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숲을 헤매게 되었다.
밤이 되어 배도 고파졌다.
그런 가운데, 한 식당을 찾아냈다.
이상한 이름의 식당이다.
나는 인기 메뉴인 ‘나폴리탄’을 주문한다.
몇 분 후, 나폴리탄이 온다. 나는 먹는다.
어쩐지 이상하다. 짜다. 이상하게 짜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점장 : 죄송합니다. 손님, 다시 만들겠습니다. 돈은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몇 분 후, 나폴리탄이 다시 나온다. 나는 먹는다. 이번에는 멀쩡하다.
나는 식당을 나온다.


잠시 후, 나는 눈치 채고 말았다……
여기는 어떤 레스토랑……
인기 메뉴는…… 나폴리탄……

 

 


이것은 한때 일본의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괴담이다. 괴담의 내용이 아리송하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자. 괴담의 주인공은 식당에 ‘나폴리탄’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음식을 주문한다. 그는 음식을 먹다가 두통에 시달린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점장에게 불평한다. 점장은 새로 만든 나폴리탄을 대접한다. 다행히 주인공은 방금 전과 다르게 음식을 잘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온 주인공은 갑자기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괴담은 주인공이 눈치를 챈 ‘그것’이 뭔지 알려주지 않고 끝을 맺는다.

 

 

 

 

 

 

나폴리탄이 뭐죠? 스파게티인가요?

 

 

 

이 괴담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궁금증을 마구 쏟아낸다. 나폴리탄이 어떻게 생긴 음식일까? 주인공이 왜 음식을 먹다가 두통을 겪은 것일까? 그리고 주인공이 눈치를 챈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은 괴담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 괴담이 인터넷상에서 널리 알려지자 괴담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괴담의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푸는 사람이 없다. 이 괴담을 해석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래도 괴담에 흥미를 붙인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괴담의 비밀을 파헤친다. 이러한 과정에 괴담 원본을 참고해서 만든 새로운 버전의 괴담이 새롭게 탄생되기도 한다.

 

이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 혹은 인물을 주요 소재로 삼는 괴담 형식을 나폴리탄(Napolitan, ナポルリタン) 괴담이라고 한다. 나폴리탄 괴담이 생소한 사람은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원래 괴담은 무서워야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나폴리탄인지 나폴레옹인지 뭔가 하는 이 괴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서워해야 하는 거죠? 별로 무섭지 않은데요. 제가 봐도 이야기가 싱겁고 허접한데 일본 사람들은 왜 이런 걸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끄덕끄덕.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폴리탄 괴담을 하나의 수수께끼로 받아들이면 재미없다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왜냐하면 나폴리탄 괴담과 우리가 평소에 아는 괴담의 형식을 같이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섭게 들었던 괴담은 레퍼토리가 딱 정해져 있다.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 일반적인 괴담 형식 1 : <전설의 고향> 괴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간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연달아 죽게 되자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더욱이 그들이 죽어가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게 되자, 생존한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방치된 공동묘지의 영혼이 내린 저주 때문에 흉흉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호기심 많은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기 위해 인적 드문 공동묘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심령 현상을 겪는다. 엄청난 공포감의 압박 속에서도 주인공은 마을의 저주를 풀어줄 귀신을 만난다. 처음에 심령 현상에 벌벌 떨던 주인공은 귀신의 고민을 귀담아 들어주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귀신은 주인공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불만을 모조리 털어놓는다. 이것이 바로 ‘고스트 힐링 캠프’다. 묵었던 감정들을 다 풀어낸 귀신은 저주를 없애기로 한다. 마을은 예전처럼 평화를 되찾았다. 지금도 그 마을에 가면 귀신이 떠도는 공동묘지가 있다고 한다. 끝」

 

 

* 일반적인 괴담 형식 2 : 엘리베이터 괴담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소녀는 왠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두려웠다.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누군가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교 보충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늦은 시간에는 너무 무서웠다.

 

“엄마,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서 무서워.”
“그럼 엄마가 마중을 나갈까?”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녀는 엄마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소녀는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스윽 올라가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엄마는 소녀를 그윽이 바라보며,

 

“넌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괴담 형식 1은 옛날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전설의 고향> 에 나올 법한 형식이다. 이런 이야기에는 늘 귀신이 등장한다. 귀신은 아이들을 겁주는 게 특효약이다. 괴담 형식 2는 90년대에 유행했던 엘리베이터 괴담이다. 이거 모르는 사람 있으려나? 아무튼 여기서도 귀신이 등장한다. 이 두 개의 괴담의 ‘뽀인트’는 뭐라 할 것도 없이 귀신이다. 괴담 문화가 발달된 일본에는 괴담이나 도시전설을 아주 맛깔나게 들려주는 사람을 ‘미스터리 텔러(Mystery teller)’라고 말한다. 미스터리 텔러는 괴담에서 제일 무섭게 느껴지는 뽀인트를 안다.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이야기를 전달하면 청자들은 지루해한다. 유능한 미스터리 텔러는 청자들이 무서운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이제 일반 괴담과 나폴리탄 괴담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나폴리탄 괴담은 이야기의 진실이 숨겨진 복선조차 없다.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맥거핀(MacGuffin)이다. 맥거핀은 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뿐, 별 의미가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폴리탄 괴담이 아무 의미 없는 싱거운 이야기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나폴리탄 괴담의 장점은 이야기의 소재를 미지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이렇듯 이야기에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소재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러한 매력에 흠뻑 취한 나폴리탄 괴담 마니아들은 괴담에 채워지지 못한 미지의 요소들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오늘 뜬금없이 나폴리탄 괴담을 소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공포문학의 특징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나폴리탄 괴담의 사례를 가져와 봤다. 나폴리탄 괴담 또한 인터넷상에서 통하는 하위문화로 알려졌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나폴리탄 괴담은 하나의 문학적 장치(Plot)로 사용되어 왔다. 

 

 

 

 

 

 

 

 

 

 

 

 

 

 

 

 

 

 

 

 

 

 

 

 

 

 

 

 

 

 

 

 

 

 

 

 

 

 

 

 


 


나폴리탄 괴담의 효과를 이용한 작품으로 공포문학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러브크래프트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그의 명성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스티븐 킹을 있게 한 조상님 되시겠다. 공포문학의 아버지가 에드거 앨런 포라면 어머니는 러브크래프트다. (러브크래프트는 유년 시절에 여장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뚜렷한 실체의 영혼을 다루기보다는 미지의 대상에서 비롯되는 원초적 공포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체로 음울한 분위기의 장소 속에서 혼자 헤매면서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주인공들의 심장을 조여 오는 미지의 대상이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만든 미지의 창조물 정체를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즉 나폴리탄 괴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작품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독자는 이야기를 모호하게 만든 러프크래프트를 마치 어설픈 작가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런 내용의 서평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매력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나폴리탄 괴담에도 일반 괴담과 다른 특별한 묘미가 있다. 나폴리탄 괴담을 어설픈 창작물이 아닌 독창적인 이야기로 보는 시선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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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2-1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담 형식 1은 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의 모습에서 공포를 유발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에서 `내 다리 내놔~~` 이런 내용의 이야기에 정말 무서웠거든요. 불 끄고 누웠을 때, 장롱 위에서 귀신이 나올까봐 머리 끝까지 이불 뒤집어쓰고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괴담은 괴담 2 인 것 같아요. 사람들을 섬찟하게 하는 마지막 포인트에 옹기종기 모인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곤 했죠.
나폴리탄 괴담은 처음 들어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스파게티 이름이군요. 작가와 청자의 합작으로 완성되는 괴담인 것 같은데, 괴담이 되는 코드가 잘 이해되지는 않네요. 도무지 마지막 부분의 어느 포인트에서 섬찟해야 하는 건지ㅎㅎ^^;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주제가 나오기 전에 이루어지는,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생각나구요.
어쨌든 cyrus님 덕분에 바닥을 깔고 있던 제 지식이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

cyrus 2016-02-19 14:46   좋아요 1 | URL
‘내 다리 내 놔’ 전설이 정말 유명한데, 잊고 있었습니다. 괴담 2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느낌이 들어서 무섭게 느껴지죠.

인터넷에서 나폴리탄 괴담을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괴담들이 나옵니다. 대체로 짧아요. 그래서 어떤 것은 정말 임팩트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널리 회자되는 것도 있지만, 일반인들의 창작이라서 그런지 어설픈 것도 있습니다. ^^

stella.K 2016-02-19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얘기긴한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란 영화를 얼마전 두번째로 보았지.
여성 영화로는 델마와 루이즈와 쌍벽을 이루는 영환데,
어쨌든 그 음식이 어떤지 궁금해. 바삭거리는 소리가 나거든.
토마토를 아무리 기름에 지져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느냔 말야?
니가 스파게티를 얘기하니까...후후.
그런데 괴담 2는 어느 정도 예견이 되는... 그래서 별로 웃기진 않았다.
저 책 읽어보고 싶긴하다.^^

마녀고양이 2016-02-19 13:09   좋아요 0 | URL
전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책의 레시피 때문에,
다섯 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책에서는 더 바삭거리는 느낌이어서 도리어 영화가 그냥 그랬어요. 심지어, 토마토 튀김을 집에서 실제로 해보기도 했다니까요.
근데 망쳤어요. ㅋㅋ

stella.K 2016-02-19 14:0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니까요. 그 바삭거리는 식감이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영화에서도 보면 나중엔 그걸 싸 가지고 양로원까지 가지고 오는데
죽 되는 게 맞는 건데 아삭거리면서 먹기까지 하잖아요.
근데 책으로도 나와 있군요.

cyrus 2016-02-19 14:50   좋아요 0 | URL
엘리베이터 괴담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제가 소개한 것은 고전이죠.

토마토를 튀기지 않는 이상, 바삭거리는 식감의 음식으로 만들기 어려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