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3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5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이승만은 58년 5.12 총선에 대비해 장경근을 내무부장관에 앉힌다. 장경근에게 떨어진 임무는 ‘국민반’ 조직이었다. 대통령 선거 대 국민 대책반. 이승만은 “국민들을 서로 감시시키지 않고 이대로 방치해 두면 야당 사람들에게 농간을 당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민반을 조직, 막대한 예산을 지원한다.
자유당은 국민반 운영과 함께 선거법 개정을 추진한다. 야당 선거운동을 탄압을 목적으로 한 선거법 개정에 반발, 야당은 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회를 구성한다. 5월 20일 장충단 공원에서 개최한 시국강연회에 20여만 명의 시민이 참석한다. 조병옥의 연설이 시작되고 불과 5분도 안 돼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나타나 앰프에 휘발유를 뿌리는 등 횡포를 부렸으나, 경찰들은 본체만체였다. 괴한들은 이정재의 부하 유지광 일파였다. 자유당의 지시로 이날 동원된 깡패들은 700여명이었고 이들에게는 모두 일당이 지급되었다.
3월 26일,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춰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이 이승만 양자로 입적되었다. 이후 이기붕을 ‘제 2의 이승만’으로 모시는 어용지식인들, 이른바 ‘만송족’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이승만과 이기붕 의 조상은 이씨 왕조 양녕대군으로 시작된다. 이승만은 17대, 이기붕은 18대 후손이었다. 이승만은 이씨 이강석을 양자로 삼아 이씨 왕조를 재현하려 했던 게 아닐까. 이강석의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고 한다. 이강석은 백주에 헌병을 구타하고 파출소 기물을 부수고 다녔다. 서울 법대에 부정으로 입학하기도 한다.
8월 21일, 무직자 강성병이 경북 동해 일대에 출현, 이강석을 사칭하고 다닌, 이른바 가짜 이강석 사건이 벌어진다. 가짜 이강석은 경찰서장, 시장, 군수등으로부터 금품 46만 5천 환을 탈취한다. 이강석은 법정에서 “내가 시국적 악질범이면 나에게 아첨한 서장, 군수 등은 시국적 간신도배이다”라고 말해 방청석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 리영희는 가짜 이강석 사건이 “해방 후 백성들의 13년 묵은 체증을 내려주었다”고 말했다.
영국이 대북한 수출금지령을 해제하자 이승만은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 선언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당시의 군대는 폭력과 병역부정이 횡행했다. 51년부터 56년까지 유학 간 3천 769명 중 입대한 자는 57년까지 한 명도 없었다. 국방부 모 고관실에는 인사청탁 처리부가 놓여 있었고, 청탁자는 거의 전부가 저명인사로 국회의원이 반 이상이었다.
5월 19일, 인천 만국 공원엔 맥아더 동상이 제막되었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나 위인들 동상은 없었다. 8월 소련은 대륙간 탄도탄 발사 실험에 성공한 이후, 10월 4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무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은 미사일 부대, 핵포병대 ‘펜토믹 사단’, 팬텀기 편대를 배치하는 등 한국의 군사기지화를 강화한다. 59년부터 한국군과 공동으로 전술핵무기 사용을 포함하는 전술 훈련이 시작된다.
한국 전 이후 ‘얌생이 몬다’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얌생이 몬다’라는 말은 계획적으로 다른 일을 빙자해 무언가를 훔쳐내는 일을 의미한다. 4월 ‘양주 열차강도 사건’이 발생한다. 한국인들이 미군 상사 윌슨과 공모해 벌인 일이지만 모든 책임은 한국인이 뒤집어쓴다. 김정자는 이렇게 말했다.
“철로 속으로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 열차가 멎었을 때 미군의 군수품을 훔치는 바라크촌의 떠돌이들. 그들은 미군의 보초병에게 들키면 총살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목숨을 담보하는 한계상황에서 그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도둑질을 감행한다. 그러나 도둑질을 하는 것은 비단 한국인 부랑민들만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술과 계집을 사기 위해서 도둑질을 하고 한국인은 먹고 살기 위해서 도둑질을 한다.’(오상원, <난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으로 몰리는 것은 오직 한국인뿐이다. 미군은 그 한국인을 ‘슬래키 보이(slacky boy)’라고 일컫고 깡그리 도둑으로 몰아붙인다.”
57년 7월 1일 극동 유엔사령부 서울 이전 이후 주한 미군 범죄가 급증한다. 오연호는 1957년 ‘소년소녀 사냥의 해’로 불렀다.
7월 6일 인천에서 미군의 송유관에 올라앉아 있던 세 살 먹은 아기 김용호가 미군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미군은 오발이었다며 이등병 도널드 파세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7월 25일 인천에서 송유관 근처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던 소년들을 향해 미군이 총격을 가해 1명이 사망한다.
9월 15일 전북 옥구권에서 풀을 베던 소녀들에게 미군이 총격을 가해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다. 소녀들이 철조망을 뚫고 들어와 풀을 베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0월 3일, 경북 김천에서 금지 명령을 어기고 학생들이 걸어갔단 이유로 미군이 발포, 중학생 송원준 군이 사망한다. 동아일보 10월 13자는 이렇게 보도한다.
“지난 1년 중으로는 122명이 그리고 지난 한 달 중으로는 3명의 한국인이 미군의 총에 맞아 즉사함으로써 한국측은 미군에 대한 재판권까지 요구하게 되었다.”
60년 1월 2일에는 두 여자가 전부터 알던 미군을 만나기 위해 철조망 구멍을 통해 영내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미군은 두 여자의 머리를 삭박하고 희롱한다. 미군은 이에 대해 “논평할 것이 없다”고 답변한다. 이승만의 측근들이 미군 범죄에 대해 보고하자 이승만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야. 우리가 위급할 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미군뿐이야. 미국 군인의 비행이 신문에 나면 대미감정이 좋지 못해지니 되도록 신문에 보도되지 않고 처리하도록 해야 해.”
(미2사단에 근무하는 미군 병사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이 윤금이 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윤금이 씨의 자궁에 콜라병을 박고 항문에 우산대를 꽂은 현장 사진)
50년 대 중반 천 여개의 건설업체들이 난무해 과다경쟁을 벌일 정도로 건설업은 호황을 구가하였다.
건설업계에는 정부 발주 공사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자유당 5인조’가 있었다. 대동공업, 조흥토건, 극동건설, 현대건설, 삼부토건.
자유당의 정치자금원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이 바로 건설업이었다. 대형 정부 발주 공사를 수주할 경우 공사 가격의 30%는 미리 공제되어 자유당 정치자금으로 납부되는 게 원칙으로 통용되었다.
56년 4월 당시 결석 아동은 70만 명이었다. 57년 5월 경기도 안성군 백성국민학교에서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교정에 있는 등나무를 칡뿌리로 잘못 알고 벗겨 먹다 27명이 중독된 사건이 발생한다. 죽산국민학교에선 학생 922명 중 210명이 하루에 한끼를, 135명이 하루 두끼를 굶고 있었는데, 이 학교 교장은 결식아동용으로 배급된 분유를 자기 집 돼지 사료로 먹였다.
농촌에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젊은 처녀들은 대거 도시로 이주하여 ‘식모’가 되었다. 이재오는 “농촌에서 ‘먹을 것’이 없어 도시로 나오고, 공장에서 ‘먹을 것’이 없어 거리로 나오고, 사회 전반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농촌에서는 보릿고개를 못 넘어 소나무 껍질, 칡뿌리, 산나물, 향토흙으로 배를 채워야 했고 견디다 못한 열아홉 ‘순이’는 실패 감던 손을 놓고 미군의 품안에 안겨 맥주를 마시는 ‘에레나’가 되어야 했다”고 말했다. 고은은 <에레나>에서 이렇게 적었다.
1956년 여름
저녁 야학당에서 돌아오는 길
지프차 미군 두 놈에게 강간당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하늘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고향은 감싸주는 곳이 아니라
손가락질하는 곳이었습니다
울며 집 떠나
팔자대로 경기도 송탄 미군부대 밖 양공주가 되어버렸습니다
순자가 에레나가 되었습니다
- 고은, <만인보 16>
1월 11일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이 결성된다. 관훈클럽은 ‘풀브라이트 동창생’들이 조직한 단체였다. 애초에 태생이 친미적이었다. 당시 언론인들의 부정부패는 ‘말세’였다. 리영희는 이렇게 말했다.
“전국의 자가용 승용차가 5천 801대밖에 없었던 그 시기에, 모여 앉으면 자가용으로 즐긴 주말 드라이브의 화제로 꽃을 피우는 취재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권력과 돈과 언론기관은 한통속이 되어 뼈밖에 안 남은 민중에게서 고혈을 짜내고 있었다. 민중은 원성은 천지간에 가득 차 있었다. 타락한 신문인, 기자들의 부패는 내가 방금 풀려나온 군대의 장교들의 부패를 뺨칠 정도였다. 장교들의 부패는 뻔뻔스럽고 신문인들의 부패는 지능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
56년 2월에는 만화 전문 어린이 월간잡지인 <만화 세계>가 창간된다. 이후 <만화 소년>, <만화 학생>, <칠천국>, <만화왕>, <샛별>, <만화왕국>등의 어린이 만화잡지가 쏟아져 나온다.
57년 <문학예술>지 신인문학상 당선작인 동시에 그 해 제2 회 동인 문학상 수상작으로 뽑힌 화제의 작품은 선우휘의 <불꽃>이었다. 반공이념 강화에 ‘기여’한 선우휘는 이후 <조선일보>를 통해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하는 개새끼로 맹활약한다.
이 해의 히트곡은 김진경 작사, 이재현 작곡, 윤일로 노래의 <기타부기>였다.
5월 19일, <한국일보>의 주관아래 미스코리아 대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