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동성 그림,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칫국을 사발 째 들이켰다. 10월초는 한마디로 내가 제일 잘 나가!’모드였다. 상금 사냥을 위해 지난 9월 말에 참가한 시조대회에서 생각지 않 쾌거를 이룬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은 나. 이 여세를 몰아 또 다른 시조대회의 문을 두드린다. 오예~ 1등 상금이 무려 100만원이다! 이번에는 단시조로 도전해보아야겠어. 시조 3편을 후다닥 짓는다. 제출했던 시조들은 읽고 또 읽어도 너무도 뛰어난 수작이므로 우편접수 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풍부한 상상력으로 상금을 어디에 쓸 건지 궁리한다. 결과는? 이 문단의 첫째 줄이 의미하는 그게 맞다. 쩜쩜쩜 흐윽.

주최 측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당선자들의 명단을 두어 번 훑었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마음을 이해하는가. 가장 마지막 줄에서조차 나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심장의 과녁을 명중한다. 보고 또 보아도 그토록 뛰어난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오만방자해진 나는 나만의 과녁을 만들어놓고 화살이 명중했다며 좋아라했던 거다. 주최한 사람들이 설정한 과녁이 저만치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내 삶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은 이런 방식으로 겸손이라는 삶의 자세를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지금은 커피숍. 퇴근 후의 나는 다시 겸허한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이다.

 

소설의 제목 아처궁사를 의미한다. 전개되는 서사는 단순하다. 활과 화살과 표적을 중심으로 궁사가 갖춰야 할 자세를 짧은 소설 형식으로 담았다. 삶에 적용할 지침으로 확대하여 마음에 담을만한 작품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얼핏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싶다. 나에게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주었던 책이다.

궁도처럼 행위에 정신적인 영향력이 깃든 영역은 활을 쏘는 데 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 관련 태도가 적용될 수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의도한 바도 아마도 그러하리라. 활은 화살을 날리기 위한 도구이니 능력을 발휘하는 몸, 화살은 세상을 향해 날아가니 실제로 이루어지는 행동, 표적은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을 결정하니 수시로 세우는 목표에 비유된다.

작가의 문장을 읽으면서 소설 밖에서 나의 서사를 펼쳐갔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일에 대한 열정과 실천, 주변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 삶을 살아가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문장 하나하나를 지나면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께에 비해 읽는 데 걸린 시간의 가성비는 놀라울 정도로 말이 되지 않았다. 한 페이지 앞에서 30분 이상 머물던 때도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싶다. 은은한 색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림에서 작가의 마음이 보였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여백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았다. 여백은 여백대로 깊이감이 있었고 그 안에 담긴 중심인물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풍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한 색깔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색채의 농담을 표현하는 기법이 출중했다. 그림을 그린 김동성 작가가 절반의 기여를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이 좋아서 그의 이력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그림책 작가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기록한 내용을 찾았다. 텍스트에서 말하는 것을 반복 설명하기보다는 은유적으로 해석해서 텍스트가 말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마음에 들었다. 두 작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인터뷰어의 멘트에 좋은 글을 운 좋게 만나 작업을 한 경우라고 답한다. 얼마 전의 자만한 인간의 최후’를 떠올리니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좋은 그림을 그린다는 건 자기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그것을 구현할 테크닉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안다는 것, 작가로서의 역량은 폭이 넓어야 생기며 그래야 깊이 팔 수 있다는 것, 테크닉만으로는 감동을 만들 수 없다는 말들이 마음에 남았다.

인터뷰를 읽은 후 책을 다시 펼쳐 그림 부분만 발췌하여 감상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각각의 본문에 정확히 한 장면의 그림만 삽입되어있음을 발견했다. 텍스트를 몇 번이고 음미하며 표현할 이미지를 고민했을 작가를 떠올리니 순간 뭉클했다. 그는 그림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용 중에서는 동료를 언급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동료는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 한다. 자신의 삶을 감당하기에도 바쁜데 다른 이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타거나 어딘가에 글이 실릴 때면 메시지를 보내 주변 이들에게 알리곤 했다. 최근에도 카톡으로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어미와 존칭어에만 변주를 주어서 보냈다. 그들의 답문을 다시 살펴보았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이도 있었고 형식적인 멘트를 보낸 이도 눈에 띄었다.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도, 전화까지 해서 기쁨을 함께 나눈 이도 있었다. 어렴풋이 동료가 될 수 있는 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하루 동안 만났던 이들부터 친구나 지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파노라마 필름이 흘러가듯 머릿속을 지나갔다. 작가의 문장들이 의미 있는 발걸음인 듯, 하나의 문장을 지날 때마다 멈추어 서서 그들을 떠올렸다. 명확한 기준을 찾은 듯 문장에 부합되거나 부합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관성에 의해 유지되어온 그저 그런 관계들도 있었다. 막연히 껄끄러운 느낌으로 자리하던 그들의 존재가 타인의 문장 앞에서 정체성을 드러냈다.

동료를 찾는 조건은 내가 어떤 동료가 되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기도 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사람, 마음이 활짝 열린 사람, 약점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물과 같은 속성을 지녀 언젠가는 바다에 닿아야 함을 절대 잊지 않는 사람, 눈에 기쁨이 깃든 사람, 맡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는 사람.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동료를 찾기를, 그런 동료가 되어줄 수 있기를.

 

이 책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뒤표지의 안쪽에 담긴 뜬금없는 내용이다. 연금술사가 엄청 유명했던 점은 인정한다. 한데 그걸 굳이 뒤표지의 안쪽에 두 페이지나 걸쳐 집어넣어야 했을까. 아처에 대한 것이 아닌 추천사를 말이다. 전 세계 85백만 독자를 사로잡은 연금술사한국어판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출간에 대한 홍보가 목적이라면 뒷날개의 좁은 한 편에 배치했어도 충분했다. 처음에는 이 책과 무슨 연관성이라도 있는 멘트들일까 해서 읽어보았다. 전혀 관련성이 없었다. 연금술사만을 위한 유명 인사들의 말임을 깨닫는 순간 실망스러움이 밀려왔다.

뒷날개에 배치한 파울로 코엘료의 인터뷰를 왼편에, 이 책에 또 다른 지분이 있는 김동성 작가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면서 느꼈던 점을 인터뷰해서 오른편에 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파울로 코엘료의 전작의 명성에 기대어 부록처럼 출판된 책인가 라는 느낌조차 들었다. 연금술사가 대놓고 언급되니 자연스레 이 책과 비교하게 되었다. 결이 완전히 다르지만 상대적으로 서사가 약한 이 책이 밋밋하고 진부하게 인식되어 자칫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독립된 책으로 당당했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 나의 의견이다.

 

50대를 넘어서면서 실감하는 점은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다면 돈은 생각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 돈으로 살 수 없는 건강, 돈으로 살 수 없는 친구,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 행복, 열정들 하나하나가 진정 소중한 것들이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친구와 열정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표적을 보는 법에서는 많은 위안을 받았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그날 아침의 활쏘기에 너무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 앞으로 수많은 날이 남아 있고, 각각의 화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이라는 내용이다. 시조대회의 결과에 위축된 마음이 있었다. 그래, 나는 단지 하나의 과녁을 맞히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쏘아야 할 화살은 다시 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등 뒤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계속 도전해볼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뒤표지에도 언급된, ‘발시의 순간에 나온 말에 공감한다. 무언가를 멀리 쏘아 보내는 동작은 자아를 마주하게 한다는 것. 시든 리뷰든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내 자신을 만나왔다. 때론 감추고 싶었고 따끔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화살을 쏘아왔던 이유는 글이 스스로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까닭이다.

 

아처화살은 나에게 이었다. 110V의 전압을 220V로 변환해주는 트랜스인양 책속의 문장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나에게 해주는 말로 다가왔다. 숱한 훈련 끝에 마침내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면 스스로 자신의 활과 화살, 표적이 된다고 했다. 나의 삶과 나의 글과 나의 행동이 하나가 되는 순간으로 해석했다.

화살을 쏘고 나면 궤적을 눈으로 좇을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긴장을 남겨둘 필요가 없으며 마음을 놓고 미소를 짓는다고도 했다. 최선을 다해 나의 화살을 쏘고 나서 미소 짓는 순간을 맞이하려면 평정을 유지하는 마음이 필요하리라.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든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든 자만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세상에는 많이 들어본 말들이 먼지처럼 떠다닌다. 교과서 속에 나올 법하다면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당연한 말들이 적절한 시기에 확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운명이란 말을 떠올린다. 좋았던 결과를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사소한 순간을 만났을 때, 절묘한 그 순간을 운명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필 이럴 때 하필 이런 순간에 마음의 과녁에 명중이 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마음과 공명이 된다. 울림이 커진다. 나에게는 아처가 이런 의미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 까기


늦은 밤 단칸방에 달을 깎는 어머니

포대 자루 안에는 알알이 가을 풍년

손 안에 말간 달덩이 주렁주렁 열리네

 

까칠한 껍질 닮아 갈라지는 손끝 따라

갈색 옷 훌훌 벗어 매끈한 달 뜨는데

땀방울 흘러내려도 겨울인양 손이 트니

 

휘어진 허리만큼 둥근 달이 쌓일수록

입 벌리는 아기 제비 눈동자는 빛나는데

달 하나 건네지 못해 저린 칼끝 아리네


*******


가족사진


빙하인 듯 흐르던 연탄재 밟고 가면

골목 끝 여섯 식구 복닥복닥 사진관

그믐달 몸을 부비며 밤의 문을 닫았지

 

걸레 꽁꽁 방바닥 뜨끈뜨끈 아랫목에

웃음소리 모락모락 옹기종기 시린 발끝

겨울밤 한 이불 위엔 가족사진 쏟아져

 

스무 계절 넘어와 사진관은 닫혔지만

온기 품은 사진들은 선명하게 떠올라

앨범을 들출 때마다 꽃잎인 듯 날리네



*2021.10.  I 시조공모전(글제: 가을, 가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신에게는 아직 넘기지 못한 5분의 1이 남았는뎁쇼? 이게 진정 끝? 투비컨티뉴드로 믿었던 글들이 미완성 장들의 모임이었다니! 열나게 달리다 갑툭튀한 낭떠러지를 만난 나는 진정한 부조리 앞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도대체 맥락 없는 내용으로 어떤 리뷰를 뽑을 수 있단 말인가!

소설소송은 부조리의 결정판이다. 세상의 모순을 몽땅 까발려줄 테닷! 작정하고 펜을 든 저자 앞에서 논리를 논하지 말지어다. 미완성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완성작으로 발표되었대도 딱히 달라졌을 것 같지 않다. 읽기 전에 후루룩 넘겨보았을 때에는 빽빽한 게 팔만대장경 조판을 보는 듯하더니. 막상 읽어보면 책장 넘김이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담긴 내용이 갑갑해서 그렇지 가독성은 좋은 편이다.

소송을 당한 주인공 요제프 K가 법원을 둘러싼 인물들과 만나며 소송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다 끝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 놀라운 건 죽는 순간까지도 소송당한 이유를 모른다는 점이다. ‘?’에 집중하며 소설을 읽으면 낭패를 본다는 것. 언제쯤 나올까. 절반 가까이 넘어가면서도 그노무 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나. 설마 마지막에는 나오겠지. 5분의 4를 지나니 주인공 K가 개를 부르짖으며 죽는 게 아닌가. 대체 어디다 시선을 두어야 하나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읽는 데 걸린 시간의 몇 배가 흐른 후에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K를 둘러싼 모순된 상황 전체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범위를 넓히면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다 커다란 틀에서 찾아야 했다. 소설 안에 갇힌 소송의 이유 따위가 중요한 소설이 아니었던 거다.

꿉꿉하면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을 오가는 K는 소송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소송으로 표현되며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상황은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다른 무엇일수도 있다. 그를 향해 파도처럼 오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K에게 미션을 던진다. 가상의 게임공간으로 투입된 K가 통과해야할 관문이랄까. 그리고 모든 상황의 뒤에는 이를 지켜보는 거대한 존재가 있다. 법원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조직은 한 국가일 수도, 사회일 수도 있다. 꼭두각시를 조종하듯 K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결국 K를 세상에서 지워버린다.

법률 세계의 오래된 격언으로 등장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가만히 있는 자는 언제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울 접시에 올라가 자신의 모든 죄와 함께 저울질당할 수 있다는 것. 카프카는 구성원들의 삶을 커다란 틀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체제의 모순을 까발리고 싶었던 걸까. 피의자를 대변해야 할 변호사는 되레 소송에 처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직무태만을 합리화한다. 번듯해야 할 것 같은 법원은 허름한 가정집 다락방에 위치한다. 최고의 우두머리로 상징되는 인물은 막연한 존재로만 묘사된다. 누구도 실체를 본 적이 없다.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두 군데가 있다.

첫째, ‘변호사라는 제목에서 등장한 장면이다. 거대 조직의 정체성을 날카롭게 직시하는 문장들이 있다. 작가는 법원 조직과 그 안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언급한다.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터무니없는 일이 있더라도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거대한 법원 조직은 영원한 부유 상태에 있어 누군가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바꿔버리면 자신만 추락하게 될 뿐이라고. 조직의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소한 장애는 다른 곳에서 손쉽게 보완하여 이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K를 둘러싼 인물 대부분이 어떻게든 법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조직의 연결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관성처럼 이어져오는 편견이란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는가. 거대 조직은 조직의 룰을 합리적이라는 틀로 세운다.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맞춤형 침대처럼 인간의 키를 틀에 맞추려 한다. 답정너다. 주인공 K는 끝내 그 침대에 눕게 된다.

둘째,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서술된 결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연상케 한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약하고 여위어 보이는 어떤 이의 등장과 그의 행동과 이를 본 K의 생각과 리액션이다. 여기에는 짙은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K가 겪은 혼란과 부조리가 종합 서술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그 어떤 이는 K를 향해 양팔을 뻗는다. 그 액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K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어떤 이가 너무 멀고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데칼코마니처럼 두 손을 쳐들고 도와달라는 듯 손가락을 펼치는 K의 리액션은 거대 조직의 늪으로 소멸되기 직전의 마지막 불꽃같은 안간힘이다.

K가 내뱉은 물음표의 폭풍 랩에서 이 소설의 정체성이 보인다. ‘누굴까? 친구일까? 좋은 사람일까? 관련된 사람일까? 도와주려는 사람일까? 한 사람일까? 아니면 전체일까? 아직 도움이 가능한 것일까? 생각해내지 못한 반대 변론이라도 있는 걸까? (중략)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아직 이르지 못한 상급 법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찬물을 파란색으로, 더운물을 빨간색으로 표시하는 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덕분에 우리는 푸른 별이 붉은 별보다 뜨겁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지 않은가. 뜨겁게 불타는 별을 품고 있는 영하 270도의 우주, 빛이 강할수록 더욱 진해지는 그림자. 세상의 많은 것들이 모순적인 형태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뜨거우면서 차가울 수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던 때도 있었다. 아이스크림 튀김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과학적으로도 완벽한 원리를 생각하다보니 오늘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온다. 모순처럼 보이는 현상을 과감하게 시도해볼 생각을 한 누군가는 세상의 본질을 알았으리라고.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상향에 가까운 개념인걸까.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이상을 열망하는 인간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꿈같은 존재처럼 말이다. 행동경제학에서 연구하는 인간들은 버젓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고전경제학을 뛰어넘어 행동경제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실의 모습에 가깝게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거라고 들었다. 우리의 입안을 즐겁게 하는 수많은 겉바속촉이 존재하듯 세상은 온통 부조리투성이이다. 카프카는 이러한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작가가 아니었을까.

 

p342, 밑에서 2째줄: 후기구조조의 ~주의

p354, 밑에서 3째줄: 펠리치 펠리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1-10-19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 완성작으로 나왔어도 별 차이를 못느꼈을듯요 ㅋㅋ
그나저나 참 난해하고 난감한 책입니다. 어쨌거나 저자의 메시지나 뜻을 알고는 싶은데 뭘 생각하더라도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하게 되거든요. 어차피 미완작이니까 독자의 생각도 미완이면 어떠랴 싶네요 ㅋㅋㅋ

<구성원들의 삶을 커다란 틀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체제의 모순>이 메인 주제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어쨌든 국가나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는 강제적인 통제가 늘 잇따를테고, 보기에 따라 그것이 절대적으로 잘못돼었다 하기도 뭐하니까요. 그래도 이건 아닌데,하는 개개인의 판단과 어떻게든 질서를 잡으려는 조직의 관계에서 오는 모순... 누군가는 억울해야만 굴러가는 세상인가 봅니다ㅠㅠ

저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변호사가 제일 밥맛이었어요. 의뢰인을 봐가면서 태도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도 재수없고, 주인공의 소송 건도 마냥 미루기만 하는데다 납득할만한 진행상황을 전달해주지도 않는데 이런 게 무슨 대단한 변호사 타이틀을 갖고 있는지 말이죠. 현실을 받아들여라, 너만 추락하게 될 뿐이다 등등 조언은 고맙지만, 고객보다는 법원의 편에 서있다는 느낌이 강하더군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법원과 함께 고객을 단념하게 만들고있으니 답답합니다. 카프카는 법공부하면서 이런 사례를 무수히도 봐왔겠죠. 법원의 부조리함과 직원들의 권력 행사. 그것들을 일반인이 어떻게 해볼 수가 있을까요.

여튼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게 해주는 작품이었어요. 왜 카프카의 책을 시대의 문제작이라 불렀는지 알 것도 같네요^^ 가독성도 좋아서 좋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고소인은 부행장이 아닐까 추축해봅니다. 부장과 사이 안좋은 인물로 가장 유력하고, 같은 직장에서 부장의 약점을 잡기 딱 좋은 위치거든요~ 또한 부장도 생각보다 억울함을 강하게 표출하지 않는 걸 봐선 켕기는 게 있을것도 같고요. 이건 if story 입니다. ㅋㅋ

나비종 2021-10-20 19:23   좋아요 1 | URL
미완성의 장들에 서사가 추가되고 완성작으로 나왔으면 더 멘붕이 왔을 지도요. 골다공증 걸린 뼈다귀마냥 구멍 숭숭 뚫린 곳을 독자의 생각으로 완성을 해야하는 건가 싶기도 하구요~ㅋㅋ

체제의 거대한 그림판 위에서 우르르 휩쓸린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어요. 중력장의 영향으로 공간이 휘면 빛은 나름 직진 모드인데도 휘어지는 경로로 진행하게 되거든요. 나의 의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뭐 이런 거요.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은 어느 정도 선일까 생각해요. 자동차와 사람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려면 신호 체계와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 싶거든요. 그러다가 뉴스에서 도를 넘는 국가나 사회의 개입 사례를 보면 대체 없느니만 못하는 이 지경은 뭔가 싶기도 하구요.
‘누군가는 억울해야만 굴러가는 세상‘ㅠㅠ 그 누군가가 힘이 없는 존재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무너지는 세상에서 제일 큰 상처를 입는 건 또 그런 존재라는 사실이 마음 아픈거죠.ㅡㅡ

저도 변호사, too! 전형적인 약강강약 스타일이잖아요. 정글의 왕 앞에서 깐족대는 여우?새끼가 생각났어요. 그런 면에서는 변호사 등장 장면에서 후련한 통쾌함이 느껴지더군요. 대놓고 풍자하고 까는 작가를 보면서 아주 작정을 했구나 싶었어요.ㅋㅋ

재미는 드럽게 없었지만 가독성은 또 좋고 아리까리했지만 뭔가 느낌을 알 것 같기도 해서 별점 3점에서 레벨업했습니다~ㅎ
흠~ 고소인이라.. 미스터리물로 여긴다면 의외로 행장일지도 모르죠. 부행장은 대놓고 적대자라 용의자 1번이라면 다소 시시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카프카의 난해한 성정을 생각한다면 행장일 수도 있습니다!ㅋㅋ 행장은 지가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알면서도 왜 버벅거리는 K를 시키냐구요. 고객을 매수해서 대성당으로 유인한 거죠. 쫌 수상합니다. 요제프를 견제하려고 그랬을 수도 있죠. 그러면 1타 쌍피일 수도 있어요. 유력한 용의자인 부행장도 제거할 수 있으니~ㅎㅎ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더욱 마음이 안 좋았던 건 아이가 떠나기 하루 전에도 나는 그 반에서 아이들을 웃겨가면서 수업을 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갈등했던 영혼 앞에서 나는 무엇을 가르쳤던 걸까. 그날 밤 늦게까지 뒤척이며 시를 적어 내려갔다. 시 말미의 독백 사이사이에 툭툭 떨어지던 말줄임표가 교사로서의 무기력을 자책하던 눈물처럼 점점이 박혔다. 한 아이의 죽음이 내 시의 시작이었다.

 

*****

 

마음의 색맹

 

수업을 한다 // 색맹을 얘기하고 / 유전자를 말하고 / 가계도를 칠판에 그려낸다 // 아이들은 듣는다 / 푸른빛 마음으로 / 분홍빛 마음으로 / 회색빛 마음으로 // 나는 바라본다 / 각기 다른 빛깔의 마음으로 // 어디를 바라보고 / 무엇을 바라보고 / 누구를 바라보고 수업한 것일까? / 나는 // 누구를 바라보고 / 무엇을 듣고 / 어떤 것을 느끼며 앉아있는 것일까? / 아이들은 // 마주 서 있다고 / 서로를 보는 것은 아니다 // 마음의 색을 보지 못하는 나는 / 마음에 대한 색맹일지도 모른다

 

*... 견디기 힘든 것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영혼을 보지도 못하고. 그 앞에 서 있었는데도 이미 그 존재 앞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조차 되어주지 못했었다는 거지... 알아볼 수 있었다면... 따스한 말 한 마디 안겨주었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때늦은 후회를 해 본다는 거지... 인생이라는 것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만하는 것을 말하고 있고, 말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이 순간에... 인생 참 허망하다... 라는 느낌을 안고 있다는 거지... 이제는 어깨를 눌렀던 그 짐을 툭툭 털어내고 날아가기를... 하늘로 올라 별이 되기를...

 

*****

 

16년 만에 먼지 앉은 기록을 들춰본다. 운율도 안 맞고 서툴지 그지없다. 형식은 허술하지만 내용 앞에서 나의 심장은 여전히 뛴다. 건조하게 푸석거리던 꽃차에 물을 부은 듯 마음이 물컹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OECD 국가 중 여전히 자살률이 1위인 나라. 하루 평균 36.1명이 삶을 저버리는 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9년 연속 자살인 나라. 절반에 가까운 1318 청소년들이 공부 문제로 고민하는 나라에서 나는 교사다.

공부를 꽤 잘하는 아이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 아이가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이유가 절반의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그 이유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리라.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을 영혼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눈물짓고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가끔 상상한다. 마음의 색깔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몹시 곤란할 때도 있겠지만 흑백의 마음이라도 눈에 보인다면 좋을 텐데. 무채색이 색깔을 띠는 순간에는 초신성처럼 폭발한 다음 은밀하게 사라지더라도 말이다.

색맹은 관련 유전자가 성염색체인 X염색체 위에 있는 반성 유전이야. 유전자형은 XX, XY로 표시해. 열성으로 유전이 되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욱 많이 나타나. , 이제 가계도에서 유전자형을 분석해볼까?’ 지금도 나는 여전히 색맹을 가르친다. 색맹을 둘러싼 과학지식을 창고 대방출하며 각기 다른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나에게 색맹이란 과학을 넘어서는 뜨거움이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다보니 각기 다른 표정이 눈으로 들어온다. 문득 깨닫는다. 강아지풀의 솜털을 바라보듯 바라본다면 이들의 색깔을 구분할 수도 있음을. 마음의 색맹에는 관심이라는 치료제가 있다는 사실을. 어쩐지 눈동자에서 색깔이 보이는 듯하다.



* 2021. 10. 6. J칼럼 보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게재 제목: '빛'을 품은 아이에게


몹시 난감하다. 무릇 이라 하면 찬란하게 물결치는 신묘한 장면을 연상해야 하거늘. ‘파동이냐 입자냐 요것이 문제로세햄슈타인 모드를 장착하면 어쩌란 말(이냐! ‘직진밖엔 몰라요 외길 선생 레이저?’ 이런 이런 쯧,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과학 선생님!)인가.

(그렇다.) 나는 과학교사다. (빛을 가지고 이토록 고뇌에 빠진 이유? 수식어를 구구절절 붙이면) 시인을 꿈꾸는 과학교사(이기 때문이). 몇 년 전부터 닥치는 대로 글짓기 대회에 도전 중이며 이번엔 온라인 시조 대회다. 삼사삼사 삼사삼사 삼오사삼. 글자 수만 맞추면 될 줄 알았건만, ‘이라는 주제 앞에서 방황하는 A 교사. 태초에 있던 빛부터 몽땅 끌어 모아 삼라만상에 담긴 오묘한 깨달음을 펼쳐도 시원찮을 판에 직진, 파동, 입자 따위의 지식만 둥둥 떠다니니. (어쩌실 건가요.)

 

"(-)! 어제 공고에서 선생님 오셔서 설명해 주셨잖아요. 근데 지금 공고에 왔는데 어떡하죠..ㅋㅋㅋ",

지난 6(,) 퇴근 후 뜬금없이 녀석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끼는 자전거 뒤에 원하던 특성화고가 배경으로 펼쳐진 사진. 너무 멀다고, 진짜 죽는 줄 알았다는 아이의 메시지에 함박꽃이 그득하다. 아이의 메시지를 따라 박하사탕을 먹은 듯 마음이 화해진다.

 

! 아무래도 집 가까운 데 가야겠어요.(”

? 무슨 소리냐? 그 학교 많이 원했잖니.”

“)요즘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그만 두셨어요. 차비를 생각하니 (거기는) 무리일 것 같아요.”

평소 아버지를 대신해 거의 모든 집안일을 섭렵하던 녀석이 두어 달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말한다. 빛을 잃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담담한 표정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당장 결정해야 할 건 아니니 조금 더 고민해보자며 돌려보냈다.

 

그날 밤 나는 새벽까지 뒤척였다. 잠들지 못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조로 적었다. 이 시조가 너에게 힘이 될까. 글 안에 녀석의 마음을 담아서, 그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넣어서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

빛을 품은 아이에게)

 

그날의 자전거는 오십분을 굴러갔지

교정을 바라보며 일 년 뒤를 그려본 너

비로소 갖게 된 꿈을 빛으로 품고 왔지

 

자전거론 무리인데 차비는 짐이라며

두 달 뒤 찾아와선 집 근처로 간다는 너

벌게진 눈 속의 빛이 이리도 선연한데

 

아버진 너를 품듯 짐을 안고 가실 테니

네 안의 빛을 따라 그대로 걸어보렴

그 빛이 흘러나오면 길을 보여 줄 테니

(*****)

 

녀석이 담긴 시조를 예선 작품으로 제출했다. (그 후) 본선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 달 여 뒤, 환한 햇살을 품고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

! 저 거기 가기로 했어요!”

너에게 아직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를 나는 졸업식 날 건네주려 한다.

 

아이들은 시가 된다. 그 시는 때론 따끔거리지만 빛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보이는 모습을 담을 뿐인데 나의 심장은 덩달아 뜨끈해진다. 빛을 품고 있는 영혼이어서 일까.



* 2021. 10. 5.  CCT 보냄, 2021. 10. 18. 게재


연두색: 주최측 편집 시 생략된 거

빨간색: 주최측에서 추가한 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