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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 ㅣ 셰익스피어 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덕수 옮김 / 형설출판사 / 2017년 3월
평점 :
학부 때 제2 전공을 하겠답시고 국문과 수업을 자주 들었다. (학점이 모자라 제 2전공엔 실패했다.) 국문과 수업 중에 제출했던 레포트가 국문과 학생들을 따돌리고 수업 최고의 레포트로 뽑혔다. 심지어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동안 레포트 전문을 낭독하셨다. 와우. 레포트의 제목은 ‘이광수의 <무정>, <동성애와 페미니즘>’이었다. 이광수 <무정>이 지닌 근대문학으로서의 한계와 소설에 드러난 ‘동성애와 페미니즘’의 경향에 주목한 레포트였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이 파격적이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1917년에 쓰인 이광수의 <무정>의 성 묘사는 <캐롤>과는 비교 불가할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책만 들여다보면 이광수의 <무정>을 ‘동성애 코드’로 읽는 건 어떻게 보면 너무너무 당연한일이다. 학문적 엄숙주의 때문일까. 도대체가 모른 척 하는 건지, 말을 안 하는 건지?
<리어 왕>도 마찬가지다. (학부 때 <리어왕> 레포트를 쓰고 싶었지만 쓸 일이 없었다.)
책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건 엄연한 근친상간 극이다. 왜 말을 못하는 걸까? 400년 동안이나. 세익스피어 극에서 ‘섹스’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물론 감춰져 있다.) 특히 세익스피어 소네트는 거의 ‘섹스’에 대한 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리어 왕>이 근친상간 극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리어왕>에 대한 지난 400년간의 비평은 죄다 헛소리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이런 비평. ‘기독교적 인과응보의 규율과는 관계없이 진행되는 삶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제 거꾸로 해석해야 한다. 인과응보의 결론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해야 셰익스피어 극 전체와 통일성을 이룬다. 리어왕은 세 딸을 강간했다. 거너릴, 리건, 코델리아. 거너릴과 리건은 리어를 용서하지 않았다. 코델리아만이 리어를 용서했다. 즉, 거너릴과 리건은 리어왕에 대해서 만큼은 비난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지난 400년간 비난받아왔던 거너릴과 리건의 명예를 되살리자) 수 년 간 자신을 강간한 아버지를 용서해야 할 이유가 있나? 오히려 코델리아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리어왕은 첫 등장부터 제 정신이 아니다. 제 정신일 수가 없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리어왕으로선 딸들의 ‘혓바닥’만을 믿을 수밖에 없다.
‘진실은 개, 개집에서 쫓겨나야할 판국이지만’ 이제부터 <리어왕>이 근친상간 극이라는 걸 밝혀내겠다. 셰익스피어 극에서는 언제나 ‘바보’, ‘광대’의 대사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광대 : 당신이 딸들을 어머니로 삼게 된 때부터, 왠고하니 당신이 그들에게 회초리를 쥐어주고 바지를 벗어내렸을 때,
리어왕은 딸 앞에서 바지를 벗고 회초리를 쥐어주고는 때려달라고 애원했다. 전형적인 메조키스트의 증상이다. 프롬은 메조키스트와 새디스트가 상반된다고 주장했는데, 아니다. 메조키스트와 새디스트는 동일한 구조로 작동한다. 단지 방향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예로 가장 흔히 인용되는 문장은 <리어왕>의 리어왕 대사다.
그 계집에게 채찍을 가하고 있다만, 네 놈은 채찍질하는 바로 그 죄를 그 계집과 범하고 싶어 안달하고 있다.
- <리어왕>, 4막 6장
광대 : 당신과 당신 딸들은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어. 그들은 진실을 말하면 때리겠다고 하고, 당신은 거짓말을 하면 때리겠다고 하니.
광대는 리어왕과 세 딸의 근친상간을 알고 있다. 세 딸은 광대가 진실을 말할까 두려워한다. 리어왕과 세 딸의 촌수가 어떻게 될까. <차이나타운>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지? ‘내 딸이에요’, 찰싹. ‘내 동생이에요’, 찰싹. ‘내 딸이에요, 내 동생이에요.’ 찰싹 찰싹.
리어 : 이 놈, 무엇을 알만하단 말이냐?
광대 : 돌능금맛은 역시 돌능금맛이듯 저 딸 맛도 이 딸 맛과 같을거야. 당신은 알 수 있을 테지, 왜 사람의 코가 얼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지?
리어 : 모르겠다.
광대 : 웬고하니, 코 양쪽에 눈을 붙여놓아서 냄새로 알아낼 수 없는 것은 눈으로 보아서 알 아내기 위해서다 이 말씀이야,
리어 : 내가 잘못했다. 그애 한테는,
광대 : 당신은 굴이 껍질을 만드는 법을 알 수 있어?
리어 : 모르겠다
광대 : 나도 몰라. 그러나 달팽이가 집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알지.
리어 : 왜 그러냐?
광대 : 그 이유인즉, 제 머리를 감추기 위해서지, 그것을 제 딸에게 줘버리고 뿔을 숨길 상자 도 없는 신세가 되기 위해서가 아냐.
비평가들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굉장히 이상한 말이다. 왜 리어왕은 갑자기 ‘내가 잘못했다. 그애 한테는’이란 말을 하는 걸까. 지금 리어는 첫 딸 거너릴에게 버림받고 화가 나 있는 상태다. 그런데 갑자기 왜 딸한테 잘못했다고 말하는 걸까? 광대는 단지 코로 알 수 없는 것은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
셰익스피어 극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단어들은 굉장히 많다. 프로이드가 셰익스피어를 분석하지 않은 게 의아할 정도다. 위의 문장에서 ‘코, 머리, 뿔’등은 다 남성 성기를 상징한다.
광대 : 사내녀석이 다리를 함부로 놀리면 나무로 된 양말을 신게 된다, 이말이야.
2막 4장.
로건에게 간 켄트에게 차꼬가 채워졌다. 그 모습을 본 광대가 한 대사다. 차꼬를 찬 모습 역시 성적인 함의로 가득 찬 은유로 작동한다.
광대 : 아저씨, 도시의 여편네가 뱀장어를 산채로 넣고 반죽을 하려 할 때 뱀장어를 야단치듯이. 그 여편네는 막대로 그놈의 머리통을 내리치며 ‘들어가, 이 못된 놈, 들어가라니까!’라고 외쳤지요. 순전히 말에게 친절을 베푸느라고 건초에 버터를 발라준 것은 바로 그 여편네의 오라비라네.
- 2막 4장
거너릴과 리건 앞에서 리어는 연신 묻는다. “내 사람이 어째서 차꼬를 차고 있느냐?” 차고를 찬 모습은 리어왕의 현재 상태를 빗댄 표현이다. 그동안 ‘다리를 함부로 놀린’ 인과응보다.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권력 앞에 할 수 없이 열려야 했던 성문들. 이제 딸들은 ‘성문’을 걸어 잠근다. 욕망이 충동질 하기 전에.
리건 : 아! 백작님 완고한 사람에게는 자업자득으로 맛보게 되는 고통이 버릇을 가르쳐주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성문을 닫아 버리세요. 그분은 고약한 사람들의 시중을 받고 있고, 귀가 여러 나쁜 충고를 곧잘 듣는 분이라, 그들이 뭐라고 충동질할지 모르니, 지혜를 다해 경계를 하는 게 상책이예요.
리어 : 저 악독한 두 딸년들과 손잡고, 이처럼 늙어 백발이 된 한 인간의 머리 하나를 치려고 천국의 대군을 이끌고 오다니 말이다. 아, 여봐라! 고약하구나.
광대 : 머리를 들여밀 집도 마련하지 않고
불알싸개부터 먼저 갖게 되면,
머리에도 불알에도 이가 꾀는 법이라,
뭇 거지들은 그렇게 장가를 간다네,
마음을 써야 할 곳에
발가락을 쓰는 사람은,
티눈 때문에 슬피 울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네.
웬고 하니 얼굴 반반한 여인치고 거울 앞에서 입을 실룩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야.
- 3막 제 2장
폭풍우치는 밤, 켄트가 거기 누구요? 하고 묻는다.
광대 : 사실은, 군자와 불알싸개, 말하자면 현명한 양반 한 분과 광대바보 한 놈이 여기 있다.
광대는 왕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일종의 전복. 여기서 광대바보는 광대를 뜻하는 걸까. 앞 문장을 유추해보면 리어왕이 ‘불알싸개’고 리어왕이 ‘광대바보’다. 이 광대바보는 드디어 자신의 죄를 은연중에 고백한다. 혹은 마치 자신이 죽인 걸 모른 채 왕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내겠다는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한다.
리어 : 우리의 머리 위에서 이 무서운 소동을 일으키고 계시는 위대한 신들로 하여금 지금 그들의 원수를 찾아내게 하라. 가슴 속에 남모르는 죄를 품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정의의 신의 채찍을 면해온 이 악한아, 벌벌 떨어라. 숨어 봐라, 이 놈 살인자야, 이 위증을 한 놈아, 근친상간을 범하면서도 유덕한 인간인 체하는 위선자야. 그럴 듯하게 보이는 허위의 가면 뒤에서 인간의 생명을 노리고 음모를 일삼는 악독한 놈아, 온몸이 산산히 부서지게 떨어라. 은밀히 숨겨진 죄악들아, 네놈들을 감추고 있는 덮개를 찢어버리고, 이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에게 자비를 빌어라. 나로 말하자면 내가 지은 죄보다 남이 내게 지은 죄가 더 많은 사람이다.
-3막 2장.
위 대사는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켄트에게도 광대에게도 하는 대사가 아니다. 독백이다. 지금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리어가 저지른 죄악은 근친상간 뿐만이 아니다. 위의 대사를 유추해보건대 근친상간을 하기 위해 리어는 왕비를 살해했을 것이다. (왜 왕비에 대한 얘기가 없는지 단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단 말인가?)
광대 : 이리의 온순함을, 말의 건강함을, 어린 소년의 사랑을, 갈보의 맹세를 믿는 자는 미친사람이야.
광대가 바보인 것은 세 딸을 갈보로 업신여긴다는 점이다. 혹은 근친상간의 가해자인 리어왕 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딸들 역시 죄를 범했다고 보는 것일까?
리 건 : 당장 그자의 목을 매도록 하세요.
거너릴 : 그 자의 두 눈을 뽑아 버리세요.
- 3막 7장.
리건과 거너릴이 말하는 그자는 글로스터 백작이다. 도대체 두 딸은 왜 저렇게 글로스터를 미워하는걸까? 단지 리어왕을 빼돌렸다고 저렇게까지 흥분할 이유가 없다. 아마도 글로스터 백작은 리어왕이 세 딸을 강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수방관했다. 아니, 오히려 리어왕 편을 들었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글로스터 : 가령 이리가 당신 문전에서 울부짖더라도 이렇게 말해야 했을 것이오, ‘문지기야, 문을 열어줘라’라고. 하지만 두고 보시오, 그런 딸자식들에겐 천벌이 내릴 테니.
- 3막 7장
콘월은 왜 글로스터의 눈알을 직접 뽑을 만큼 잔인한 걸까? 리건은 남편 콘월에게 자신이 리어왕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고백했을 것이다. 또한 글로스터가 리어왕을 부추겼다는 것도. 글로스터의 눈을 뽑은 콘월은 그것이 ‘천벌’이라고 말한다.
즉, 천륜을 어긴 것은 거너릴, 리건, 코델리아라기 보다는 리어왕이다. 천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딸 들이 아니라 리어왕이고 글로스터 백작이다.
리건과 짝짜꿍인 콘월과 달리 거너릴 남편인 올버니는 아버지를 홀대하는 거너릴을 사악하다고 비난한다.
거너릴 : 이 비겁한 양반아! 뺨은 얻어맞기 위해, 머리는 모욕을 당하기 위해 달고 다니고, 이마에는 눈이 있으면서도 명예와 굴욕을 분간할 안목이 없고, 악한이 악행을 미처 저지르기도 전에 처벌받는 것을 보고 측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라는 것도 모르는 양반.
- 4막 2장
거너릴은 눈은 달고 다니면서 왜 진실을 못 보냐고 남편에게 외친다. 둔감한 올버니는 도무지 아내의 마음을 모른다. 이러니 거너릴이 바람날 수밖에.
리어 : 그대의 죄목은 무엇이냐? 간통죄라고? 너는 죽이지 않을 것이니라. 간통죄로 사형이라니! 안될 말, 굴뚝새도 그 짓을 하고, 조그마한 금빛 파리도
내 눈 앞에서 음란한 짓을 한다.
교미가 마구 성행하게 하라, 그로스터의 사생아는 합법적인
잠자리에서 잉태된 내 딸년들보다도 제 아비에게 더
효자였으니까. 호식이여, 멋대로 음란한 짓을 하라!
- 4막 6장
코딜리아 : 원수의 개라도, 또 비록 나를 물었더라도 그런 밤엔 우리 집 화덕 앞에서 불을 쬐게 했을 텐데. 그런데 가련하신 아버님.
- 4막 7장
저 대사를 제대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코델리아는 왜 리어왕을 ‘원수의 개’에 비교하고 ‘나를 물었더라도’라는 표현을 썼을까.
코델리아 앞에서 깨어난 리어 왕은 뜬금없이 코델리아에게 이런 대사를 날린다.
그대는 나를 용서해줘야 되겠다. 부탁이니, 잊고 용서해다오.
-4막 7장
코델리아의 혓바닥을 증오했던 걸 용서해달라는 걸까.
리어왕의 주제는 에드거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에드거 : 서로 용서해주도록 하자. 에드먼드야.......신들께서는 정당하시어 쾌락을 탐하는 죄로써 우리를 벌주시는 도구로 삼으신다. 아버님께서는 어둡고 부정한 잠자리에서 너를 만드셨는데, 그 댓가로 그의 눈을 잃으셨다.
- 5막 3장
쾌락을 탐한 모든 자들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 리어왕, 거너릴, 리건, 코델리아, 에드문드. 근친상간은 아닐지라도 ‘부정한 잠자리’로 에드문드를 낳았던 글로스터는 죽음 대신 두 눈을 잃는다. 코델리아는 리어왕을, 에드거는 글로스터를 용서한다. 한마디로 <리어왕>은 죄악과 용서의 서사다.
기존의 비평으론 코델리아의 죽음을 해석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펜 끝이 겨누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이었다. 또한 그의 비극의 주요한 모티프는 ‘부정한 잠자리’였다. <햄릿>, <오델로>역시.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리어왕>을 근친상간 극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해가 되진 않는다. 근친상간의 사건을 드러내지 않는 한, <리어왕>에 대한 그 어떤 비평도 헛소리에 불과하다. 셰익스피어가 죽은 지 내일이면 400년이다. 학자들은 언제까지 모른 척 할 셈인가. 한 500년 되어야 할까?
리어왕은 1막 1장에서 이미 말했다. ‘We shall express our darker purpose’.
그런데 왜 보지 않는 걸까. 눈앞에 지도처럼 펼쳐져 있거늘.
화살촉이 내 심장을 뚫고 들어온다 한들,
<리어왕>은 근친상간 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