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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0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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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Castle Skull)은 처녀작 『밤에 걷다』(로크미디어, 2009년)를 발표한 지 1년 뒤에 나온 존 딕슨 카의 두 번째 소설이다. 여기서도 『밤에 걷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파리 경시청 총감 앙리 방코랭(Henri Bencolin)과 그의 동료인 제프(Jeff Marle)가 사건을 해결한다. 『해골성』은 1989년에 일신서적, 1994년에 계림출판공사에서 아동용 버전으로 ‘해골성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정식판은 동서출판사가 1977년에 낸 것을 2003년에 동서미스터리북스 110번째로 재출간한 것이다.

 

『밤에 걷다』의 역자는 제프가 방코랭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대화체를 옮겼다. 방코랭은 제프를 조수처럼 대하는데 제프가 방코랭보다 나이가 어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면에 『해골성』의 역자는 방코랭과 제프를 막역한 사이의 동료처럼 번역했다. 문득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다. 방코랭이 제프보다 나이가 많은 것인가, 아니면 두 사람은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인가?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친하게 된 것일까? 『밤에 걷다』에서 화자인 제프는 방코랭의 생김새와 성격을 언급할 뿐, 자신이 방코랭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실 제프의 성(姓)을 『해골성』에서 처음 알았다. Jeff Marle. 『해골성』에서 ‘제프리 마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인 경시청 총감 이름은 ‘방코랑’으로 표기했다)그의 직업이 작가라는 사실이 소설에서 잠깐 언급되는데 그 외에는 더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방코랭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사건을 해결하도록 도울 뿐이다.

 

카는『해골성』으로 처녀작 『밤에 걷다』보다 괴기스러운 배경과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해골성』을 읽어보면 해골성 주변 광경과 내부를 유령이 나올법한 공포 분위기로 조성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카는 저 멀리서 보는 웅장한 옛 고성에서 거대한 해골 형상이 포착되는 것처럼 묘사했다.

 

 

“해골성이 눈에 띄었어요. 달이 높이 떠올라 해골성의 둥근 지붕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지요. 그 퀭한 눈, 뻥 뚫린 창문, 코처럼 기뿐 나쁘게 쑥 내밀어진 곳......” (41쪽)

 

 

해골성은 요기 서린 괴상한 마술을 선보였던 인기 마술사 메이르쟈(Maleger)가 소유한 고성이다. 그런데 메이르쟈는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는다. 마인츠에서 코블렌츠로 가는 일등칸 기차에서 혼자 타고 있던 마술사는 순간 이동 마술을 한 것처럼 사라진다. 며칠 뒤에 라인 강에 변사체가 된 메이르쟈가 발견된다. 이 사건은 메이르쟈의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여전히 의문의 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밀실 같은 일등칸에 혼자 있었던 메이르쟈가 어떻게 라인 강으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달리는 기차 밖으로 나와 자살을 시도할 수도 없고, 심지어 일등칸에 들어올 수 있는 침입자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도 없다.

 

마술사의 죽음 이후로 그가 소유했던 해골성에서 기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메이르쟈의 유산 상속인 중 한 사람인 배우 마일런 아리슨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해골성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사람들은 마술사와 배우의 죽음이 해골성의 저주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15세기 때 세워진 해골성의 성주가 마술사였는데 그가 아리슨처럼 불에 타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성에 성주의 영혼이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떠돌기도 한다. 이러한 소문과 전설은 해골성과 관련된 두 사람의 죽음을 불가사의한 힘이 개입된 미스터리한 범죄 사건으로 만들어 놓는다.

 

『해골성』의 또 다른 재미는 방코랭과 폰 아른하임 남작과의 추리 대결이다. 추리물에서 독자들이 제일 흥미진진하게 보는 것이 주인공인 탐정의 라이벌이 등장해 추리 솜씨를 뽐내는 대결 구도. 이런 이야기의 요소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또 주인공 탐정을 정말 좋아하는 독자라면 주인공이 직접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라이벌도 완벽하게 제압해버리는 속 시원한 해피엔딩을 원하기도 한다. 폰 아른하임 남작은 베를린 경찰국의 주임경장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스파이전에서 적국이 내세운 방코랭과 자주 맞붙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을 대표하는 머리 좋은 두 고위급 경찰이 해골성에서 만나 추리력이라는 지적인 무기로 대결을 펼친다. 두 사람은 성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건을 푸는 과정도 약간에 차이가 있다.

 

남작은 해골성 살인 사건을 제 손으로 직접 해결하여 자신의 추리력이 방코랭보다 한 수 위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어둡고 무시무시한 해골성 내부를 꼼꼼하게 살필 정도로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선다. 반면, 방코랭은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사건을 풀기 위한 단서를 찾는다. 그는 자신을 향한 남작의 질투심을 내심 알고 있다. 그러면서 남작이 사건을 푸는 과정을 쭉 지켜본다. 가끔 방코랭이 남작의 추리력에 태클을 걸면서 두 사람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냉철한 방코랭의 매력(?)에 빠진 독자라면 추리 대결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방코랭은 해골성 살인사건 해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남작을 위해서 그의 추리력이 틀린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봐주는 아량을 베푼다. 『밤에 걷다』에서 깐깐하면서도 상대방 앞에서 약간 잘난 척하는 방코랭의 ‘까칠남’ 이미지가 한풀 꺾였다.

 

『해골성』의 역자는 해설에서 카의 작품 속에 볼 수 있는 신비적 취향이 마음 약한 독자가 정신을 잃을 정도라고 과장되게 표현했다. 카의 작품 속 오컬트적 분위기에 매료될 수는 있어도, 심신 노약자나 임산부의 정신 건강에 해칠 정도는 아니다. 사실 카의 처녀작을 읽어 본 독자로서 『해골성』은 전작보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발산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글을 쓰는 내내 커피를 연달아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면서 고민했던 젊은 작가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카가 너무 배경에만 치중한 탓일까. 탐정으로서의 방코랭의 매력과 그 능력치가 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두 번째로 나온 방코랭 시리즈라면 개성 있는 탐정의 성격을 좀 더 뚜렷하게 묘사했어야 한다.

 

 

 

 

 

※ 이 책에 동명의 작품인『해골성』뿐만 아니라 카의 단편 「뛰는 자와 나는 자」(Strictly Diplomatic)도 수록되었다. 이 단편소설은 1947년에 발표된 『Dr. Fell, Detective, and Other Stories』에 실려 있다. 사실 카의 단편은 장편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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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걷다 노블우드 클럽 4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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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수업이 끝나면 항상 학교 도서실에 갔다. 친구들이랑 뛰어놀면서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학교 도서실에 가면 무조건 한 권씩 꼭 읽는 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동용 추리소설전집이었다. 책을 펼치면 눅눅한 곰팡내가 내 코를 먼저 반겨준다. 누렇게 변색한 종이, 잉크가 희미하게 사라지려고 하는 활자. 책의 보존 상태를 보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책이었다. 오래 읽으면 눈이 침침하게 느껴질 정도로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절대로 책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즐겨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잊게 하였다. 개성 있는 탐정의 매력에 푹 빠졌고, 예상하지 못한 트릭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한 권을 다 읽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다 읽으면 다른 소설도 읽고 싶어졌다. 학교에 너무 오래 남아 있어서 경비 아저씨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추리소설전집은 한 권당 유명 추리 소설가들의 대표작 두 편씩 실려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 중 한 편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아로 시리즈 중 한 편이 같이 실려 있다고 보면 된다. 한 권으로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두 편이나 읽을 수 있다. 이 추리소설전집 덕분에 새로운 추리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남은 작가가 존 딕슨 카였다. 그가 쓴 작품이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과 함께 수록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작가의 이름이 기억이 난다. 유독 소설 제목은 기억나지 않은데 아마도 ‘유령성의 비밀’이었을 것이다. 먼저 나온 포의 작품을 인상 깊게 읽은 탓에 그 뒤에 있는 존 딕슨 카의 작품을 잊지 않고 있었다.

 

카의 소설은 일단 음산한 고딕 분위기로 시작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다음에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마술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독서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카는 밀실 추리의 대가이다. 밀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긴다이치 코스케’를 창조한 요코미조 세이시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더 나아가 소년 탐정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이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메가 나오는 만화 원작을 보게 되면, 밀실 살인 사건이 제일 많이 나온다. 할아버지인 코스케의 명예를 거는 소년 탐정은 카의 명예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1930년에 발표한 『밤에 걷다』(It Walks By Night)는 밀실 추리의 유행을 알린 카의 처녀작이다. 사교계에 이름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유명한 라울 드 살리니 공작과 결혼을 앞둔 루이즈 부인은 페넬리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여는 화려한 파티를 즐긴다. 그런데 즐거워해야 할 파티에 루이즈 부인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두려워한다. 그것은 전남편 로랑의 협박편지 때문이었다. 로랑은 루이즈 부인을 면도칼로 공격할 정도로 극심한 정신병 증세가 있었다. 병원에서 격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부인은 로랑의 곁을 떠났고, 공작과 재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랑은 정신 병원을 탈출하여 전 부인의 재혼 소식을 알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결혼을 막기 위해 로랑은 협박편지를 보낸 것이다. 공작은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로랑의 등장을 방지하기 위해서 파리 경시청 총감 앙리 방코랭에게 자신들의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정신병자는 공작의 요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행복한 결혼식 전야제의 흥을 깨뜨린다. 시끌벅적한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루이즈 부인은 키라르 부인의 방 창문 밖에 서서 기분 나쁘게 웃는 로랑의 눈을 마주친다. 불쾌한 소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페넬리 가게의 카드룸에 공작이 목이 잘린 주검으로 발견된다. 방코랭은 로랑이 공작을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를 범인으로 단정하기에는 이 사건에 의문점이 많다. 두 개의 문이 있는 카드룸 밖에 방코랭의 부하 경관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들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범인은 카드룸에 혼자 있는 공작을 살해한 것이다. 과연 범인은 어떻게 카드룸을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카는 방코랭이 밀실 사건의 수사를 진행하는 이야기 속에 독자에게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는 단서를 넌지시 제시하거나 그 열쇠를 쥐고 있을 것 같은 뜻밖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러한 소재들은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공작이 카드룸에 죽어가고 있을 때 흡연실에서 누군가가 놓고 간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있었던 공작의 친구 보트렐리. 루이즈 부인 몰래 공작과 밀애를 즐기던 샤론 그레이. 공작의 복잡한 관계까지 밝혀지게 되면서 사건의 수사는 여러 가닥의 실이 한꺼번에 뭉쳐져서 꼬이듯이 엉뚱하게 전개된다.

 

샤론은 방코랭의 조수나 다름없는 작품 속 화자 ‘나’(이름은 제프)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매력적인 팜 파탈로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반대로 너무 불필요하게 묘사된 장면이 제프와 샤론이 ‘썸’ 타는 장면일 것이다. 제프는 복잡한 연애관을 가진 샤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내적 갈등에 빠진다. 자신은 샤론을 좋아하지만, 공작과 보트렐리와 이미 정분을 나눈 그녀의 마음을 믿지 못한다. 제프와 샤론은 단둘이서 정원에 식사할 정도로 관계가 깊어졌는데, 여기서부터 카는 두 사람의 썸을 지루하게 지켜보던 독자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선사한다. 이 반전은 ‘그 인물’을 범인이라고 예상했던 독자들의 추리를 단번에 뒤집어엎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화자와 샤론의 관계를 지나치게 묘사한 장면은 신인작가 카의 미흡한 이야기 설정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카의 작품을 꽤 읽어 본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밤에 걷다』에 선배 추리 작가들의 장점을 답습하려는 신인 작가 카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 마무리를 향해가면서 밝혀지는 살인사건의 전모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아몬틸라도 술통’ 결말과 흡사하다. 논리적인 범죄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추리를 반박하는 그라펜슈타인 박사를 무시하는 방코랭에서 차갑고 쿨내(쿨한 느낌이) 나는 ‘까도남’ 홈즈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건 해결의 단서를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짝사랑에 빠진 소심한 사내처럼 샤론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제프의 모습에 방코랭은 따끔하게 일갈한다.

 

“이보게, 난 중매쟁이가 아니라 경찰이라네. 오늘 저녁에 들은 그런 유치한 재잘거림 속에서 내가 뭘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나? 사랑이라는 감정이란 얼마나 어리석은지!” (145쪽)

 

“당신이 존 딕슨 카를 안다면 당연히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출판사는 띠지에 위대한 작가의 처녀작을 이렇게 홍보한다. 나는 어렸을 때 카를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가 처음으로 펜을 쥐고 써내려간 처녀작을 읽었다. 이미 카의 원숙한 작품들을 읽어 봤을 정도로 카를 잘 아는 독자도 당연히 이 책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최상의 레벨을 자랑하는 작가의 전성기 작품을 계속 읽어오다가 레벨 초기화에 가까운 처녀작을 읽어 보라. 명성 있는 작가의 처녀작에도 어설픈 티가 눈에 보인다. 이래서 어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으려면 집필, 발표 연도순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작가의 문학적 레벨과 성숙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카의 이름만 알고,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처녀작 『밤에 걷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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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4-12-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 진진한 추리소설 한 권 추천 부탁드립니다. <13번째 마을>정도의 포쓰가 되는 추리소설이요~^^ 엄청나게 재밌게 마지막으로 읽은 추리소설이 바로 13번째마을 이거든요..ㅎ

cyrus 2014-12-05 21:26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제가 이제 막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입문자라서 감히 소설을 추천할 수준은 아니에요. 사실 <여섯번째 마을>도 아직 안 읽었어요.. ㅠㅠ 저보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신 블로거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제가 아는 분은 카스피님이에요. 추리, SF 장르 소설을 즐겨 읽었고, 많이 알고 계십니다. ^^
 
러브크래프트 전집 4 러브크래프트 전집 4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류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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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언덕과 정원, 햇살 속에서 노래하는 분수, 잔잔히 속삭이는 바다 위로 솟아 있는 황금빛 절벽, 청동과 돌로 이루어진 잠든 도시로 뻗어 있는 평원, 그리고 예장을 걸친 백마에 올라 깊은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가고 있는 어둑한 유령 같은 영웅들의 행렬에 대한 기묘한 환상에 대한 꿈을 꾸고서 한밤중에 잠을 깬 몇몇 사람들이 우리들 중에도 존재한다. (「셀레파이스」에서, 182쪽)

 

 

꿈속의 정신상태는 평상시의 정신활동과 다른 뚜렷한 특징을 가진다.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엉뚱한 시공간으로 순간적으로 쉽게 이동하거나, 여러 시공간이 겹쳐지고 혼동되는 현상을 겪는다. 연속된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따지지는 못하지만, 꿈에서 느꼈던 정서는 평상시보다 더 생생하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타르티니는 꿈에서 악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에서 들은 소리를 재현해 보려 했다. 그 음악은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로 탄생했다. 시인 생 폴 루는 매일 밤 침실 문 앞에 ‘시인은 시작(詩作) 중’이라는 글귀를 걸어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에서 많은 영감의 원천을 찾았다. 살바도르 달리는 자서전에서 일곱 살부터 여덟 살까지 현실과 상상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꿈과 신화의 지배 속에서 살았다고 밝혔다. 특이한 유년시절의 기억은 그를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중심으로 우뚝 솟게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

 

달리에 의해 꽃 피운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자아도취적이고, 시적이고 꿈과 같은 세계의 향연으로 이해됐고 기교가 부족한 난해한 미술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환상의 세계는 그동안 익숙했던 사회질서와 정체성을 파괴해 낯설고 두려운 미지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고전 공포소설의 대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트프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초자연적 현상을 유령 같은 외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꿈속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 역시 달리처럼 꿈과 신화의 지배 속에 살았던 괴이한 은둔자였다. 소설을 통해 기이한 환상들이 결합한 어두컴컴하고 습한 꿈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곳에 러브크래프트가 꿈속에서 만났을 법한 신비스럽고도 괴상한 존재들이 산다. 크툴루, 니알라토텝, 데이곤은 수많은 후배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에 의해서 새롭게 재창조되었다.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거대한 외계인처럼 생긴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지만, 지금까지도 오컬트 마니아들은 러브크래프트의 창조물들에 열광하고 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악마의 책’ 네크로노미콘이 가공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오컬트 마니아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러브크래프트와 관련된 오컬트 신드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이다.

 

러브크패트프의 소설은 1900년대 초에서 1930년대까지 이르는 시기동안 탄생하였다. 세상에 나온 지 백여 년은 훌쩍 지났다.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고전 공포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상당히 오래된 배경과 이야기 속 분위기는 독자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 작품집을 두세 권 정도 읽게 되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 전개와 플롯이 유사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상상의 도시, 어두컴컴한 지하 밀실 공간, 축축한 습기와 곰팡내가 가득한 흉물스런 저택 그리고 그곳에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악마나 괴물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금기의 장소를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저주를 무시하고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공포에 떠는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또 어떤 작품에 나온 배경과 주인공 및 주변 인물들이 또 다른 소설에 카메오처럼 재등장하기도 한다. 여러 작품을 계속 읽어나갈수록 작가가 곳곳에 숨겨진 ‘러브크래프트 코드’를 찾을 수 있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본인이 만든 창조물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환상적인 분위기의 배경만 약간 언급할 뿐, 정체를 언급하지 않는다. 독자의 의문만 늘어놓게 한 모호한 결말은 훗날 후배 작가들에게 문학적 영감이 되었지만, 러브크래프트 세계에 이제 막 들어선 초보 독자 입장에서는 아쉽고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러브크래트트의 일부 작품에 포와 로드 던세이니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낡은 것은 사실이다. 당시에 처음 그의 소설이 나왔을 때만 해도 독자에게 강렬하면서 생생한 공포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브크래프트 세계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작가의 후예들(스티븐 킹, 클라이브 바커, 브라이언 럼리 등)이 등장하면서 원조는 공포소설의 클리셰가 되고 말았다.

 

황금가지 출판사에 나온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총 4권이다. 일반적으로 1권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것은 당연한데, 이러한 독서가 러브크래프트 작픔의 매력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전성기에 나온 걸작들이 1,2,3권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1권은 데이곤, 크툴루 신화, 니알라토텝, 네크로노미콘 같은 대표적인 러브크래프트 코드가 나오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메인 요리라고 해도 전혀 반박할 수 없는, 훌륭한 에피타이저라고 보면 된다. 2, 3권은 SF가 결합한 코스믹 호러와 환상소설이 등장한 중후반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4권은 어떤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4권의 부제는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소설 제목인 ‘아웃사이더’라고 붙였지만, 여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역자는 서문에 4권을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전집 중 4권은 앞 권에 비해 대체로 작품들이 평이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다. 

 

사실 4권에 수록된 작품 일부는 러브크래프트의 초기 작품들이다. 「동굴 속의 짐승」, 「연금술사」「무덤」「데이곤」「니알라토텝」(이상 1권에 수록) 이전에 나온 초기작이다. 러브크래프트 코드가 처음으로 언급되고 소개되는 작품도 있다.

 

비록 잠깐이지만,「인스머스의 그림자」(1권에 수록)의 배경인 인스머스가 최초로 언급되는 작품이「셀레파이스」다. 「이름 없는 도시」는 네크로노미콘의 저자로 알려진 아랍의 광인 알하즈레드가 처음으로 언급된 작품이며 그 이듬해 발표된「사냥개」에서 네크로노미콘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또 다른 신들」에 지상의 신들이 살고 있다는 카다스(Kadath)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카다스는「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억」(1권에 수록)과 연관된 미지의 공간이다.

 

전집의 목차가 발표 연도순이 아닌 장르별로 정한 것이라서 러브크래프트 세계의 단초가 되는 작품들은 4권에 수록되었다. 음지에 있던 러브크래프트 세계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 같은 작품이 전집의 제일 마지막 권에 있는 기이한 편집이 연출되고 말았다. 4권이 나오기를 3년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독자들이라면 이 사실이 허무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단물만 잔뜩 읽고 있었다. 4권을 소홀히 읽었던 독자라면 저주받은(?) 4권을 다시 한 번 펼쳐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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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4-11-3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글 쓰시는 분들 정말 부럽고 대단하세요!

cyrus 2014-12-01 12:42   좋아요 0 | URL
예전에 비하면 이것도 줄여서 쓴거랍니다. 그래도 북플로 보기에는 이 글도 길어보이네요. ^^;;

2014-12-01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1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2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2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구에서 달까지 - 경이의 여행,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5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을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인 1961년 4월 12일 오전 6시 7분으로 돌려본다. 우리는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 발사장면을 만나게 된다. 가가린이 지구 한 바퀴를 돈 다음 무사히 착륙했을 때 세계인은 경악했다.

 

과학 발전에 있어 상상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주 개발에서도 많은 과학자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펴게 했던 공상 과학 소설이 있다. 로켓이 추진되는 원리를 이론화한 러시아의 치올코프스키는 이 공상 과학 소설’을 쓴 작가의 존재를 높게 평가했다. “이 발상의 첫 씨앗을 뿌린 것은 위대한 판타지 작가 쥘 베른이었다. 베른이야말로 내 생각의 인도자였다.” 이 소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우주여행을 꿈꾸기 시작했고,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미국의 남북 전쟁이 끝나자 할 일이 없어진 대포 제작자들이 ‘대포 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달까지 날아가는 포탄을 제작해 발사한다는 내용이다. 포탄이 우주를 날아다니는 이야기는 속편 격인 『달나라 모험』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대형 포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포탄이 달에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발사 위치와 날짜,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있다. 길이가 300 m나 되는 거대한 대포에 지름 3m, 높이 4m의 포탄이 제작된다. 이 무거운 포탄을 멀리 날려보내려면 화약 20만 kg이 필요하다. 베른은 포탄을 초속 12 km의 속도로 달을 향해 쏘아 올리면 발사한 지 4일 만에 달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포탄은 정확히 12월 1일 밤 10시 46분 40초에 발사된다. 만약에 날짜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게 되면, 18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포탄의 이름은 콜럼비아드. 이곳에 탑승하게 되는 사람은 총 3명. 처음으로 달에 포탄을 쏘아 보내는 생각을 한 대포 클럽 회장 바비케인, 그의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적극적으로 달나라 여행에 동참한 프랑스인 아르당 그리고 바비케인을 싫어하고 달나라 여행 계획마저 반대한 캡틴 니콜까지. 포탄이 만들어지는 과정 내내 캡틴 니콜은 바비케인의 계획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고 과장되었다고 비난한다. 자존심이 센 바비케인이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니콜을 그냥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과 논쟁을 참지 못해 결투를 신청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르당은 두 사람의 결투를 막는다. 결투에서 바비케인이 사망한다면, 달나라 여행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당은 극적으로 두 사람의 결투를 막는데 성공했고, 지독한 갈등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 자신과 함께 달 여행을 하자고 제안한다.

 

 

 

 

 

만약 베른의 상상처럼 사람이 포탄에 실제로 탑승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발사되자마자 무서운 가속도 때문에 몸무게가 몇 천 t이나 돼 납작해져 사망하게 된다. 베른도 이 점을 걱정했는지 발사 충격을 물로 만든 쿠션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살아남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른은 우주에서 희박한 산소 문제를 과학적 원리를 인용하면서 그럴듯하게 설명하지만, 이 문제 또한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편안하고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도 지나친 과장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 열차는 충돌하지도 탈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승객들은 꿀벌이 날아가듯 일직선으로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테고, 피곤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20년 안에 지구인의 절반이 달을 여행하게 될 것입니다!" (192쪽)

 

 

그렇지만, 이 작품은 과학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이 결합하여 지구에서 달까지의 비행 속도와 시간, 포탄이 발사할 수 있는 조건을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베른의 공상 과학 소설이 그저 아동을 위한 흥미 위주의 작품으로 오해해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비케인의 달나라 여행 아이디어는 과장되고 허술해 보일지 몰라도, 축약된 아동문고 버전이 아닌 완역본을 직접 읽어보면 베른의 치밀한 전개에 감탄한다. 그 당시에 나온 최신 천문학 지식을 동원하여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달나라 여행을 문장으로 실현한 것이다. 비록 상상력에 근거한 내용이라고 하지만, 훗날 우주 개발의 개척자들에게 우주여행의 꿈을 심어 준 위대한 발상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베른은 과학 지식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이 작품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있다. 베른의 공상 과학 소설이 지금까지도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과학에 문외한인 독자도 읽게 만드는 쉬운 글쓰기에 있다. 지구의 자전 으로 인해 달의 앞면만 보는 현상을 식탁으로 비유를 해서 설명한 문장을 보면, 베른의 문장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쉽게 설명하다니.

 

“당신네 식당에 들어가서, 식탁의 중심을 계속 바라보면서 식탁을 한 바퀴 돌아라. 식탁을 다 돌았을 때는 당신 자신의 자전축을 중심으로 한 번 돌았을 것이다. 당신의 눈은 식당의 모든 점을 지나쳤을 테니까. 식당은 하늘이고, 식탁은 지구이고, 당신은 달이다!” (58쪽)

 

그러나 이 소설은 인간이 과학 진보의 힘을 우주로 펼치려는 야심찬 계획을 단순히 찬양하지 않는다. 베른은 나날이 발전되는 근대 문명을 예찬하면서도 화려하고 눈부신 진보의 불빛에 가려 미처 보지 못한 어두운 그림자를 주시했다. 작품 곳곳에 과학문명 사회의 오점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바비케인이 자신의 달나라 여행 계획을 전 세계적인 계획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나라에 협력을 요구하는 장면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이제 종교에서 과학으로 넘어갔음을 암시한다.

 

또 베른은 진보의 법칙을 믿고 오만해진 인간을 풍자하기도 한다. 바비케인이 달나라 여행 계획을 공식 선포한 뒤에 사람들은 달을 ‘금발의 포이베’(달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그리고 이미 달을 정복한 것처럼 열띤 분위기에 취한다.  

 

달이 제 소유라도 되는 듯이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금발의 포이베(달의 여신)는 그 대담한 정복자들 손에 들어가 벌써 미국의 영토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겨우 포탄을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상대가 위성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교섭을 시작하는 것은 좀 무례하지만, 문명국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다. (36쪽)

 

지구의 위성인 달은 제국주의적 욕망이 투영되는 순간, 지구의 식민지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달을 향해 쏘는 포탄은 단순히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알아내기 위한 과학적인 목적이 아니다. 원래 포탄은 적을 무력화시켜 지배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기였다. 지구 다음으로 또 하나의 영토가 될 수 있는 달을 지배하려는 문명국의 야욕으로도 볼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공상으로 여겨졌던 우주여행의 꿈을 무럭무럭 자라게 해준 희망의 씨앗이면서도, 우주에서도 세계질서 구축을 지향하기 위한 지배권을 뻗치려는 강대국의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불행의 씨앗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희망의 씨앗 속에 있는 영양분, 베른의 상상력 덕분에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했다. 지금도 계속되는 도전과 모험의 우주 탐사는 과학 연구 목적으로만 실행되지 않을 것이다. 우주를 지배해야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인류가 우주의 비밀을 알기 시작하는 ‘우주의 시대’를 넘어서  ‘우주 개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강대국이 우주 탐사에 막대한 비용과 자원을 투자하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우주 탐사 및 개발 사업이 한층 더 발전된다면 우주에 쏘아 올리는 인공위성이나 로켓이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탄이 될까봐 쓸데없는 기우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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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의 단편선집(『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현대문학, 2014년)에 ‘아이피오르니스 섬’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화석 조류 아이피오르니스를 만난 남자의 경험담이다. 상상 속의 동물이나 다름없는 아이피오르니스를 웰스는 상상력으로 복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이피오르니스가 살았던 섬에 거대한 화석 알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알에 아이피오르니스 새끼가 부화한다. 남자는 새끼를 정성스럽게 키운다. 새끼는 남자를 어미라고 생각하면서 졸졸 따라다닌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끼는 빨리 성장했다. 이제 남자의 몸집보다 클 정도로 자랐다. 그러나 다 자란 아이피오르니스는 점점 야생의 본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과 발톱으로 남자를 공격한다. 남자는 아이피오르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사투 끝에 섬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이피오르니스의 공격에 남자는 흉터가 남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아이피오르니스(왼쪽), 화석이 된 아이피오르니스의 알(오른쪽)

 

 

아이피오르니스는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했던 거대한 새이다. 학명은 Aepyornis maximus. 키는 약 3m 정도에, 무게는 450kg 이상 나갔다고 한다. 몸집이 큰 편이었는데 날개 뼈가 작고 퇴화하여 하늘을 날지 못했다. 생김새와 특성이 타조와 비슷하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아이피오르니스를 ‘Elephant Bird’라고 부르기도 했다. 웰스의 소설에서는 아이피오르니스는 인간을 공격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괴물 새’로 묘사되어 있는데 사실 몸집이 큰 것만 빼면 적으로부터 공격당하기 쉬운 존재였다. 특히 아이피오르니스의 알은 지름이 30cm 이상이나 될 정도로 컸기 때문에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의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아이피오르니스가 매우 겁이 많은 편이라서 어두운 습지에 주로 살았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절멸되었는지 알 수 없다. 멸종 시기를 대략 추정하면 19세기 중반으로 잡고 있다.

 

남자는 자신이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피오르니스를 ‘괴물’이라고 말한다. 새의 공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신드바드의 로크 이야기까지 언급한다.

 

흉터 난 남자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놈은 정말로 괴물이었으니까요. 신드바드의 로크 이야기는 아이피오르니스에 대한 전설 가운데 하나였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 뼈를 찾아낸 게 언제죠?” (웰스  ‘아이피오르니스 섬’ 중에서, 『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81쪽)

 

 

로크는 『천일야화』(앙투안 갈랑 판, 열린책들 / 2010년)에 나오는 전설상의 새이다. 신드바드는 두 번째 여행에서 로크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 신드바드는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물체를 보게 된다. 그것은 알을 품고 있는 로크였다. 신드바드는 터번으로 로크의 거대한 다리에 자신의 몸을 묶었다. 로크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 함께 실려가 무인도를 탈출할 수 있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2권, 353~355쪽)

 

 

 

 

 

 

 

 

 

 

 

신드바드는 다섯 번째 여행에서 또다시 로크를 만난다. 신드바드는 로크의 알이 있는 무인도에 정박했다. 그는 이미 로크의 존재와 알을 본 적이 있어서 동료 선원들에게 로크의 알을 절대로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선원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로크를 죽여 구워 먹는다. 마침 두 마리의 로크가 나타나 둥지를 침입한 선원들을 공격한다. 신드바드와 선원 일행은 배에 올라 로크의 섬을 탈출하게 되지만, 로크는 하늘 위에서 큰 바윗덩어리를 떨어뜨려 신드바드가 탄 배를 명중시켰다. 배가 침몰하여 선원들은 사망하고, 신드바드만 살아남는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2권, 391~393쪽)

 

신드바드 일행이 로크의 섬에 도착해서 새끼 로크를 잡아 먹는 장면은 웰스의 ‘아이피오르니스의 섬’ 줄거리 일부와 흡사하다. 이 작품의 남자도 아이피오르니스 섬에 정착하고 난 뒤에 부화되지 않은 알을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다가 마침 알에서 아이피오르니스 새끼가 깨어나 키우게 된다. 남자와 아이피오르니스의 첫 만남은 이렇다.   

 

로크는 신드바드의 이야기 이전인『천일야화』 1권에 처음 등장한다.

 

“이 로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흰색 새로, 그 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들판에 있는 코끼리를 들어 올려 산꼭대기에 잡아다 놓고 쪼아 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1권, 276쪽)

 

앙투안 갈랑은 주석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로크가 언급되어 있다고 적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상상동물 이야기』(까치, 1994년-절판)『동방 견문록』에서 묘사된 로크에 관한 내용을 인용했다.

 

 

 

 

 

 

 

 

 

마다가스카르 섬 주민들은 1년 중 특정 기간이 되면 남쪽에서 굉장히 몸집이 큰 새가 날아온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새의 이름이 로크라는 것이다. 새의 생김새는 독수리와 비슷한데 크기는 독수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로크는 대단히 힘이 좋기 때문에 발톱으로 코끼리를 낚아채서 하늘로 들어 올렸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서 잡아먹는다. 로크를 본 사람에 따르면 날개 길이는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가 열여섯 걸음이나 된다고 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상상동물 이야기』 로크 편, 140~141쪽)

 

폴로는 중국으로 간 황제의 사절들이 로크의 깃털을 가져온 적이 있다고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로크가 마다가스카르 섬에 사는 새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새가 바로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서식했던 아이피오르니스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아이피오르니스는 날 수가 없는 새이다. 이러한 오류는 『동방견문록』이 무용담 전문 작가였던 루스티첼로의 덧칠을 거치면서 당시 유럽인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과장에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폴로는 처음으로 마다가스카르를 유럽에 널리 알렸지만, 직접 그곳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원나라에서 귀국 도중 만난 아랍인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썼다. 당시 아랍상인들은 이미 마다가스카르에 무역 기지를 설치면서 교역을 하고 있었다.

 

아이피오르니스는 17세기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아이피오르니스를 로크와 같은 전설의 새와 비슷한 동물로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아이피오르니스 같은 거대한 몸집의 새를 본 적이 없어서 ‘괴물’로 오해하기 쉬웠다. 특히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인간을 공격하고, 코끼리를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둔갑했다. 원래 아이피오르니스는 낯선 적을 몹시 두려워하고, 날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인간은 한때 그를 괴물로 여기면서 두려워했지만, 상상력이 주는 방어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피오르니스에게 인간이야말로 진짜 ‘괴물’이었다. 그리고 근대의 ‘괴물’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힘을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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