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감사해
김혜자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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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가 보통명사인 듯 회자 되는 삶은 얼마나 뭉클한가. 이름이 포함된 정체성에는 사회적 인정이 담긴다. ‘혜자스럽다는 말이 실물로 구현된 도시락의 출시 소식을 듣는다. 텅 빈 뱃속보다 마음이 더 시린 이들에게 온장고에서 막 꺼낸 양 따끈한 온기를 전해주리라. 만 원을 주고도 한 끼 식사가 만만치 않은 요즘이다. 3,900원짜리 혜자 도시락이 그 탄생 배경만큼이나 특별한 이유다.

TV 프로그램 <유퀴즈>‘김혜자 편의 단편 영상을 본 건 우연이건만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자연스러운 행동과 감사가 묻어나는 말투는 몇 분 동안 많은 메시지를 건넨다. 결국 전체 영상을 찾아 정독하듯 시청한다. 오랜만에 코끝 찡한 시간을 보낸다. 배우 김혜자의 삶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전하는 감동의 여운이 길다.

생에 감사해는 배우 김혜자의 에세이다. 읽지 않아도 무슨 느낌일지 벌써 알 것 같다. 천천히 산책하듯 걸음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주문한다. 출연작을 중심으로 배우로 살아온 소회와 삶에 대한 열정이 담긴 책이다. 신기한 건 문장을 따라 음성 지원되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는 점이다.

 

자신의 모습이 책 표지가 되는 사람, 존재가 곧 명함인 사람, 눈가의 주름조차 장면으로 만드는 사람, 표지만 들여다보아도 많은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다. 그녀 삶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주어가 김혜자인 추천사. 저자를 스케치한 문장들을 보고 책이 곧 사람임을 깨닫는다. 만남 자체가 선물이 되는 사람이라니!

<유퀴즈>에서 한 말이 대본처럼 고스란히 서술되어 있다. 직접 겪고 느낀 일을 말할 때는 마음에 대본이 새겨지는 걸까. 언제 말하든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걸 보면.

연기를 못했던 시절의 회상 장면에서 나는 빙산을 연상한다. 잘함은 빙산의 꼭대기에 불과하며 거대한 아래에는 서투름이 있다고.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 잘함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라고.

코오롱스포츠 <오로라>CF 영상을 찾아본다. 자연스러운 몸짓도 진한 감동을 전할 수 있구나. 백상예술대상의 수상소감 영상도 찾아본다. 솔직한 마음이 말간 백자를 보듯 고스란히 화면에 투영된다. 갑작스러운 수상 발표에 당황하는 모습에서, 작품 속 명대사가 적힌 대본을 찢어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는 표정에서 소녀 같은 순수와 진심을 본다.

 

간지처럼 중간중간 수록된 사진도 참 좋다. 해맑게 웃는 표정이 많다. 얼굴의 주름이 미소와 함께 아름답다. 배경보다 인물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배우다. 풍부한 표정 자체로 많은 말을 건네기에 한 페이지의 글을 읽고 난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작가 조세현의 사진은 편안하고, 홍장현의 그것은 고혹적이다. 조세현이 담은 표정이 더 끌린다.

가장 기억에 남는 표정은 영화 <마더>의 촬영 장면이다. 허허벌판에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오도카니 서 있는 어머니. 환하게 웃는 표정보다 허무가 뿜어져 나오는 표정이 강렬하다. 허무라는 단어의 의미를 시각화한다면 저런 모습일까. 순간 가슴이 턱 막힌다.

종종 나를 따라다니던 허무의 시간을 기억한다. ‘죽고 싶다는 문장을 떠올리던 순간이 조용히 부유한다. <마더>에서의 그녀의 표정을 보며 당시의 마음을 스스로 오역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음을. 질식할 것 같은 잿빛이 버겁다고 간절하게 외치고 싶었음을. 짙은 감정이 순간적으로 심장을 폭 감싼다. 어떤 감정은 사람의 심장을 몰랑해지게 만든다. 결이 고운 흙처럼 부드럽게 스며들어와 심장을 어루만진다.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고 나서 연기하는 게 전혀 모르고 연기하는 것과 다르다는 문장에서 글쓰기를 떠올린다. 모든 글이 다큐는 아니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글은 없다고 본다. 경험의 정도에 따라 감정의 깊이 역시 달라지며 어느 순간 살아있는 글이 태어난다.

배우는 오직 연기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에서 작가를 떠올린다. 작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니까. ‘자신의 얼굴로, 자신의 몸으로 하는 것인데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배우의 관점에서 하는 말을 작가의 관점으로 겹쳐 읽는다. 문장을 따라가는 길이 뜨끔하면서 설레고 뜨거워진다.

힘을 뺄 때 의외로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수영이라든지 이 책에서 언급된 연기라든지.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힘을 빼고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흐름에 몸을 맡길 때 울림이 큰 문장이 꽃처럼 피어나리라.

좋은 문장은 읽는 사람을 악기로 만든다. 독자의 눈으로 들어온 문장이 손가락이 되어 연주하듯 마음을 울린다. 삶을 노래로 만든다.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싶다. 어정쩡한 일렁임 말고 뭉클에 어울리는 감정의 일렁임을 듬뿍 선사하는 나비종스러운 문장을 꽃인 듯 피우고 싶다.

 

 

p247, 밑에서 5째줄: 것이었습다. ~습니다.

p301, 밑에서 7째줄: 아이였습니 ~.

p301, 밑에서 2째줄: 홀리해성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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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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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꿈꾸는 잿빛 시간은 탄성력을 지닌다. 심장을 향해 오가는 파도처럼 철썩이며 굳어가는 심장을 할퀸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결혼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반복된 생각 끝에는 매번 마침표 대신 도돌이표가 찍힌다.

미래가 올까. 까마득하게만 보이는 시간을 가늠할 때마다 생각했다. 정말 미래가 올까. 나에게 당신과 함께하는 미래가 있을까.

저녁이면 거울 앞에 돌아와 선 누이가 되어 보글보글 된장찌개에 풋고추를 찍어 먹으며 지나온 낮의 이야기들을 액션영화 리뷰하듯 주절거리는 삶. 평범한 저녁의 풍경이라 여기는 일상이 실은 많은 이들이 꿈꾸는 비범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삶은 좀 더 진하고 보다 징하다. 거울 앞의 민낯처럼 지질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실이다.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시간을 건너는 인간의 삶에 관한 통찰이 담긴 이야기이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문예지 등에 발표한 8편의 단편이 수록된 모음집이다.

소설집을 접할 때면 종종 시간을 거슬러 발표 순서에 따라 작품을 읽는다.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어서이다. 작품마다 색상과 채도는 다르지만, 공통으로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삶을 숙고하는 시간을 건넨다. 삶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번 책은 전반적으로 평소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야기를 꾸역꾸역 따라가느라 힘이 든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다소 밍밍한 게 종이 씹는 맛이 난다. 찢어진 종이의 절단면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낭떠러지를 만난 기분이다. 모든 수록작을 한데 묶어 결론을 내리는 듯한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만 좋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독자의 세상은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다. 책 속에서 흘러나오는 향기가 향수처럼 마음에 묻어 코팅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을 때 이런 현상은 특히 두드러졌다.

이 소설의 주제는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직접적인 사례로 도박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계속 지면서도 자신의 선택지를 고집한다. 기대하는 미래가 다가올 확률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현재의 행동을 결정하도록 만든다. 강하게 공감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경우는 어떨까. 책에서 언급된 메시지의 흔적을 일상의 곳곳에서 발견한다. 삶이 <이토록 평범한 미래> 시점으로 해석되니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 심장 속 메아리처럼 둥둥 울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이 해결책을 알려준다.

 

다소 몽환적으로 전개되는 <재와 먼지>라는 SF소설이다. 동반자살을 결심한 두 남녀가 자살하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다시 체험한다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이 시간 여행을 계기로 세 번의 삶을 공유하게 된다.

첫 번째는 그들의 삶이 동시에 끝나기까지의 삶이다. 삶을 사랑으로 도치해도 맥락은 이어진다.

두 번째 삶부터가 환상특급이다. 동반자살을 시작으로 그들의 시간은 날마다 하루씩 당겨진다. 함께 한 경로를 거슬러 간다. 따로 걸어온 시공이 겹치는 첫 만남에 이를 때까지. 내일이 과거이므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삶이다. 최초의 시점에 다다른 두 사람은 서로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는다.

세 번째 삶은 다시 정상적으로 흐른다. 두 번째 삶을 통해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알게 된다.’ 그들의 미래는 분명 이전과는 다르게 흐르리라.

 

세 번의 삶이 문신처럼 심장에 각인된다. 상상이지만 얼마든지 상상으로 실현이 가능한 삶이다. 현실을 넘나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을 떠올린다.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이 최근에 런칭한 창작 플랫폼 <투비컨티뉴드>에 에세이를 업로드하는 분이다. 간결하고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이 딱 내 취향이다.

식물을 심어 판매하는 일을 하는 이분의 꿈은 제주에서의 삶이다. 꿈이야 누구나 꿀 수 있으며 많은 이들의 로망이 제주이니 여기까지는 특별할 게 없다. 평소처럼 글을 읽다가 나는 독특한 작품을 발견한다. 제주에서의 삶이 펼쳐지는 미래를 상상하며 쓴 단편소설이다. 작가의 아바타인 듯 묘사되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 꽤나 구체적이다. 작은 충격이었다. 미래를 당겨와서 살아가는 삶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것만 같은 상상에 덩달아 설렜다.

 

어제는 김연수 작가가 제시한 방법을 따라 해본다. ‘내 앞의 세계를 바꾸는 방법이지요. 다른 행동을 한번 해보세요. (중략) 아주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예요.’ 그의 문장대로 일상이 흘러갈까.

할머니 산소에 다녀오려고.”

집에 내려온 아이들을 역까지 배웅하고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온다고 말하는 당신.

그 순간에 작가의 문장을 떠올린 나는 잘 다녀와요.”같이 갈까요?”로 바꾼다.

아이들이 올라가면 커피숍에서 글을 쓰려던 참이다. 계획적인 J가 갑작스레 뛰어든 일정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당신과 함께 할 시간이라는 점이다.

 

타이밍은 절묘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시골은 결혼하기 전에 들르던 장소다. 산소로 가는 길은 미래를 알고 두 번째 삶을 사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따사로운 언덕 아래 포슬포슬한 바닥에서 절을 하며, 가는 길에 사 간 막걸리를 단비 드리듯 봉분에 뿌리며, 몸을 일으키다 듬성듬성 고개를 내민 연둣빛 손톱만 한 새싹을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오다 누군가 쌓아놓은 흙더미를 보며 순식간에 삼십여 년 전으로 타임슬립을 한다.

인근의 시골집에도 들른다. 여전히 햇살 같은 표정으로 해물짬뽕과 탕수육을 맛깔스럽게 만들어주시는 이모님들 앞의 남녀는 이십 대로 돌아간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 끄트머리에 조는 듯 앉아있는 고양이 위로 옥상에서 빨래 걷는 할머니와 대화하던 수줍은 예비 손주며느리가 겹친다.

쭈그려 앉은 화장실에서 무릎관절염을 실감할 때까지 곳곳에 묻은 흔적들이 새싹인 듯 튀어나온다.

 

창작 플랫폼 <투비컨티뉴드>에서 즐겨보는 작품을 읽다가 알게 된 영화가 생각난다. 미래를 알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SF영화이다. 테드 창의 소설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는 영화 <컨택트>에는 7개의 다리를 가진 외계인 헵타포드가 등장한다.

그들의 시간은 지구인의 개념과 다르다.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전 생애를 볼 수 있다. 삶에서 죽음까지의 모든 과정을 알고 시작하는 삶이다. 마지막이 예정된 삶은 시한부 환자의 애틋한 나날처럼 매 순간 소중하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에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세 시간 동안 미래의 시점에서 시간을 거스른 듯 시골을 다녀오며 삼십여 년을 압축하여 돌아본다. 출렁이는 파도에 가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장면을 기억해낸다. 붉은색과 흰색의 양면 패딩에 머리 묶은 여자와 그녀의 눈동자에 환한 햇살을 품게 해주던 남자. 마주 선 두 사람이 미소 짓는 풍경이다.

 

시골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김연수가 언급한 바다를 떠올린다.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이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당신과 대화하다 어느 순간 꾸벅꾸벅 졸았나. 눈을 뜨면 굽이굽이 산길이, 다시 눈을 뜨면 잔잔한 강물이, 또다시 눈을 뜨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보였다. 왼쪽에서 느껴지는 온기 너머로 잔잔한 봄의 바다가 펼쳐진다.

평온하게 이어지던 평범한 대화였다. 당신도 역시 그 고양이를 보았구나. 할머님의 무덤 주변에 돋아난 새싹을 보며, 막걸리를 뿌리며, 흙더미를 보며, 같은 짬뽕을 먹으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두 사람의 마음이 정오의 시곗바늘인 듯 겹친 평화로운 오후 시간, 두 번째 삶 너머로 세컨드 윈드가 따스하게 불었다. 당신과 함께하는 세 번째 삶이 평범한 미래를 향해 흐른다는 신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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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2 (단풍 에디션)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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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글자들의 숲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의미를 지닌 글자들이 무성해지면 거대한 숲이 된다. 숲이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집합인 것처럼, 숲을 이룬 책은 생명체처럼 기능한다. 어떤 이에게는 지저귀는 새로, 곧게 뻗은 나무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풀잎으로, 꾸준히 꿀을 실어 나르는 꿀벌로 다가온다.

어떤 책은 그림 같다. 음악 같은 책도, 음식 같은 책도 있다. 우리의 시각과 청각, 미각과 후각, 피부 감각을 자극하며 의미를 전달한다. 이런 이유로 책은 감각적인 생명체다. 무생물인 종이에 실린 글자가 펼쳐지는 순간, 독자들에게 서서히 스며 들어가 숨을 쉰다.

 

불편한 편의점2는 피부 감각을 자극하는 소설이다. 편의점 온장고 속 호빵처럼 소박하게 따스하다.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나름의 이유로 한겨울을 지나는 중이다. 그 안에 호빵 같은 주인공이 그들 마음속의 허기를 채워주며 두 손에 온기를 나누어준다.

전편처럼 시트콤 같은 구성을 보인다. 시놉시스를 연상케 하는 문장을 따라가면 머릿속에는 동영상이 재생된다. 등장인물들의 목소리와 공간적 배경과 이야기가 음악 소리 들리는 산타 할아버지 입체 카드처럼 생생하다. 인물, 사건, 배경 모두가 살아있다. 현실에서 마주칠 법한 이야기, 다큐스러우면서 그 안에 담긴 온기가 나는 좋다.

 

점장 오선숙을 시작으로 익숙한 캐릭터가 문을 열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한 명씩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다. 소설 중간에는 본격적으로 주인공의 서사가 등장하여 그를 중심으로 인물 사이의 연결 고리가 드러난다. 하나도 버릴 것 없이 긴밀하게 엮인다. 캐논변주곡처럼 전편의 익숙한 멜로디에 약간의 변주를 준다. 지루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속편으로 연결된다.

김호연 클라스는 독보적이다. 2편에서도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인물의 서사에 궁금증을 유발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흡인력은 여전하다. 전편과의 차이점은 시대적 배경의 비중이 커지고, 점장과 정육식당 사장과 편의점 주인 등 관리자 입장의 에피소드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시대의 흐름은 아날로그적이지만 인간의 역사를 디지털로 묘사한다면 지난 3년은 격변의 경계라 칭할만하다. 2020120일 이후 세상을 굵직한 나이테적 사건을 경험한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약간의 굳은 살은 배겼지만, 변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글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시대상을 반영해야 겉돌지 않고 독자의 심장으로 스며들 수 있다. 생활이라 표현하면 밋밋할 정도로 삶이 달라졌다. 코로나를 소재로 하는 문학작품들이 쏟아졌다. 질병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책, 팬데믹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하는 책 등 현실을 생중계하는 다큐멘터리가 많다. 몇몇 책들을 읽었지만, 별반 해답을 얻을 수 없어 여전히 답답했다.

 

내내 품고 있던 답답함이 해소된다.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어느 방향으로, 어떤 의지로 삶을 걸어가야 하나 어렴풋이 답을 얻는다.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에게 빙의하여 진지하게 상황을 직시하니 내가 보인다.

소설은 거리두기를 만들어준다. 주인공들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자로서 바라보면서 독자는 스스로 삶을 비추어본다. 나라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혹은 맞아, 맞아, 나도 그랬을 거야 하며 공감한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본다. 코로나를 녹여낸 작품 덕분에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다 더 이해하게 된다. 더불어 나의 삶도 둘러본다.

 

편의점에 관한 책을 읽는 중이어서였을까. 인터넷 뉴스에서 편의점 체험이 담긴 기사문이 눈에 들어온다. “소주병 '쾅'무례함에 심장 '쿵쿵'...'심야 편의점' 알바해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2023.01.14.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이라는 제목이다.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라는 편집자 주를 읽고 아! 이 기자 찐이구나 싶다.

 

책을 통해 편의점 예습이 이루어진 상태여서일까. 기자의 체험담이 현장감 있게 다가온다. 몰입감을 주는 문장과 중간중간 사진 설명 글에서 파편처럼 뿜어져 나오는 재치 덕분에 재미있는 소설을 보듯 정신없이 읽는다. 유튜브도 아닌데 결국 내 손가락은 구독과 응원을 누르고야 만다.

기자의 기사문들을 모은 메인 페이지를 방문한다. “쓰레기를 치우는 여사님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소외된 곳을 떠들어 작은 거라도 바꾸겠습니다.” 에 적힌 비전이 마음에 든다. 세상 곳곳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퉁이의 모습을 알리고 있구나. 작가는 소설로, 기자는 기사문으로 무심코 흘려보내는 장면을 붙드는구나.

 

이 책과 기사문을 읽고 나니 뚝배기가 된 기분이다. 글은 독자를 각기 다른 그릇으로 만드는 걸까. 커다란 용광로로, 작은 종지로, 뚝배기로, 라면 냄비로 말이다. 폭발적인 열정이나 오소소 스릴러나 처절한 냉기는 없어도 오가는 이야기들이 물컹하고 따뜻하다. 심장을 은근하게 데워준다. 데워지는 데 오래 걸리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온기가 한동안 머문다.

등장인물들의 배경은 한결같이 시리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준다. 웃어서 뭘 먹은 효과가 난다는, 걱정은 독이고 비교는 암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불씨로 날아온다. 이 불씨에 나만의 신선한 산소를 모아 삶을 뜨거운 열정으로 이끌어 시린 이들과 더불어 걸어가고 싶어진다.

 

관성에 의해 굴러가는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비관한 적도 있다. 내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까. 흔히 듣는 말, 흔히 하는 생각처럼. 이제는 달라졌다. 어쩌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기사문으로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듯이. 찬란하게 빛나는 별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기체인 수소가 꾸준히 모여들어 만들어지니까.

세상은 꾸준히 두드리는 '하나'들로 변한다. 작은 거라도 꾸준히 두드리면 서서히 반향을 바꾸어가면서 다듬어진다. 어쩌면 내가 쓴 이 글이 누군가의 심장을 두드려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지 모른다고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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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린 스페이스 바와 연결된 커서처럼

손가락 아래 놓인 듯한 세상이

숨도 고르지 않고 휙휙 미끄러진다.

 

걷고 싶은 만큼 걷고 싶은 속도로

스페이스 바 같은 공간에서 잠시 통통

다시 쉬다 통통통 춤추어도 될 텐데

 

폴짝 한 발짝만 뛰면 멈출 수 있건만

깜빡이며 재촉하는 커서를 견디지 못해

스페이스 바에 털썩 몸을 얹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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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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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들어진 탁자를 좋아한다. 나이테로 물결치는 무늬 앞에서 나의 심장은 느리게 뛴다. 규칙적으로 줄 맞추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면서도 나무의 불규칙함에서는 안정감을 느낀다. 이유가 뭘까. 탁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무늬를 만드는 결에서 답을 찾는다. 대리석의 유려한 무늬와는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온다.

물결인 듯 보이는 진한 선은 무수하게 짧은 빗금의 집합이다. 자잘한 털들이 모여 숯 검댕이 눈썹을 만드는 것처럼. 한 뼘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 빗금은 선이라기보다 촘촘하고 살짝 긴 점에 가깝다. 스스로 삶을 확장하기 위한 탈피의 흔적으로 이루어진 길처럼 보인다.

결은 길이다. 곤충의 탈피가 성장의 자취이듯 나무의 결은 자라온 시간을 담는다. 사람이 겪는 성장통처럼 나무는 나이테의 결을 만들 때 고통스러울까. 상처의 흔적으로도 보이는 빗금이 모여 굵직한 선으로 그어질 때까지 어떤 삶의 길을 걸을까.

 

나무처럼 생각하기는 나무의 삶과 존재 방식에 대하여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저자인 자크 타상의 관점에 의하면 지구는 나무의 행성이다. 흔히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 일컫는다. 지표면의 70% 이상이 바닷물로 채워져 있으니 당연한 정의이다. 겉으로 보기에 지구는 태양계에서 푸른 구슬로 존재한다. 생명체를 기준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생태계를 생각하니 먹이피라미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식물은 제일 아래에서 든든하게 생태계를 떠받치는 생산자이니 나무의 행성이라 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책 속에서 이루어지는 저자의 모든 사유는 나무에서 시작해서 나무로 끝난다. 나무의, 나무에 의한, 나무를 위한 책이다. 인간에게서 나무의 흔적을 찾고 나무가 세상에 존재하는 법을 말하며 나무와 함께 살아가기를 권유한다. 숲을 이루는 나무의 화합에서 교향곡을 들으며 인간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나무의 의미를 찾는다. 나무를 함부로 대하는 인간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을 제안한다.

 

독자로서 모든 책을 읽는 목적은 하나로 귀결된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도 역시 인간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데 있다. 식물학자로서 그가 선택한 매개체가 나무일 뿐이다.

바라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박웅현은 여덟 단어에서 ()’을 언급한다. 시각적인 정보만이 뇌에 전달되어 인지하는 게 아니라 그 너머의 본질까지 바라보는 게 진짜 보는 거라고. 이런 이유로 어떤 대상을 통해 볼 수 있는 요소는 땅에서 우주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어떻게얼마나를 결정한다.

자크 타상 덕분에 엄지손가락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엄지는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보고 있다는 문장 덕분이다. 책 속의 문맥과는 다르지만, 새삼 엄지 손끝을 나머지 손가락 끝에 차례로 대어본다. 이웃한 어떤 손가락들도 그들끼리는 마주 볼 수 없다. 가까운 손가락을 겹쳐도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멀리 있어도 어떤 손가락에든 닿을 수 있고 유일하게 다른 손가락을 마주 볼 수 있는 존재라니!

 

사람은 왜 품종이라 하지 않아?” 뜬금없이 딸이 묻는다. 사과의 품종은 부사, 홍옥, 아오리 등이거나, 개의 품종도 푸들, 몰티즈, 닥스훈트 등 다양하지 않은가. “그건 사람이 기준이라 그런 거 아닐까.” 잠시 망설이다 답한다. 세상은 사람을 기준으로 해석되고 정의된다. 그리고 관점은 그가 사는 세상의 크기를 결정한다.

식물의 감각이 인간처럼 오감 이상으로 존재하리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식물에게 20여 가지의 다른 감각이 있다는 말에 놀랐던 건 이런 이유이리라. 나를 기준으로 식물을 판단해왔으니까. 곰곰 생각하면 우리가 3차원을 산다고 우주가 그리 존재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우주와 나무를 연결하는 저자의 문장을 따라가니 상상하는 공간의 크기가 넓어진다. 땅과 우주의 무언가에 나무라는 고리가 걸려 연결된 선을 붙잡으면 우주의 기운이 훅 끼얹어질 것 같다. 나무 아래 서면 우주의 기운을 들이마셔 확장된 폐가 적당히 서늘해질 것 같다.

 

멋진 은유가 많은 책이다. 다만 너무 과도하다. 나무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저자의 열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전체적으로 산만하다. 설익은 과일을 잔뜩 가져다 놓은 듯 어느 걸 맛보아도 살짝 떫다. 느긋한 산책길도 아니고 전력 질주도 아니고 어정쩡한 속도로 걸어가는 문장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문장을 꺼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근육이 부족하다. 슬림한 몸도 근육 짱짱한 식스팩도 아닌, 어설프게 운동하는 아마추어를 보는 듯하다. 서사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뚝뚝 끊기는 내용이 몰입을 방해한다. 식어버린 피자치즈 같다. 문장의 흐름을 따라가다 작가가 애초에 무슨 말을 꺼냈었더라 갈 길을 잃어 몇 번이나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확실한 장점은 관점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나무는 생각보다 더 굉장한 존재라는 것. 특히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함을 인지하게 된다. 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만 우는 게 아니라 줄기와 뿌리와 잎이, 햇살과 비와 바람과 흙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무의 복수형은 나무들이 아니다. 숲이다. 숲은 나무뿐 아니라 공간까지 품는다. 나무 사이를 흐르는 공기, 흙내음, 나무 위에 생명을 누인 자그마한 벌레, 새들, 짐승들까지 아우른다. 이들로 둘러싸인 나무의 존재 의미를 생각한다.

비를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고 햇살을 기다리다 그들이 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낸다. 빛으로 뜨개질한 양분과 산소를 정갈하게 다듬어 밖으로 내어준다. 소유하는 거라고는 잠시 머금고 있는 물뿐이다. 이마저 절반 이상은 공간으로 돌려보낸다. 나무는 기다림과 무소유의 다른 이름일까.

과학 교사에게 광합성은 무심코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일상의 언어에 속한다. 명반응과 암반응 등 화학적 과정으로 얽혀 있는 에너지와 물질 전환의 과정이다. 습관처럼 머무는 학문적 개념이라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적은 없다. 초록의 잎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운 장면이 드러내는 본질적인 의미를. 빛을 흡수하는 생명체라니! 무형으로부터 유형의 것을 만들어낸다니! 상상할수록 전율이 인다.

 

어떤 개체도 자신이 아닌 것과의 연결 없이는 유지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체가 자신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한, 개체는 잠재성 그 자체다. 개체로 존재하기 위해서 자신 속에 없는 것과 융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p101~102)

환경과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담대함을 나무에서 발견한다. 자연스럽다는 건 힘을 빼는 거다. 공기 반 소리 반을 말하는 누군가도 외치지 않았는가.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노래하라고. 힘을 뺀다는 건 사실 대단한 용기 아닌가. 새로운 환경 앞에서 주춤하는 본능을 극복한 결과일 테니까.

나이테의 결을 만들 때 나무는 고통스러웠을까. 온통 나무로 이루어진 책의 숲을 통과하니 자연스레 결론에 도달한다.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날이 추우면 촘촘하게, 더우면 느슨하게, 힘을 빼고 자연스레 파도타기를 하는 능숙한 프로였던 거다. 경계를 허물어 무소유를 실천한 나무가 얻은 것은 한껏 품은 우주였을까.

 

 

p30, 각주의 마지막 줄: 잘환 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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