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특급 5 - 세계편
출판사 / 한뜻 / 1996년 6월
평점 :
품절


 

 

 

 

 

 

1993년, 93편의 무서운 이야기를 담은 《공포특급》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6월. 본격적인 여름철을 맞아 독자들의 무더위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데 성공했다. 《공포특급》의 성공으로 괴담 전파의 물꼬를 텄다. 무더위를 잊기 위해 할머니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옛말이 됐다. 평범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집, 학교가 귀신들이 서식하는 오싹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괴담을 원하는 독자들이 늘어났다. 이듬해에 나온 《공포특급 2》도 전작에 못지않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출판사는 공포특급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기로 한다. 《공포특급 3》은 국내 작가들이 쓴 공포소설을 선보였다. 주류 문학이 완전히 점령한 한국에 ‘공포문학’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공포특급 4 : 실화 편》은 일반 독자들이 참여해서 만든 특별한 책이다. 독자들이 겪은 으스스한 경험담이 소개되었다. 출판사의 도전은 거침없었다. 비록 후속작들이 1, 2권의 인기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출판사는 《공포특급》 출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포 이야기만 들려주면 식상하다. 출판사는 외국의 무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책이 바로 《공포특급 5 : 세계 편》이다.

 

오늘날 독자들은 1권을 많이 기억한다. 《공포특급》을 즐겨 읽었던 독자 중에는 후속작의 존재를 알고 있으리라. 그렇지만 후속작을 기억한 독자도 많지 않다. 한뜻출판사에서 펴낸 《공포특급》 시리즈는 총 7권으로 되어 있다. 5권과 6권이 전작보다 인기를 얻지 못해서 그런 건지 마지막 7권은 1권처럼 도시 전설을 소개했다. 7권도 역시 망했다. 그때는 《공포특급》의 아류작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1993년의 명성을 되찾기가 불가능했다.

 

《공포특급 5 : 세계 편》은 외국 괴담 수록집이라기보다는 영미 작가들이 쓴 공포문학 작품 앤솔러지에 가깝다. 추리소설 번역가 故 정태원이 질적으로 우수한 공포 단편소설을 엄선하여 번역했다. 작품 중간에 외국 괴담과 공포 실화를 수록했다. 아무래도 한국형 괴담에 익숙하지만, 외국 공포문학 소설을 낯설어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공포특급 5 : 세계 편》에 있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들의 이름을 보시라.

 

 

 

 

 

 

 

역시 정태원의 안목은 대단하다. 《세계 편》은 1996년에 출간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이십 년 전에 레이 브래드버리, 로버트 셰클리,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을 소개했다. 윌리엄 W.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은 공포문학 앤솔러지에 많이 등장하는 단골 작품이다. 말라비틀어진 원숭이 손의 저주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유명한 작품이니 꼭 한 번 읽어 보시라. 비록 공포심을 드러내는 극적 장면이 고전적인 플롯이 되었지만, 공포문학을 논할 때 이 작품이 빠지면 안 된다. ‘호러 킹’ 스티븐 킹은 이 작품을 모티프로 한 소설을 남기기도 했다.

 

로버트 블록《사이코》의 작가다. 그는 장편뿐만 아니라 공포를 소재로 한 단편작품도 남겼다. 로버트 블록과 어거스트 덜레스‘러브크래프트 서클’에 소속된 작가다. 특히 덜레스는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크툴루 신화를 체계적으로 확장한 장본인이다. 생전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러브크래프트는 덜레스 덕분에 죽어서도 불멸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다만, 크툴루 신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독자들에게 덜레스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는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의 작품을 임의대로 크툴루 신화에 편입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SF 작가로 유명하지만, 생전에 공포문학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브래드버리는 1942년부터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장르문학 전문 잡지 <위어드 테일즈(Weird Tales)>을 통해 소설을 발표했다. 러브크래프트도 <위어드 테일즈>에 단편을 기고한 적이 있다. 브래드버리는 소규모 출판사 아컴 하우스(Arkham House)의 발행인으로부터 공포문학 단편집 출간을 제안 받는다. 아컴 하우스의 발행인이 바로 어거스트 덜레스다. 아컴(Arkham)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이름이다. 『비석』은 위어드 테일즈 1945년 3월 호에 발표되었다. 최근에 나온 브래드버리 단편 선집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숙소의 방 한가운데 비석이 놓인 불가사의한 상황을 공포심 있게 그려낸 전개가 일품이다. 

 

로버트 셰클리는 미국 출신의 SF 작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소설이 교과서에 수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폰의 먹이』는 195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고서점에서 괴물 그리폰을 관리하고 사육하는 방법이 적힌 책을 발견한다. 호기심이 많은 주인공은 책에 있는 내용에 따라 자신의 집에 그리폰을 사육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연출된다. 리처드 매드슨의 『하얀 실크 드레스』는 1951년에, 『귀뚜라미』는 1960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두 작품 모두 ‘나폴리탄 괴담’ 장르의 이야기다. 나폴리탄(Napolitan)은 공포 단편소설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의 하나다. 이야기의 발단과 결말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 나폴리탄의 가장 큰 특징이다. 미지의 상황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공포심을 유발한다.

 

공포문학 앤솔러지 출간이 과거보다 많이 뜸해졌다. 그러므로 레이 브래드버리와 리처드 매드슨 같은 거장들의 공포문학 작품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절판된 책을 만나기가 어렵지만, 책을 직접 찾아서 읽어 보는 게 훨씬 낫다. 정태원은 《세계 편》의 목차에 이런 말을 남겼다. “기회가 다시 있다면 공포소설의 대표작들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서 전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너무 이른 그의 부재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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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6-04-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슨 cyrus님은 책 백과사전 같습니다. 이제 모르는 책 있으면 물어봐야지.

cyrus 2016-04-26 12:12   좋아요 0 | URL
다른 독자 서평이나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백과에서 정보를 찾아요. 저도 모르는 게 정말 많습니다. ㅎㅎㅎ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작은 섬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억울하다.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 있는 로펌회사 때문에 파나마가 조용할 날이 없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로펌회사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비밀서류를 조사하면서 사상 최대의 조세 회피 사실을 폭로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설립한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드러났다. 이 문건에는 부자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인사, 왕족, 축구선수 등도 포함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조세피난처 가운데 원조는 단연 스위스 은행이다. 오랜 세월 엄청난 규모의 ‘검은 돈’을 숨겨준 든든한 금고 구실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구린 돈이 오가는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서 스위스의 모든 은행은 계좌 정보를 스위스 정부에 알려야 한다.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오스터맨의 주말》은 옛날 옛적에 세계 부자들이 달러 지폐에 불붙여 담배 피우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 시절 부자들은 스위스 은행 계좌 하나만 잘 숨겨 놓아도 재산을 은닉할 수 있었다. 로버트 러들럼은 첩보 스릴러 장르를 개척한 미국의 작가다.

 

 

 

 

작가 이름이 생소해도 그의 대표작 ‘제이슨 본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터메이텀》 은 그의 동명 소설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1980년에 발표된 《본 아이덴티티》가 2002년 영화로 개봉할 때만 해도 이 영화가 4탄 <본 레거시>까지 이어지는 시리즈가 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작가는 영화화된 자신의 작품을 보지 못한 채 2001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본 레거시>는 작가로 활동한 러들럼의 친구가 썼다고 한다. 러들럼은 작가가 되기 전에 연극배우와 제작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42세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첫 작품은 1971년에 나온  <The Scarlatti Inheritance>이다. 러들럼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는 해마다 소설 한 편씩 써내려갔다.

 

자, 러들럼이 누군지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그가 쓴 《오스터맨의 주말》이 어떤 작품인지 알아보자. 《오스터맨의 주말》은 1972년에 발표된 러들럼의 두 번째 소설이다. 유명 TV 뉴스 진행자인 존 터너는 뉴저지주에 있는 평온한 마을 세들 벨리에 거주한다. 세들 벨리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상류층들이 거주한다. 그래서 이곳은 마치 외부와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고, 세들 벨리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접근을 반기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에는 뉴저지주 소속 순찰차가 마을 전체를 순찰한다. 존 터너 부부는 버나드 오스터맨 부부, 조셉 카르돈 부부, 변호사 트리메인 부부를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해 만나기로 한다. 오스터맨은 작가, 조셉 카르돈은 주식중개업자, 트리메인은 변호사다. 네 사람 모두 남들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행복한 일상을 깨뜨리는 사람이 터너에 접근한다. CIA 소속 요원 로렌스 퍼세트는 터너에게 세 쌍의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알려준다. 그들의 정체는 소련 군국주의자들과 손잡아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비밀 조직단 오메가 일원이다. 퍼세트는 오메가를 일망타진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터너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말이야 협조지 터너는 반강제적인 퍼세트의 태도에 못 이겨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 대신 자신들의 가족이 CIA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퍼세트와 CIA 요원들은 폐쇄 회로 CCTV를 통해 터너 가족의 행적을 감시한다. 퍼세트는 오스터맨, 카르돈, 트리메인이 서로 의심하여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교란 작전을 펼친다. 이럴수록 터너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진다. 세 사람은 동료의 배신으로 인해 자신들의 비밀이 터너가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한다. 드디어 운명의 주말이 다가왔다. 터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세 사람을 만나지만, 긴장감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의 사소한 행동 때문에 퍼세트의 계획이 발각되면, 오메가 체포 작전이 실패됨을 물론이거니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롭다.

 

이야기는 일요일 오후부터 시작해서 다음 주말까지 시간상으로 이어진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인물 간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비밀을 숨긴 채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면서 행동한다. 터너는 퍼세트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오스터맨, 카르돈, 트리메인은 퍼세트의 교란 작전 속에서도 자신들의 비밀을 철저하게 숨긴다. 비밀을 지키느라 서로서로 의심하는 상황까지 연출된다. 터너와 퍼세트와의 기 싸움도 볼 만하다. 러들럼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이야기로 독자의 몰입을 높인다. 후반부에 이를수록 그동안 쌓여 있던 다이너마이트가 한꺼번에 터지듯이 폭발적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이제야 진실의 적이 누군지 깨닫고 결단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터너는 영웅 모드로 전환하여 오메가에 직접 맞서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메가의 실체를 알게 된다. 진짜 오메가는 퍼세트였다. 전직 CIA 요원이었던 그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오메가와 손잡았다. 오스터맨, 카르돈, 트리메인은 오메가 일원이 아니었다. 단지 그들 모두가 진짜로 숨기고 싶었던 비밀은 바로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비밀계좌였다. 오메가는 이들의 비밀계좌를 노렸고, 복수심에 불타는 퍼세트를 이용해 터너에 접근했다.

 

《오스터맨의 주말》은 1970년대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당연히 지금 읽기에는 러들럼의 반전이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높게 평가 받을 만한 자격은 유효하다. 러들럼은 거대한 사회 체제 속에서 저항하는 주인공의 감정을 밀도 있게 묘사했다.

 

 

 

퍼세트는 웃었다.

 

“지금 현재 세들 벨리에는 13명의 정보원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좋은 이웃으로서 그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설마!”

 

터너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웰의 1984년 그대로가 아닙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종종 그것을 요구하니까요.”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까?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로군요.”

 

(《오스터맨의 주말》 중에서, 74쪽)

 

 

 

터너는 퍼세트의 24시간 감시를 견디지 못해 일부러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면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조직의 권력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감시 체제의 암울한 현실을 씁쓸하게 받아들인다. 

 

 

 

 

 

터너는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스스로 지켜내는 영웅처럼 그려지지만, 실상은 이중의 권력 집단에 감시받는 미약한 개인이다. 터너가 오메가가 조종당하고 있었을 때, 그들을 소탕하려고 진짜 CIA가 주도면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가까이 보는 놈 위에 멀리서 보는 놈이 있었다. 차가운 냉전의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개인을 감시하는 권력의 서늘한 눈은 살아 있다. 우리는 개인의 삶을 침해하는 감시 체제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사회 보호’라는 안전한 명목에 순응한다. 오늘도 빅 브라더는 우리를 향해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권력은 당신을 원한다. 《오스터맨의 주말》은 ‘감시를 위한 통제’가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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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1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가 타락하는 욕망이 결국 검은 돈의 액수와 같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cyrus 2016-04-19 21:00   좋아요 1 | URL
페이퍼 컴퍼니 이거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닌데 우리나라는 너무 조용하네요.

빨강앙마 2016-04-1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페이퍼컴퍼니 관련해서 뉴스를 보고 관심이 가긴했는데....... 결국 자그마한 섬...

cyrus 2016-04-19 21:01   좋아요 0 | URL
작고 평화로운 지역이나 섬에 부자들 금고가 숨겨져 있어서 아이러니합니다.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4-1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처럼
감추고 싶어하죠
애석하건 ˝해적선보물˝ 처럼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거죠^^

cyrus 2016-04-19 21:10   좋아요 0 | URL
그 많은 돈을 꽁꽁 숨기면 제대로 쓰긴 할까요? 죽을 때까지 돈을 다 쓰긴 힘들텐데... ㅎㅎㅎ

2016-04-20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0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날, 나는 숲을 헤매게 되었다.
밤이 되어 배도 고파졌다.
그런 가운데, 한 식당을 찾아냈다.
이상한 이름의 식당이다.
나는 인기 메뉴인 ‘나폴리탄’을 주문한다.
몇 분 후, 나폴리탄이 온다. 나는 먹는다.
어쩐지 이상하다. 짜다. 이상하게 짜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점장 : 죄송합니다. 손님, 다시 만들겠습니다. 돈은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몇 분 후, 나폴리탄이 다시 나온다. 나는 먹는다. 이번에는 멀쩡하다.
나는 식당을 나온다.


잠시 후, 나는 눈치 채고 말았다……
여기는 어떤 레스토랑……
인기 메뉴는…… 나폴리탄……

 

 


이것은 한때 일본의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괴담이다. 괴담의 내용이 아리송하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자. 괴담의 주인공은 식당에 ‘나폴리탄’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음식을 주문한다. 그는 음식을 먹다가 두통에 시달린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점장에게 불평한다. 점장은 새로 만든 나폴리탄을 대접한다. 다행히 주인공은 방금 전과 다르게 음식을 잘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온 주인공은 갑자기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괴담은 주인공이 눈치를 챈 ‘그것’이 뭔지 알려주지 않고 끝을 맺는다.

 

 

 

 

 

 

나폴리탄이 뭐죠? 스파게티인가요?

 

 

 

이 괴담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궁금증을 마구 쏟아낸다. 나폴리탄이 어떻게 생긴 음식일까? 주인공이 왜 음식을 먹다가 두통을 겪은 것일까? 그리고 주인공이 눈치를 챈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은 괴담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 괴담이 인터넷상에서 널리 알려지자 괴담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괴담의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푸는 사람이 없다. 이 괴담을 해석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래도 괴담에 흥미를 붙인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괴담의 비밀을 파헤친다. 이러한 과정에 괴담 원본을 참고해서 만든 새로운 버전의 괴담이 새롭게 탄생되기도 한다.

 

이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 혹은 인물을 주요 소재로 삼는 괴담 형식을 나폴리탄(Napolitan, ナポルリタン) 괴담이라고 한다. 나폴리탄 괴담이 생소한 사람은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원래 괴담은 무서워야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나폴리탄인지 나폴레옹인지 뭔가 하는 이 괴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서워해야 하는 거죠? 별로 무섭지 않은데요. 제가 봐도 이야기가 싱겁고 허접한데 일본 사람들은 왜 이런 걸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끄덕끄덕.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폴리탄 괴담을 하나의 수수께끼로 받아들이면 재미없다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왜냐하면 나폴리탄 괴담과 우리가 평소에 아는 괴담의 형식을 같이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섭게 들었던 괴담은 레퍼토리가 딱 정해져 있다.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 일반적인 괴담 형식 1 : <전설의 고향> 괴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간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연달아 죽게 되자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더욱이 그들이 죽어가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게 되자, 생존한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방치된 공동묘지의 영혼이 내린 저주 때문에 흉흉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호기심 많은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기 위해 인적 드문 공동묘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심령 현상을 겪는다. 엄청난 공포감의 압박 속에서도 주인공은 마을의 저주를 풀어줄 귀신을 만난다. 처음에 심령 현상에 벌벌 떨던 주인공은 귀신의 고민을 귀담아 들어주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귀신은 주인공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불만을 모조리 털어놓는다. 이것이 바로 ‘고스트 힐링 캠프’다. 묵었던 감정들을 다 풀어낸 귀신은 저주를 없애기로 한다. 마을은 예전처럼 평화를 되찾았다. 지금도 그 마을에 가면 귀신이 떠도는 공동묘지가 있다고 한다. 끝」

 

 

* 일반적인 괴담 형식 2 : 엘리베이터 괴담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소녀는 왠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두려웠다.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누군가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교 보충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늦은 시간에는 너무 무서웠다.

 

“엄마,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서 무서워.”
“그럼 엄마가 마중을 나갈까?”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녀는 엄마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소녀는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스윽 올라가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엄마는 소녀를 그윽이 바라보며,

 

“넌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괴담 형식 1은 옛날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전설의 고향> 에 나올 법한 형식이다. 이런 이야기에는 늘 귀신이 등장한다. 귀신은 아이들을 겁주는 게 특효약이다. 괴담 형식 2는 90년대에 유행했던 엘리베이터 괴담이다. 이거 모르는 사람 있으려나? 아무튼 여기서도 귀신이 등장한다. 이 두 개의 괴담의 ‘뽀인트’는 뭐라 할 것도 없이 귀신이다. 괴담 문화가 발달된 일본에는 괴담이나 도시전설을 아주 맛깔나게 들려주는 사람을 ‘미스터리 텔러(Mystery teller)’라고 말한다. 미스터리 텔러는 괴담에서 제일 무섭게 느껴지는 뽀인트를 안다.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이야기를 전달하면 청자들은 지루해한다. 유능한 미스터리 텔러는 청자들이 무서운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이제 일반 괴담과 나폴리탄 괴담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나폴리탄 괴담은 이야기의 진실이 숨겨진 복선조차 없다.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맥거핀(MacGuffin)이다. 맥거핀은 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뿐, 별 의미가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폴리탄 괴담이 아무 의미 없는 싱거운 이야기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나폴리탄 괴담의 장점은 이야기의 소재를 미지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이렇듯 이야기에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소재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러한 매력에 흠뻑 취한 나폴리탄 괴담 마니아들은 괴담에 채워지지 못한 미지의 요소들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오늘 뜬금없이 나폴리탄 괴담을 소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공포문학의 특징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나폴리탄 괴담의 사례를 가져와 봤다. 나폴리탄 괴담 또한 인터넷상에서 통하는 하위문화로 알려졌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나폴리탄 괴담은 하나의 문학적 장치(Plot)로 사용되어 왔다. 

 

 

 

 

 

 

 

 

 

 

 

 

 

 

 

 

 

 

 

 

 

 

 

 

 

 

 

 

 

 

 

 

 

 

 

 

 

 

 

 


 


나폴리탄 괴담의 효과를 이용한 작품으로 공포문학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러브크래프트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그의 명성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스티븐 킹을 있게 한 조상님 되시겠다. 공포문학의 아버지가 에드거 앨런 포라면 어머니는 러브크래프트다. (러브크래프트는 유년 시절에 여장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뚜렷한 실체의 영혼을 다루기보다는 미지의 대상에서 비롯되는 원초적 공포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체로 음울한 분위기의 장소 속에서 혼자 헤매면서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주인공들의 심장을 조여 오는 미지의 대상이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만든 미지의 창조물 정체를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즉 나폴리탄 괴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작품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독자는 이야기를 모호하게 만든 러프크래프트를 마치 어설픈 작가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런 내용의 서평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매력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나폴리탄 괴담에도 일반 괴담과 다른 특별한 묘미가 있다. 나폴리탄 괴담을 어설픈 창작물이 아닌 독창적인 이야기로 보는 시선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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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2-1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담 형식 1은 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의 모습에서 공포를 유발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에서 `내 다리 내놔~~` 이런 내용의 이야기에 정말 무서웠거든요. 불 끄고 누웠을 때, 장롱 위에서 귀신이 나올까봐 머리 끝까지 이불 뒤집어쓰고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괴담은 괴담 2 인 것 같아요. 사람들을 섬찟하게 하는 마지막 포인트에 옹기종기 모인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곤 했죠.
나폴리탄 괴담은 처음 들어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스파게티 이름이군요. 작가와 청자의 합작으로 완성되는 괴담인 것 같은데, 괴담이 되는 코드가 잘 이해되지는 않네요. 도무지 마지막 부분의 어느 포인트에서 섬찟해야 하는 건지ㅎㅎ^^;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주제가 나오기 전에 이루어지는,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생각나구요.
어쨌든 cyrus님 덕분에 바닥을 깔고 있던 제 지식이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

cyrus 2016-02-19 14:46   좋아요 1 | URL
‘내 다리 내 놔’ 전설이 정말 유명한데, 잊고 있었습니다. 괴담 2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느낌이 들어서 무섭게 느껴지죠.

인터넷에서 나폴리탄 괴담을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괴담들이 나옵니다. 대체로 짧아요. 그래서 어떤 것은 정말 임팩트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널리 회자되는 것도 있지만, 일반인들의 창작이라서 그런지 어설픈 것도 있습니다. ^^

stella.K 2016-02-19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얘기긴한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란 영화를 얼마전 두번째로 보았지.
여성 영화로는 델마와 루이즈와 쌍벽을 이루는 영환데,
어쨌든 그 음식이 어떤지 궁금해. 바삭거리는 소리가 나거든.
토마토를 아무리 기름에 지져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느냔 말야?
니가 스파게티를 얘기하니까...후후.
그런데 괴담 2는 어느 정도 예견이 되는... 그래서 별로 웃기진 않았다.
저 책 읽어보고 싶긴하다.^^

마녀고양이 2016-02-19 13:09   좋아요 0 | URL
전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책의 레시피 때문에,
다섯 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책에서는 더 바삭거리는 느낌이어서 도리어 영화가 그냥 그랬어요. 심지어, 토마토 튀김을 집에서 실제로 해보기도 했다니까요.
근데 망쳤어요. ㅋㅋ

stella.K 2016-02-19 14:0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니까요. 그 바삭거리는 식감이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영화에서도 보면 나중엔 그걸 싸 가지고 양로원까지 가지고 오는데
죽 되는 게 맞는 건데 아삭거리면서 먹기까지 하잖아요.
근데 책으로도 나와 있군요.

cyrus 2016-02-19 14:50   좋아요 0 | URL
엘리베이터 괴담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제가 소개한 것은 고전이죠.

토마토를 튀기지 않는 이상, 바삭거리는 식감의 음식으로 만들기 어려워요. ^^;;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오귀스트 뒤팽은 아마추어 탐정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뒤팽이 없었더라면 코난 도일셜록 홈즈를 탄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코난 도일은 주홍색 연구에서 홈즈의 입을 빌려 뒤팽의 실력을 애써 무시한다. 뒤팽은 분석 능력이 뛰어나지만, 생각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지적한다. 이 장면으로 홈즈는 재수 없고 냉정한 탐정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고, 뒤팽은 한물 간 탐정으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도일은 뒤팽을 극찬했다. 도일이 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포를 향한 도일의 존경심을 드러낸 소소한 장면일 뿐이다. 주인공 탐정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탐정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그의 실력을 깎아내리는 장면은 포를 위한 도일의 패러디다.

 

뒤팽도 홈즈처럼 자신의 추리 능력을 돋보이려고 뛰어난 수사 실력을 보인 비범한 인물의 문제점을 언급한다. 뒤팽이 처음으로 등장한 추리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뒤팽은 레스파냐예 모녀의 살인 사건을 어설프게 수사하는 파리 경찰을 비판한다. 그러고는 이 사람을 언급하면서 잘못된 수사 방식이 어떤 건지 덧붙여 설명해준다.

 

 

비도크는 예리한 추측 능력과 끈기를 가진 사람이었네. 하지만 사고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에 사건 조사에 깊이 들어가면 실수를 연발했지. 물건을 눈에 너무 가까이 대서 뚜렷이 볼 수 없게 된 거야. 그렇게 바짝 대고 보면 한두 가지 요소는 정확히 보일지 몰라도 전체 그림은 보이지 않아. 여기서 아주 중요한 점은 진실이 늘 우물 속에 있는 게 아니란 걸세. 사실 나는 중요한 정보는 언제나 표면에 드러나 있다고 생각해. 지식은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다니는 계곡 속에 있거든.”

 

(포 소설 전집 1 : 미스터리 편모르그가의 살인중에서, 30)

    

 

뒤팽은 비도크라는 사람이 예리한 추측 능력을 가졌음에도 2% 부족한 수사 실력을 보여준다고 까댄다. 비도크는 어떤 사람일까. 이 장면을 유심히 읽은 독자는 비도크의 정체가 궁금할 수 있겠다. 그러나 번역자는 이런 독자의 호기심을 몰랐다. 우울과 몽상과 코너스톤 포 소설 전집에 비도크를 설명해주는 주석이 없었다. 만약에 (정태원 씨처럼 추리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깊은 번역자라면 비도크주석을 달았을 것이다. 비도크가 탐정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추리소설을 자신들 시간 때우기에 좋은 통속소설로 인식하는 독자들은 비도크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다. 국문학을 전공한 전문 번역가들은 순수문학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추리문학의 발달사를 잘 모른다.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

 

 

비도크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홈즈가 뒤팽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과 같다. 흔히 탐정의 원조로 뒤팽을 많이 언급하지만, 최근에는 비도크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1775~1857).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사설탐정 직업으로 활동한 사람이다. 비도크는 한 편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원래 흉악한 범죄자였다. 절도, 사기 등 여러 가지 혐의로 감방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았다. 탈옥도 여러 번 시도하여 재수감된 적도 있었다. 비도크는 수감 생활을 하면서 만난 범죄자로부터 흥미로운 정보를 듣게 된다. (동료 수감자의 뒷 통수를 친) 그는 이 사실을 파리 경찰 관계자에게 알리고, 공을 인정받아 풀려났다. (야호! 탈출이다) 그 이후로 비도크는 경찰 관계자들이 범죄자들을 소탕할 때마다 결정적 도움을 주는 (경찰 끄나풀) 역할을 했다. 비도크는 자신의 범죄 경력을 토대로 역으로 범죄자들을 골탕먹이는 수사 방식을 만들었다. 비도크가 잠복수사, 범죄기록 작성 및 정리를 처음으로 시도했으나 그의 전과 이력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비도크는 범죄 조직에 자신이 정한 비밀 조직원들을 심어서 잠복 수사를 시도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처음으로 창설된 잠입 수사 전담팀 브리가드 데 라 슈르티(Brigade de la Sûreté)’이다. 파리에 있는 범죄자들과 서로 안면이 있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암흑가 사이에서도 알려졌다. 비도크는 밑바닥 인생의 범죄자로 시작해서 파리 경찰의 앞잡이로 활동하여 수사 책임자까지 오르는 등 화려한 전성기를 지냈다. 하지만 1827년에 비도크는 파면을 당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비도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도둑질하다가 적발되고 말았다.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경찰직에서 물러난 비도크는 사설 수사기관을 설립한다. 이때부터 비도크는 역사상 최초의 사립탐정이 되었다. (다시 한 번, 과거 탈세 성공) 

    

 

 

 

 

 

 

 

 

 

 

 

 

 

 

 

 

 

비도크의 활약은 당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은 범죄자 비도크를, 형사 자베르는 경찰직에 몸담은 비도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그밖에도 발자크의 보트랭(고리오 영감), 알렉상드르 뒤마의 에드몽 당테스(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이 비도크의 영향을 물려받은 인물들이다.

 

 

 

 

 

신웰 존슨을 만나는 홈즈 (하워드 K. 엘록의 삽화)

 

 

코난 도일의 마지막 홈즈 시리즈인 셜록 홈즈의 사건집 수록작 유명한 의뢰인’(황금가지판 작품명은 거물급 의뢰인’)신웰 존슨이라는 인물이 짧게 등장한다. 그는 홈즈의 비밀 정보원으로 런던의 범죄 조직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한다. 그도 역시 과거에 포악한 범죄자로 두 번이나 감방에 생활했다. 그러다가 홈즈를 만나면서부터 개과천선하여 홈즈에게 쏠쏠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신웰 존슨이 비도크를 모티브로 한 인물로 볼 수 있다.

 

 

 

 

 

 

 

 

 

 

 

 

 

 

 

 

비도크는 인생을 화려하게 살다 갔다. 뛰어난 머리로 범죄자들을 잡았고, 특별한 매력으로 여성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비도크는 수많은 여성들을 만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공상하는 걸 좋아하는 뒤팽, 그리고 여성을 혐오하는 홈즈의 모습과 무척 대조적이다) 하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죽기 직전에 비도크는 막대한 유산을 남기게 되는데, 비도크와 알고 지내던 여인들이 유산 상속권을 요구했다. 비도크는 유산을 자신을 30여 년 동안 뒷바라지해준 하녀에게 물려주었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 에밀 가보리오의 르루주 사건은 프랑스 최초의 탐정소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타바레는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관심이 많은 노인이다. 그는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데, 독거노인을 돌봐주는 유일한 사람이 하녀 마네트. 홈즈는 하숙집 주인 허드슨 부인 덕분에 먹고 지내는 데 불편 없이 지낸다. 허드슨 부인은 거의 20년 동안 홈즈의 방을 관리해주고, 식사까지 챙겨준다. 심지어 홈즈에게 오는 편지들도 받아준다. 이 정도면 허드슨 부인은 최소 하녀 급. 탐정과 하녀의 관계. 설마 이런 사소한 설정도 작가들이 따라 만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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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2-1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몽>을 까신 이후 이책을 바로 올리시다니... 이전 책 중고서점에 버리고 이 책 구매 클릭해야 할까요. ㅠㅠ

cyrus 2015-12-16 18:13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해보니까 <우몽>을 중고샵에 팔고, 그 돈으로 코너스톤 번역본 5권을 구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코너스톤 포 전집 책 한 권의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우몽> 팔아서 받은 돈에 약간의 금액을 더 보태면 코너스톤 포 전집을 충분히 살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 절대로 읽어선 안 되는 ‘저주의 책’이 존재하고 있을까?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책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네크로노미콘>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선 비밀의 책이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등장한 가상의 책이다. ‘미치광이 시인’이라고 불리던 압둘 알하즈레드가 쓴 불길한 책으로 알려졌다. 물론, 압둘 알하즈레드도 러브크래프트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라는 제목의 페이크 논픽션을 남겼는데, 일부 독자들은 이 글을 근거로 <네크로노미콘>이 진본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보면 러브크래프트이 <네크로노미콘>이 번역되는 과정 그리고 보관된 장소까지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에 따르면, <네크로노미콘>이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유럽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 기관은 끔찍한 내용을 담은 책에 금서 처분을 내려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화염 구덩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네크로노미톤>은 총 11권. 이 중에 아랍어 원본에 가까운 책은 불과 다섯 권이다. 다섯 권의 원본이 있는 장소는 다음과 같다.

 

대영박물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하버드대학 위드너 도서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미스캐토닉 대학 도서관

 

이걸 진짜로 믿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정보 또한 러브크래프트가 진실처럼 꾸미게 한 트릭이다. 매사추세츠 주의 아캄이라는 도시에 있는 미스캐토닉 대학 도서관은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가상의 장소다.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에 정확히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는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책의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해준다. 비밀에 가까운 설정은 러브크래프트 추종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부추겼다. 이 가상의 책 한 권으로 러브크래프트 추종자들은 원작을 뛰어넘은 ‘크툴루 신화’를 만들어냈다.

 

가상의 금서 그리고 허구와 진실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이야기. 독자의 판단을 흐트러뜨리는 러브크래프트의 상상력은 독창적인 것은 분명하나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를 잊어선 안 된다. 로버트 윌리엄 체임버스. 러브크래프트의 명성에 가려진 미국 공포문학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노란 옷 왕》은 『The Repairer of Reputations』과 『The Yellow Sign』을 포함한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러프크래프트는 《노란 옷 왕》(The King in Yellow)을 ‘공포와 광기, 기괴한 비극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노란 표적'을 들고 있는 노란 옷 왕

 

『The Repairer of Reputations』, 우리말 제목으로 ‘명예 수선공’ 또는 ‘명예회복 해결사’로 부른다. 이 작품과 ‘노란 표적’으로 알려진 『The Yellow Sign』에는 공통적인 모티프가 등장하는데, <노란 옷 왕>이라는 불가사의한 책이다. 이 가상의 책은 희곡 작품이다. 그런데 어떠한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인다. 그리고 노란 표적을 가진 사람은 ‘노란 옷 왕’의 저주를 받는다. 노란 옷 왕과 노란 표적은 미지의 고대 도시로 알려진 카르코사에서 왔다고 전해졌을 뿐,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소설에 잠깐 언급되는 ‘하스티르(Hastur, ‘하스터’, ‘해스터’라고 부르기도 한다)’라는 단어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불가사의한 현상과 사물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설정은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효과는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에 부합한다.

 

그런데 《노란 옷 왕》에 나오는 ‘카르코사’, ‘하스티르’, ‘할리 호수’ 등과 같은 가상의 지명은 체임버스가 만든 것이 아니다. 앰브로스 비어스가 쓴 단편소설 『카르코사의 망자』와 『양치기 하이타』에 먼저 나왔다. 『양치기 하이타』에서 하스티르는 선량한 목신으로 등장한다. 『카르코사의 망자』는 인용문으로 시작되는데 그 인용문을 쓴 사람의 이름이 ‘할리’다. 체임버스는 『The Repairer of Reputations』에서 ‘할리’를 가상의 호수 이름으로 만들었다. 재미있게도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에 ‘하스티르’, ‘할리 호수’, 그리고 노란 부적을 언급한다. 러브크래프트 문학을 널리 알린 어네스트 덜레스는 세 사람이 사용한 공포 소재를 새로운 ‘크툴루 신화’에 편입시킨다. 이렇다 보니,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과 노란 부적이 러브크래프트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만든 창작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비어스의 『카르코사의 망자』와 『양치기 하이타』, 그다음에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순으로 읽어보면 세 사람이 공통으로 보여주고자 한 ‘공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비밀의 베일에 싸인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그들의 작품이 재미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공포영화가 등장하지 않은 시대에 활동했던 세 사람은 소설을 통해 미지의 세계가 전달하는 차원 높은 공포를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 이 글에 소개된 비어스, 체임버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이 수록된 책은 다음과 같다.

 

 

* 로버트 W. 체임버스

《노란 옷 왕》(아티초크, 2014) - 명예회복 해결사, 노란 표적

《세계 호러 걸작선》(책세상, 2004) - 옐로 사인

《러브크래프트 전집 6》(황금가지, 2015) - 명예 수선공

《The King in Yellow -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272》(eBook / 내츄럴, 2014) -

원작에 있는 열편의 작품 모두 수록되어 있음

《세계 호러 단편 100선》(책세상, 2005) - 장례 (Pompe Funebre, 189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집 <The Mystery of Choice>에 수록된 작품)

 

 

* 앰브로즈 비어스 『카르코사의 망자』

《노란 옷 왕》(아티초크, 2014)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더스타일, 2013) - ‘카르코사의 주민’

 

 

* 앰브로즈 비어스 『양치기 하이타』

《러브크래프트 전집 6》(황금가지, 2015)

 

 

*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1》(황금가지, 2009) -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러브크래프트 전집 2》(황금가지, 2009) -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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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9-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는 예전에 단편으로 살짝 맛을 보고 계속 읽어야지....하면서도 미루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가끔씩 공포소설이나 만화속에 크툴루 신화가 등장하거나 언급되면 빨리 읽어봐야지..하는데도 선뜻 손이 안갑니다. 이상하게 숙제같은 책이예요. 읽긴 읽어야하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어요. 이렇게 cyrus님의 페이퍼를 보면 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도 자꾸 피하게 되는것이 이상해요. ㅎㅎ

cyrus 2015-09-08 17:57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하자면, 책 읽기를 미룬다면 안 읽는 것이 낫습니다. 러브크래프프의 소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저처럼 옛날 호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러브크래프트를 즐겨 읽는다면, 현대 공포물에 익숙한 사람은 러브크래프트의 스토리텔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보슬비님의 마음을 믿고 따르십시오. ^^

보슬비 2015-09-11 00:26   좋아요 0 | URL
사실 그 단편이 전 좋았어요. ㅎㅎ
기묘하고 끈쩍끈적한 불쾌함이 좋았던것 같은데, 그 기분을 지속적으로 감당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계속 미루고 있나봐요. 한번 날 잡긴해야할것 같아요. 조금 더 스산해지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쯤... ^^

물고기자리 2015-09-0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클릭해보니 cyrus 님 리뷰가 많네요^^ 장르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언제 꼭 읽어봐야겠어요 ㅎ

cyrus 2015-09-08 17:57   좋아요 0 | URL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재미있다고 말은 안 하겠습니다. ㅎㅎㅎ

에이바 2015-09-0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루 디텍티브 시즌 1도 언급해주세요!! ㅎㅎ 카르코사 노란 옷 왕!!

cyrus 2015-09-08 22:49   좋아요 0 | URL
그 미드를 보려고 다운로드 사이트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