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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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은 항상 자신이 쓴 과거의 작품들을 사뿐히 즈려밟고 나아간다. 한병철의 신작을 읽을 때마다 그가 쓴 과거의 저작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한병철이야말로 실을 잣고 새로운 연결의 길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루스트는 삶 자체가 하나의 관계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이 사건들 사이에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 끈을 잣고” “조직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이 끈을 두 배로 늘여 우리 과거의 아주 사소한 지점과 모든 다른 지점들 사이에 기억의 풍성한 망을 형성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연결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라고 믿는다.

 

p 108.

 

한병철이 전작인 <에로스의 종말>에서 에로스를, 사랑을 재발명하려했다면 <아름다움의 구원>에선 미를, 아름다움을 재발명하려 한다.

 

현대의 아름다움에 공통된 속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병철에 따르면, 매끄러움이다. 제프쿤스의 조형물들, 아이폰, 브라질리언 왁싱. 매끄러운 것은 우리를 상처 입히지 않는다. 즉각적인 만족을 준다. 좋아요의 예술이다. 오늘날에는 심지어 추한 것도 매끄럽다. 현대의 포르노그래피들. 데이터는 포르노그래피적이다. 내면성도 없고, 뒷면도 없고, 애매함도 없다.

 

매끄러운 것은 저항하지 않는다. ‘부정성따윈 없다.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비동일성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는 은폐된 것이고 우리를 상처입히는 것이며 재앙과도 같다. 미는 투명하지 않다. 투명한 미란 형용모순이다. 아름다운 대상은 덮개에 싸여 있을 때에라야 아름답다. 벌거벗겨진 대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글 역시 마찬가지다. ‘은유로 지어놓은 아름다운 옷은 글을 에로틱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를 상처입힌다. 현대의 긍정사회는 상처의 부정성을 회피한다. 심지어 사랑조차. 오로지 좋아요가 지배하는 사회. <말테의 수기>에서 릴케는 본다는 것을 상처로 묘사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의미에서 본다는 것은 언제나 다르게 보는 것을, 다시 말해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처를 피하고자 한다면 다르게 볼 수도 없다. 본다는 것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동일한 것이 반복될 뿐이다. 감수성이란 상처 입을 수 있음을 뜻한다. 상처란 보기의 진리계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상처가 없으면 진리도, 나아가 지각조차도 없다. 동일자의 지옥 안에는 진리가 없다.

 

p 54.

 

고통없이, 상처없이 문학도 예술도 없다. 고통과 상처가 없다면 동일한 것만이 반복될 뿐이다.

 

바르트는 일찍이 사진 이론에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에 대해 말했다. (punctum을 이 책처럼 풍크툼이라 표기하는 게 원음에 더 어울리겠지만, 단어가 내포한 의미를 고려해보자면 푼크툼이 더 적절해 보인다. 푼크툼은 나를 찌르는 것이기에.

 

스투디움은 학습이라 불린다. ‘to love’가 아니라 ‘to like’로 표현되는 것. 스투디움은 쾌감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다. 단지 피상적인 관심일 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이웃들끼리의 관계맺음이랄까.

 

스투디움과 달리, 푼크툼은 나를 찌르고 나를 상처 입히고 나를 전율시키는 것이다. 푼크툼은 투명하지 않다. 그렇다고 푼크툼은 쇼크처럼 요란한 것도 아니다. 푼크툼은 고요히 나를 찌르는 것이다. 푼크툼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눈을 감고 나서야, 기억 속에서 사후에 드러난다.

 

한병철은 칸트를 인용하며 재앙(Desaster)과 별이 아닌 것 Unstern(des- astrum), 비성을 연결한다. (‘비성非星’, 참 짜증나는 역어로다) 칸트는 모든 것을 주체의 내면속에 가둔다. 심지어 창공 위의 반짝이는 별까지도. (한병철은 칸트를 까고 주로 헤겔에 기댄다. 나는 반대. 나는 안티헤겔자.)

 

한병철은 칸트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대립되는 형상으로 모리스 블랑쇼의 텅 빈 하늘을 제시한다. 블랑쇼는 어린 시절, 하늘을 바라보다 어떤 돌연한 깨달음을 얻는다. “하늘의 갑작스럽고 절대적인 공허가 엄청난 매혹과 기쁨으로 아이를 급습하여, 한순간 아이는 눈물로 가득 찼다.” (왠지 이 심정이 이해가 간다.)

 

, 칸트의 별이 빛나는 하늘을 통해 우리는 주체로 회귀한다. 반면 블랑쇼의 텅빈 하늘은 우리를 주체로부터 떨어뜨린다. ‘별이 아닌 것이다. 재앙. 재앙의 미학은 만족의 미학이 아닌 사건의 미학이다. ‘아름다움은 별들의 질서를 교란하는 재앙이다

 

<두이노의 비가>에서 릴케는 이렇게 노래했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까스로 견뎌낼 수 있는 끔찍한 시작일 뿐”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까스로 견뎌낼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일뿐이란 번역이 더 어울리겠다)

 

아도르노 역시 끔찍한 것의 부정성이 미에 본질적이라고 보았다. 미는 또한 부서지기 쉽고 깨지기 쉬운 것이다. 좀비는 아름답지 않다. 오늘날 건강과 매끄러움을 추구하는 우리는 좀비로 변한다.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살기에는 너무 죽어 있고,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다.”

 

칸트는 도덕적 미 혹은 미의 도덕을 미의 이상으로 보았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미는 도덕과 개성을 표현할 때만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현대에 미는 섹시함에 밀려나고 있다. 개성없는 인간이 현대의 이상적인 소비자다. “사람이 개성이 없을수록, 매끄럽고 뱀장어처럼 미끄러울수록 더 많은 친구를 갖게 된다. 페이스북은 개성없음의 시장이다.”

 

헤겔에게는 미는 진리이자 자유다. 미는 자기목적적인 것이다. 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미는 따라서 소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미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미는 우리를 관조적인 머무르기로 초대한다.

 

이상적인 정치는 미의 정치. 미의 정치는 또한 자유의 정치다. 시스템의 하수인인 된 정치가는 자유인이 아니라 단지 노예다.

 

영어에서의 페어fair정의롭다는 뜻과 함께 아름답다의 뜻도 지닌다. 정의는 아름다운 것이다. 미 앞에서 주체는 뒤로 물러선다. 타자를 위해 공간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미다. 정면이 아니라 측면의 위치에 서는 것. 반면 소비자는 타자를 위해 옆으로 물러나거나 후퇴하지 않는다. 섹시함 역시 측면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 앞에서 우리의 의지는 후퇴한다. 미는 우리를 시간 안에 머무르게 한다. 시간 안에 머무름은 우리를 타자로 향하게 한다. ‘예술의 과제는 타자를 구원하는 데 있다. 미의 구원은 타자의 구원이다니체에 따르면 최초의 예술은 축제의 예술이었다. 노동은 시간의 질을 고양시켜 주지 않는다.

 

플라톤에게 미는 경험이라기보다는 재인식이다. 기억으로서의 미의 경험은 소비되지 않는다. ‘미는 이야기한다. 미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내러티브가 있는 사건이다.’ 미는 관계의 사건이다.

 

에로스는 일찍이 아름다움 속에서의 산출이라 불리웠다. 미는 사유를 추동한다. 에로스 없는 사유는 단순한 노동일뿐이다. 미는 존재의 시적 이름이다. 미는 존재자에게 새로운 진리를 산출하게 한다.

 

미 자체는 영원히 존재하는” (aei on) 것이다. 포스트모던이 휩쓰는 세계에서 한병철은 미의 이상을 구원하려한다. 미는 구속력이 있는 것이고 기준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에로스는 구속력이 있는 것을 향한 추구다.’ 바디우는 이 추구를 충실함이라 불렀다.

 

신이 죽으면서 절대주의는 종말을 고하고 상대주의의 세계가 열렸다.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소비지상주의가 판을 치며 예술은 더 이상 미의 추구가 아닌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팔리는 것이 예술인 시대다. 내가 보기에 한병철은 고전주의자에 가깝다. 나 역시.

 

고전주의자 입장에서 현대 예술은 죄다 쓰레기다. 제프 쿤스의 쓰레기는 오늘날 가장 비싼 값에 팔린다지. 부자들은 왜 이런 쓰레기를 비싼 가격에 주고 사는 걸까? 쓰레기기 때문이다. 값진 것에 정당한 값을 치른다면 부는 과시될 수 없다. 쓰레기를 사야만 부는 과시될 수 있다. 제프 쿤스는 조형물을 직접 만들지도 않는다. 조수들 시켜 만든다는데, 조영남도 억울할만하다. 애초에 조영남 같은 쓰레기의 쓰레기를 돈 주고 사는 사람들이 쓰레기일 뿐. 

 

미는 은폐이고 상처이고 고통이고 진리이자 자유, 정의이며 선이고 기억, 또한 타자를 구원하는 것이다.

 

에로스를, 미를 구원하려 한 한병철의 사유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까? 미 자체가 영원히 존재하는, 아에이온이라면 그 기준을 다시 세우려 하진 않을까. 혹은 타자를 구원하는 미? 한병철은 데이터의 무더기에 대비하여 내러티브’, ‘사건을 강조했다. 앞으로 타자를 구원하는 내러티브를 사유하려 할까. 어찌되었건, 그가 풀어놓는 실이 어디로 나아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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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2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톤도 다음과 같이 말했죠. 공포는 아름다움의 첫 번째 현존이다.

시이소오 2016-07-20 13:50   좋아요 0 | URL
릴케가 살짝 비튼거네요 ㅋ

마립간 2016-07-2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시오소오 님.
시이소오 님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인용 글을 찾다가 읽지도 않은 책 ≪아름다움의 구원≫ 구절을 제 감상문에 인용하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7-20 16:35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반갑습니다 ^^
제가 쓴것두아닌데 얼마든지요. 어느 대목을 인용하실지 궁금하네요 ^^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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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세균 폭탄을 투하했다는 주장이 소련, 중국, 북한에 의해 제기되었다. 6월 미국의 세균전 감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국제과학조사단과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구성되었다. 조사에 참가했던 영국 학자 죠셉 니담은 미국이 세균전을 수행했다는 것을 97%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심지어 전범으로 판명받은 일본인 세균 전문가를 재고용하기 했다. 200072일에 방영된 MBC TV<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은 미국 세균전에 대한 새로운 증언과 증거들을 제시했다.

 

51년 한국의 내정을 취재하고 간 외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격이라고 혹평을 했다.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 사건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지만 부산 정치 파동에 대한 평가로 또 다시 인구에 회자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511130일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52128일 표결에 들어갔는데 재석의원 163명 부결이 143표였다. 이에 이승만은 국회의원이 잘못하면 국민의 투표로써 소환한다는 협박 성명을 냈다. 521월 말부터 부산에는 백골단, 땃벌떼, 민족자결단 등 각종 우익단체들이 살인 국회를 해산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지방선거에서 자유당은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526일로 예정돼 있는 내각제 개헌안 표결을 앞두고 이상한 일들이 잇따라 일어난. 부산 금정산에 무장공비가 출현, 미군 2, 한국군 3명을 사살하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헌병사령관 원용덕이 발표한다. 사회분위기는 살벌해지고 얼어붙었다. 나중에 조작된 사건으로 밝혀진다.

 

이승만은 525일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526일 국회의원들이 등원하기 위해 탄 출근 버스가 크레인으로 헌병대에 끌려간다. 다음 날 12명은 국제공산당과 결탁했다는 혐의로 투옥된다.



 

이즈음 이승만은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었다. 마닐라에서는 이승만을 베테랑 파시스트라 불렀고 미국 <워싱턴 스타>는 이승만을 파시스트라 비난했다.

 

625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진다. 의열단원 출신인 유시대 (당시 62)가 이승만 뒤에서 권총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되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조작의 냄새가 징후한 사건으로, 이후 이승만을 지지하는 관제 시위에 불을 지핀 격이었다.

 

71일부터 국회 임시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의원들의 강제 연행이 집행된다. 경찰과 계엄군은 국회의원을 잡아 임시의사당에 연금시킨다. 발췌개헌한 기립 표결에 들어가 출석의원 166명 가운데 163명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미군은 거제도에 대규모 포로 수용소를 설치, 176천 명을 수용했다.


미군은 친공, 반공 포로를 마구 뒤섞인 채로 수용했는데, 이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거제 포로 수용소는 비인간적인 처우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미군의 갈등보다는 해방동맹이라는 친공 포로조직과 대한반공청년단이라는 반공 포로조직 사이의 유혈극이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

 

7월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의 가장 큰 난제는 포로송환 문제였다. 제네바 협정 118조에 따르면, 전쟁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지체없이 석방, 송환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미군측은 이를 무시하고 자유송환원칙을 고집한다. 미국은 왜 이리 자유송환에 목을 맸던 것일까.

 

미국에게 포로 문제는 단순히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전쟁 포로 얼마를 교환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유세계와 공산세계의 이념성을 다투는 이념전쟁 자체였고 그것에서의 승리야말로 미국에게는 위신과 명분, 그리고 이데올로기 싸움에서의 승리로 보였던 것이다.”


623일 미군은 500대 이상의 폭격기를 동원해 압록강에 위치한 수풍댐과 10개의 수력발전소를 폭파한다. 7~8압력펌프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미군 폭격은 더욱 강화된다. 8월에는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78개 도시와 마을을 집중 폭격하는 초토화 작전을 전개한다. 829일 평양 폭격에서만 6천 명이 사망한다.

 

지상전의 경우, 가장 치열한 혈투는 백마고지 전투였다. 106일부터 열흘간 1만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10일 동아 2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85일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함태영이 당선된다.

부정선거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도 함태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몰랐다. 이범석이 181만 표를 얻은 반면, 함태영은 294만표를 획득했다.


816일 이승만은 제 2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모윤숙은 낙랑클럽을 연다. 고문은 김활란이 맡았다. 고급 콜걸이었다고 해야할까. 외국인을 상대로 한 접대 행위를 서슴지 않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전쟁 중에는 밀수가 극성을 부렸다. 고철을 팔아 1년 만에 17배로 성장한 회사는 이병철의 삼성물산이었다. 구인회의 럭키 화학도 전쟁 통에 큰 성장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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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9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19 15:56   좋아요 2 | URL
전쟁통에 돈 번것들, 죄다 이승 만한테 사바사바한 덕분이죠. 이런것들이 오늘날 대기업이라고 떵떵거리며 사축 만드는거잖아요.

하여간 이승만이 저지른 패악질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네요.

기억의집 2016-07-1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중인데도 국회에서 표결하기도 하고 그랬군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모르고 이승만 앞장이들이 떠들어대는 대로 믿었을 것 같아요. 모윤숙과 김활란...이미지 세척 제대로 한 신여성들이죠.

시이소오 2016-07-19 19:46   좋아요 1 | URL
서중석 쌤 책 보면 전쟁통 부정선거가 기가 찰 정도네요. 선거장에 군인 총들고 있고 누구 찍었는지 다 보이고, 유권자 수보다 투표자 수가 더 많아서 퍼센트 다시 맞춘다고 난리 .
아, 저런 ㅂㆍ러지를 국부라니 ㅋ

모윤숙은 친일로 시작해 이승만 박정희 때도 빌어먹었으니
, 참 대단하신듯 합니다 ~~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 복잡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사토 마사루 지음, 신정원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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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사에도 무지하다. (도대체 아는 게 없다) 덜컥 집어든 책이었는데, 세계사 책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채사장이 세계사 책을 썼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간결하고 명쾌할뿐더러 단번에 핵심을 푹 찌른다.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현대를 인식하기 위해서다. 사토 마사루는 세계사를 아날로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날로지란 유비또는 유추로 해석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의 흐름을 아날로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앞으로 전개될 국제정세 역시 내다 볼 수 있다. 사토 마사루가 제시하는 아날로지적 사고 훈련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사토 마사루가 파악한 아날로지적 관점으로 보자면 곧 세계 전쟁이 터질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 유발 하라리 등 전 세계 석학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합창이다. 세계 전쟁이 임박해 있다고.

 

나치에 의해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되길 원했던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6.25 전쟁 전후에 이승만, 미군정에 의한 백 만명의 민간인 학살을 원했던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학살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런 유아적인 발상을 갖고 살아도 용납되지 않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은 일어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또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할 작정입니까? 어차피 힘 있는 자들의 세상인데 미련하게 사서 고생하느니 속 편하게 안주하는 얼뜨기가 되겠습니까?”

 

- 사사키 아타루,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하라> P138.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듯 일어나서 안 될 일은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을 거부하는 태도가 과연 옳은 일일까? 임박한 전쟁의 위협을, 단지 SF소설로 치부하는 이들. 사사키 아타루의 표현을 빌리자면 얼간이.

 

그렇다면 세계전쟁이 임박해 있다는 사토 마사루의 근거는 도대체 뭘까? 사토 마사루는 네 가지 이유를 꼽는다. 신제국주의의 발흥, 자본주의의 위기, 되살아나는 내셔널리즘, 종교 분쟁.

 

사토 마사루는 현재를 신제국주의의 시기로 파악한다. 사토 마사루에 따르면, 2008년 이후 본격적인 신제국주의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었다. 반면에 이를 틈타 러시아와 중국이 부상한다. 2008년은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해일뿐 만 아니라 러시아-조지아 전쟁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이 해를 기점으로 피너클 제도(센카쿠 열도), 스프래틀리 제도, 파라셀 제도를 둘러싼 중국의 영유권 주장, 우크라이나 내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등의 사건이 벌어졌다.

 

(스프래틀리 제도의 경우, 중국, 타이완, 말레이시아, 배트남, 브루나이 필리핀이, 파라셀 제도의 경우 중국, 타이완, 배트남이 각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20162월 미국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지 말 것을 경고한 바 있다.)

 

사토 마사루에 따르면, 패권국가의 약화가 제국주의를 불러온다. 작금의 국제 정세는 영국이 약해지자 독일과 미국이 대두, 구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자본주의의 위기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공황을 불러온다. 실제로 1873년 대불황이 구미를 덮쳤다. 불황은 1896년까지 이어졌다. 대불황을 계기로 구미 열강에 제국주의가 급속히 형성되어갔다. 공황을 피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당연히 전쟁이었다. 현재 역시 전 세계적인 공황 상태다. 완곡히 표현하면 저성장. 두 번째 해결책은 보호주의였다. 사토 마사루에 따르면, 현재 모든 강대국이 입으로만 자유무역이지 실제로는 보호주의를 도모하고 있다고 본다.

 

내셔널리즘의 부활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이 발발했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동부, 남부는 역사가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폴란드에 인접한 우크라이나 서부는 18세기만 해도 폴란드에 속했다. 종교도 우니아트교(동방귀일교회)를 믿는다. 반면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는 러시아에 인접해 있어, 종교 역시 러시아정교를 믿는다. 서부는 독립을 주장하고 EU에 편입되길 원하고, 반면 동부와 남부는 러시아에 통합되기를 바란다.

 

거의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경우와 판박이다.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찬반 주민투표가 있었다. 투표 결과 스코틀랜드는 계속 잉글랜드와 통합을 유지하게 된다. 스코틀랜드 문제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다.

 

종교 분쟁

 

 

이슬람 수니파 무장집단인 IS가 문제다. 이슬람 과격파는 대부분 수니파인 한발리파에 속한다고 한다. 이 한발리파 가운데 와하브파가 있다. 이 와하브파와 결합된 국가가 사우디아라비아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 체첸의 테러 단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등 이슬람 과격파는 모두 와하브파 계통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지배하는 수니파 원리주의 과격파인 하마스의 사상 역시 IS와 탈레반과 같다.

 

EU는 단순히 유럽경제 연합체라고만 알고 있었건만. EU에는 코퍼스 크리스티아눔이라는 개념이 있다. 번역하자면 기독교 공동체. 그래서 러시아나 터키의 가입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자 그럼 이 책을 기반으로 최근에 벌어진 국제 정세를 정리해 볼까? 세계 전쟁의 기미는 완화되었는가

불행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1. 브렉시티

 

영국이 EU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브렉시티 건은 신제국주의의 부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민자 문제에 따른 극우주의, 자본주의의 위기 등등.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내셔널리즘의 부활이다. 영국을 신호탄으로 여러 나라들이 독일 중심의 EU를 탈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만 해도 골치 아프다. 당장 북아일랜드가 독립을 원하고 있고, 스코틀랜드 역시 독립에 대한 찬반 재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영국이 완전히 쪼개지기 일보 직전이다. 왜 이것이 문제일까?

 

영국의 경제학자 J.A 홉슨은 그의 저서 <제국주의론>에서 일정한 조건 하에서라면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홉슨은 제국주의국가 사이의 세력 균형을 지향한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앵글로색슨연합, 범게르만연합, 범슬라브연합, 범라틴연합과 같이 제국주의 국가 연합이 형성된다면 각각의 세력의 균형에 의해 전쟁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 EU는 경제적으로 보자면 독일 제국주의였다. 이 연합이 깨졌다. 종교적으로 보자면 기독교 연합이 깨진 것이다. 반면에 이슬람 연합은 공고하다. IS 탈레반 하마스 등등.

 

2. 남중국해 위기

 

스프래틀리 제도, 파라셀 제도, 이른바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올해 712일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재판소는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은 닭 쫓던 개 된 것?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은 판결에 승복하길 거부했다. 남중국해 상공으론 전투기를 띄우고 해상에는 핵잠수함을 띄웠다. 심지어 주권을 침해했다며 필리핀 어선의 조업을 막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이 점입가경이다.

 

3. 일본, 전쟁국가로

 

71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했다. 일본은 알려진 대로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다. 평화헌법 9조 때문인데, 아베는 이 평화헌법 9를 뜯어 고치려 발악을 해왔다. 불행히도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했기에, 이제 곧 개헌에 들어갈 것이고, 개헌이 된다면 일본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야 러시아와 중국이 하도 설치니, 사냥개 일본의 목줄을 풀어 놓을 수밖에. 일본은 곧장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달려들까? 그보다 약한 북한이 있는데??

 

4. 한국의 사드 배치

 

여러 군사전문가와 지식인들이 누누이 얘기해왔지만 사드 배치는 북한과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다. 국민을 바보로 아나. 북한 때문에 사드를 놓아야 한다는 사람을 뭐라 부른다? 얼간이라고 부른다. 설령 북한이 한국을 향해 미사일을 쏘더라도 사드로는 막을 수가 없다고. 이 멍청한 것들아!! 사드는 100%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조치다. 아무리 미국의 속국이라지만 외교를 이따위로 하나? 사드배치는 한국의 국익에 눈곱만큼도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은커녕 전쟁의 위험성만 높이는 짓거리다. 이승만은 허구헌날 북진통일론을 부르짖었다. 북한군 쳐들어오자 어떻게 했더라? 지 혼자 도망가고, 다리 폭파해 수 만명을 폭살시켰다.


 

한국인들이야말로 최근의 국제 정세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 전쟁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사드 배치가 실현된다면 한반도에서 강대국의 대리전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1950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는 폐허가 될 지도 모른다. 당시 미군은 한반도에 핵폭탄 40개를 심어논 걸로 알려져 있고, 트루먼, 아이젠하워, 맥아더는 한반도에서 핵폭탄을 터트릴 것을 고려했었다. 만일 이번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굳이 핵폭탄을 쓰지 않아도 핵은 누출될 것이다. 1950년 대에 없었던 핵발전소가 수도 없이 깔려있기 때문에.

 

나는 새누리당이 내년 대선을 포기한 것 같아 섬찟하다. 도대체 뭘 믿고? 사드 배치 시기가 묘하다. 만일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이승만은 전쟁 후에 정적들을 해치우고 오히려 체제를 더욱 더 공고히했다. 그래서인가?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이승만을 국부로 떠드는 건?? .

 

남북 간의 화해는 동아시아 평화에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면서 오히려 남북 간의 위기를 조장하기 바쁘다.


한국의 사드 배치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막아야한다.


세계 전쟁이 여전히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

 

그래서 저는 다음에 일어날 세계 전쟁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일어날 전쟁은 자본과 국가가 생존을 위해 일으키는 것이니까 그것을 막는 것은 곧 자본과 국가의 연명을 저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평화 운동과 혁명 운동은 별개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칸트가 말하는 영구평화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적대성이 없어진 상태, 즉 국가가 지양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세계동시혁명입니다.


미국이 물러서지 않으면 동아시아의 재구축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뒤집어 보면 미국은 그 점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반미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미국을 아시아에서 내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동아시아에서 미국 이외에 전쟁의 위기를 초래하는 요소는 없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상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북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은 동아시아 전체로 보았을 때 매우 중요합니다.

 

- 가라타니 고진, <가능성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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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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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톱질전쟁으로 불렸다. 톱질하듯 왔다갔다하면서 점령과 후퇴를 반복했다는 뜻이다. 전선이 왔다갔다 하면서 죽어나는 건 민간인들이었다.

 

11일 중국군 6개 군단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남하하기 시작한다. 유엔군의 견벽청야작전이 시작된다. 유엔군은 후퇴하면서 서울의 웬만한 곳은 모두 다 불을 질렀다.

 

14일 공산군이 서울에 입성했다. 당시 서울에는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노인들 뿐이었다. 치안 공백을 틈타 또 다시 학살이 벌어졌다. 1월 강화도에서 최소 200여명의 민간인이 우익 청년단체에 의해 학살당한다. 부산에서의 피난민의 삶도 아비규환이었다.

 

맥아더는 원자탄 26개를 폭파할 계획을 워싱턴 합참에 요청하지만 트루먼은 거부한다. 워커의 후임으로 리지웨이가 유엔군을 이끌고 반격에 나선다. 리지웨이의 몰살작전이 시작된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중국군 병사들이 죽어나간다.


 

이승만 정부는 국민방위군 설치법을 공포해, 국민방위군 50만 명을 모집한다. 50만 명을 어떻게 후송할 것인가? 답은 걸어서였다. 징집당한 국민방위군은 군복도 없었고, 제대로 된 식사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행군이 계속되면서 동사, 아사, 병사, 낙오자들이 속출했다. 국민방위군의 모습을 본 리영희는 이렇게 증언한다.

 

인간을, 포로도 아닌 동포를, 이렇게 처참하게 학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 6.25전쟁의 죄악사에서 으뜸가는 인간 말살 행위였다. 이승만 정권과 그 지배적 인간들, 그 체제 그 이념의 적나라한 증거였다.”

 

이승만 정권과 우익 단체들은 국민 방위군 예산 55억을 빼돌렸다.

 

430국민방위군 설치법 및 비상시 향토방위령의 폐지에 관한 법률안이 상정되어 통과되었다. ‘해골의 행렬을 시켜놓고 이제 귀환하라는 것이었다.

 

7월 김윤근, 윤익헌, 강석한, 박창원, 박기환 등 5명이 사형을 당했다. 국민방위군 예산이 국회 내 이승만 지지세력 및 정부 고위층, 군부 내 간부 등에 정치자금으로 유출되거나 뇌물로 상납되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지만 사건 당사자들이 너무 빨리 사형당하는 바람에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병사는 어머니를 부르는 대신 하고 죽었다고 한다. 가진자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고 빽 없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전쟁터로 나가 총알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함평에서 524명을 학살한 11사단의 학살극은 2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또 다시 발생했다. 11사단 9연대 3대대는 거창에서 민간인 719명을 학살한다. 3대대장 소령 한동석은 대현리, 중유리, 와룡리 주민 1천여 명을 신원국민학교로 소집했다. 성인 남자들은 이미 피신을 한 뒤라, 대개 노약자, 부녀자, 어린아이들 뿐이었다. 11사단은 주민들을 박산 골짜기로 끌고 가 기관총으로 집단 학살 후, 휘발유를 뿌려 불태우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켰다.

 

거창 사건은 <뉴욕 타임스> 보도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이승만은 신성모를 국방장관에서 해임시키지만 이후 주일 한국대표로 임명한다. 군법회의는 연대장 오익경에게 무기징역, 대대장 한동석에게 징역 10, 김종원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다. 그러나 다음해 이들은 사면받고 복권된다.

 

2004년 한나라당이 발의한 거창 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괘했으나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보상의 길이 막힌다. 정부의 거부 이유는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다른 한국 전쟁 민간인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와 보수 단체의 반발 때문이었다.

 

314일 국군과 미군이 공동묘지로 변한 서울을 재탈환한다. 이승만과 맥아더는 연일 북진을 주장하였다. 트루먼은 411일 맥아더를 해임시킨다.

 

이승만과 한국의 많은 반공주의자들은 맥아더가 핵폭탄을 투하하지 않은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홍구에 따르면, 맥아더의 만주 폭격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즉각 제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일이었다.

 

소련과 미국, 중국, 북한의 이해에 따라 710일 정전 협상이 시작된다. 휴전 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미군은 북한을 폭격하기 바빴고, 북한군 잔류 세력을 빨치산 투쟁으로 바빴다. 미군의 쥐잡기 작전이 시작된다. ‘쥐잡기 작전이후에도 빨치산 토벌은 계속된다.

 

53918일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된다. 이현상은 빨치산 투쟁을 하긴 했지만 남북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한 중간파적인 성격이 농후했다.

 

마지막 여자 빨치산으로 알려진 지리산의 전설정순덕이 입산 12년 만인 6311월에 체포된다.

 

이승만은 자유당을 창당한다. 자유당 창당의 대업은 이범석이 맡았다. 1217일 이범석을 중심으로 한 자유당이 탄생한다. 그러나 1223일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자유당이 탄생한다.

 

전쟁 중에도 학교는 열렸다. 대학 강의도 임시대학에서 계속 되었다. 대학생의 경우 징집을 피할 수 있었다. 과연 이 당시 대학생이라면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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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7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17 12:45   좋아요 2 | URL
심지어 가진자들 자식들은 전쟁전ㅇㅔ 이미 유학을 떠난걸로 보아 한국전쟁은 애초에 기획된걸로 보입니다.

이래저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만 죽어난거죠

yureka01 2016-07-17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기의 시대죠..미치광이의 시대. 관심법으로 죽이던 시대..

시이소오 2016-07-17 12:56   좋아요 2 | URL
미친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국익을 위해 사드를 놓는다? 정신병자죠.이게 인간일까요. 새누리당과 박그네는 전쟁 일으키려고 작정한듯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7-17 12: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창사건 특별조치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정부는 시기적으로 노무현 정부인 것 같네요.. 다른 민간인 피해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했다면 이를 받아들이면서 포괄적인 논의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이소오 2016-07-17 12:59   좋아요 3 | URL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 중 최초로 43위령제에도 참석하고 국가 차원의 사과말씀도 하셨는데 왜 그런것일까요? 팩트체크를 해봐야겠네요^^

겨울호랑이 2016-07-17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공부를 해봐야 겠네요^^ 시이소오님 덕분에 개인적인 과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ㅋ 학교 때 과제는 부담이었는데, 졸업 후 과제는 흥미롭네요^^

시이소오 2016-07-17 13:08   좋아요 2 | URL
거창도희생자 위문공원이조성된걸로 보아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긴 했는데요. ^^;

겨울호랑이 2016-07-17 1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시 한겨레 신문에는 이 법 통과 시 유사사례에 대한 예상 총액이 당시 돈으로 25조라고 하네요. 예산 문제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7-17 13:16   좋아요 2 | URL
허걱 25조라니, 이승만 국부라는 놈들한테 돈 받아내면 되겠네요.

겨울호랑이 2016-07-17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문학적인 배상액도 무시못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고한 국민의 피해에 대한 엄격한 배상기준의 확립이 선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차후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으려면요..

시이소오 2016-07-17 13:38   좋아요 2 | URL
이승만이 학살한 국민만 백만명, 거기다 625때 억울하게 돌아가신분들까지 합하면 족히 이백만명이 넘겠네요. 액수가 많다고 배상못한다는건 말이 안되죠. 박정희가 국가배상법을 막아놨어요. 이후 군대에서 죽으면 개값된다고 했죠.
이거 빨리 뜯어고쳐야한다고 봅니다.

겨울호랑이 2016-07-17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시이소오님 말씀처럼 국가배상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배상액이 무서워라도 허튼 짓을 못하겠지요. 한 걸음 더 나가 제조업 등 기업 위주의 정책과 법률에 대한 검토도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국민과 소비자를 위한 포괄적인 장책 입안이 새시대로 가는 출발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시이소오 2016-07-17 13:53   좋아요 2 | URL
자칭 보수라는 것들이 정권을 잡은 이후 나라가 실로 개판돼버렸네요.

겨울호랑이님 말씀처럼 하나하나 고쳐 새시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기억의집 2016-07-1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대단하시네요. 저는 이 책 읽으면 분노로 미쳐버릴 것 같은데...정리를 너무 잘하세요. 한 눈에 들어오네요. 이 페이퍼 읽으니 지난 번에 제가 본 영화는 이 시대의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드문드문 나는 게 평지에 죽은 사람들이 엄청 났었거든요. 한편으로 제 기억이 맞는지 의문스러운 게 독재 시대때 그런 영화를 심의 상영 허가 했을까 싶기도 하고. 이 글 읽으면서 지식인들이 얼마나 교활한지...제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읽고 있는데 정말 말장난 하나 싶을 정도입니다. 박유하나 일본 정부나.... 있는 자식들은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네요.

시이소오 2016-07-17 14:02   좋아요 0 | URL
ㅋ ㅋ 기억의 집님도 열정적이시네요. 이승만 찢어죽이고, 이승만을 국부라 하는것들, 어찌나 찢어죽이고 싶던지요.

모르긴 몰라도 그 영화는 아마 민간인 학살을 인민군으로 묘사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인민군에 의한 학살도 있었으니까요. 김일성이나 이승민이나 찢어죽일것들이 우상화로 지가 왕인줄알고 살았다는게 역사의 비극이네요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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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이전, 이승만 정권은 약 1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제주 4. 3 사건과 여순사건 외에도 수많은 학살극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491224경북 문경 산북명 석봉리 석달마을, 육군 제 2사단 25연대 3대대 7중대, 2,3 소대 병사들이 주민들 86명을 학살한다. 86명 중 여자가 41, 65세 이상 노인이 10, 12살 까지의 아이가 26명이었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5명이나 있었다.

 

미군과 이승만은 왜 이렇게 힘없고 연약한 국민들을 학살해야만 했을까.


 

625이전, 이승만과 정부의 허풍과 거짓말로 인해 공갈 때리다는 새로운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5/30 총선은 민국당과 이승만의 참패였다.

 

6.25 직전 남한은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무방비 상태를 넘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남침 유도설을 낳았다.

 

북학의 남침 위협 정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6. 25 직전인 610일 부로 일선 사단장들의 대규모 인사 이동을 단행했다. 북한 남침 위협을 심각하게 판단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624, 육본 정보국이 북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군 수뇌부는 바로 그날 비상경계를 해제하였다. 또한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 외출했다.

 

625일 새벽 440, 북한은 남침을 개시한다.

 

이승만은 627일 아무도 몰래 새벽 2시에 대전행 특별 열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 나간다. 9시에 대전방송국에서 서울중앙방송국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이승만 담화를 전화로 받아 방송하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선에서도 충용무쌍한 우리 국군이 한결 같이 싸워서 오늘 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가는 적을 추격 중이니 국민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

 

이 방송은 밤 10시부터 11시까지 서너 차례 녹음으로 방송되었다.



 

이승만과 수뇌부는 28일 새벽 230분경 한강다리를 폭파하였다. 이 폭파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아비규환의 참상이었다. 500명에서 4천 명의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폭사했다. 왜 이승만은 조기에 한강 다리를 폭파해 인명을 살상한 것은 물론이고 병력과 물자 수송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친 걸까.



 

628일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다.

 

이승만은 수원에서 대전, 대전에서 대구, 대구에서 다시 대전으로, 대전에서 이리, 이리에서 목포, 목포에서 부산으로 도망친다. 북진통일론은 부르짖던 이승만은 왜 이리 도망다니기에 급급했을까.

 

이승만은 714일 맥아더에게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맡긴다. 북한군은 720일 대전, 전주 23일 광주, 26~27일 여수를 점령 하는 등 파죽지세로 남한을 장악해 나간다.

 

716일 미군은 대형 폭격기 b 29 50대 이상을 동원해 1시간 가까이 서울 용산 일대를 폭격한다.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한 서울 시민은 4250, 부상자는 2413명이었다. 8월 중순을 넘기며 서울의 식량난은 절정에 달한다.

 

  

6.25가 터지자 제일 먼저 벌어진 뿌리뽑고 씨 말리기는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진다. 507~8월 수원 이남 전역에서 자행된 학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최소 20만 명이상이 학살 되었다.

 

626일부터 전주형무소 수감자 13400여 명을 포함 전주 지역에서 남한 경찰, 헌병, 방첩대에 의해4500명이 학살 당한다.

 

속칭 나주부대함정 학살사건도 있었다. 나주 부대란 나주경찰서 경찰관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100여 명 규모의 임시부대였다. 이들은 강진, 해남, 완도, 진도 등지로 후퇴하면서 이상한 짓거리를 저지른다. “우리는 인민군이다라고 알린 후, 인민군으로 위장, 인민군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을 사살한다.

 

726, 미군의 명령에 따라 500여 명의 피난민이 인근 마을 노근리에 당도한다. 미군 전투기 2대가 나타나 철로위를 걷던 주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철로 밑 굴다리로 숨었으나, 미군의 총질은 계속되었다. 726일부터 34일간 미군의 인간 사냥으로 300여 명이 죽어간 노근리 사건이다.


 

노근리 사건은 999월 미국 AP 통신이 보도해 세계적 이슈가 되고 나서야 한국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미군은 왜 피난민을 향해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걸까? 미 제25사단 일지에는 사단장 킨 장군이 전투 지역에 있는 민간인들을 적대시하고 사살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적혀 있었다. 노근리 사건 이후에도 피난민에 대한 무차별 사격은 계속 일어났다.

 

도대체 미국은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걸까. 강준만은 미국의 인종 차별 주의를 원인으로 꼽는다. 단지 그것 때문에? 한 미군 병사는 노근리 사건이 터진 지 49년 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아직도 바람 부는 시절이 되면 어린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승만 정부는 629일 이후 학도의용군을 모집한다. 15~17살 사이의 소년병도 있었다. 3천 명이 참전하여 2400명이 전사했다. 북한은 남한 지역에서 소년들을 끌고가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전선에 투입했다. 남한 지역 출신 의용군과 국군의 소년 지원병이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914일 밤 10,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다.


928일 서울이 수복된다. 피난을 갔던 도강파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했고, 정부 말을 믿고 서울에 남은 잔류파는 빨갱이, 불순분자, 부역자라는 의심을 받는다.

 

국회는 이승만에게 사과문을 발표하라고 의결한다. 그러나, 이승만은 거절한다.


내가 국민 앞에 왜 사과를 해. 사과할 테면 당신들이나 해요.” 사과는 고사하고 이승만은 잔류파를 빨갱이로 몰아 부역자 재판으로 학살한다. 사학자 김성칠은 정부의 적반하장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다.

 

그리고 어리석고도 멍청한 많은 시민은 정부의 말만 믿고 직장을 혹은 가정을 사수하다 갑자기 적군을 맞이하여 90일 이상 굶주리고 천대받고 밤낮없이 생명의 위협에 떨다가 천행으로 목숨을 부지하여 눈물과 감격으로 국군과 유엔군의 서울 입성을 맞이하니 뜻밖에 많은 남하한 애국자들의 호령이 추상 같아서 정부를 따라 남하한 우리들만이 애국자이고 함몰 지구에 그대로 남아있는 너희들은 모두가 불순분자이다하여 곤박이 자심하니 고금 천하에 이런 억울한 노릇이 또 있을 것인가.”

 

북한 인민군 역시도 전쟁 중 학살을 자행한다. 서울 미아리 고개는 9.28 수복 때 북으로 쫓겨가던 인민군이 수많은 사람들을 북으로 끌고 가면서 뒤처진 사람들을 지금의 성신여대 뒷산에서 학살해 한 많은 미아리 고개가 되었다. 학살은 악순환의 게임이었다. 경기도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도 그러한 예이다. 좌익 세력이 우익 단체 단원 50여 명을 처형했다. 9.28 수복 후 국군과 치안대의 보복이 이루어졌다. 이때의 희생자가 1천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승만은 930일 국군에게 38선 돌파 명령을 내린다. 유엔군은 묵인한다. 중국 외상 주은래는 중국 인민은 이웃 나라가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침략을 받을 경우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102일 맥아더는 워커에게 38선 돌파 명령을 내렸다.. 맥아더는 북한에 대해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지만 김일성은 거절한다.

 

1015일 맥아더는 트루먼에게 만주 폭격을 요구하지만 트루먼은 3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염려해 반대한다.

 

1019일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점령한다. 국군과 우익 청년단체들의 약탈이 시작된다.

 

남한에서 시작된 학살극은 북한에서 또 다시 재현된다. 북한 정부는 평양에서 철수하면서 1800명에 달하는 우파를 학살한다. 북한은 미국과 국군에 의해 17만 명의 북한 주민이 학살당했다고 발표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학살은 신천 학살 사건이다. 미군은 1017일부터 127일 까지 52일 동안 황해도 신천군에 머물면서 군 인구의 4분의 135천 여명을 학살한다. ‘신천 학살 사건은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통해 유명해졌다.






 

황석영의 <손님>에 의하면, 신천학살사건은 좌우대립에 의한 학살이었다. 20024월 방영된 MBC<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망각의 전쟁편>을 제작한 PD 조문묵에 따르면, 신천학살 사건은 주로 반공청년단에 의해 저질러졌다.

 

1950년 가을, 미군 폭격기 B 29 80대 이상이 연사흘 신의주를 폭격했다. 신의주 20만 인구의 3분의 2의 사람이 타 죽고, 도시의 80%가 잿더미가 되었다. 전쟁초기 미 극동군 공군사령관을 지낸 에멋 오도넬은 511월 중순 미 상원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한국에는 더 이상의 폭격 목표가 없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전 한반도는 단지 끔찍한 잿더미일 뿐이다.”

 

중국은 108일 참전을 결정한다. 이로써 전쟁은 미중전쟁으로 전환하게 된다.

 

중국군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소련이 11월에 참전하다. 중국군의 인해전술은 오해였다. 중국군은 신출귀몰 식의 유격 전술을 썼다. 중국군의 반격으로 유엔군은 121일부터 후퇴한다. 중국군은 126일 평양을 회복한다.

 

1130일 트루먼은 기자회견에서 원자탄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도쿄 맥아더 사령부 정보처 특수계획과정이었던 필립 코르소의 증언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이때 이미 40개의 원자탄이 배치돼 있었다. 원자탄 사용 발언에 놀란 영국 수상 애틀리가 미국으로 건너가 트루먼과 회담을 가졌다.

 

전쟁 중 끔찍한 민간인 학살은 도처에서 행해졌다. 1117일 공비 토벌 작전을 하던 국군은 전북 남원 강석리 마을을 습격, 마을 주민 90명을 학살한다. 12월 초순에는 전남 함평 지역에서 국군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자행된다. 11사단 20 연대 사병 두 명이 빨치산 습격으로 전사하자, 5중대 군인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보복을 했다.

 

군인들은 126일 함평군 월야면 정산리 장교마을에서 20여 명을 사살, 동촌마을에서 30 여명 사살한다. 127일에는 월야면 월악리 내동, 송계, 동산 등 7개 마을을 덮친다. 군인들은 아이들을 시켜 집집마다 불을 지르게 하고 주민 700여명을 동산 마을의 남산뫼에 집결시킨다.


 

11사단 5중대 군인들은 월야면 외치리 외치마을, 나산면 이문리 사정마을,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 쌍구룡 , 나사면 우치리 소재마을 등,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524명을 학살하고 가옥 1454동을 불태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국민을 학살한 걸까. 권복기는 또 다른 원인을 말한다.

 

“11사단 최덕신 준장이 내놓은 견벽청야(堅壁淸野)라는 작전 개념이 그것이다. 견벽청야는 중국 한나라 때 변경 지역 방어를 위해 사용된 전술 개념으로 성밖을 말끔하게 치워버리고 성을 굳게 지키면서 적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초토화작전과 비슷하다. 이 작전은 함평 사건이 난 뒤 60여일 뒤 거창에서도 쓰였다. 거창에도 최덕신의 11사단 병력이 투입됐다.

 

당시 9연대는 예하 대대에, 작전지역 내 인원은 전원 총살하라, 공비들의 근거지가 되는 건물은 전부 소각하라, 적의 보급품이 될 수 있는 식량과 기타 물자는 안전 지역으로 후송하거나 불가능할 경우 소각하라는 세 가지 지침을 내렸다.

 

여기에다 군 지휘부에서 각 부대에 내린 것으로 보이는, ‘하루에 공비 50명 이상 사살, 무기 50점 이상 노획이라는 목표가 군인들에게 민간인 학살이라는 손쉬운 전과를 택하도록 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군인들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괭이와 삽을 수거해 노획품으로 보고하기도 했다고.


견벽청야는 실제로 11사단 작전명령 5호였다. 나산면장 이오섭의 개입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살해당했을 것이다. 나산면장 이오섭은 함평경찰서 나산지서장 나병오를 설득해 같이 5중대장 대위 권준옥을 찾아가 항의했다. 이오섭은 권준옥과 그의 부하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그러나 이 장면을 본 20연대장은 불갑산 주변의 다른 마을들을 초토화시킬 계획을 포기한다.

 

129일 맥아더에 의해 흥남 철수 명령이 내려진다. 흥남 부두는 아비 규환이었다. 밟혀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추위에 못이겨 얼어죽은 시체가 매일 밤 수없이 버려졌다. 사람들이 흥남 부두로 몰려든 것에는 미군의 원폭 투하 소문이 큰 영향을 끼쳤다. 마지막 배가 출항하자 미군은 적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기 위해 항구에 대규모 함포 사격과 공중 폭격을 가했다. 이 포격으로 죽은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1950419,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나란히 1,2,3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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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7-16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도 강진에서 인민군에게 죽음을 당하셨는데, 인민군에 의한 죽음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시이소오 2016-07-16 14:59   좋아요 3 | URL
에효. 그런 비극이 있었군요. 명복을빕니다.

전쟁통에 너무 많은 국민들이 희생했네요.

두번 다시 그런 비극이 없어야 할텐데요ㆍ

겨울호랑이 2016-07-16 15: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습니다. 시이소오님 덕분에 아픈 과거를 빠르게 리뷰합니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이런 아픔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7-16 15:08   좋아요 3 | URL
우리 아이들에게 두번다시 한국전쟁 같은 비극을 물려주지 말아야겠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

루쉰P 2016-07-1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시생 끝내고 시험 합격함 돈 모아서 이거 현대사 전집으로 살거에요 정말 사고 싶은 책!!!

시이소오 2016-07-16 21:04   좋아요 0 | URL
저도 사고 싶어요 ㅎ ㅎ
합격 기원합니다 ^^

2016-07-16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17 11:40   좋아요 1 | URL
독재자들, 왜 국립묘지에 묻는걸까요. 부관참시도 관대한 대접이거늘.

법을 고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