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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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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건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소란스럽던 90년 중반 경이었을 것이다.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 생의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고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알아봤더니 한국엔 그런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그리고 수 십년이 지난 작년에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을 읽었다. <읽는 인간>을 읽었던 탓일까. 작가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재미도 없는 <익사>를 손에서 떼어내지 못했던 것일까? 흡사 거머리처럼 책이 손에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집어들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200페이지를 훌쩍 넘겼다.

 

소설의 전반부, 오에가 천황폐하를 찬양하는 가사의 독일어 군가를 힘차게 따라 부르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아니, 오에가? 일본 정부에서 수상하는 상을 나는 민주주의 그 이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수상을 거부한 오에가? 일본 평화 헌법 9조를 지지하는 ’9조회의 멤버인 오에가 천황 폐하를 찬양하는 군가를 목청껏 따라부르다니! 어린 시절 몸에 새겨진 기억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구나. ’박사모와 같은 버러지들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와, 어린 시절에 새겨진 군국주의의 기억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도 남아있는 거구나. 세뇌된 좀비들.

 

사소설임에도 다루는 이야기의 층이 다채롭다. 토론을 한다면 무수한 광맥을 캘 수 있는 소설이다. <익사> 를 페미니즘 소설로 독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에보다 13살이나 어린 이문열이 <선택>이라는 시대착오적 소설을 쓴 것에 비하면, 1935년생인 오에는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실제로 바보인 아들 아카리에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넌 바보다라고 말해버리는 오에. 아들과의 관계 회복은 어떻게 할려구?? 아카리의 말하는 방식은 정상인과는 다른데, 그게 묘하게 유머스럽거나 감동을 준다. 아래의 문장을 읽다 심장이 뚫렸다.

 

가정의 권력자로서 자신에게 화를 내는 아버지의 신체의 중심적 부분, 즉 얼굴이나 머리를 향해 화해의 손을 뻗을 용기는 없다. 화가 난 아버지의 얼굴은 무섭다. 그러나 통풍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뻘겋게 부어오른 발은 신체의 주변적 부분이다. 그런 발에게라면 내 쪽에서 다가가 착한 발이라고 말해 줄 수 있다. “발아, 괜찮아? 착한 발, 착한 발! 발아, 괜찮아? 통풍, 괜찮아? 착한 발, 착한 발아!”

 

p222.

 

, 아버지. 나는 정말 여태껏 아버질 증오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난 아버지가 너무 싫다. 지하철에서 옆 칸의 승객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핸드폰 통화하는 아버지. 어딜 가건 아무에게나 반말하는 아버지. 자식들의 꿈은 무시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줄 소모품으로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 어찌나 시달렸던지 내 고교시절은 중세와도 같은 암흑기였다. 어쩌면 우리 아버진 돈이 있었더라면 최순실 뺨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아프다. 그렇게 증오했는데. 핏줄이 뭐라고 . 그런 아버지 얼굴을 앞에 두고 화해의 말을 하긴 낯간지럽다. 그러나, 발에게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착한 발이라고 할 수 없을지언정.

 

아카리의 나의 대사는 전부 발췌해 적어두고 싶다.

 

아빠, 잠이 잘 안 옵니까? 제가 없어도 잠들 수 있습니까? 기운을 내서 잠들어야 합니다.”

 

오에의 소설을 연극으로 올리려는 우나이코라는 여성 캐릭터에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실존인물일까? 마치 아마존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캐릭터. 우나이코는 <죽은 개를 던지다>라는 연극을 기획해 무대에 올린다. 무대 위에서 토론이 벌어지고 관객들은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배우에게 죽은 개를 던진다. 물론 실제 개는 아니고 인형이다. 만일 한국에서 무대에 최순실이나 바크네 역을 맡은 배우가 있다면 인형에 맞아 죽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우나이코는 여고시절, 큰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다. 우나이코는 야스쿠니 신사의 커다란 일장기가 흔들리는 걸 보고 토하고 만다. 그리고 깨닫는다. 문부성 관료인 큰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큰 어머니로부터 낙태를 강요당한다. 이후로 우나이코에겐 낙태와 강간이 가장 큰 주제가 된다. 마을의 어머니들은 군인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우나이코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강간과 역시나 국가에 의해 자행된 자신의 강간을 엮어 메이스케 어머니란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로 한다. 물론 관객들은 죽은 개를 준비할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문부성 관료인 큰 아버지는 우리로 치면 국정원스런 똘마니들을 급히 보내 우나이코를 납치한다. 소설의 결말 역시 충격적이다.

 

오에의 어떤 고백들도 심장을 찌른다.

 

후카세 번역은 이러하네. ‘이런 글 조각 하나로 나는 나의 붕괴를 지탱해왔다.’ <황무지>에서 이 구절 앞에 나오는 단테와 네르발을 인용한 문구를 하나로 묶어 이런 글 조각 하나라고 한 걸세. 그 글 조각들에 의지해 나의 붕괴를 지탱해왔다. 원시는 이렇게 되어 있네. ‘These fragments I have shored against my ruins’

 

이 구절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 해석은, 이 나는, 붕괴에 다다를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였네. 난파될지도 모를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하려고......그리고 이런 글 조각 하나가 육지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다.......내 해석은 shored의 뜻, 육지로 올라왔다. 상륙시켰다라는 말의 어감에 영향을 받고 있네. 이제 난 육지에 있다. 이런 글 조각 하나에 불과한 것에 의지해, 붕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겨우겨우, 그런 안도감을 공유하면서 이 한 구절을 이해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새로이 이해하게 되었네. 나는 지금도 실제로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어떻게든 그 위기를 버티려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여전히 이런 글 조각 하나가 의지가 되고 있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후카세 번역과 엘리엇의 원시가 더할 나위 없이 딱 맞아떨어지더군..... “

 

p348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 말을 들은 우나이코는 눈물을 흘린다. 우나이코의 눈물의 의미는 나와 다르지만 나 또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나야말로 내가 쓰는 이런 글 조각 하나로 붕괴의 위기를 버티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서글퍼라.

 

아마 그럴 것이다.

이따위 글 조각 하나로 나는 나의 붕괴를 막아왔다. 

     

p220. 반핵 시민운동이 왕성했던 때 유럽으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건너갔던 오빠의 체류가 생각보다 길어졌었지요. 그때 아카리는 아빠가 죽었다고 믿어버렸고요. "그렇습니까? 다음 주 일요일에 돌아옵니까? 그때가 되면 돌아온다지만, 지금 아빠는 죽었습니다. 아빠는 죽고 말았습니다요!"

p. 364.
"‘맥베스 문제’라는 건 뭘 말하는 거죠?"
"기노시타 준지가 ‘이런 일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서로가 미쳐버리고 말아요’라고 번역했던, 맥베스 부인의 대사 같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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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7-02-07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조각조각은 모여 댐이 되다

시이소오 2017-02-07 22:12   좋아요 1 | URL
아, 테오도라님 감동적인 댓글이네요. 육지가 아니라 댐이 되다니.

조각조각이 모여 아름다운 조각보가 되듯이요 ^^

2017-02-08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 이런 글조각 따위가,가 아니라 이런 글조각 따위로, 요. 서글퍼라 2222. 얼마전 겐자부로 전집을 내다 버렸어요. 아주 옛날 고려원에서 그런걸 펴냈었죠. 아마 죽은 자의 사치였을 거에요, 그 시체닦기.

시이소오 2017-02-08 13:25   좋아요 0 | URL
죽은자의 사치, 였군요. 버리시다니 아까워라 ㅎ

stella.K 2017-02-08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근사하군요.
전에 아름다운 에너벨리 리 뭐 어쩌구하는 소설 있었잖아요.
거기에 김지하도 나오고 그러던데 이것도 그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가 봅니다. 그냥 현재 살아있는 사람을 소설로 옮긴 뭐 그런...
그책 뭔 말인지 이해불가라 언젠가 중고샵에 팔아버린 것 같은데
전 노벨문학상 알러지 반응이 있는 것 같아서.ㅠ
어느새 빠져드셨군요. 그런 소설이 좋은데...

시이소오 2017-02-08 17:37   좋아요 0 | URL
저도 어쩌면 읽는인간을 안 읽었으면 읽다 말았을지도 ㅎ

AgalmA 2017-02-10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 소설을 읽고 나면 시련을 같이 겪고 아주 작은 문으로 힘겹게 빠져나온 기분이 들어요. 뒤돌아보면 겐자부로는 손을 흔들며 문을 닫죠. 나만 나오고 그는 여전히 거기 있어요! 같이 빠져 나온 게 아니라서 그의 다른 책으로 찾아가 이번엔 같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아, 비유가 너무 거창; 노벨문학상도 받았는데 내가 이런 연민을 가져야 하나ㅎㅎ! 시이소오님 결론과 비슷한 상태로 종결^^;;

시이소오 2017-02-10 08:16   좋아요 0 | URL
아갈마님 댓글을 보고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이유를 알았네요. 더 이상 시련을 겪고싶지 않은거네요. ^^;

우연히 2017-03-1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제 붕괴를 막아줄 무언가를 찾고싶습니다. 글이 됐던 무엇이 됐던요...이런게 아니라는걸 알고있는데도 헤어나올수가 없네요.

시이소오 2017-03-19 11:25   좋아요 0 | URL
무언가를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무엇이 됐건. 감사합니다 ^^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와사키 나쓰미 지음, 권일영 옮김 / 동아일보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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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0년도 일본에서 하루키의 <1Q84>보다 더 많이 팔린 책이라니. 단숨에 읽었다. 일본에서 250만부가 팔렸다는데 그 정도로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나로선 소설의 이야기보다는 경영학을 소설에 도입한 아이디어에 더 관심이 많았다.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감동 깊게 읽은 저자는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그 아이디어는 이 한 권의 소설로 결실을 맺었다.

 

소꼽친구인 유키의 부탁으로 호도고의 야구부 매니져가 된 미나미는 어느날 서점에서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구입해 읽는다. 책의 가르침을 야구부에 적용한 미나미는 오합지졸호도고 야구부를 도 대회 1위의 강팀으로 변모시킨다. 그야말로 소설같은 이야기다.

 

미나미는 우선 야구부가 무엇인지를 자문한다.

 

모든 조직에서 공통된 관점, 이해, 방향 설정, 노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사업은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나?를 반드시 정의해야만 한다.

 

야구를 하는 것과 같은 빤한 대답이 답일 수는 없다. 미나미는 답을 찾기 위해 <매니지먼트>를 처음부터 다시 꼼꼼하게 읽다가 이런 부분을 발견한다.

 

기업의 목적과 사명을 정의할 때, 출발점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고객이다. 사업은 고객에 의해 정의된다. 사업은 회사명이나 정관, 설립 취지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여 만족을 얻고자 하는 고객의 욕구에 의해 정의된다. 고객을 만족시키는 일이야말로 기업의 사명이고 목적이다. 따라서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기업의 외부, 즉 고객과 시장의 관점에서 보아야 비로소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야구부의 고객은 누굴까? 미나미는 야구부원인 마사요시와의 대화를 통해 고교야구에 관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객이며 심지어 야구부 부원들 역시도 고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야구부는 고객에게 감동을 주기위한 조직이라고 정의 내린다.

 

이런 식으로 미나미는 책에 씌여진 피터 드러커의 가르침에 따라 야구부의 목표를 정하고 이노베이션을 단행한다. 그 결과 고시엔 대회에 진출한 호도고 주장이 된 마사요시는 리포터로부터 고시엔 대회에서 어떤 야구를 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어떤 야구를 보고 싶으신데요?”

 

우리는 여러분이 어떤 야구를 보고 싶은 건지 알고 싶어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보고 싶어 하는 야구를 하고 싶기 때문이죠. 우리는 고객으로부터 출발하고 싶습니다. 고객이 가치를 인정하고, 필요로 하며,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야구를 시작하고 싶은 겁니다.”

 

바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순한 아이디어 아닌가. ‘매니지먼트와 야구매니저의 패치워크. 이 책을 읽으면서 로버트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떠올렸다. (어느 책이었더라. 어떤 역자는 <선과 자전거 관리술>로 번역했던데. 전혀 조사를 안 한 거지. 무식하면 성실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 책은 도덕경을 오토바이 관리술에 적용시킨다. 이 책의 한글 번역판의 이란 역어는 노자 도덕경의 를 뜻한다. ‘오토바이 수리를 통해 를 말하다니! ‘선과 야구’, ‘선과 축구’, ‘선과 골프’, ‘선과 이종격투기’, ‘선과 설거지등등의 시리즈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아이디어도 여러 변형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피터 드러커를 읽은 한 매니저가 무명의 아이돌을 전 세계적인 인기 아이돌로 변모시킨다던지


라이트 노벨류의 소설이건만 한 방 제대로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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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10-11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디어는 참신해 보여요. 행정학 공부할 때 피터 드러커 경영이론 잠깐 스쳐지나간^^ 기억은 있지만.

시이소오 2016-10-11 12:07   좋아요 1 | URL
아이디어가 돋보이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긴한데 피터 드러커 로부터 많을걸 배워서, 미워하기 힘드네요.^^

만화애니비평 2016-10-11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니로 봐야합니다. 모에루!

시이소오 2016-10-11 14:21   좋아요 1 | URL
애니가 있는줄 몰랐네요. 어마어마한 히트작이군요

오거서 2016-10-11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구이야기라고 하니까… 시이소오 님의 선구안에 감탄합니다. ^^

시이소오 2016-10-11 21:09   좋아요 1 | URL
선구안이라기보단 무턱대고 방망이를 휘둘다보니 우연찮게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를 친 경우라고나 할까요 ㅎㅎ

고양이라디오 2016-10-1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이 서재에 들어오면 보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시이소오님이 워낙 방대하게 읽으셔서 제가 부분집합으로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ㅎㅎ

시이소오 2016-10-18 15:31   좋아요 0 | URL
고양이라디오님 만큼 방대하진 않아요 ^^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사뮈엘 베케트 선집
사뮈엘 베케트 지음, 전승화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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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사가 없는 소설을 싫어한다. 그런데 왜 베케트를 읽었던 걸까? 나탈리 레제의 베케트 전기 <사뮈엘 베케트의 말없는 삶>을 읽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베케트의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서사도 없고 묘사도 없다. 오로지 목소리()의 헛소리만이 가득하다. 이 소설은 애초에 이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을 왜 읽었는가

재밌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떠올라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카프카,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 들뢰즈, 바르트, 조로 아스터교, 수메르 신화, 데모크리토스, 원자, 기하학, 물리학, 신학, 특히나 모리스 블랑쇼. 쓰고 싶은 말들이 흘러 넘치는데, 이걸 다 쓰려면 독후감이 아니라 아예 논문을 써야 할 지경이다.

 

베케트는 1934년에서 35년 사이에 250회에 걸쳐 비온 박사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었다.

 

우리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귀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에 대해 자기 살갗의 구멍들에서 흘러나오는 땀에 대한 것과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 대목을 상기시키는 베케트의 말은 몇 년 후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 등장한다. “내 눈물이 가슴 위에서, 옆구리에서, 혹은 등을 타고 내리며 나를 놀리는 게 느껴진다.” 이 둘은 모두 동일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말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의 눈물을 찾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찾음으로써 암흑으로부터 헤어나고자 하는 거대하고 이산된 몸이 그것이다.

 

-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없는 삶>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는 오로지 자아의 무한한 분열밖에는 없다. 소설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마후드 일 수 있고, 웜일 수도 있으며, 신일 수도 있고, 오물 덩어리일 수 도 있다. 혹은 그 모든 것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베케트적인 영화라면 아마도 <존 말코비치 되기>가 아닐는지. 이런 소설에서 논리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베케트는 왜 이런 정신분열증 환자의 헛소리로 이루어진 소설을 썼을까.

 

언어활동이란 모두 분절되어 있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정하는 것처럼 비정형적이고, 성운 모양을 한 세계를 쪼개는 작업 그 자체입니다.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득한 언어 규칙이고, 내가 몸에 익힌 어휘이며, 내가 듣고 익숙해진 표현, 내가 아까 읽었던 책의 일부입니다.

 

이와 반대로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하고 때 묻지 않은 나의 의견은 대개의 경우 비슷한 이야기가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맴돌고 앞뒤가 모순되며 주어가 도중에 바뀌는, 그래서 자기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난감한 문장이 됩니다.

 

따라서 내가 말하고 있을 때 내 속에서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 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베케트는 자기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문장을 통해서 진정한 자아가 도출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윗 문장에서 방점은 잘 모르는에 찍혀져야 한다. 제임스 조이스였다면 에피퍼니의 순간이라 했을 것이다. 조이스가 여러 개의 에피퍼니를 수집했다면 베케트에겐 인생에 단 한 번의 에피퍼니의 순간이 있었다. 베케트는 계시라고 표현했다. 어머니를 간호하던 밤,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친다. 그것이 지나고 그는 안다.

 

사물들에 관한 일반 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얻은 그것은 자기 자신에 관한 아주 비좁은 지식이다. 이제 자신이 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 자꾸 곱씹는 일(조이스처럼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않는다....)이 끝난다. 대신, 죽어가는 어머니의 방에서 둥글고도 단단한, 마치 한 개의 돌멩이 같은 말이 떠오른다. 받아들이다(consentir). 자신의 취약함을, 어리석음을, 한계를 받아들이자. 찰나의 계시.

 

-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없는 삶>

 

베케트는 이후 자신의 모국어 안에서만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파울 첼란의 가르침을 버리고, 비코의 말을 따른다.

 

무릇 뛰어난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자기 고향의 말을 잊어버리고 말들의 최초의 불행 상태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베케트는 이후 영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다. 최초의 불행 상태, 결핍의 언어. 그 결핍의 언어를 가지고 베케트는 침묵과 말 사이를 오간다. 계속.

 

.....계속해야만 하잖아, 나는 계속할 수가 없어, 계속해야만 해, 그렇다면 내가 계속해야지, 단어들을 말해야만 해, ......그 단어들이 어쩌면 내 이야기의 문턱까지, 내 이야기로 통하는 문 앞까지 나를 데려갔을 수도 있고, 에이 설마, 만일 문이 열리면, 내가 있을 거야, 침묵이 있겠지, 내가 있는 그 곳에,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걸 영원히 모를 거야, 침묵 속에서는 누구도 알지 못해, 계속해야만 해, 나는 곧 계속할 거야 (p119)

 

윗 문장이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마지막 구절이다. 왜 그는 끊임없이 계속 말해야 할까?

베케트는 언어에 구멍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언어에 구멍을 내기 위해선 계속 말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이 채워지지 않는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분석가가 말없이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피분석자의 내용 없는 이야기에 분석가가 응답을 하면, 그것도 긍정적인 응답을 하면 침묵 이상으로 피분석자의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 증진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피분석자가 말하는 언어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일종의 채워지지 않음이 아닐까? 즉 피분석자라는 주체는 말하면 말할수록 자기의 존재감이 희박해지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중략) 결국 피분석자는 자기의 존재가 상상의 세계 속에서 그가 만들어낸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고 이 작품이 지금 그의 자기확신과 어긋난 것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닐까? <정신분석에서 말하기와 언어의 기능과 영역>에서

 

 

분석가와 피분석자의 주고받기는 하나의 이야기 세계를 구축합니다. 이 이야기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악곡이 어떤 의미에서든 현실의 재현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재현도 상기도, 진실의 개시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화 작용에 다름 아닙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창조행위이지요.

 

라캉이 자아moi’je’주체sujet’라는 동의어를 마술사처럼 교묘한 손놀림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이유도 이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아는 주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언어로 거기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체를 통해 계속 말을 걸어야 하는 근원적인 채워지지 않음입니다. ....그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말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도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그곳에 있다는 것만은 말할 수가 있습니다. 라캉의 자아는 그 말로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이 말을 불러오는일종의 자기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프로이트는 자아를 언어의 핵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주체가 로서 말을 하고 있을 때 늘 구조적으로 주체에 의한 자기 규정, 자기정위의 말로부터 도망치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더욱 말을 하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이 바로 자아입니다. 따라서 대화의 목적은 이 자아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아있는 곳을 찾고 그 작용을 끝까지 지켜보는 일입니다. 그것이 정신분석의 일입니다.

 

- 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주체가 아무리 말을 하더라도 자아에 도달할 수 없다. 베케트는 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받아들이지만 어쩌면 그것만이 창조행위가 아닐까.

 

만일 베케트가 오늘날 활동했다면 그는 연극, 영화 연출가보다 힙합 프로듀서나 힙합 아티스트가 되지 않았을까. 요즘 <언프리티 랩스타>를 즐겨 본 영향 탓일까. 책을 묵독하면서 랩을 하듯이 읽었다. 이런 식으로 읽은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읽다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한참이나 정신이 나가 있었다. 아직 안타깝게도 마약 경험이 없는데 뽕 맞은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책인지라 뇌가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뉴런과 시냅스의 새로운 연결을 모색해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랩처럼 읽히는 운율을 타는 문장 탓이었을까. 마치 테크노 음악에 취한 것처럼?

한마디로 약 빤 느낌이었다.

 

베케트를 통해 처음으로 워크룸 프레스 출판사 책과 접했다.

이웃님들이 왜 워크룸 프레스 책을 사 모으는지 절절이 느꼈다.

최고의 편집이다. 편집에 감동을 먹다니!!

 

나탈리 레제의 <사뮈엘 베케트의 말없는 삶>을 손에 잡을 땐 마치 여인의 가녀린 허리를 잡는 듯하여 놓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책이 이렇게 손에 쏘옥 안길 수 있지? 놓았다 하더라도 다시 손에 쥐었다. 반납일 지났는데 아직 반납 못하고 있다. , 이 책 진짜 반납하기 싫다

 

워크룸 프레스 출판사에서 출간된 사뮈엘 베케트 책을 계속 읽어야겠다.

 

계속 읽어야 하잖아, 계속 읽을 거야, 계속 읽어야만 해,

나는, , 계속 할,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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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9-07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은 왠지 어려울 것 같은데 편집이 좋다니 또 혹하네요.

근데 이거 원 허리 굵은 사람은 서러워 살겠습니까?
평생 좋아하는 사람 품에 안 겨 보지도 못하고..
왜 남자들은 허리 가녀린 여자만 좋아할까요?ㅠㅠ
허리가 굵던 가녀리던 여자는 똑같은데...
그럴 땐 남자가 팔이 짧은 것을 안타까워해 줄 수는 없는 건가요?ㅠㅠㅋㅋ

시이소오 2016-09-07 14:33   좋아요 0 | URL
굵은 허리도 좋아합니다. ㅋ

안 안기는 책도 좋아하구요 ㅋ ^^

cyrus 2016-09-0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히려 서사 없는 소설이 재미있어요. 굳이 줄거리를 파악할 필요 없이 그냥 어떤 상황이 전개되는지 보기만 하면 되잖아요. 계속 보다 보면 지루하지만, 일반 소설과는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어요. 재미없어서 읽고 싶지 않은데도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보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

워크룸프레스 사드 전집을 모으고 싶은데, 출간 소식이 뜸하네요.

시이소오 2016-09-07 17:42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베케트 소설이 맞으실듯

사드전집을 기획하다니 대단한 출판사에요 ^^

나뭇잎처럼 2016-09-08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가운 이름. 베케트. 베케트 하면 저는 자동반사적으로 크누트 함순이 떠올라요. 베케트가 좋으셨다면 크누트 함순도 좋아하실 듯!

시이소오 2016-09-09 18:15   좋아요 0 | URL
베케트에 비하면 함순은 친절하지 않나요? 굶주림 을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어야겠어요 ^^
 
로마의 일인자 3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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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개선행진을 하며 로마로 돌아온다. 유구르타는 툴리아눔 감옥에 갇힌다. 술라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율릴라가 아이들을 돌보지 않자 장모인 마르키아에게 아이들 보육을 부탁한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아퀼리우스와 술라를 대동하고 전군을 이끌고 갈리아 지역으로 출정한다. 술라는 마리우스의 사돈조카 가이우스 루시우스에게 그의 동성애에 대해 경고한다. 술라는 전쟁이 없는 전쟁터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마리우스에게 게르만족의 스파이로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마리우스가 허락하자 술라는 퀸투스 세르토리우스를 데리고 게르만족에 잠입한다.

 

마리우스가 없는 로마에서는 식량 부족 난을 앞두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곡창지대인 시칠리아에 식량 부족 사태 때문이었다. 시칠리아에서 누군가 곡물가격을 조작하고 있었다.

 

스카우루스는 차석 집정관 핌브리아와 수도 담당 법무관 멤미우스를 의심하다 혐의를 돌려 오스티아 항의 재무관인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를 의심한다. 사투르니누스는 원로원에서 재무관 직위에서 해임된다. 로마에서는 아무도 사투르니누스의 결백을 믿지 않았다. 사투르니누스와 가장 친한 친구는 법률 서류 작성자로 명성을 누리는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글라우키아였다. 사투르니누스는 누명을 벗기 위해 마리우스를 찾아간다. 사투르니누스는 마리우스에게 호민관 선거에서 당선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사투르니누스에게 호감을 느낀 마리우스는 사투루니누스를 호민관으로 당선시킨다.

 

스카우루스와 누미디쿠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민회는 마리우스를 부재중 집정관 직 후보로 등록시킨다. 드루수스가 마리우스를 지지하자 카이피오 2세는 드루수스의 여동생인 아내 리비아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시아버지인 카이피오의 수발에 지친 리비아는 집밖에도 나갈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카이피오 2세는 언제든 나가고 싶을 때 나가라고 말한다. 리비아는 오빠인 드루스스의 권위 때문에 바깥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마리우스의 지원으로 호민관에 당선된 사투르니누스와 노르바누스는 마리우스를 위해 최하층민 병사들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분배하는 토지법을 통과시킬 계획을 세운다. 원로원에서 사투르니누스는 법안을 통과시킬 연설을 하고, 달마디쿠스는 반대 연설로 원로원 의원들로부터 환호를 받는다. 달마티쿠스는 연설 이후 곧장 죽음에 이른다.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토지법이 평민회에서 통과된다. 사투르니누스는 글라우키아와 축배를 들던 중, 포도주잔에 남아있던 찌꺼기를 빈 접시에 던진다. 사투리니누스는 가운데에 뭉친 덩어리에서 바깥쪽으로 튀어나온 빗살의 숫자를 센다. 셋이었다. 글라우키아가 포도씨를 뱉어 접시에 나타난 모양을 없애 버렸지만, 떨어진 씨앗도 3개였다.

 

그걸보고 사투리니누스는 둘 다 3년 후에 죽게 될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카이피오는 톨로사의 황금을 훔친 사실이 들통나 로마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한다. 스카우루스와 누미디쿠스는 스카우루스의 아들과 달마쿠우스의 딸이자 누미디쿠스의 조카인 메텔라 달마티카를 결혼시키기로 약조한다. 시민들이 카이피오 집을 습격할 것에 대비해 리비아는 오빠 드루스스 집으로 피신한다. 카이피오는 추방지로 스미르나를 택한다. 카이피오가 훔친 황금이 스미루나에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온 리비아는 자신이 짝사랑한 남자가 감찰관 카토의 손자인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도임을 올케인 세르빌리아로부터 전해듣는다. 리비아는 카토가 노예의 딸에게서 태어났음을 전해듣고, 카토가 노예의 후손이라는 것에 실망한다.

 

달마티쿠스의 죽음으로 공식이 된 최고신관에 아헤노바르부스가 당선된다.

 

마리우스의 사돈 조카인 루시우스는 동료 병사에게 치근대다 결국 살해된다. 마리우스는 루시우스를 살해한 병사를 1계급 특진시키고 포상금을 안긴다.

 

스카우루스는 직접 시칠리아 곡물 가격을 가지고 장난 치는 범인이 핌브리아멤미우스임을 밝혀낸다. 스카우루스는 사투르니누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어느날, 포룸 로마눔에 노예신분에서 해방된 로마 시민인 에퀴티우스라는 자가 로스트라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한다. 그는 자신이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에퀴티우스는 그라쿠스와 흡사한 용모로 인해 로마인들 사이에 영웅으로 부상한다.

 

군대로 복귀한 술라는 마리우스에게 게르만족에 대해 상세히 보고한다. 여러 부족으로 갈라진 게르만족은 최근 젊은 지도자 보이오릭스에 의해 통일된다. 보이오릭스는 세 가지 경로로 이탈리아를 침략할 계획이다. 술라는 게르만족 아내인 헤르마나와 쌍둥이 아이들을 게르마니아에 사는 케스키족에게 맡기고 마리우스에게 도망쳐 온다.

 

마리우스는 또 다시 집정관에 출마하기 위해 로마로 돌아간다. 술라는 오랜만에 만나는 율릴라가 점점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그의 집으로 예전의 동성 연인인 메트로비오스가 찾아온다. 술라와 메트로비오스의 키스를 훔쳐본 율릴라는 자살한다.

 

마리우스는 또 다시 수석 집정관으로 선출된다. 차석 집정관으론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카이사르가 선출된다.

 

술라는 장모인 마르키아에게 아내감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아이들을 맡기고는 마리우스와 함께 또 다시 갈리아로 떠난다. 게르만 족의 이동이 시작되자 마리우스는 술라를 카툴루스 카이사르의 선임 보좌관의 직책을 맡겨 보낸다. 카툴루스 카이사르는 게르만족에게 승리를 얻기보단 로마 군인을 전멸시키더라도 명예를 얻고 싶어한다. 카툴루스의 심중을 간파한 술라는 카툴루스의 명령을 거부하고 지휘권을 빼앗아 군대를 후퇴시킨다.

 

아군을 후퇴시켜 다리를 무너뜨릴 계획이었으나, 전군을 후퇴시키기 전에 킴브리족의 공격을 받는다. 페트레이우스의 활약에 힘입어 로마군은 전투에서 승리를 하지만, 스카우루스의 아들인 스카우루스 2는 공격을 당하자마자 두려움에 기절한다. 카툴루스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보낼 공문을 스카우루스 2세에게 보내게 하고, 스카우루스 2세는 전령으로 뽑혀 아버지인 스카우루스에게 공문을 전달한다. 공문을 읽은 스카우루스는 아들과 절연을 선언한다. 아버지의 선언을 전해 들은 스카우루스 2세는 자결한다.

 

스카우루스 2세의 죽음으로 누미디쿠스는 스카우루스에게 조카딸 달마티카와의 결혼을 제안한다.

 

드디어 마리우스의 로마군과 암브로네스족의 전투가 벌어진다. 마리우스의 로마군은 30분 만에 암브로네스족 전사 3만 명을 해치우고, 곧이어 10만 명의 게르만족을 무찌른다. 승전이었다. 전 로마가 환호한다.

 

마리우스는 이번엔 보리오릭스가 이끄는 킴브리족과 전쟁을 치른다. 역사나 마리우스의 로마군은 베르켈라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가 전령관으로 뽑혀 로마에 승전을 알린다. 가이우스 율리우스는 아내 아우렐리아와 반가운 재회를 한다. 아우렐리아는 카이사르가 전쟁에 나간 동안 딸 리아를 낳았다. 아우렐리아는 인슐라를 경영하는 재미에 빠져 지냈다. 아우렐리아는 남창 일을 하는 에파프로디투스를 쫓아 내고 가이우스 마티우스와 프리스킬라 가족을 들인다. 마티우스는 아우렐리아를 도와 인슐라에 멋진 정원을 만든다.

 

아우렐리아는 두 번째 아기 율리아( 별명 유유’)를 낳는다. 유유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울렐리아는 교차로 클럽을 쫓아내기 위해 루키우스 데쿠미우스 와 담판을 짓는다. 데쿠미우스는 아우렐리아에게 환심을 사 여전히 인슐라에 머무른다.

 

마리우스는 새로운 호민관 선거에서 사투르니누스를 지원하지만 사투르니누스는 득표수로 열한번째라 열명을 뽑는 호민관에 아깝게 떨어지고 만다. 사투르니누스가 친구인 글라우키아에게 투덜대자 글라우키아는 방법이 있을 거라며 사투르니누스를 위로한다. 몇 시간 후 처음으로 호민관에 당선된 노니우스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한다.

 

카툴루스 카이사르와 동시에 개선식을 치른 마리우스는 여섯 번째로 집정관 직에 출마하고 곧장 수석 집정관으로 또 다시 선출된다. 마리우스는 이제 제1의 건국자인 로물루스, 2의 건국자인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이후 제3의 건국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편 글라우키아는 법무관에 당선된다.

 

사투르니누스는 게르만족과의 전투에 참전한 병사들에게 공유지를 나눠주자는 법안을 상정한다. 글라우키아는 법안 통과 후 5일 내에 모든 원로원 의원이 법안을 영구히 존속시키겠다고 맹세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 조항에 넣는다.

 

술라는 스카우루스의 아내인 메텔라 달마티카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사랑과는 별개로 재혼은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의 외동딸인 아일리아와 한다.

 

토지 법안이 통과된 다음날 누미디쿠스는 서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서약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고 추방되어야 한다. 마리우스는 원로원에서 서약을 종용하는 연설을 하다 스카우루스의 꾀임에 빠진다. 마리우스는 서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서약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만다. 이에따라 사투르니누스와 글라우키아와 적을 진다. 

 

아우렐리아의 아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난다. 마리우스는 뇌졸중을 일으켜 얼굴 반쪽에 마비가 온다. 수도 담당 재무관인 카이피오 2세와 새끼 똥돼지는 국고가 바닥났다고 선언한다. 사투르니누스는 평민회를 소집하여 곡물법을 제안한다. 로마의 군중은 거의 전부 사투르니누스를 지지한다. 술라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원로원 내 젊은 세대의 환심을 사는 작업에 착수한다. 주요 표적은 카이피오 2세와 새끼 똥돼지였다.

 

해적을 소탕해 인기를 끈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가 집정관에 출마한다. 한편 마리우스는 원로원에 집정관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통보한다. 새로운 호민관 선거에 출마한 사투르니누스와 에튀티우스에 군중은 열광적인 환호성을 보낸다. 두 사람은 호민관으로 당선된다.

 

법무관에 출마하려는 글라우키아와 멤미우스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벌어진다.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멤미우스는 글라우키아의 토가를 찢어발기고, 그의 얼굴을 가격한다. 글라우키아는 일행의 도움으로 멤미우스를 붙잡자 몽둥이를 휘들러 그 자리에서 멤미우스를 때려 죽인다.

 

글라우키아는 도망치고, 사투르니누스는 군중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킨다. 마리우스는 원로원 결의를 통해 전권을 쥐고 사투르니누스 무리를 진압한다. 군중들은 마리우스를 보자 뿔뿔이 흩어진다. 반역자들은 잡혀서 원로원에 감금된다. 술라는 카이피오 2세와 새끼 똥돼지를 시켜 원로원에 감금된 반역자들을 기왓장으로 공격해 전원 살해한다. 사투르니누스, 에퀴티우스 등이 죽고, 글라우키아는 자결한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수석 집정관으로 당선된다. 차석 집정관은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로, 10년전 누미디아를 공격해 유구르타와의 전쟁을 촉발시킨 장본인이었다.

 

유권자들은 그야말로 멍청이야!” 마리우스는 다소 격양된 어조로 술라에게 말했다. “야심만 있고 재능이라곤 없는 대표적인 인물을 차석 집정관으로 뽑아놨네! 제기랄, 저들의 기억력은 자기가 싼 똥덩어리만큼도 못 가는군!”

 

변비가 있으면 사람이 아둔해진다고들 하더군요.” 술라는 새로운 두려움이 피어나는 와중에도 씩 웃으며 대꾸했다. (548)

 

한국인들은 천 만명 정도가 만성 변비에 치매인걸까? 


당시 로마는 귀족 계급인 원로원보다 평민회의 힘이 더 강했다. 

언론 자유 70위인 현재의 한국보다  이 시대 로마가 더 민주적이라니. 



한국의 일인자는 정신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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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강요 2016-08-20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 주는 글 낭독도 버거운 사람이지요~~

시이소오 2016-08-20 18:39   좋아요 0 | URL
ㅋ ㅋ 강요님 좋아요^^

깊이에의강요 2016-08-2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이소님♥♥

시이소오 2016-08-20 18:55   좋아요 0 | URL
저도 강요님🍓🍓
 
사냥꾼들
제임스 설터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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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터의 소설 <스포츠와 여가>, <올댓이즈>, <가벼운 나날>을 읽었으나, 아직 리뷰를 쓰지 못했다. <스포츠와 여가>가 설터의 첫 소설인 줄 알았는데, <사냥꾼들>이 설터의 첫 소설이었다. <사냥꾼들><스포츠와 여가>보다 무려 10년 전에 씌여졌다. 생텍쥐페리도 조종사였지만 설터는 전투기 조종사였다. 특히나 설터는 한국전에서 100번 이상 출격해, 미그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즉 이 소설의 주된 배경은 한국이다. 외국 작가의 소설에서 한국 지명을 접할 때면, 왠지 초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비행기 공중전을 소재로 한다는 점, 또한 설터의 첫 소설이란 점이 우려스러워, 여차하면 미련 없이 발 뺄 준비를 하고 조심스레 발을 담궜다.

 

어라, 재밌네.



 

비행기 공중전 영화를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진주만> 예외),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하다. 이 소설 이후로 설터는 소설보다는 시나리오를 주로 썼다. imdb를 찾아보니, 설터는 7편의 영화에 시나리오 작가로 크레딧을 올렸다.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는 시드니 루멧 감독, 오마 샤리프, 아누크 에메 주연의 <the appointment>가 아닐까.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작업한 셈. 소설과 내용은 다르지만, 설터가 시나리오를 쓴 동명의 제목인 <the hunters>는 로버트 미첨이 주연을 맡았다. 설터는 영화 <three>를 연출하기도 했으나, 쫄딱 망한 듯.



 

주인공 클리브는 타고난 조종사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적군이 있고, 아군 내에서도 갈등이 벌어지지만, 설터는 자기 극복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어떤 전쟁이든 자기 자신과의 전쟁이므로.

 

그는 죽음 가까이까지 이르고 싶다는,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순결함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을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인 양 이따금 떠올리곤 했다. 그는 인간의 자기 극복과, 자기 극복이 이루어지는 숭고한 금욕의 세계를 언제나 존중했다.

 

- P 20.

 

비행기 조종사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미그기가 그들의 전부다. 몇 대의 미그기를 잡았느냐만이 가치를 결정한다. 미그기 다섯 대를 잡은 조종사는 에이스로 불리며, 모든 조종사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대대장을 맡은 클리브는 부하인 들레오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을 읽으니, 설터 사유의 원형을 엿본 듯하다. <스포츠와 여가>를 읽을 땐 딱히 제목에 대해 고민해 보질 않았다. <스포츠와 여가>는 알려진대로 <쿠란 57장 무쇠의 장>에서 연유한다.

 

현세의 삶이란 한낱 스포츠와 여가일 뿐임을 기억하라.”

 

클리브는 돌레로와 함께 일본의 요정에서 아가씨들의 접대를 받으며 전쟁 따위는 잊고 한가로운 나날을 보낸다. 클리브는 돌레오에게 말한다. “여기 또 오면 안 돼”. 들레오가 이유를 믿자 클리브는 대답한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삶이야

 

아주 깨끗한 공간에서 중세의 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의 꿈속에 들어와 있는 거야. 어른의 천국이기도 하지. 유일무이한 그 무엇, 실은 그게 뭔지 나도 잘 모르지만, 여하튼 그 소중한 것의 마지막 남은 몇 조각을 우리가 지금 몰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네. 하지만 그것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자가 영웅이야.”

 

설터에게 여가란 순수 한 것이고, ‘어린아이같은 것이며, ‘섹스혹은 사랑’, ‘자유같은 것이다. 반면 여가의 반대편엔 스포츠가 있다. ‘스포츠란 한마디로 삶의 목표고 일이다. 경쟁을 통해 승리해야 하는 것.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의무, 책임을 뜻한다. 설터는 삶이란 것은 스포츠와 여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스포츠와 여가 사이의 변증법 ?

 

소설에 나오는 여러 캐릭터들은 대부분 전쟁(스포츠)에 매몰되어 있다. 미그기를 잡기위해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펠이 대표적 캐릭터다. 장교들은 펠이 동료를 죽인 과정에 대해 묻지 않고, 오로지 미그기를 잡은 결과만을 중시한다. 클리브는 미그기가 대량 출몰한 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짝사랑하는 일본 여자를 떠나, 황급히 전쟁터로 돌아간다.

 

승리의 순간을 위해 이곳에 왔지만 어떤 의미에선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승리를 갈구하는 것에 초연하기를, 승리를 거머쥐어야 하는 필요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에 다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는 이미 전쟁의 포로였다. 미그기를 잡지 못하면 제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는 실패자가 되는 것이었다.”

 

클리브는 자신의 부하를 죽인 소련의 전설 같은 조종사 케이시를 결국 잡는다. 그러나, 윙을 맡은 부하 헌터는 착륙 중 전사한다. 그는 자신의 공을 헌터에게 돌린다. 클리브는 승리했으나, 만족감은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무감각만이 남는다.

 

클리브는 쓸쓸한 평온을 느꼈다. 유년 시절을 지나 비로소 성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것이 한때 자신을 온통 사로잡았던 찬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였음을 그는 뼈아프게 깨달았다. 대가는 값비쌌다. 그러나 자신에게 아무리 큰 희생을 강요했을지라도 그는 이상을 굳건히 지켰다.

 

p 219.

 

클리브는 시스템이 강요하는 승부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존재의 고원으로 비상한다. 사냥꾼들은 그의 몸에 무수한 총알을 박아 넣는다. 전쟁터에서 자기 극복의 의지는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승부욕을 버리고 부하 동료인 헌터에게 공을 돌린 클리브는 전쟁에서 실패했으나, 인간으로서 승리한 것이 아닐까.



 

20. 실로 현세는 유희와 오락에 불과하며 허식과 권세도 풍성한 재산과 자손도 그러하거늘 그것을 비유하사 식물을 성장케 하여 농부를 기쁘게 한 후 벼가 내려 시들어 누렇게 되고 메말라 부스러지고 지푸라기가 된 것과 같더라. 그러나 내세에서는 사악한 자들에게 가혹한 응벌이 있으되 하나님께 헌신한 자 하나님의 관용과 기쁨을 받노라. 실로 현세의 삶은 현혹된 향락에 불과하다.

 

- < 성 쿠란> 57장 하디드 p 1053.

 

혹시나 해서 <코란>을 찾아봤더니, 나는 완전히 오해했구나. ‘스포츠와 여가유희와 오락이었던 것. 현혹된 향락. 스포츠는 여가와 대립된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 몇 일 지나, 과연 오해인 걸까란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설터는 스포츠와 여가의 덧없음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스포츠)에서 여가를 구원하려 했던 것일까. 이 의문은 <스포츠와 여가>의 독후감에서 해명할 수 있기를.

 


다음 생이 있다면, 가수가 되거나 댄서가 되거나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날아오르고 싶다

 

비행대대는 삶의 요약판이다. 당신은 어려서 그곳에 처음 당도한다. 그때는 기회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모든 것이 새롭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고통스런 배움의 나날과 환희의 날들이 지나가고 어느덧 성인기에 접어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날 문득 당신은 이미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주위는 온통 생소한 얼굴과 관계 뿐, 당신은 그 속에서 반갑지 않은 존재가 된다.

p69.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부수적인 것과 핵심을 구분하는 거야. 자네 경우엔 코치가 부수적인 부분이지. 역사는 자네를 수학 교사로 기억할 뿐 그 밖에 부수적인 건 모두 잊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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