영원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을 것철머 보이는 실패마저 유한을 무한으로 바꾸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다 읽은 후 소설이나 언어를 초월한 끝없이 광대한 곳에 서 있는 기분을 느꼈다. ”
미지의 광대한 재미
존 어빙, <호텔 뉴햄프셔>
아직 안 읽었는데, 재밌단다. ‘이렇게 재밌는 것이 세상에 있다니’하고 생각할 정도로.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독서 하이’를 느꼈다고.
터무니없는 시간의 흐름
나가시마 유, <잠든 후에>
샨사, <바둑 두는 여자>
나가시마 유의 <잠든 후에>는 등장 인물들이 기묘한 놀이를 하는 게 이야기의 전부일 뿐인데도 재밌단다. 샨사의 <바둑 두는 여자>는 화자 두 명이 계속 바둑만 두는 이야기란다. 그런데 재밌단다.
“잔혹하고 긴박한 나날 속,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마주하는 바둑 두는 시간만이 완벽한 무음처럼 느껴진다. 그 무음이 무음 그대로 점점 고조되어 마지막, 격렬한 음으로 폭발한다. 완벽하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흔한 비극이지만 시적이고 단단한 문장이 놀랄 만큼 아름다운 광경과 순수한 사랑의 형태를 수줍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도 당당히 보여 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행복
시마모토 리오, <네가 내리는 날>
하치카이 미미,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
“ 두 마리 양의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이라 읽어나가면서 일러스트의 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게 된다. 하지만 어른인 나에게는 그저 귀여운 양 이야기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다 읽고 나서 시마모토 씨의 <네가 내리는 날>을 다 읽었을 때와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우리들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건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소설을 가지고 혼자 밥을 먹으러 가자
히라마쓰 요코, <여자 혼자 밥 먹기>
메리 윌리스 워커, <신의 이름으로>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 저자의 음식에 대한 묘사력이다. ‘음식’에 대해 미세하게 쓰는 작가는 많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하지만 서서히 압도하듯 식욕을 자극하는 묘사는 처음 읽은 것 같다. 애쓰지 않는데도 그 요리의 김까지 보이고, 냄새에마저 도달하게 된다. 게다가 주인공 여성이 그것을 먹을 때, 그녀들과 같은 행복을 독자인 나도 맛볼 수 있다. 그 순간 이 짧은 소설 세계가 훌쩍 넓어진다. 마법처럼. ”
<신의 이름으로>는 너무나 재밌어서 읽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고.
인생의 변환점이 응축되고 있다.
미야시타 나쓰, <먼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이지마 나미, < LIFE 1 :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이 레시피 대로 만들면 평범한 요리도 엄청 맛있어진다고.
상쾌한 느낌의 기묘한 색기
우노 아키라, <오쿠노유코미치>
니시 가나코, <미키 다쿠마시>
꾸밈없는 언어는 친한 친구와 닮아 책을 읽다보면 친구 얘기를 듣고 있는 듯 웃고 울고 끄덕이게 된다.
모두, 사랑스러워, 사노 요코, <문제가 있습니다>
가쿠다 미쓰요는 사노 요코의 에세이는 중독적이라고 말한다. 사노 요코는 진심만을 쓰므로. 진심은 낡지 않는다.
“흩어져 있는 진심의 말들을 읽으며, 살아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느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사는 것에 얽힌 추잡한 것 모두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니, 정말 대단한 마술이다.”
순수하게 욕망을 그리다
야마다 에이미, <학문>
아라카와 요지, <러브신의 말>
진정한 재능을 느낄 때
시노다 세쓰코, <황혼>
와시다 기요카즈, <잘라낼 수 없는 기억>
가쿠타 미쓰요는 <황혼>을 읽으며 단숨에 읽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천천히, 천천히 읽었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쩐지 소중한 것을 놓쳐 버릴 것 같았다나.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 씨의 문장을 읽으면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는 표현을 체감할 때가 자주 있는데, 이 <잘라낼 수 없는 기억> 또한 그랬다. 요즘 들어 생각한다는 행위를 하지 않았구나 하고 비늘을 몇 장이고 떼어내면서 생각했다.”
천재가 만들어낸 뒤틀림
이사카 고타로, <왕을 위한 펜클럽은 없다>
호무라 히로시, <뇨뇻기>
“처음엔 글쓴이의 감각이 너무 초현실적이라 그 감각이 도려내는 세계가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불안정하고 때로는 일그러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읽어나감에 따라 공감이 가기 시작한다....그렇다고 해도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의 무서움
사토 쇼고, <신상 이야기>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사토 쇼고의 <신상 이야기>는 너무 무서워서 읽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고.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 가쿠타 미쓰요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의 다른 소설도 다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