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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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양자역학 : 문득 길이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지나간 길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놀란다. 그것이 도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을까. 그러나 사실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내내 우리가 되돌아 보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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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작금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쟁들의 과열 양상이 놀랍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온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할 일인가. 물론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을 선정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인터넷 게시판들에 상주하며, 양 진영에서 온갖 글들이 양산되는 현재의 양상들을 보며, 각종 의혹을 찾아내고, 또 그 의혹에 성심성의껏 방어하는 그 대단한 열정들이 조금 놀랍다. 이렇게 말하면 냉소적으로 들리겠지만 사실 솔직하게는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굳이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이이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처단한달까. 현재의 사법부에 얼마나 곪은 부분이 많은지는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에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적임자가 조국이라면 그 인물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솔직히 조국이 적임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도덕성과 제기되는 의혹들을 떠나서 그 능력적인 면에서 말이다.) 다만, 최근 느끼는 것은 조국과 나는 근본적으로 아주 먼 위치에 있다는 새삼스러운 확인이다.

 

강남좌파. 최근 조국을 둘러싼 논쟁에 의해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른 말 중에 하나지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것이 될 수 없는 것을 안다. 아니, 좌파는 되어도, '강남'좌파는 못 될 것이다. 나는 이미 서울에서 밀려난지 오래고, 서울 외곽부로 겨우 머리를 어떻게든 들이밀고, 비집고 용케 들어갈 수는 있어도, 강남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물론 '강남좌파'라는 용어가 단지 위치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농담을 섞어서 말하자면 그렇다. 그러니까, 그들과 나는 다른 곳에 서 있다는 새삼스러운 확인이다. 그것을 몰랐어? 몰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물론 나는 땀을 약간 흘리면서 말할 것이다. 아니 알고 있었지...근데 왠지 똑똑하고 멋있는 사람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면 좋잖아, 그렇잖아, 너도 그렇지 않았었어? 라고 되물을 것 같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요즘 조금 씁쓸하다. 아니, 이건 정치에 냉소적으로 된다는 것과 조금 다른 문제다. ('이이제이'를 하려면 어떤 오랑캐가 조금 더 쓸만한지 면밀히 검토해야만 한다.) 나는 여전히 다음 선거에서 누군가를 선택할 것이고, 정치 뉴스를 꽤나 열심히 들여다보기도 할 것이다. 특정 정당은 두번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지지하지 못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결국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으니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접근(법률상으로, 혹은 절차상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치밀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혹은 이는 단지 있는 절차들을 잘 이용한 것이거나, 있는 돈을 잘 활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할 때는 모종의 감정적 단절감이 느껴진다. 적어도 현재의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그러하다.

 

조금 다른 얘기겠지만, 영화 <기생충>에 대한 리뷰들이나 감상들을 보면서 아주 묘하게도 이 영화에 대한 태도가 자신의 계급적 태도나 위치와 연관되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느낌들을 받았었다. 그런데 왠지 현재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쟁들을 보면 비슷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아니 멀리 갈 필요가 없이, 적어도 나를 보면 그렇다. 물론 이것은 단지 새삼스러운 확인이지만, '새삼스러운 확인'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그것은 거의 항상 씁쓸한 감정을 낳는다.   

 

 

 

 

* 점심 시간에 뉴스를 보다가 문득 쓰는 뻘글. 덕분에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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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9-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른을 보니 반대가 약간 우세하지만 결국 서로간의 진영논리에 빠져 상대방이 진실을 호도한다고 서론 비난하는 형국이죠.뭐 조교수가 워낙 진보의 아이콘처럼 포장되서 진보쪽에서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감이 없지 않은데 보수측 인사가 이런 논란에 휩싸였다면 아마도 죽었다 깨어나도 대통령이 임명하지 못햇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맥거핀 2019-09-05 10:24   좋아요 0 | URL
네..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그 진영논리이기도 하죠. 항상 편을 갈라서 너는 이편인가, 저편인가를 묻죠. 저는 지금 상황이라면 솔직히 법무부장관이 된다 해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그 검찰개혁의 성과가 나온다고 해도, 필요이상으로 폄하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해요. 양쪽 다 물러나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AgalmA 2019-09-04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국의 압도적 존재감, 그의 위치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거 같은데요. 현 야댱쪽에선 현 정권의 흠집내기 뿐아니라 그가 법무장관이 되었을 때의 위험, 혹여나 있을 조국의 대선 진출까지 세 마리(더 있을 수도) 토끼 다 잡자는 심산에서 더 기를 쓰고 있는 것일 테고, 서민 입장에선 계층 불만 토로, 정치권 비난하며 불이 활활타기 좋은 장작이 나타난 거죠. 에효.
그나저나 맥거핀님 오랜만입니다^^

맥거핀 2019-09-05 10:29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입니다.^^ 조국님 덕분에 이렇게 얘기도 나누고, 좋네요.
아무튼 아쉬워요. 지금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사법부 개혁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그 능력적인 면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법부 개혁이라는 게 지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수차례 시도되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현 사법부는 국민들 사이에는 일종의 견고한 성채와 같다는 인식이 있는데요. 조국이 임명되어서 과연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을까, 산적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봐야하겠습니다만...뭐 그건 이미 물건너 가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단지 현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인가? 그것에도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구요.
 

 

 

최근 출퇴근 루트를 바꿨다. 조금 더 먼 코스로. 이 코스는 예전에 가던 루트보다 더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한적하여 뭔가를 하기에, 예를 들어 책을 읽기에 좋다. 지금까지 다니던 길은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밟히다가 순식간에 밀려나 낙오자의 설움을 맛보는 길로 여기서 책을 읽다보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앉아서 올 수도 있고, 조금 더 집중하여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덕분에 20분 정도는 일찍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무의미한 1시간 30분보다는 조금 더 의미있는 2시간이 낫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는 늘 이어폰을 꽂는다. 요즘 이어팟이니 뭐니 분리형 블루투스 이어폰이 유행인데, 내가 귀에 꽂는 것은 휴대폰을 살 때 주는 구식 유선 이어폰이다. 한 때 음질이 좋다는 여러 이어폰을 번갈아 바꿔가며 써보기도 했고,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는 거액의 지출이 필요한 이어폰을 구매해서 써보기도 했지만, 사실 지금은 별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의 음악듣기는 일종의 '책읽기의 보조적 수단'이고, 그 외에는 가끔 야구중계를 보기 위해 이어폰을 꽂는 것이 다니까. 아나운서의 신나는 '안타~!' 발음을 조금 더 잘 듣는다고 해도 주자가 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유선 이어폰을 꽂고, 종이책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으면 구식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뭐 별로,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책을 가방 속에서 꺼내들고 읽기 전에 먼저 정성을 다해서 음악을 선곡한다. 이어폰은 별로 안 중요할지 몰라도, 이거는 상당히 중요하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주로 듣기 좋아하는 음악들은 메탈 계열의 음악들이다. 헤비 메탈, 트래쉬 메탈, 멜로딕 데스 메탈, 하드 록, 블랙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얼터너티브 록, 고딕 메탈, 펑크 락, 팝 메탈..뭐라고 불러도 사실 상관은 없고, 아무튼 되도록 우당탕탕 때려대는 시끄러운 음악들을 고른다. 일단 이런 음악들은 자연스러운 차폐의 효과가 있어(따라서 고가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은 필요가 없다) 지하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소음을 감소시킨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뭔가 멍~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 나는 이것을 눈과 귀를 분리시킨다, 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글자들이 귀 쪽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머리 속으로 곧장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일종의 하이패스 구간이랄까. 언젠가 책이 전혀 읽히지 않을 것 같은 매우 시끄러운 공간에서 책을 읽게 되어, 그 공간의 소음을 이겨내고자 엄청난 음량으로 헤비 메탈 음악을 들었더니 놀랍게도 책읽기에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을 경험한 이후로는 줄곧 이 방법을 쓰고 있다. 뭐 논문 같은 걸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의 책읽기를 위한 선곡은 2014년에 발매된 X-Japan의 <X singles> 앨범이다. 이것만 봐도 내가 메탈이라고 이름만 붙으면 시끄러운 음악은 아무거나 듣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사실 X-Japan은 나에게 일종의 길티 플레져 같은 음악인데, 그것은 아주 시답잖은 이유다. 지금은 (아마도) 사라져 버렸지만, 예전에는 뮤비(뮤직비디오) 감상실 같은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에 아주 센 메탈 계열의 음악을 주로 틀어주는 곳이 있었다. 커다란 화면만 보이는 어둠침침한 공간에서 커피(도 주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무슨 메탈에 커피인가)나 맥주 같은 것을 시키고, 신청곡을 (무려 종이에 펜으로 적어서) 신청하면 주크박스에 계신 분이 틀어주는 구조였는데, 나는 종종 수업을 빼먹고 여기에 들러서 시간을 때우고는 했다. 아무튼 거기에 베놈이나 디무보거, 크래들 오브 필쓰 같은 게 나오다가 엑스재팬 같은 음악이 나오면 저걸 신청한 넘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넘쳐나는 아유소리가 대단했는데, 나는 그 야유소리를 듣는 게 너무 즐거워서 종종 그런 음악들을 신청하고는 했다. 하긴 X-Japan의 'Endless Rain' 라이브에서 소녀들이 떼창하는 소리를 거기에서 들으면 꽤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런 X-Japan과 함께 하는 오늘의 지하철 길동무는 니시카와 미와다. 지난 번 <고독한 직업>을 다 읽지마자, 새로 출간된 <료칸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를 샀다. (근데 왜 구글에서는 료칸에서를 치니 '파도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로 자동완성되지? 파도소리보다는 바닷소리가 조금 더 느낌이 서정적인 것 같기는 하지만...) 읽기 전에는 그녀 특유의 글맛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이건 왠걸, 그녀의 개그감과 글을 조직해나가는 솜씨는 조금도 줄지 않은, 아니 도리어 더 늘어난 듯 하다. 책장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 최대한 느릿느릿 읽었다. 사실 말은 쉬운데, 글에 읽는 이의 흥미를 돋우는 적절한 포인트를 찍는 것은 정말 의도한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이게 마치 엄청 쉬운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해서 짜증났다), 중간중간 적절한 (개그)포인트가 글맛을 돋운다. 예전에 네이버에 계시던 모님(여기서의 '모'는 숨기기 위함이 아니고, 닉네임의 가장 앞 자가 '모'다)의 글이 그랬는데, 지금은 글을 다 지우고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리셨다. 돌아와요 모님.

 

니시카와 미와의 <고독한 직업>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와카미 미에코의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고, 다시 니시카와 미와로 돌아와 <료칸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를 읽고 있다. 어쩌다보니 최근의 반일 시국에 역행하는 책읽기를 하고 있으니 이거 문제가 심각하다(심지어는 엑스재팬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를 이쩌나.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으니 이 인터뷰집의 주된 내용이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룬 것이라, 상권만 읽고 버려둔 '긴 얼굴'이나 멘시키 씨를 다시 만나야 할 것 같다. 상권의 기억이 가물거리니 상권부터 다시 읽어야 하려나. 이로써 한동안 내 친일 독서 기조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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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1 0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5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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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의 소설을 읽다 보면 꼭 술이 땡긴다. 와인에 카나페 같은 거는 말고, 술은 무조건 소주로. 안주는...조금 먹기에 번잡스러운 거, 예를 들어 뼈 있는 닭발 같은 것으로 말이다. 뼈 있는 닭발을 먹으려고 손에 비닐장갑을 끼우다보면 잘 들어가지도 안거니와, 이렇게까지 해서 닭이라는 녀석들의 발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먹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솜씨좋게 장갑을 끼우려는 내 모습을 보고 자괴감이 들기 마련이니까.


그것은 김금희가 <보통의 시절>에서 그린 한 풍경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사남매는 성탄절에 모였다. "언니네 집도 아니고 우리만의 추억이 담긴 장소도 아니고 맛집 같지도 않"은 구리의 고향삼계탕집에서. 사오십대가 훌쩍 넘은 그들은 이제 거의 망한 삼계탕집에서 남은 마지막 닭과 너무 익어서 군내가 다 나는 열무김치를 먹고, 김대춘을 만나러 갈 참이다. 김대춘이 누구인가. 김대춘은 보일러실에 불을 질러 부모님이 운영하던 목욕탕을 전소시키고, 형을 살고 나온 노숙자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삶을 망가뜨렸다고 믿는 그 김대춘을 만나러 간다. 그의 집 주소가 번듯한 아파트로 되어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만나서 도대체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비루하다. 책 말미에 실린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는 '잔존의 파토스'라는 고급진 표현을 썼지만, 사실 나는 비루하다, 외에 더 좋은 표현을 찾지를 못하겠다. 그렇게 그들은 비루하다. 아니, 나는 <보통의 시절>에 등장하는 그들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세실리아>에서 연말마다 만나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허무함과 환멸을 견디는 전직 요트부원 대학친구들, <조중균의 세계>에서 출판사에 갓 입사하여 '해란씨'와 알게모르게 경쟁하는 나(영주), 두 개의 라벨을 붙인 고기를 신고하여, 이제 짤릴 위기에 처한 마트 직원의 방문을 받는 <고기>의 그녀. 그리고 물론 <너무 한낮의 연애>의 필용. 아, 이 친구. 인사이동을 통보받고 십육 년 전 종로의 맥도날드에 있던 양희를 떠올린 한낮의 필용. 양희의 사랑한다는 말에 불가해한 기쁨을 느끼던 필용. 그러나...


"야 너, 최소한이라도 꾸미고 다녀. 널 위해 하는 얘기야. 아이고, 같이 다니면 내 얼굴이 화끈거려서. 젊은 시절 다시 안 와. 좀 있으면 값 떨어져. 그리고 연극도 좋고 가당찮은 대본도 좋은데 밥벌이는 하고 살아. 애가 어떻게 된 게 이천원으로 하루를 삐대? 야! 나도 어려워! 나도 힘들어! 야이 씨, 너 그동안 나한테 받아먹은 거 다 내놔. 일괄 계산하라고 이 계집애야."

양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면 질려갈수록 필용의 말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졌다. 어떤 한계까지 올라 찰랑찰랑거리면서 파탄의 전조를 만들어내는데도 계속됐다. 필용은 퍼부어댔다. 아주 세상이 끝난 것처럼 퍼부어댔다. 양희가 맥도날드에서 나간 뒤로도 필용은 자기 말에 취해 마구 떠들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닫고는 양희를 붙들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양희는 보이지 않았다.

- p.31~32.*


아이고, 이 친구야. 그러고도 문산까지 다시 양희를 찾아가서 사과도 못한 이 친구야. 그런데 김금희의 소설에는 비루한 그들의 옆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쌓고 그들 나름의 규칙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비루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이들. <조중균의 세계>의 조중균, <세실리아>의 세실리아, <개를 기다리는 일>의 여학생, 그리고 물론 <너무 한낮의 연애>의 양희.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 속에 들어있는 어떤 것들은 괄호가 쳐져 있어서 비루한 그들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잘 알 수가 없는 것이 비루한 그들 뿐인가.


우리들 대다수가 잘 모르지 않은가. 조중균을, 세실리아를, 여학생을, 양희를, 그리고 사실은 자신이 비루하다는 사실을. 뭐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차분하게 펼쳐지는 김금희가 그려내는 세계를 읽다말고 나는 종종 딴 생각을 했다. 별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왜 나는 이때 소주가 먹고 싶어지는 것일까. 왜 이처럼 밝은 대낮에 소주를 먹으면서 무언가를 잊고 싶어지는 것일까. 나도 그렇게 <세실리아>의 왕년의 요트부원들처럼 정신이 완전 빙산이 되어, 대륙으로 이동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온갖 똑똑한 척은 다하면서 결국은 손해로 끝나는 인생.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며 살아왔지만, 그것을 결국 인정해야 하는 때가 가깝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것을 인정하면 조금이라도 덜 비루할 수 있을까. 비루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비루한 거니까 인정해 버리면 낫지 않을까, 같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


모르지. 아마도 그래서 그들에게는 조중균이나 세실리아나 양희가 필요했는지도. 비루한 그들이 나오지만 김금희의 소설에는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멋진 순간들이 있다. 비루한데 멋질 수 있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세실리아>에서 세실리아가 가려다말고 뒤돌아서서 나를 꼭 안아줄 때, <보통의 시절>에서 상준이 잊기는 어떻게 잊느냐고 말할 때, <반월>에서 단짝에게서 온 편지를 뜯어볼 때. 비루한 그들이 만나게 되는 비범한 순간. 어쩌면 비루한 나도, 김금희의 소설을 읽다가 잠깐 딴 생각을 하며 그런 비범한 순간을 만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주를 마시러 가기에는 쨍쨍한 이런 너무 한낮에.



* 이 장면은 드라마스페셜로 방영했던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도 나오기는 했지만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 장면을 조금 더 몰아부쳤으면 했지만, 그 장면은 소설보다도 훨씬 순화되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학생 양희와 대학생 필용이 어울리지 않았다. 현재의 필용 역을 맡은 '고준'은 나쁘지않았던 것 같지만.


** 김금희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 나왔다. 친필싸인본을 준다고 해서 예약구매를 할까 싶기도 하고, 왠지 아, 너무 싸인할 책이 많아, 하고 좌절하는 작가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안할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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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8-23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김금희 소설 《경애의 마음》이 생각납니다 왜 그럴까요 같은 사람이 쓴 소설이어서는 재미없는 말이지만, 이걸 모르는 척할 수 없겠지요 단편에서 본 사람을 거기에서도 봐설지도... <너무 한낮의 연애>는 드라마로도 만들었군요 누구 삶이 옳다 말하기 어려울 듯해요 자기 마음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누군가는 그걸 의심하지 않고 살지 몰라도 많은 사람은 이게 맞을까 하고 의심할지도 모르겠네요 의심하면서도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새 소설 나왔다는 건 봤어요 저는 그걸 보고 또 책이 나왔구나 했습니다 이번에는 좀 빨리 나온 거 아니가 싶기도 한데 다시 찾아보니 소설집이군요


희선
 
고독한 직업 니시카와 미와 산문집 1
니시카와 미와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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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결국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고, 글을 쓰는 도중에 자신을 적당히 드러내거나, 혹은 적당히 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글 속에 자신을 얼마나 드러냈는가의 문제와 별개로 그 글 속에 적당히 숨겨진 '그 사람'을 그다지 만나보고 싶지 않은(혹은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글도 있다. 영화감독 니시카와 미와의 글은 후자인데,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공감한 평은 책 뒤의 배우 문소리의 평이다. "그녀의 책을 읽고 나니 얼른 전화해서 밤새 맥주나 마시자고 빨리 나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사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들은 별로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니다. 아마도 밤새 맥주나 먹으면서 할 수 있는 시시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오디션을 진행했던 이야기, 어렸을 때 축농증을 앓았던 기억, 새벽 2시에 만난 돈을 빌려달라던 수상한 남자,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처음 만나던 기억...그저 허름한 맥주집에서 맥주에 닭다리를 곁들이며, 아..맞아 나도 예전에 그런 사람을 만난적이 있었는데, 하고 맞장구를 치며 빈 술잔을 채워줄 뿐인 그런 이야기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술꾼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맥주집에서 결국 술잔 속으로 빨려 들어가 없어질 이야기에 불과할지라도, 누가 이야기하는가에 따라서 맥주맛이 달라지는 법이다.

 

나는 영어를 거의 못한다. 다양한 나라의 영화제에 참석하고는 있지만, 해외 영화감독들이 대체로 쉽사리 영어를 구사하며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나는 그저 애매한 미소를 띠며 정기적으로 맥주만 홀짝이는 장식물로 변해서 일본의 이름을 계속 더럽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2004년의 일이다. 보스니아 분쟁의 격렬한 상흔이 남아 있는 수도 사라예보의 영화제에서도 내 추태는 폭발했다. 인구 400만 명도 안되는 그 나라에서는 일본어 통역사를 찾을 수 없었고, 나타난 사람은 고작 일본에서 고작 한 달 유학한 경험이 있다는 그 지역 청년이었다. 일단 함께 들어간 식당에서 메뉴에 있던 단어를 보고 "이건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어, 음, ......잎사귀 같은 채소예요!"라고 대답했다. 아주 친절하고 호감가는 청년이었지만 그 채소가 '시금치'라는 사실이 판명된 순간 내 얼굴의 핏기가 싹 가셨고, 그날 무대에서의 질의응답을 무모하게도 직접 영어로 감행했다. (하략)

-p. 154

 

이 짧은 발췌문에도 잘 드러나지만 니시카와 미와의 글들은 술맛, 아니 글맛이 살아있다. 뭐 그것을 그녀가 자잘한 유머를 적재적소에서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혹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영화라는 세계에 발을 디디고 외부에서 잘 알 수 없는 여러 에피소드를 요령껏 솜씨좋게 들려주기 때문이라고, 아니면 하나의 허구로서 잘 축조된 작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그 세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해 보인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어떤 안도감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사실은 저 사람도 그다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 28살에 데뷔한 영화감독으로, 데뷔작으로 일본 국내 영화상의 신인상을 여럿 수상했으며, <유레루>, <우리 의사 선생님>, <아주 긴 변명> 등의 영화로 여러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영화감독일지라도 사실 별 것 없다는 것. 실수를 저지르고, 때로는 타인을 다그치고, 자기관리에 게으른 나와 사실은 별로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 말이다. 누구나가 사실은 '어떤 부분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예를 들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독파는 커녕 대충 훑어보지도 못한, 그저 활자로 채워진 물체(p.139)"라고 자신의 장서를 돌이켜보는 그녀에게 공감했으리라. (나만 그래요? 나만?)

 

그렇게 우리는 안도하며 살지 않던가. 오늘도 실수하여 부장에게 깨진 옆 동료의 에피소드를 맥주를 홀짝이면서, 오징어와 부장을 질겅질겅 같이 곁들여 씹으면서 듣지만, 사실은 그 순간에 몰래 안도하지 않던가. 그것이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사실을, 혹은 매사 잘 나가는 듯이 보이는 저 친구도 사실은 별 게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만 그래요? 나만?) 그래서 니시카와 미와의 글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는 그녀가 그녀의 일상보다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다. 니시카와 미와 본인의 말대로 '가짜 세계'를 만들어내는 영화감독으로서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메가폰을 들고 "액션!"을 소리높여 외치는 영화감독의 이미지를 그녀는 기꺼이 배반시키니까 말이다. 그보다는 동물연기자(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쥐)가 연기를 못해 노심초사하고, 대사를 바꿔달라고 말하는 배우 앞에서 어쩌지, 어쩌지를 속으로 반복하는 다심(多心)한 아줌마(라고 이야기해도 왠지 니시카와 미와는 이해해줄 것 같다)에 가까우니까.

 

그래서 어쩌면 그녀의 영화가 그렇게 다심한 세계를 다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책을 덮고, 2006년작 영화 <유레루>를 봤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궁금해져서 책을 본 적은 있지만, 그 반대로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뒤늦게 찾아본 것은 처음이라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겉멋이 조금 들었기는 해도, <유레루>의 세계야말로 미묘한, 부서질 것 같은 세계, 사실은 너무도 우리 가까이에 있어 쉽게 뭉개버릴 수 있는, 그러니 더 조심히 다뤄야할 세계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카가와 데루유키의 연기는 역시나 인상적이다.    

 


뒤늦게 다는 덧.

사실 이 책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샀다. 때로는 단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사기도 하는 법이다. 하기사 단지 포스터에 끌려서 영화를 본 적은 얼마나 많은가. 이 표지는 영화 <유레루>의 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사실 장면이라고 하기는 그런 게 이 부분은 영화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 형제가 저렇게 흔들다리 위에서 같은 곳을 보고 있는 장면은 영화 속에는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저 장면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 컷들을 영화 밖에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나의 프로필 사진이기도 한 저 장면은 영화 <어느 가족>의 스틸컷이기는 하지만, 사실 영화 속에 이 장면은 없다. 그러나 나는 스틸컷을 보고 안도했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그 안도의 의미를 알 것이다. 그러나 분명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있다. 그것은 감독이 난간을 기대고 웃는 저 소녀의 모습을 끝내 영화 속에서 보여주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점. 우리가 저 소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얻게 될 무언가, 혹은 잃게 될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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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8 0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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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2 1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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