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15. 잘 먹고 잘 싸우기 게리 폴 나브한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스핀 닥터>의 조너선 매슈스의 취재에 의하면 “생명공학이 아프리카를 살린다”는 구호를 내걸고 벌인 시위가 실은 몬산토와 다우케미컬스 등 대기업의 지원을 받은 우익 기구들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었다.
이 책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라는 과학자의 생애와 그처럼 종자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다. 더 많은 감자를 생산할 씨감자를 얻기 위해 굶어 죽으면서도 감자에 손을 대지 않았던 연구자들. 책에 의하면 종자를 지키려다 죽은 사람은 한 두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희생에 힘입어 오늘날 세계 종자 은행 설립이 추진중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식량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그는 “기아의 근본 원인은 식량이나 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프란시스 무어 라폐의 말을 인용하며, 식량 안보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종자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접근성”에 달려있다고 단언한다.
박근혜 정부는 전작권 이양을 미루어 안보 자주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FTA를 통해 식량 자주권마저 다른 나라에 퍼주고 있는 실정이다. 조만간 모든 쌀을 외국에서 사먹어야 하는 필리핀 꼴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청와궁에서 떡이나 칠 것이지. 십장생들.
(그러고보니 떡이나 쳤군)
연쇄 16. 밥상을 부탁해! 정부희, <곤충의 밥상>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굶주리는 세계>,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강양구, 강이현 기자의 <밥상 혁명>,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이 함께 쓴 <죽음의 밥상> 등등의 후보를 제치고 김이경 작가는 <곤충의 밥상>을 골랐다.
요즘 <삼시세끼>라는 무미건조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한다. 어떤 청취자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도 먹을 거 걱정 안하고 먹을거리만 걱정했으면 좋겠다.”고. 그저 세끼 찾아 먹는 프로그램이 그래서 인기인걸까?
연쇄17. 진화의 달인에게 배우다. 정준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얼마 전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의 책을 읽었었는데, 의외로 기생충 관련 서적도 많은 가 보다.
연쇄 18. 역사, 아픈 만큼 성숙해지다.
윌리엄 맥닐, <전염병의 세계사>,
신동원,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맥닐은 아스텍 제국의 멸망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6백 명이 채 안되는 스페인군이 어떻게 수백만 명에 달하는 아스텍인들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자료 조사를 통해 당시 천연두에 의해 아스텍 인구의 약 30%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았고, 전염병과 역사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어 20년간의 연구 끝에 <전염병의 세계사>를 저술했다.
신동원의 책은 19세기 조선을 강타한 콜레라의 역사성을 규명한 책이다. 뉴라이트 일베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로 콜레라의 피해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폐결핵 사망자는 5,973명에 달했다.
연쇄 19. 신종 전염병, 정신 질환 에단 와터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워터스는“섭식 장애,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같은 병들을 발생시키고 유행시켜온 병원균은 무엇인가?“라고 물은 뒤, 그 바이러스는 바로 “미국”이라고 답한다. 미국의 광기를 정말 어이할꼬.
연쇄20. 미친 여자들에게 미치다. 산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
문학 비평서이지만 주로 유명 여성 작가의 작품을 다룬 책이라고 한다. 당시의 여성 작가들이 살아남는 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오스틴처럼 “하찮은 주제를 다루거나” 조르주 상드처럼 남성처럼 가장하거나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처럼 미치거나 괴물이 되는 것.
연쇄21. 옛날 이야기에서 배운다.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1,2>
베텔하임은 이 책에서 2백 여편의 이야기가 수록된 그림 형제 동화집, 샤를 페로의 동화집, <아라비안나이트>,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아프리카 신화까지 세계의 각종 신화와 민담 등,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자료들을 총동원해 옛이야기가 가진 깊은 의미와 매력을 드러낸다니, 당장 읽고 싶다.
연쇄22. 잃어버린 세계사를 찾아서.
이옥순 외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이 책은 기존의 세계사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은 중앙유라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두루 섭렵한 보기 드문 세계사 책이라고 한다.
‘서양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이 세계사 교과서조차 바로잡지 못한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랄까. 나부터 바로 읽어야 할 책.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 때문에 4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친일, 독재 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꾸렸다니, 아직 이 땅에 희망은 있나보다.
연쇄 23. 읽은 대로 살기 위하여, 하워드 진, <미국 민중사1,2>
미국 역사를 서술하는 내 관점은 다르다. 국가들의 기억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가는 공동체가 아니며 그런 적도 없었다. 어떤 나라의 역사가 한 가족의 역사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정복자와 피정복자, 주인과 노예, 자본가와 노동자, 인종 및 성별상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격렬한 갈등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세계에서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생각 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
하워드 진. 언젠가 전작을 하고 말리라.
연쇄 24.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토머스 게이건,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은 유럽 국가 중 특히 독일을 선망한다. 독일은 유일하게도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나라라고 한다. 또한 독일 국민들은 신문 구독량도 높고 독서량도 많다고. 국민들이 책을 많이 읽는데 정치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1년에 6주 휴가 보장, 유급 출산 휴가, 보육비, 보모비용 전액 지원, 부모를 모시면 보조금이 나오고 대학 등록금은 공짜, 해고되면 실업 수당, 퇴직하면 연금이 나오는 나라라니.
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연쇄를 위하여
토니 주트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이후, 김이경 작가는 <포스트워 1945-2005>를 읽었다고.
<미국에서 태언나 게 잘못이야>에서 일어난 연쇄는 홍기빈의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설계자인 비그포르스의 사상과 실천을 다뤘다.
그녀가 쓰지 못해 아쉬워한 또 다른 책은 박수용 PD의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이다. 정혜윤 PD의 책에서 언급됐던 호랑이에 미친 그 사람. 근데 이 분이 책까지 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데 문장마저 끝내준다니.
“눈송이가 똑바로 떨어져 내리면 고요다. 눈송이가 나풀나풀 떨어지면 실바람이다. 얼굴에 바람이 느껴지고 눈송이가 비켜 내리면 남실바람이다. .......작은 나무 전체가 흔들리며 그 우듬지에 쌓인 눈 더미가 날아가면 들바람이고, 큰 가지가 흔들리며 숲이 전깃줄처럼 울면 된바람이다. ....큰 가지가 부러져 날아가고 바다에서 용오름이 일어나면 큰센바람이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숲이 뒤집히면 노대바람이다.”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는 나중을 기약하며 미룬 책이라고.
<죽음과 함께 춤을>은 안락사도 시행하는 의사 베르트 케이제르의 비망록.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몬산토>의 뒤를 이었어야 하는 책이라고 한다. 20세기 초 독점재벌 록펠러의 치부를 폭로한 언론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에 관한 책.
이 책을 읽고 그녀가 떠올린 연쇄는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이 책엔 어이없이 죽거나 중병에 걸린 피해자 115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고 한다.
저자는 베텔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 <동화의 정체>-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으로의 연쇄에 대한 미련을 토로한다. 도서정가제 이전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 반값으로 나왔을 때 질렀어야 했나.
김이경 작가는 처음 접하는 이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꼭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처 읽지 못해 부끄러운 책들도 많았다. <몬산토>, 하워드 진의 책. 특히나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말로만 신자유주의를 욕하고 삼성을 욕하지만 정작 관련 서적 읽기엔 소홀히 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을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리뷰가 한 페이지에 그칠 뿐이었다.
만일 내가 그녀의 연쇄 독서를 받아 이어간다면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여전히 부끄럽게도 아직 읽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