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음 / 돌베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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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도 인혁당 사건만 생각하면 벌떡 벌떡 일어난다. 무고한 국민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 판결을 받자마자 불과 18시간 만에 8명 전원 사형 당했다. 아무리 독재국가 라지만 이게 말이 되나? 이 날을 국제법학자 협회에서 뭐라 부르는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 부른다. 2007년이 되어서야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 박근혜 대통령 각하께서 뭐라 하셨더라? “판결이 두 개 나오지 않았냐?” 이런 ㅁㅊㄴ을 봤나. 물고문, 전기고문, 온갖 구타에, 공판조서마저 변조되어 사형판결 18시간 만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과 유족들 앞에서 이게 인간으로서의 할 소리냐? 이런 같은 을 일국의 대통령이라 뽑는 국민들은 제 정신이냐? (이 당시 대표적인 살인마들이 대법원장 민복기, 검찰총장 신직수, 이들에겐 부관참시도 관대하다. 신직수 손자인 신현성티켓 몬스터대표라니. 삼족을 멸해야 하거늘.)

 

<사법부>를 읽고 놀랐던 건 문민정부에 비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이른바 독재정권 시절에 오히려 빛나는 판결이 많았다. 친일파 이승만 밑에서도 양심을 저버리지 않았던 김병로 대법원장, 이승만은 국회가 통과시킨 서민호 의원 석방 결의안에 불복, 계엄령을 선포, 야당의원 버스를 크레인으로 견인했다. 이런 버러지를 국부라고?? 박정희 치하에서 대법원은 박정희가 밀어붙인 국가배상법 2조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박정희는 위헌 의견을 낸 손동욱, 김치걸, 사광욱, 양회경, 방순원, 나항윤, 홍남표, 유재방, 한봉세 등 대법원 판사 9명을 모두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이후 군대에서 죽는 국민은 개 값이 되고 만다.)

 

<다리>지 사건, 통혁당 사건 때 목요상 판사는 법원에 중앙정보부 조정관이 네 명이 상주하는 가운데서도 피고인들을 보석으로 풀어줬다.

 

이범렬, 홍성우, 김인중, 최영도, 장수길, 금병훈, 김공식 판사는 사법파동의 대표적인 법조인이었다. 물론 이후 조정당했다.

 

검찰 역시 지금처럼 개새끼들이 아니었다. 인혁당 사건 당시 이용훈, 여운상, 김병리, 장원창 검사는 도저히 기소가 불가능하다고 사표를 제출했다.

 

군인들이 법원 복도에 테이프로 중앙선을 그어놓고 좌측통행을 강행했을 때, 김인기 부장판사는 일부러 우측통행을 했다.

 

이승만, 박정희 시절엔 경멸할만한 법률가보다는 오히려 존경할만한 법률가들이 훨씬 많았다. 전두환 시절엔 안기부가 사법부를 완전히 장악했다. 법원에 있어야 할 변호사들은 안기부나 중정에 끌려가 구타당하고 감금당하기 일쑤였다. 강신옥 변호사, 이병린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등등. 강신옥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를 변호하던 태윤기 변호사는 안기부에 의해 제명당했다.

 

박태범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에서 무죄를 내리고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해선 무거운 형량을 내려 호랑이 판사로 이름을 날렸다. 오송회 사건에서 이보환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사건임에도 여섯 명에게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간첩 조작 사건이기에 2008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문 중에 제발 죽여달라던 이광웅 씨는 1992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변호인>으로 알려진 부림 사건에서 서석구 판사는 이호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좌천됐다. 이후엔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이근안 사장님에게 고문당해 제발 죽여 달라던 김성학 피고인에 대해 장용국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통혁당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부림 사건 등등 이 모든 게 중정, 안기부에 의해 죄다 조작된 사건들이다. 수 백건의 간첩 조작 사건 중 (물론 이 모든 조작 사건에서 물고문, 전기고문, 구타가 행해졌다. ) 가장 어이없는 사건은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이 아닐까. 안기부는 송충건이라는 충북 출신 월북자 간첩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다. 안기부는 성은 이고 충은 충청도’, 건은 지하당 건설로 해석, 충북출신 월북자 중 송창섭을 송충건으로 지목, 그의 가족 28명을 간첩이라 체포한다.

 

어처구니없는 간첩 조작사건임에도 안기부에 의해 조정당한 김경한과 임휘윤 검사는 안기부의 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일규 대법원 판사는 무죄 취지 파기 환송을 내린다. 이후의 과정은 실로 경이롭다. 송씨 일가 간첩 조작 사건은 사법사상 최악의 판결로 불린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하급심인 고등법원에서 두 번이나 치받았다. 지방법원 (유죄) - 고등법원(유죄) - 대법원 (무죄 치지 파기환송) - 고등법원 (유죄) - 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환송) - 고등법원 (유죄) - 대법원 (유죄 인정 상고 기각(이 당시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김석수 부장 판사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대법관, 김대중 정부 국무총리를 지냈다.)

 

김근태 고문 사건에서 안기부 방침에 따른 건 서성 판사. 이후 김영삼 때 대법관을 해쳐 먹는다.

 

부천서 성고문 권인숙 사건, 전두환, 전기환, 장세동, 박철언, 서동권 등의 압박에 의해 김경회 검사장은 원칙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대성통곡했다. 이후 김경회 검사는 가장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사건이라 회고했으며 당시의 검찰 조직을 거대한 정신병원이라 말했다. 권인숙의 유죄판결에 대해 당시 조영래 변호사는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사법부의 몰락을 봅니다. 아무리 뼈아프더라도 이 말을 들어주십시오. 사법부는 그 사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한 그릇의 죽을 얻는 대가로 장자 상속권을 팔아넘긴 에서처럼, 사법부는 한갓 구구한 안일을 구하기 위하여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막중한 사법권의 존엄을 스스로 저버린 것입니다....용기가 없는 사법부, 스스로의 사명을 스스로 저버린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기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법부의 독립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법부의 존립 근거 자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 사태의 위험성에 대하여, 사법부에 몸담고 있는 모든 법관들이 깊이 통찰하고 사법권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건곤일척의 몸부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아니 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역사적 순간이 도래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 사법부는 군사 독재시절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가장 악랄한 개새끼가 되고 만다. <PD 수첩>의 무리한 수사를 반대하고 사표를 낸 임수빈 부장검사와도 같은 의인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검사들은 재벌들의 떡찰이요 개새끼가 돼버렸다.

 

군사독재시절엔 중정이나 안기부의 외압 때문에 그랬다고 하자.

오늘날 사법부는 아예 스스로 개새끼를 자처한다. 양승태, 삼성 에버랜드 전환 사채 때 이건희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용산철거민에게 중형을 선고하더니 결국 이명박근혜 때 대법원장이 되었다.

 

양승태 체제 대법원 판결들을 회고해 볼까.

 

20146월 대법원 ; 콜트 콜텍 대전공장 해고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

 

201411, 25명이 목숨을 잃은 쌍용자동차 해고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정리해고 유효하다며 원심 파기 판결.

 

2015, KTX 여승무원들, 대법원에서 원심을 파기, 1인당 1억 원 가량의 가지급된 임금과 소송 비용을 물어야 했다. (30대 여승무원은 자살했다.)

 

민주노총 사업장 10여곳 1,691억원 손해배상 판결

 

2015129, 대법원은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 축소 발표해 대선에 영향을 끼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용관 무죄 확정


2015716일 대선 개입 선거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세훈에 대해 대법원 원심 파기.

(소수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파기환송)

권순일, 김소영, 김창석, 박보영, 이상훈, 민일영, 양승태(대법원장), 이인복, 김용덕, 고영한, 김신, 조희대, 박상옥 대법관. (이 사법 살인마들. 니들은 내 눈에 띄지 마라. 서로가 인생 쫑이다.)


 

2013516, 대법원,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대해서도 추가 증거조사가 필요하다며, 과거사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원심 파기.

 

201111월 대법원,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금의 지연 이자가 과대 계산되었다며 이미 지급된 금액을 삭감. 박근혜 정권이후 국정원은 인혁당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 제기, 법원은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양승태 체제의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 특히 박정희 시대에 일어난 과거사 사건에 대해 뒤집기를 시도한다.

 

대법원은 201012월 긴급조치 1호에 대해, 20135월 긴급조치 4호에 대해, 20134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각각 위헌이고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20153월 긴급조치는 위헌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해괴한 판결을 내렸다.



 

한홍구 선생님의 <유신>을 읽을 때만큼 분노를 태워가며 읽었다. 백번이든 천 번이든 읽겠다. 양승태 같은 것들을 살려둬야 하나. 이런 버러지보다 못한 것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야 할까. 백 조각으로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다. 재벌과 기득권의 개새끼가 되어서 역사를 뒤집고 국민들의 피고름을 짜내? 소수의견도 내지 못하고 기득권에 들러붙는 너희 사법 살인마들이 감히 정의를 말해? 국민을 위해 정치한다는 것들은 저런 기생충보다 못한 걸 대법원장으로 두고 있어? 법을 빙자해 도대체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인 걸까? 한국의 모든 연쇄살인범을 합쳐도 양승태와 그 똘마니 살인마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보다 많을까. , 뼈를 갈아 마실 것들.

 

책 블로그를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한홍구 선생님의 <유신>이었다. 이제 <사법부>로 다시 각성한다. 원래의 계획대로 역사, 특히 현대사로 돌아가야겠다. 고작 죽 한 그릇 더 먹겠다고 재벌과 권력에 빌붙어 국민들의 피고름을 짜내는 너희 법률가들. 대대손손 저주 받아라. 인간으로서, 법률가로서의 존엄성을 스스로 저버리고 버러지가 된 너희 법률가들은 이미 저주 받았다


죽어도 잊지 않겠다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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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6-03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개새끼들의 전성시대지요. 그런데, 뒤가 구리지 않는 판검사가 거의 없으니까, 아무리 `정의로운` 행세를 하려고 해도 공작정치를 당해낼 수 없는게 아닌가 싶네요. 군사독재시절에는 데려가 고문하고 죽이는 것으로 국민을 겁박했다면 이명박근혜의 시대는 기소와 고소를 통한 법폭력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속이 시원한 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6-03 09:18   좋아요 1 | URL
군사정권 시절에도 소신껏 판결하는 판사는 아예 건들지도 못
한적도있더라구요
어떻게 소수의견이 단 한명도 없는건지
법관들이 무슨 빨갱이들도아니고

가족들앞에 부끄럽지도않은지

저는 저것듥과함께라면 지옥으로 가고싶네요 ^^

2016-06-03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6-03 09:20   좋아요 1 | URL
삼성이 망해야 국민이살텐데요^^;

건조기후 2016-06-0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홍구의 책은 좋아하는데 이 책은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랑 많이 겹치는 거 같아서 아직 보관함에만 있어요.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도 읽다보면 수시로 빡칩니다... 어휴.

시이소오 2016-06-03 14:14   좋아요 0 | URL
재판으로 본현대사로 저는 복습하려구요ㆍ이 책도 읽다보면 참으로 빡치죠 ^^;

yamoo 2016-06-0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시$@&!!!

속이 후련한 글이라 공감을 안할 수가 없어요!!

시이소오 2016-06-03 14:15   좋아요 0 | URL
ㅋ 감사합니다 ^^

단발머리 2016-06-0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법부는 가진 자들의 친구, 그것도 절친이죠. 권력을 가진자, 재벌의 소유자만이 친구가 될 수 있죠.
정치인들은 말만이라도 국민의 의견, 국민의 뜻....하면서 눈치보는 척이라도 하는데사법부는 유아독존...
시원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시이소오 2016-06-03 14:18   좋아요 0 | URL
법의 가장 큰 토대는 법관의 양심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쥐꼬리만한
양심도 없을까요 ^^;

깊이에의강요 2016-06-04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거하신 사건들처럼 말도 안되는 일들이 과거 이 나라에서 일어났더라구요~~
하지만 비극적인건 사법부의 전횡은 현재진행형 이라는거~
더 더 더욱비극적인건 우린 혼군까지 덤으로 갖고 있다는거 ㅠ

시이소오 2016-06-04 14:46   좋아요 1 | URL
때리지도 않았는데 권력자앞에서는 알아서기어다니다가
국민들 앞에서는 아주 날라다녀요

말씀대로 현재진행형이라는게
어처구니가 없네요.

썩을대로 썩은 법률가들을 처단할
대안을 고민해봐야
겠네요 ^^

짜라투스트라 2018-01-2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사법부 관련 기사를 보고 <사법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련 서평을 보니 시이소오님의 서평이 보이네요.^^ 책에 배여 있는 결기에 저도 불타오르네요. 사법부의 적폐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짐 또 다짐합니다. ㅎㅎㅎ

시이소오 2018-01-25 08:26   좋아요 0 | URL
요즘 뉴스를 보니 사법부는 양승태가 사찰한걸 몰랐다고 우기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몰랐으면 등신이죠. 이번 기회에 양승냥이를 비롯한 사법살인마들 죄다 척살했으면 좋겠습니다

singri 2018-01-25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통쾌해!


시이소오 2018-01-25 08:27   좋아요 0 | URL
통쾌하셨다니 저도 약간은 위로가 됩니다만 양승태 얼굴만 보면 홧병도져요ㅠㅠ

singri 2018-01-2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승태 헛발질에 가담했던 무뇌 판사들 싹 갈아치워야할텐데요
가관도 아니더라구요 뿌리깊은 적폐들

시이소오 2018-01-25 10:31   좋아요 0 | URL
지금 죄상이 다 드러났음에도 이들이 작당해 원세훈에게 면죄부를 줬잖아요? 죽한그릇 더 먹겠다고 기꺼이 양심을 팔아먹는 것들이 대법관들이라니. 개법관들이죠

2018-01-25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8-01-25 10:35   좋아요 1 | URL
보수란 이름으로 부정부패한자들이 너무 오래 해쳐먹었네요. 민심으로 세운 촛불정권이니만큼 대청소 한번 제대로 해야겠어요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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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의 1978년 작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선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2014년 작,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로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 안개에 휩싸인 듯 도대체 뭐지하며, 의심을 가득 담아 작가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심정으로 한발 한발 조심스레 소설을 따라 갔다. 책을 덮고 나니 그제서야 무언가가 밀려온다. 안개의 냄새를 맡는다.

 

, 좋구나.’ 현실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소설 속 분위기에 취해 있고 싶었다. 안개에 싸인듯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의 노스탤지어?

희붐하거나 어렴풋하거나 아득하거나 아련하거나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며 몽환적이다.

 

보아하니, 파트릭 모디아노의 모든 작품은 자신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도시인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다. 오딧세우스와 달리 모디아노의 주인공에겐 도달해야 할 장소도 없고, 반드시 만나야할 사람도 없다. 어디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중요하지 않다. 시간을 거슬러가는 여정의 끝에서 만나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이므로.

 

이 소설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처럼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한다. 별일 아닌 줄 알았다. 잃어버린 수첩, 어느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미지의 남자와의 만남, 질 오톨리니는 주인공 다라간의 잃어버린 수첩에 적힌 기 토르스텔을 안다며 그의 신변을 묻지만, 다라간은 누군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질 오톨리니와 동행한 상탈 그리페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다라간은 점차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어머니, 어머니의 친구였던 보브 뷔냥, 자크 페랭 드 라라. 살해당한 여자, 콜레트 로랑, 그리고 아니 아스트랑......사진 속, 어린 시절의 자신...

 

책장을 덮을 때, 육체와 달리, 내 영혼은 현재에 없었다. 과거의 순간들을 헤매고 있었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웃고 울던......사랑 앞에 설레여하고, 사랑을 갈구하고, 버림받기도 했던,..... 수줍은 표정의 어린 시절의 내가 거기 있었다. 불현 듯 이제 더 이상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자, 한 마리 짐승에게 심장 한 쪽을 베인 듯, 통증이 밀려온다.


.... 이렇게 아득하다니, ......이렇게 아련하다니.

어느새 눈은 물기에 젖어, 슬픔이 밀려오고......

....그 슬픔을 다독인다.

 

잃어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

안개 속에 가려지고 망각속에 버려졌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 아름다웠구나. 나의 삶도.

삶이란 이토록 덧없는 것이라니.

 

기쁨이 위로가 되듯 슬픔도 위안이 된다.

추억을 향유하시라.

안개에 축축이 젖어. 


이제 뷔퐁의 <박물지>말고 다른 글은 읽지 않게 된 그다. 문득 어느 여성 철학자가 쓴 회고록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철학자는 전쟁통에 어떤 여자가 한 말에 충격을 받는다. "어짜라고요. 전쟁이 났다고 해서 나와 풀 한 포기 사이가 변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다라간에게 그 문장은 다른 뜻을 지녔다. 재난이 닥치거나 마음이 비탄에 잠겼을 때에는, 행여 균형을 잃고 배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된 한 지점을 찾아서 의지하는 것 말고는 살 길이 없다.

고무 튜브를 움겨쥐틋, 우리의 시선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송이의 꽃잎들에 멈춘다. 창문 너머 그 소사나무 – 혹은 사시나무 –가 보이면 다라간은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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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6-0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픔의 노스탤지어라니♡ 읽어야 할 책들은 너무도 많네요. 이 행복한 고민.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6-02 08:55   좋아요 0 | URL
푹 담그세요 ^^

페크pek0501 2016-06-0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최신작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는군요...


시이소오 2016-06-02 16:29   좋아요 0 | URL
여러 이읏님들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보다이책을 더 좋아하시네요 ^^

:Dora 2016-06-02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ㅃ 이라도 맞고 일그면 삘이 올까요? 저도 ...거리 읽고 별 감흥을 못 받았었거든요

시이소오 2016-06-02 17:30   좋아요 1 | URL
그냥 읽다보면 ㅃ 맞으신 느낌이드실거에요^^
 
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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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바스가스 요사의 <트라이던트>와 마이클 로보텀의 <내 것이었던 소녀>를 동시에 읽었다. 두 책 다 초반 도입부는 흥미로웠다. 특히 <트라이던트>두꺼비 이야기는 연신 낄낄대며 읽었다.

 

두꺼비 녀석들은 서너 모금 담배 연기를 들이켜고 나면 배가 터져서 죽곤 했지. 불꽃놀이처럼 말일세. 그러면 그 녀석들의 내장이 사방으로 튀었지. 난 그걸 지켜봤어. 내 얘기 때문에 잠이 오지는 않나?”

 

이후,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퓔장스 판사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러다 부하 형사인 당글라르는 묻는다.

 

죄송합니다만.” 당글라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끊었다. “그 두꺼비 말인데요, 정말로 배가 터지나요, 아니면 그렇게 상상을 하신 건가요?”

 

또 다시 아담스베르그 서장이 퓔장스 판사에 관한 일화를 한참 떠드는데 대뜸 당글라르가 말한다.

 

그런데 두꺼비가 담배를 피운다니,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이보게, 당글라르, 자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나? 난 지금 악마 같은 한 사나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자넨 자꾸만 망할 놈의 두꺼비 이야기만 하니, 어찌된 일인가?”

 

그런데 정말 두꺼비든 개구리든 담배를 피우면 터지는 걸까? 이후 <트라이던트>는 이 두꺼비 이야기보다 재밌는 이야기를 던져주지 못한다. 템포가 두꺼비만큼이나 느려 두꺼비가 아니라 내 속이 터졌다. 그리고 한 번 재밌었으면 된 거 아닌가. 끝날 때까지 수십 번씩이나 두꺼비 이야기와 캐나다 호수 물고기 이야기를 물릴 정도로 해댄다. 작가를 어찌나 삼지창(트라이던드)으로 찌르고 싶던지.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마작 이야기는 읽는 내가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다. 두 번 다시 이 작가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나름 수확이다.

 

<트라이던트>가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가 반감되었다면 <내 것이었던 소녀>는 정확히 그 반대다. 두 소설은 마치 출발점은 똑같으나 뛰면 뛸수록 차이가 벌어지는 장거리 육상 트랙 경기를 연상시킨다. 마이클 로보텀에 대한 스티븐 킹이나 리 차일드의 평가는 허언이라고 볼 수 없다.

 

★★★★★ 로보텀은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다” _스티븐 킹

★★★★★ 그의 작품들을 너무도 사랑한다” _리 차일드


 마이클 로보텀의 <내 것이었던 소녀>의 주인공은 파킨스 병에 걸린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다범인은 나르시시트가 폭력과 결합하면 어떻게 악성 나르시시트가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자가 네오 나치의 일원이라는 건 당연해 보인다. <밀레니엄> 씨리즈의 스티그 라르손은 불과 쉰의 나이에 2004년에 사망했다. 극우주의자, 파시스트, 네오나치의 살해 위협에 시달려온 스티그 라르손은 심장마비로 별세한 걸로 알려져 있다. <밀레니엄>10부작으로 기획되었다. 항간에는 스티그 라르손이 살해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극우주의자, 파시스트, 네오 나치의 입장에서 <밀레니엄> 10부작 중 4부작만이 공개된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극우주의자의 폐해는 단지 외국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네오 나치의 수장은 단연 새누리당이다. (‘네오 나치와도 같은 극우주의자 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니! )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전위대는 가스통 할배일베. 이들을 계속 방치할 경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는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극우주의자가 왜 나쁘냐고? 이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처참히 짓밟는다. 심지어 이들은 인간을 조종하려 든다. 히틀러의 선전 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떠오르지 않는지.

 

타인을 이용하고 간섭하고 무시하는 것 이외에 존엄성을 강탈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조종하는 것이다. 조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종은 아주 특수한 형태로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그와 신체 접촉을 가지거나 그에게 무언가 보여주거나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는 것이며 나의 이런 행동으로 인해 그의 경험과 행위가 변화하게 된다.

 

- 페터 비에리, <삶의 격>

 

오늘날 한국의 언론, 방송, 교육, 지식인들은 대중을 조종하고 있다.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십대 아이들마저 조종하기 위해 조작된 역사를 가르쳐 드는 극우주의자들의 행태를 언제까지 수수방관해야 할까. 이미 성인이 되어서도 기득권자의 조정에 놀아나는 것은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이다. 꼭두각시라고 한다. 마리오네트거나.

 

:

프레드 바스가스 요사 패

마이클 로보텀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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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 서른 살 빈털터리 대학원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공부법 25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효진 옮김 / 걷는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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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아마 일찌감치 스스로 목을 메고 죽었을 거다. 두 번의 파산에도 우울증에 빠져들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책을 권해 보는 건 어떨지. 사이토 다카시는 추천도서가 아니라 끌리는 책부터 먼저 읽어라라고 말한다. 동감이다. 고전이건 만화책이건 관심 가는 책부터 읽어야 독서에 재미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책 추천이 불가능한 이유기도 하다. 각자의 취향이 다른데 내가 좋았다고 해서 상대방에게도 좋을 거라 장담할 순 없다.

 

독서에 관련된 책들의 조언 중 단 하나의 조언을 뽑자면 동시에 여러 책을 읽어라가 아닐까. 이른바 동시병행독서법’. 나 역시 한 번에 다 읽는 책은 없다. 재미있건 재미없건, 무조건 돌려 읽는다. 다섯 권에서 스무 권 정도.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중간 정도 읽다 보름이 지난 후에 읽던 소설을 다시 봤더니, 무슨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안 난 적도 있다. ‘앞에 내용이 뭐였더라하고 잠시 생각하던 사이, 마치 감자 뿌리 드러나듯 단 한 순간에 앞의 내용들이 모조리 기억나기도 한다. 정혜윤 PD는 아예 책갈피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요즘은 책갈피를 쓰지 않는다. (읽은 내용들을 저절로 재독하게 된다.) 이렇게 병행하며 책을 읽으면 쉽게 지치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에 책을 읽을 때 보다,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앞 내용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가지 더. 사이토 다카시는 자기가 소화하기 어려운 책이라면 입문서를 보라고 말한다. 동감이다. 나 역시 어릴 때는 입문서를 보는 게 치사한 방식이라 생각하고 이해하든 못하든 무조건 읽으려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냥 멍청한 거였다. 예를 들어 <창조적 진화>가 어렵다면 베륵손에 관한 입문서를 읽어보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창조적 진화>는 베륵손 책 중 그나마 가장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철학 책이라고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수학의 예를 들자면 왜 미분도 모르면서 적분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유클리드 기하학을 모르는데 비유클리드 기하학 책을 백 날 쳐다본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철학자도 철학과 학생들에 쉽지 않다. 한 학기 내내 공부해도 알까 말까다. (나만 그랬던 걸까) 그런데 일반인이 무턱대고 철학자들 책을 읽는다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나 역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기 위해 입문서를 읽어가는 중이다.)

 

이 책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얻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작은 책장을 만들어라이다

자신만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꽂은 책장이라니. 생각 만해도 설레인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인생의 선택을 점과 점 이어 긋기에 비유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금 한 일이 인생에 어떤 점을 찍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그것들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니 그 점들은 이미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독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읽는 책 한 권이 내게 무엇을 줄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직하게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수많은 점들을 갖게 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반드시 깨닫게 되지 않을까. 점과 점이 이어져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그러니까 독서란 내 인생에 어떤 점을 찍는 것이다. 점과 점이 이어져 10년 후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궁금하지 않은가. 점과 점들이 어떻게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지만,

오늘도 나는 점을 찍겠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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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30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6-05-30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책이 나를 구해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내겐 책이 있으니까. 라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5-30 09:08   좋아요 1 | URL
그렇죠? 책이 있으니 뭐 어때, 싶죠?
`달빛 저녁`님의 민음사 책장을 봤습니다. 우~~ 너무 부러워요~~ ㅎㅎ

다락방 2016-05-3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러권 동시 읽기는 저한테 맞지 않아 다른 이들에게도 추천할 수 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책만 꽂은 책장은 이미 오래전에 민들어 두었답니다. 보기만해도 아주 흐뭇한 책장이에요. 흐흣 :)

시이소오 2016-05-30 09:23   좋아요 0 | URL
역쉬, 다락방님. 발빠르시군요.
저는 어디다, 어떻게 만들지 계속 즐거운 고민 중입니다. ^^

읽다지쳐 스르르... 2016-05-3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시에 다섯권정도 읽는데 기억이 안나는것 같으면서도 갑자기 확 날때는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구요..글구 전 책장까지는 아니고 책장 제일 잘보이는 칸들이 저의 베스트 책이 있는 칸이에요..소소하지만 정말 뿌듯하고 다시 읽을 기쁨에 늘 기분좋아지는 공간이에요..ㅎㅎ

시이소오 2016-05-30 10:00   좋아요 0 | URL
아,저도 빨리 저만의 베스트책들
책장을 꾸려야겠어요^^

CREBBP 2016-05-3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스트책장 완전 굿 아이디어입니다. 전 정리하는 거 싫어하믄데 책들을 택장의 이곳 저곳으로 옮기고 들이다보며 읽은 책 읽을 책 살 책 팔아치눌 책들을 생각하는 건 좋아요

시이소오 2016-05-30 11:15   좋아요 0 | URL
저는 워낙에 게을러 베스트 책과 ㅂㅓ릴 책이 섞여있어요
책장 정리해야 겠어요 ㅋ^^

2016-05-30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5-30 11:45   좋아요 0 | URL
철학 책을 정말 좋아하시네요
야무님의 철두철미한 독서도
반드시 보답받는 날이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베스트책장 부럽습니당
^^

fledgling 2016-05-30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책갈피를 사용하지않는다.. 라 좋은 거 배워가요~^^

시이소오 2016-05-30 12:33   좋아요 0 | URL
정혜윤 피디님의 노하우죠^^

cyrus 2016-05-30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가 우리 인생에 찍는 점이라면, 서평은 또 다른 애서가들의 인생을 위한 좌표라고 생각해요. 내가 남긴 점의 흔적이 누군가의 독서를 위한 좌표가 될 수 있으니까요. ^^

시이소오 2016-05-30 13:28   좋아요 0 | URL
오호, 좋은 말씀이시네요 ^^

북깨비 2016-05-30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권을 꾸준히 못 읽고 그때 그때 기분 따라 자꾸 다른 책에 손을 대는게 나쁜 독서 습관인 줄 알고 고쳐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시이소오님 말씀을 읽고 안심이 되네요. ㅎㅎ 그냥 앞으로도 쭈욱 읽고 싶을 때 읽고 싶은 책 읽으렵니다. 아, 저는 베스트 책장은 따로 없고 제게 있어 베스트가 아닌 책들은 읽자마자 중고서점에 팔거나 도서관에 기부합니다. 그러면 생각에 제 책장에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만 꽂혀 있을 것 같지만 아직 사놓고 읽지 않아서 베스트인지 아닌지 판별을 못한 책들이 두배로 꽂혀 있다는게 함정이지요. ㅎㅎㅎ

시이소오 2016-05-30 16:20   좋아요 0 | URL
오, 좋은 방법이네요. 쓸데없는 책이 없어질수록
양서만이 남을 확률이 높아지겠네요 ^^




알레프 2016-05-30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역시 독서가 아니면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했기에 이번글은 더욱 반갑네요 ^^

시이소오 2016-05-30 22:22   좋아요 1 | URL
아, 알레프님도요?
북플엔 역시 애서가님들이 많ㄴㅔ요 ^^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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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읽는 윤대녕 소설인지. 단점도 보이고 장점도 보인다. <피에로의 집>은 도시 난민들이 마마의 아몬드 나무 하우스에 입주해 살게 되면서, 자기안의 고독과 공허함을 응시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타인과 유대를 맺는다는 이야기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을 보던 중, 에로 연극 연출을 하다 퇴출된 연극 연출가 명우는 마마를 만난다. 명우는 마마의 제안대로 아몬드 나무 하우스에 입주해 1층의 북 까페를 떠맡는다. (혹시 저에게 북까페 맡겨주실 분 누구 없나요?)



 

명우는 아몬드 나무 하우스에서 사진 작가인 윤정, 영화 제작을 하겠다는 현주, 대학생인 윤태, 고등학생인 정민을 만난다. 명우와 윤정, 명우와 현주, 혹은 명우와 헤어져 프랑스에 체류중인 난희와의 이야기에 나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고, 쓸 것도 없다.



 

명우와 윤태, 명우와 정민의 이야기만이 읽을 만 했다. 명우는 윤태와는 대화를 통해, 정민과는 침묵을 통해 소통한다. 윤태와의 대화 중, 명우의 의견에 나는 격렬히 동감한다.

 

알다시피 오늘날까지 이념 논쟁은 되풀이되고 있고. 게다가 권력을 쥔 자들이 생존권을 담보로 늘 이를 악용하고 있지.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면서까지 말이야. 그러니 삶의 다른 가치들은 돌아볼 겨를 없이 여전히 생존만이 목표일 수밖에 없는 거지. 때문에 타인에 대해 본능적으로 적대적이고 관용이라든가 선의는 개입할 여지가 없는 거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데도 말이야. “

 

하지만 동시에 어른으로서 지혜와 관용을 베풀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사회에서나 현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존재들이 필요하거든. 하물며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 외에는 거들떠보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지. 게다가 우리 사회는 이제 타인에 대한 태도가 적대감을 넘어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자네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종종 확인했겠지. 또 엄연히 우리 사회의 일원인데도 불구하고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해서 이웃인 그들을 우리가 얼마나 천대하고 있는지도. 그때마다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져 중간에 채널을 돌리게 되지.”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다음의 뉴스 기사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 댓글을 볼 때면, 정말 얼굴이 뜨거워진다. 자국의 외국인을 혐오하면서 미국이나 유럽에 나가서는 인종차별을 부르짖다니. 파렴치한 짓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민 정책으로 미국 유권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인들이 트럼프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트럼프 헤어 스타일이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윤태는 명우에게 자신이 꾸는 악몽에 대해 털어놓는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어둡고 거대한 공간이에요. 공기 속에서는 늘 녹슨 냄새가 나고요. 이따금 철판을 두드리는 망치 소리 같은 게 들려오기도 해요. 처음에는 저 혼자만 그곳에 갇혀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죠. 주위에 저와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을요. 그들은 한결같이 좀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죠.....그러다 얼마 전이었을 거예요. 잠결에 귓전에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꽝!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이어 소용돌이라도 치듯 공간이 옆으로 기울기 시작하더군요. 십 도, 이십 도, 이십오 도......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물이 스며들더군요. 뒤미처 걷잡을 수 없이 안으로 물이 쏟아져들어올 때서야 저는 깨달았죠. 내가 그동안 커다란 배에 갇혀 있었구나. 그제야 다들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지만 굳게 잠긴 쇠문을 열리지 않아요. ”

 

익사당하는 심정.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악몽이 아닐까. 어느 날 부터인지 명우는 정민과 함께 아무 말 없이 그냥 걷는다. 어느 날, 정민은 명우 옆에서 눈물을 흘린다. 격렬한 포옹이 없어도 함께 걷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말미를 현주의 출생의 비밀로 끌고 간 것은 이 소설의 패착이라고 본다. 너무 너무 지겹다. 지겨워 죽을 것만 같다. 50년대, 60년대 출생한 한국 소설가들은 왜들 그렇게 출생의 비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까.

 

회화를 형상화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카라바초>나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들. 소설 속에 소개된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호퍼의 그림을 영상화한 영화다. 아직 못 봤다. 나는 <밤샘하는 사람들> 천 피스 짜리 직소퍼즐을 할 만큼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호퍼를 만나는 건 이제 진부하지 않나?



 

소설은 중견 작가의 참신함과 진부함이 뒤섞여 있다. 제목 <피에로들의 집>은 누가 지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보다 진부한 제목을 상상해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뇌를 어디 서랍 속에 넣어두지 않고서야.....

 

소설의 제목이나 제재들이 진부하더라도 소설의 주제마저 진부한 건 아니다. 혹은 진부하더라도 되새길만 한다. 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이 진부한 진리를 유전자에, 혹은 뼈마디 마디마다 새겨질 정도로 반복하고 반복하기를.




다음날 아침, 나는 목표역에서 부전으로 가는 아홉시 육분 무궁화호 열차, 즉 경전선 열차에 올라탔다.......종착역인 부전까지는 일곱 시간 십육 분이 걸릴 예정이었다.
목포를 출발해 나주 광주 송정 명봉 보성 벌교 순천 광양 하동 진주 함안 진영 삼랑진 구포를 지나야 마침내 종착역인 부전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거 타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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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5-2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저두 타보고 싶었어요

시이소오 2016-05-29 16:02   좋아요 1 | URL
왠지 보물선님이 저보다 먼저 타보실듯 ^^

우끼 2016-05-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을 괴물이라고 말하는 시대, 그렇게 느끼는 시대... 함께있어도 홀로라고 느끼고. 왜 일까요. 종종 저도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서 제 스스로가 어떤 공간에 남아있을 자격없다고 한탄하게 되고.. 아직은 답이 없이 부유하고 있습니다.
호퍼의 그림 정말 좋네요 ㅎㅎ 저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5-29 16:12   좋아요 1 | URL
한병철ㅇㅔ 따르면 신자유시대,
사회가 사랑을 허용ㅎㅏ지않으니까요
죽도록 사랑하시길 ^^

표맥(漂麥) 2016-05-29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과는 관계없이, 고호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보니 웬지 반갑(?)습니다...^^

시이소오 2016-05-29 16:28   좋아요 0 | URL
고흐그림 정말 좋죠? ^^

stella.K 2016-06-0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용과 상관없이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본적이 있는데, 내용은
그닥 기억엔 없는데 어떻게 호퍼의 그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놀랍기도 하고, 깜짝하기도 하고. 암튼 그 발상만으로도 좋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걸 CF가 퍼러디하고...ㅎ

왠지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 좀 했습니다.^^

시이소오 2016-06-01 19:32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저도영화 보고싶네요^^

stella.K 2016-06-01 19:37   좋아요 0 | URL
헉, 보신 줄 알았슴다.
한 번쯤 보셔도 좋을 듯한데 책 읽으시느라 짬이 없으실까요...?ㅋ

시이소오 2016-06-01 19:40   좋아요 0 | URL
함 볼게요ㆍ요즘 영화도 잘 안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