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딕슨 카의 화형법정(엘릭시르, 2013)은 악명 높은 여자 독살범의 실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독살범의 이름은 마리 마들렌 도브리.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마리는 1630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명망 높은 사법관의 딸로 태어났다. 마리는 남자들과 육체적 관계를 즐기기를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21세 때 마리는 브랑빌리에 후작과 결혼을 했다. 후작도 마리처럼 방탕한 생활을 하는 한량이었다. 두 사람이 평범하게 결혼 생활을 할 리가 없었다. 후작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마리는 자신의 집에 남자들을 끌어들였다. 마리가 만났던 남자 중에 남편의 친구이자 군인인 생트 크루아도 있었다. 후작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눈감아줬다. 아마도 후작은 자신 또한 바람기가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아내의 불륜에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딸의 불륜에 관한 소문이 사교계에 퍼지게 되자 마리의 아버지는 분노했다. 그는 사법관 지위를 이용하여 생트 크루아를 체포하여 바스티유 감옥에 가뒀다. 생트 크루아는 자신을 감옥에 한 마리의 아버지를 독살할 생각을 품는다. 그는 옥중에 이탈리아인 독살범에게 비소로 독약을 만드는 비법을 배웠다.

 

체포된 지 6주 뒤에 감옥에 나온 생트 크루아는 자신의 독살 계획을 마리와 함께 실행하기로 했다. 비소 독약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두 사람은 가난한 병자들이 입원하는 자선병원에 위문을 핑계로 환자들에게 찾아가서 독이 들어간 과자를 나눠줬다. 이 사건으로 환자 5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병원 측은 독살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살인의 재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마리와 생트 크루아는 같은 수법으로 마리의 아버지를 독살했고, 마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차지하려고 형제들까지 독살하기에 이른다.

 

마리의 대담성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브랑빌리에 후작도 그녀가 처치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후작이 죽어야 생트 크루아와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의 계획은 실패했다. 생트 크루아는 후작을 독살하려는 그녀의 계획을 반대했으며 의도적으로 막았다. 생트 크루아가 마리의 계획을 방해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생트 크루아는 마리와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것을 원치 않았고, 혹시나 그녀와 법적으로 부부가 되면 자신도 그녀로부터 독살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마리와 생트 크루아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고, 생트 크루아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마리가 생트 크루아를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 세상에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것 같았던 마리의 범행은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녀는 가죽 깔때기를 입에 문 상태에 강제로 들이붓는 물을 마시는 물고문을 받았다. 끔찍한 고문을 받고 나서야 마리는 범행을 모두 자백했고, 1676년에 단두대에서 참수되었고, 그녀의 시체는 불에 태워졌다.

 

마리의 범행은 살인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소재로 글을 쓰는 추리작가들에게는 마리 도브리 독살 사건은 아주 흥미로운 소재였을 터. 카는 화형법정에서 17세기 여자 독살범의 영혼을 불러들여 신비롭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작중인물인 스티븐스의 아내는 여자 독살범의 이름과 외모와 닮은 바람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그녀는 깔때기만 보면 무척 싫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마리가 깔때기를 이용한 물고문을 받았던 사실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마리 도브리 독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카가 처음으로 쓴 것은 아니다. 역사소설의 대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마리 도브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 ‘셜록 홈즈시리즈를 만든 코난 도일가죽 깔때기라는 제목의 짧은 공포소설을 썼다. 제목만 봐도 마리 도브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떠올린다. 도일은 만년에 (일부는 가짜로 판명되었지만) 심령술에 심취했을 정도로 초자연적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가죽 깔때기화형법정에 비하면 읽을 때 느끼는 공포 분위기와 긴장감이 덜 하다. 도일의 가죽 깔때기를 읽고 나서 카의 화형법정을 읽는 것이 낫다. 반대 순서로 읽으면 도일의 소설이 빈약하게 느껴진다. 마리 도브리 독살 사건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책으로는 독약의 세계사(시부사와 다쓰히코, 가람기획, 2003), 킬러, 형사, 탐정클럽(외르크 폰 우트만, 열대림, 2007),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다나카 마치, 전나무숲, 201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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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28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너무 흥미진진해요.

cyrus 2015-06-29 17:52   좋아요 0 | URL
살인마 이야기는 언제나 봐도 흥미진진하죠. ^^

해피북 2015-06-2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이나 지금이나 욕망에 대한 집착 과 범죄는 다를바가 없는거 같아요. ㅠㅅㅠ

cyrus 2015-06-29 17: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 지구가 사라져도 인간의 욕심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6-30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특이한 작품이죠..ㅎ
 
화형 법정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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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과거에 악명을 떨친 살인범의 외형과 빼닮은 사실을 알았다면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당신을 향해 활짝 미소 짓는 그의 표정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섬뜩하다. 이런 상황은 영화에 나올 법한 일이라 평소에 만나는 지인이 신분을 교묘히 숨긴 진짜 범인이 아닌 이상, 범인의 몽타주와 거의 비슷하게 닮을 확률은 적다. 그래도 기묘한 상황을 겪는 당사자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범인과 닮은 사람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하다. 특히 친하게 지내면서도 그의 개인적인 생활을 모른다면 당연히 그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

 

존 딕슨 카의 추리소설 《화형법정》의 이야기는 앞에서 설명한 불길한 우연에서 시작한다. 출판사 편집자인 에드워드 스티븐스는 충격적이고 끔찍한 범죄사건을 소개하는 논픽션 작가 고던 크로스의 원고 자료를 확인하다가 그 속에 첨부된 의문의 사진을 발견한다. 카메라를 항해 똑바로 노려보는 금발의 여인. 그 여인은 1676년에 화형에 처한 여자 독살범 브랭빌리에 후작 부인이었다. 신기하게도 독살범과 스티븐스의 아내는 쌍둥이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닮았고, 이름마저도 똑같다. 브랭빌리에 후작 부인이 결혼하면서 얻은 이름은 ‘마리 도브리’였고, 아내가 스티븐스와 결혼하기 전 이름 또한 ‘마리 도브리’였다. 스티븐스가 독살범과 아내의 관계에 궁금할수록 아내의 행적에 대한 의혹도 더욱 증폭된다.

 

스티븐스의 이웃인 마크 데스파드의 삼촌은 위염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마크는 삼촌의 죽음을 의심한다. 사망 원인은 위염이 아니라 비소 중독으로 인한 독살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비소로 독살하는 방식은 17세기의 여자 독살범이 사용했던 것과 비슷했다. 스티븐스는 아내가 데스파드의 삼촌을 죽인 독살범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삼촌의 죽음에 둘러싼 기괴한 정황들이 밝혀지면서 여자 독살범과 닮은 스티븐스의 아내가 용의자로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삼촌의 방에서 홀연히 나타난 여자 독살범의 유령을 봤다는 증인도 있다. 삼촌의 사망 원인을 독살 쪽으로 무게가 실린 가운데 스티븐스 일행은 삼촌의 시체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비소를 확인하기 위해 납골당으로 향한다. 그러나 나무 관 속에 있어야 할 삼촌의 시체가 사라졌다. 납골당에 사람이 출입한 흔적이 전혀 없는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스티븐스는 아내가 용의자로 몰지 않으려고 마크의 아내 루시도 용의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추리를 펼친다. 하지만 스티븐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독살범에 관한 내용이 있는 크로스의 책 일부와 함께 아내가 돌연 사라지고 만 것이다.

 

《화형법정》에는 카가 창조한 예심판사 앙리 방코랑, 밀실 사건 해결의 달인 기드온 펠 박사가 나오지 않는다. 경찰청 소속의 브레넌 경감이 등장하여 추리를 해보지만, 계속 헛다리만 짚을 뿐이다. 스티븐스, 마크 그리고 브레넌 경감 등 불가사의한 사건의 중심에 휘말리게 된 인물들이 나름 용의자 후보를 내세워보지만, 삼촌이 독살당하는 과정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독살범의 유령이 누군지도 밝혀내지 못한다. 카는 마법, 납골당, 독살범의 유령 등 공포문학의 단골 소재를 내세워서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편,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탐정의 역할을 과감하게 제한함으로써 더욱 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이 무척 궁금해서 이 책을 절대로 손에 놓지 못한다.

 

자신들의 아내가 독살범으로 의심받는 상황 속에 펼쳐지는 스티븐스와 마크 데스파드와의 미묘한 설전 또한 흥미롭다. 소설 초반부에 스티븐스는 추리를 펼치는 과정에서 사적 감정을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 탐정의 원칙을 어긴다. 자신의 아내가 범인으로 몰지 않기 위해 스티븐스의 아내가 범인이라는 가정 하에 가설을 내세운다. 마크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삼촌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적극적으로 규명하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아내가 독살범이 아니기를 바란다. 카는 소설 초반부에서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스티븐스가 탐정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 독자의 기대감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작가에게 살짝 배신감(?)이 든 독자는 이 소설을 어찌 안 읽을 수 있으랴. 카가 의도한대로 독자는 사건의 진상이 궁금하고, 이 초자연적 사건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사이다' 같은 인물이 소설 종반부에라도 꼭 나오기를 믿는다.

 

하지만 소설이 거의 다 끝나는 결말에 이르러서도 카는 독자를 배신한다. 에필로그격인 '평결'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독자의 뒤통수를 날려 버린다. 지금도 추리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화형법정》의 결말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결말에 따라서 《화형법정》을 정통 추리소설로 인정하는 독자들이 있는 반면에, 추리 기법이 들어간 호러소설로 보는 독자들도 있다. 어떤 서평에 의하면 명성을 떨친 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화형법정》은 2% 부족한 작품으로 평가했다. 치밀하게 계산된 완전 범죄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탐정물에 익숙하거나 이러한 탐정이 나오기를 고대했던 독자에게는 《화형법정》의 결말이 실망할 수도 있다. 방코랑이나 기드온 펠 박사가 나오는 카의 작품을 먼저 읽은 뒤에 《화형법정》을 읽었다면, 《화형법정》이 정말 카가 쓴 것이 맞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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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6-1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엘릭시르 시리즈는 읽어본 적이 없는데요. 존 딕슨 카라고 하니 얼마 전 cyrus님이 알라딘 중고에서 득템한 그 책의 저자가 아니었나요? 이 책은 제 보관함으로...

스윗듀 2015-06-16 21:58   좋아요 1 | URL
맞아맞아😀cyrus님이 소개하는 책은 모두 흥미로워요!

cyrus 2015-06-17 18:51   좋아요 0 | URL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를 말씀하시는가 보군요. 책의 저자는 아니고, 존 딕슨 카의 소설을 소재로 삼은 추리소설 제목이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입니다. 카의 소설, 정말 재미있습니다. 지금도 추리물에서 등장하는 밀실 트릭은 거의 카의 머릿속에 나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

게으른독서가 2015-06-1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을 즐겨읽는 편은 아닌데 이 책은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5-06-17 18:53   좋아요 0 | URL
나온 지 오래된 고전 추리소설이라서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도 한 번 읽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

카스피 2015-06-1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화형법정은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cyrus님이 말한 독자의 기대를 배신했다는 것이 무언지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화형법정은 기존의 카의 탐정물들과는 약간 궤를 달라히는 작품이죠.워낙 카 자신이 불가능범죄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것처럼 기존의 추리작가들과는 달리 이른바 괴이현상을 소재로 다루다보니 아무래도 명탐정이 등장(카나 펠박사등)하여 정통적 의미의 논리적 추리를 밀고 나가는데 한도가 있다고 여겼는지 화형법정처럼 기존의 명탐정이 없는 추리소설들을 썼고 좀더 편하게 괴이한 소재를 끝까지 밀어 붙이지 않았나 여겨지네요^^

cyrus 2015-06-17 18:57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스티븐스이 추리력으로 독살범을 닮은 아내의 누명을 벗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 다음에 고던 크로스가 등장해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점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 저는 크로스가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보니까 그게 아니더군요.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카스피님의 평에 공감합니다. ^^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
윌리엄 브리튼 지음, 오일우 외 옮김 / 모음사 / 199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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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는 총 38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모은 책이다. (책 제목을 줄여서 ‘존 딕슨 카’라고 하겠다) 사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상당히 짧은 글이라서 콩트에 가깝다. 역자는 서문에 이 책을 만들게 된 배경을 밝혔다. 미스터리 콩트만 모아서 책 한 권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외국의 단편집과 추리물을 게재하는 잡지를 뒤져 봤다고 한다. 그래서 1년 동안 150여 권의 책을 뒤져서 400편이 넘는 콩트를 모았고, 여기에 38편을 추려서 선정했다. 실제로 《존 딕슨 카》 앞표지를 보면 공동 역자 이름 왼쪽에 ‘정선·번역’이라고 표기되었다. 공동 역자는 오일우, 오수현 씨다. 두 사람은 같은 성씨에다가 문리과 대학을 졸업했다(오일우 씨는 서울대, 오수현 씨는 성균관대). 역자 이력만 봐도 현재 두 사람 다 연로한 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대 문리대는 1975년에 인문대, 사회과학대, 자연과학대로 해체되었다. 《존 딕슨 카》의 초판 발행연도는 1992년이다. 이 한 권의 책을 만들려고 외국 미스터리 콩트를 수집했을 때 두 역자의 나이는 대략 40대 초중반으로 접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해외 추리물, 특히 고전 중심의 단편 앤솔로지가 계절을 타지 않고 많이 나왔는데《존 딕슨 카》 도 그 출판 열풍 속에 탄생한 책이다. 그렇다고 《존 딕슨 카》가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대표작들만 엄선해서 너무 뻔하게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명 작가의 미스터리 콩트를 접할 수 있는 진귀한 책이다. 두 역자는 미스터리 콩트를 선정하는 네 가지 기준을 명확하게 밝혔다. 첫 번째 7쪽 이하의 짧은 분량, 두 번째 재미있을 것, 세 번째 한 작가당 한 편, 네 번째 다양한 내용일 것. 38편의 미스터리 콩트 중에는 독자의 허를 찌르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결말을 드러내는 훌륭한 작품이 있는 반면에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전개되다가 마무리는 개그로 허무하게 끝나는 작품도 있었다. 두 역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미스터리 콩트 모음집의 표제가 된 윌리엄 브리튼의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는 존 딕슨 카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에 쓴웃음이 날 수도 있으니까.

 

에드가 골트는 삼촌과 사는 가난한 고아다. 에드가는 열두 살 때 무심코 존 딕슨 카의 소설을 읽고 나서 자신도 언젠가는 밀실 살인을 실행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존 딕슨 카의 소설에 나오는 밀실 살인을 완벽하게 모방하여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존 딕슨 카, 심지어 그의 또 다른 필명이 카터 딕슨으로 낸 작품들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읽었고, 작품 속에 나오는 밀실 사건을 섭렵한다. 본의 아니게 카는 에드가의 살인 계획을 돕는 멘토가 되었다. 에드가는 삼촌의 재산을 차지하려고 밀실 살인의 희생자를 삼촌으로 정한다. 삼촌을 죽인 뒤 굴뚝으로 탈출하기로 계획한다. 비록 카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수법이긴 하지만, 에드가는 이를 멋지게 실행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용의자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알리바이를 꾸며냈고, 삼촌의 집을 방문한 레뮤얼 스토퍼와 의사 해럴드 크로울리마저 속일 작정이었다. 카의 소설처럼 에드가는 2층에 있는 서재 안에서 삼촌을 죽이고 굴뚝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고는 뻔뻔하게 삼촌의 지인들이 있는 음악실로 향했다. 스토퍼는 삼촌이 내려오지 않자 2층으로 올라간다. 에드가는 자신의 밀실 살인이 계획대로 성공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2층에서 내려온 스토퍼는 삼촌의 책상에서 꺼내 온 권총을 쥔 채 등장하여 삼촌을 죽인 범인으로 에드가를 지목했다. 에드가가 꾸민 완전 밀실 범죄는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에드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서재의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이 책에 수록된 총 38편의 미스터리 콩트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다.

 

 

 

1. 오 헨리 - 고백 (The Confession of.....)
2. 작자 미상 - 절묘한 변호 (An Ingenious Defense)
3.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 - 백만에 하나 있는 우연 (The Unreckonable Actor)
4. 페렌츠 모나르 - 최선책 (The Best Policy)
5. 앤서니 길버트 -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Over My Dead Body)
6. 제임스 홀딩 - 장갑 낀 손 (Hand in Glove)
7. 매트 테일러 - 영화관의 강도 사건 (Mcgarry and the Box-Office Bandits)
8. 잭 리치 - 봉 (鳳, Setup)
9. 에드먼드 크리스핀 - 샤프 펜슬 (The Pencil)
10. W. 하이덴펠트 - 달빛 (Moonshine)
11. 엘러리 퀸 - 세 사람의 과부 (The Three Windows)
12. 제임스 굴드 커즌스 - 목사의 오명汚名 (Clerical Order)
13. 폴 태보리 - 조용한 여행자 (The Very Silent Traveler) 
14. 존 D. 맥도널드 - 그앤 참 좋은 애였는데 (He Was Always a Nice Boy)
15. 제임스 N. 영 - 번지수가 틀렸다 (The Wrong House)
16. 팻 매거 - 선거 열풍 (Campaign Fever)
17. 빅터 캐닝 - 벽 속으로 (Through the Wall)
18. 존 콜리어 - 크리스마스엔 돌아온다 (Back for Christmas)
19. 찰스 G. 노리스 - 존 로시터의 아내 (John Rossiter's Wife)
20. 시어도어 매시슨 - 분재 (盆栽, No Motive)
21. 케니스 J. 매캐프리 - 은퇴 (The Resignation)
22. 로버트 H. 커티스 - 프로 (The Pro)
23. 사키 - 로라 (Laura)
24. 프레드 S. 토비 - 혼자 여행하는 아이 (Child on Journey)
25. 찰스 아인슈타인 - 전화 번호 이야기

(The Episode of the Telephone Number)
26. 부알로 나르스작 - 까마귀 (Le Cordeau)
27. 피터 해리스 - 등산길의 죽음 (Death on a Mountain)
28. 잭 샤키 - 벌레와의 대화 (Conversation with a Bug)
29. 조르주 심농 - 석 장의 렘브란트 (Les Trois Rembrandts)
30. A.F. 오래슈닉 - 사냥터 (Hunting Ground)
31. 듀에인 데커 - 심각한 문제 (Weighty Problem)
32. 윌리엄 브리튼 -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
(The Man Who Read John Dickson Carr)
33. 에드 월리스 - 의심 (A Case of Suspicion)
34. J.F. 피어스 - 비장의 카드 (Ace in the Hole)
35. 찰스 보먼트 - 피를 나눈 형제 (Blood Brother)
36. 에드워드 D. 호크 - 어디를 가도 있는 사나이

(The Man Who Was Everywhere)
37. 리처드 매드슨 - 물 한 모금 (A Drink of Water)
38. 애거서 크리스티 - 이중 단서 (Double Clue)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주도한 추리소설 릴레이 창작에 참여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추리소설을 구상할 정도로 추리소설을 좋아했다고 한다. S.S. 반 다인얼 스탠리 가드너 그리고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를 비롯한 7명의 추리소설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프랭클린이 제공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야기를 집필했는데 이 작품들은 《대통령의 미스터리》(산다슬, 2005년/절판)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잭 리치는 독자에게 반전을 주는 유머 쇼트 미스터리의 대가다. 그의 또 다른 단편 추리소설(제목은 『누가 ‘귀부인’을 가졌는가』)은 《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테리 걸작선》(도솔, 2002년/품절)에 실려 있다. 존 콜리어, 에드워드 D. 호크, 사키 역시 잭 리치와 함께 미스터리 앤솔러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작가다. 존 D. 맥도널드는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의 작가이며 그의 대표작 《사형집행인들》은 두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부알로 나르스작은 프랑스의 추리작가 피에르 부알로와 토마스 나르스작의 공동 필명이다. 대표작은 《악마 같은 여자》(동서문화사, 2003년).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의 원작이 부알로 나르스작의 소설 《죽음의 입구》(D'Entre Les Morts)이다. 조르주 심농은 매그레 반장이 나오는 추리물 시리즈의 작가로 유명하다. 리처드 매드슨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 원작자로 유명하며 공포, SF, 판타지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으나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중 단서』는 38편의 작품 중에서 분량이 조금 긴 단편이다. 에르퀼 푸아로가 등장하는 작품이며 최근에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8 : 빅토리 무도회 사건》(황금가지, 2015년)에 수록되어 있다. 2, 3, 4, 5, 12번 작품은 《미니 미스터리》(청년사, 1996년/절판)에 실려 있다. 《미니 미스터리》도 《존 딕슨 카》처럼 짧은 미스터리 콩트들만 모은 앤솔로지다. 《미니 미스터리》에 수록된 미스터리 콩트들은 엘러리 퀸이 선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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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0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희귀 본을 어찌 구하시는지...^^

cyrus 2015-06-03 16:34   좋아요 0 | URL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따로 메모하고,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헌책방에 가거나 중고샵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사고 싶은 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합니다. ^^

csp 2015-06-03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선집이로군요. 촌스러운 표지를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읽던 팬더 추리 걸작 시리즈도 생각이 납니다.

cyrus 2015-06-03 16:36   좋아요 0 | URL
팬더추리걸작 시리즈도 헌책방에서 가끔 발견하곤 합니다. ^^

2015-11-27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6-03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구하셨네요.ㅎㅎ 완역본의 묵직함도 좋지만, 편집이 잘 된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 같은 그런 책도 참 좋습니다.

cyrus 2015-06-03 16:37   좋아요 0 | URL
오탈자가 있긴 하지만, 읽는 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

에이바 2015-06-0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고르는 안목이 부럽습니다. 존 딕슨 카 표지인물은 숀 펜 같은데요? 대통령의 미스터리 표지는 로트렉 작품이고요. 눈 크게 뜨고 아는 작품 없나 찾다가 표지만 알아차렸네요. ㅎㅎ

cyrus 2015-06-08 21:16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물만두님의 서평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안목이 있다기보다는 이웃님들이 남기는 서평을 읽으면서 좋은 책을 고릅니다. ^^
 
불타는 피라미드 바벨의 도서관 21
아서 매켄 지음, 이한음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흔히 코스믹 호러(우주적 공포)의 대부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꼽는다. 그가 묘사하는 드림랜드와 그가 창조한 외계 고대신들은 너무나 끔찍하고 몽환적이어서 공포와 함께 독특한 매력을 자아낸다. 독자들이 러브크래프트 코스믹 호러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한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원초적 본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러브크래프트는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본줄기로 인정받게 되며 오늘날까지 그 원류를 스티븐 킹이 이어받았다. 그렇지만, 공포문학의 계보를 제대로 정리한다면 러브크래프트 곁에는 로드 던세이니와 아서 매켄이 있어야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로드 던세이니의 시적 문장을 쓰고 싶었고, 궁극의 공포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려 연출하는 데 성공한 매켄의 발상을 꿈꿨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어 보면 그가 늘 동경했던 로드 던세이니와 매켄의 소설에 나오는 문장 일부를 인용하거나 일부러 언급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매켄은 러브크래프트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두 사람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면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매켄과 러브크래트트의 소설 속에는 금기에 가까운 미지의 공포에 접근하는 바람에 불가사의한 운명에 처하는 인물이 나온다. 인물이 죽거나 행방불명되면서 이야기는 공포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끝이 난다. 매켄의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이야기의 결말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것이다. 국내에 유일한 매켄의 작품 선집이라 할 수 있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21번 《불타는 피라미드》에 처음으로 서평을 남긴 독자는 공포의 원인이 완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두루 뭉실 넘어가는 듯한 이야기가 아쉽다고 평을 했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매켄 호러의 특징이다. 공포의 실체와 관련된 단서를 살짝 보여줄 뿐, 독자에게 완전히 공개하지 않는다. 독자는 호기심에 이야기에 쉽게 몰입한다. 이러한 문학적 장치는 대중의 반응을 한 번에 주목하게 하는 신비주의 광고 전략과 비슷하다. 작가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미스터리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그러면 독자는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공포의 여운과 긴장감을 쉽게 잊지 못한다. 마치 끔찍한 악몽을 꾸고 나서 그 장면을 지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구성 방식은 러브크래트프가 소설을 쓸 때 자주 사용했다. 

 

「불타는 피라미드」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검은 인장 이야기」와 「하얀 가루 이야기」)은『The Three Impostors; or, The Transmutations』에 수록된 것이다. 보르헤스는 작품집 중 마음에 드는 두 편의 작품만 골라 소개했다.

 

「검은 인장 이야기」의 그레그 교수는 웨일스 지방의 민간전승에서 전해 내려오던 ‘작은 인간들’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직접 만나는 극적인 순간에 이르지만, 행방불명이 된다. 교수는 떠나기 직전에 남긴 지금까지 추론한 ‘작은 인간들’  대해서 쭉 언급하지만, 교수가 행방불명되면서 편지는 무수한 의문만 남겼을 뿐이다. 이것만 가지고 독자는 ‘작은 인간들’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다. 「불타는 피라미드」에서 ‘작은 인간들’이 다시 등장한다. 주인공 다이슨은 다양한 형태로 배열된 부싯돌, 벽에 그려진 눈 모양 표시 등을 해독하여 황량한 길 한가운데 펼쳐지는 ‘작은 인간들’의 끔찍한 비밀 집회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작은 인간들’의 정체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그나마 이 소설의 극적인 장면은 독자들에게  ‘작은 인간들’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살아있는 자들을 집어삼키는 화염 구덩이 속에 ‘작은 인간들’은 몸부림친다. 그들은 인간처럼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꿈틀거리고 흐느적거리는 무정형의 괴물체에 더 가깝다. 

 

태초부터 존재해오던 무정형의 괴물체 모티프는 러브크래프트가 외계 신들(아자토스, 요그 소토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러브크래프트의 외계 신들은 너무나도 끔직하다 못해 메스꺼울 정도로 혐오스럽다. 「하얀 가루 이야기」는 러브크래트프가 인상 깊은 매켄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에서 악마의 연회에 사용되는 하얀 가루를 과다 복용한 주인공 프랜시스 레스터가 괴물체로 변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곳을 쳐다본 나는 새하얗게 달구어진 쇠가 심장을 지지는 듯한 강렬한 공포심을 느꼈다. 악취를 내뿜는 검은 덩어리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끔찍하게 썩은 모습으로 부글거리는 그것은 액체도 고체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눈앞에서 녹으면서 계속 모습을 바꾸고 있었고, 끓어오르는 역청처럼 기름기 있는 거품을 부글부글 내뿜고 있었다. (「하얀 가루 이야기」 중에서, 107쪽)

 

 

러브크래프트의 외계 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한 습기가 신체 감각을 자극하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한다. 괴물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등장을 알리는 불쾌한 신호를 보낸다. 이때부터 등장인물과 독자는 자신의 등 뒤에 알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포의 압박감이 점점 심장을 조여 올수록 위험한 호기심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공포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깊숙이 다가오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금단의 영역에 침범한다. 죽음과 맞바꾸는 모험의 대가는 너무나도 비참하다. 끝내 공포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금단의 영역에 다가서는 인간은 돌연 사라지거나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다.

 

매켄은 스티븐 킹과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가 사랑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다. 러브크래프트보다 덜 알려져 있다. 국내에 소개된 매켄의 작품은 열편도 채 안 되는 짤막한 단편이 전부다. 『The Three Impostors; or, The Transmutations』 이 완역되는 날은 과연 있을까. 얼마 안 되는 작품들만 가지고 독자들이 매켄의 흥미진진한 공포문학이 주는 매력을 느껴보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 국내에 번역된 아서 매켄의 작품들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자유문학사, 2004)

- 「위대한 목신」

 

《세계 호러 걸작선》(책세상, 2004)
- 「악마의 뇌」(작가명이 ‘아서 메이첸’으로 표기되어 있음)


《세계 호러 단편 100선》(책세상, 2005)
-「궁수」(작가명이 ‘아서 메이첸’으로 표기되어 있음)


《톨긴의 환상 서가》(황금가지, 2005) - 「공포의 엄습」


《러브크래프트 전집 6》(황금가지, 2015) -「검은 인장의 소설」

(「검은 인장 이야기」와 동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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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작품 : E.T.A. 호프만  「황금 항아리 : 새로운 시대의 옛 이야기(Der golden Topf」 (1813년)

 

 

 

괴테《파우스트》를 완성한 다음 해인 1832년 3월 22일, 82년 6개월의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은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무려 60여 년이 걸렸다. 이뿐만 아니라 괴테는 왕성하게 활동하며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괴테의 대표작으로 우리는 항상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두 작품을 먼저 언급한다.《파우스트》가 괴테의 작가 인생 후반기를 장식하는 스완 송(Swan Song)이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젊은 괴테 앞에 작가로서의 길을 터준 출세작이다. 나폴레옹도 읽을 정도로 18세기 유럽의 베스트셀러가 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덕분에 괴테는 평생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게 된 것은 소설 속 남자주인공처럼 약혼자가 있는 여성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한 체험에서 비롯됐다. 그녀에게 실연당한 괴테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괴테의 친구 예루살렘이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랑의 실패에 비관하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의 극단적인 결정이 이미 쓰디쓴 사랑의 실패를 맛본 괴테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자신도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괴테는 친구의 자살에 의외의 인물이 개입된 사실을 알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에게 권총을 빌려준 사람은 결정적으로 괴테에게 정신적 상처를 안겨준 샤를로테의 약혼자였다. 사랑 하나로 인해 생긴 악연과 실제 체험을 토대로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를 완성했다. 괴테와 예루살렘이 합쳐진 베르터는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자살을 한다.

 

이 소설은 출간 즉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무명작가였던 괴테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만든 베르터 열풍은 곧 당시 사람들이 소설 속 베르테르의 죽음을 모방해 자살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그 높던 교황과 황제의 권력과 권위도 이미 무너졌거나 무너져 가던 18세기 유럽은 이미 자살을 죄악이라고만 생각하던 시대를 한참 지나 있었다. 괴테의 이 소설은 낭만주의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낭만주의 영향 속에서 문학과 예술에서 나타나는 자살은 더 이상 추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무척 괴로울 법한데 작가나 예술가들은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걸 작품 소재로 삼는다. 운이 좋으면 전업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호프만도 괴테처럼 사랑의 좌절을 겪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펜을 잡기 시작했다. 《Phantasiestücke in Callots Manier》(칼로 풍의 환상화집)은 호프만이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인데 여기 수록된 동화 「황금 항아리」는 가장 많이 알려졌다.

 

주인공인 대학생 안젤무스는 현실 세계와 사랑과 환상 세계의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상에 시달린다. 그는 우연히 정향나무 아래서 초록 황금빛을 띤 세 마리의 뱀을 발견한다. 세 마리의 뱀은 불의 정령(현실 세계에서는 궁정 사서관 린트호르스트로 등장한다)의 딸인데 안젤무스는 세 자매 중 막내인 세르펜티나를 짝사랑하게 된다. 그렇지만 교감의 딸 베로니카는 안젤무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안젤무스는 베로니카에게 자신이 추밀고문관이 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만다. 복잡한 삼각관계에 성격이 고약한 마녀가 사과장수 노파로 분하여 개입한다. 이 마녀는 불의 정령 린트호르스트와 적대적 관계이고, 이야기 초반부에 안젤무스는 사과장수 노파로 둔갑한 마녀의 광주리를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자신의 지갑을 마녀에게 빼앗겨버린 악연이 있었다. 안젤무스를 차지하고 싶은 베로니카는 마녀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안젤무스와 린트호르스트를 괴롭히기 위한 마녀의 음모였다. 한편 안젤무스는 세르펜티나를 만나기 위해서 린트호르스트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린트호르스트 밑에서 필사 작업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완수하면 세르펜티나가 소유하는 황금 항아리를 혼수품으로 얻을 수 있다.

 

「황금 항아리」의 안젤무스는 현실 세계를 벗어나 환상 세계로의 진입을 추구한다. 이 동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망각, 우울 증세는 병적이다. 특히 안젤무스가 정향나무 밑에서 초록뱀 세 자매를 만나는 환상을 겪는 장면은 일상을 초월하는 광기에 가까운 분열된 정신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호프만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그는 「황금 항아리」를 집필하기 전에 사랑의 실패에 극단적인 정신 상태를 보였으며 한때 자살에 대한 생각에 이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황금 항아리」는 호프만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젤무스는 호프만이 사랑했던 율리아 마르크의 생일과 관련된 수호성자의 이름이다. 안젤무스가 사랑하는 세르펜티나는 율리아 마르크, 베로니카는 호프만의 아내 마샤에게서 나온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호프만의 현실 세계는 정식으로 마샤와 결혼한 부부로서 한집에 살게 된다. 그렇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버린 반쪽짜리 사랑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그의 환상 세계 속에는 또 다른 집이 있었고, 그 집에 율리아 마르크가 살고 있다. 현실 세계의 사랑을 상징하는 베로니카를 외면하고 환상 세계의 세르펜티나를 만나기 위해 린트호르스트의 집을 매일 찾아가는 양상을 떠올려본다면 이 동화를 통해 호프만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반쪽짜리 사랑을 잊지 못한 호프만은 자신을 동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여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을 끝내 성취한 영웅으로 그렸다. 사실 주인공 이름만 봐도 동화의 결말을 알 수 있다. 세르펜티나를 원하는 안젤무스는 율리아 마르크의 수호성인이 되고 싶은 호프만의 간절한 마음이며 드디어 율리아 마르크와 닮은 세르펜티나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실패한 짝사랑의 증상은 고통스러운 열병과 같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사랑을 하다가 이내 마음을 졸이게 되고 마침내 숯검정처럼 속이 타들어 간다. 짝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증상은 더욱 심각해진다. 헤어나기 힘든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어떤 심리학자는 짝사랑 증상이 심하면 상대방이 자기 안에서 너무 크게 미화돼 자신도 모르게 환상을 그린다고 말한다. 호프만은 괴테보다 반쪽짜리로만 남은 짝사랑 후유증에 고생했다. 율리아 마르크가 호프만 곁에 없어도 그녀는 아름다운 황금색 빛깔을 내는 초록색 뱀 세르펜티나가 되어 안젤무스가 된 호프만을 끊임없이 유혹했다. 그러나 이 환상은 호프만 스스로 만든 것이다. 동화 「황금 항아리」의 안젤무스는 행복했지만, 호프만은 평생 현실을 도피하려는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했다.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환상이었다. 호프만의 환상소설은 호프만 본인에게 허락된 마약이다. 

 

 

 

 

 

 

 

 

 

 

 

 

 

 

 

 

 

 

 

※ 호프만의 「황금 항아리」는 단편 선집이나 동화 모음집에 단골로 수록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간혹 ‘황금 단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물의 요정을 주제로 한 낭만주의 문학작품을 모은《물의 요정의 매혹》(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에 수록된 호프만의 동화 제목은 ‘황금 단지’다. 오래전에 개정판마저도 절판된 《호프만 단편집》(경남대학교출판부, 2002)에서는 ‘금항아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절판된 《호프만 단편집》의 서평에 의하면 번역은 최악이라고 한다. 「황금 항아리」가 수록된 《환상문학 걸작선 1》(자음과모음, 2013)을 추천한다. 이 책에 호프만의 노벨레 「왕의 신부」도 있는데 다른 호프만의 작품들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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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2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프만의 글은 저는 못읽어봤네요.
괴테의 파우스트는 저를 좌절하게 만든 책이고요. ㅠㅠ

cyrus 2015-02-23 23:47   좋아요 1 | URL
외국 단편소설 모음집에 간혹 호프만의 단편 한 편 정도는 수록되어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많이 알려진 단편이 ‘황금 항아리’와 ‘모래 사나이’입니다. 예전에 파우스트를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어요.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