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두 번째 산이었어! 간이 밥상 위에 낙엽처럼 수북하게 쌓인 캐러멜 봉지들이 반짝인다. 희열에 찬 눈을 번득이는 남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으로 찌릿한 손끝을 문지른다.

 

끔벅끔벅 눈뜰 때쯤 창문 너머로 간간이 들리는 철벅 철벅 발소리. 젠장! 오늘도 공쳤군! 짐작은 했다. 사흘째 이어지는 장맛비다. 일을 못 나간 지가 사흘째라는 말이다. 일하지 않으면 배가 덜 고파야 하는데 어찌 된 게 일하지 못하는 날은 텅 빈 뱃속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니 환장할 노릇이다. 일찍 일어나면 하루 두 끼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애매한 끼니를 때워야겠어. 그는 다시 잠을 청한다.

서너 시간은 지났을 법했지만 사위는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얼마간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던 그는 이불을 발치로 밀어낸다. 빗소리에 섞여 들어온 흙냄새로 코끝이 간질거린다.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싱크대 위 수납장을 연다. 덩그러니 놓인 라면 두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좁은 반지하 공간에 놓인 자신의 처지가 라면 봉지와 겹쳐지며 입안이 껄끄러워진다. 오늘은 한 개로 버텨 보아야겠어. 내일도 끼니가 될 라면 사리 한 개를 꺼내어 반으로 두둑 뽀갠다. 봉지를 부욱 뜯어낸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싱크대 아래쪽을 뒤적거려 유통기한이 작년이던 후첨 양념 수프 봉지 하나를 북 뜯다가 그는 후두둑 가루를 흘리고 만다. 이런! 절반은 이따 써야 하는데. 낭패한 얼굴로 물 끓는 냄비의 불을 얼른 꺼버린다. 가루를 확보하는 게 먼저다. 물기 없는 부위에 떨어진 가루를 집게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눌러 수프 봉지에 도로 담는다. 그러다 뾰족한 산처럼 물결치는 끄트머리에 표시된 작은 삼각형 화살표와 뜯는 곳이란 세 글자를 발견하게 된 거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가장자리로부터 두 번째 산이 있는 위치이다. 그곳에서 두 개의 산이나 지나친 곳이 뜯겨있다.

아까 뜯은 라면 봉지를 살펴본다. 뜯는 곳, 글자는 없지만 무심코 뜯었던 흔적을 살펴보니 역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산이다.

주변을 휘 둘러본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가 줬던 미니 파이 봉지가 베갯머리에서 뒹군다. 얼른 집어서 봉지를 앞뒤로 살펴본다. 뜯는 곳, 글자가 있다. 삼각형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가장자리에서 두 번째 산이다. 조금 망설이다 봉지를 뜯는다. 제조회사에서 지정해준 장소이니 짐작대로 깔끔하게 뜯긴다.

 

입에 들러붙은 미니 파이의 파편을 혀로 핥은 그는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눈에 띄는 곳에 뜯을만한 봉지는 없다. 세 번이나 반복된 두 번째 산은 허기짐을 호기심으로 바꾸어놓는다. 아하! 불현듯 뜯을 만한 봉지가 떠오른다. 라면이 동났을 때 아껴서 빨아먹으려고 두었던 땅콩 캐러멜 무더기를 싱크대 위 수납장에서 주섬주섬 꺼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다란 봉지를 버리지 않는 건데. 확인할 대상 하나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 낱개로 싸인 땅콩 캐러멜의 작은 봉지를 앞뒤로 샅샅이 살펴본다. ‘뜯는 곳이란 글자가 없다. 위치를 지정해주지 않은 땅콩 캐러멜. 짐작이 가는 뜯는 곳이 갑자기 너무 궁금해진다.

캐러멜 한 개를 집었다 놓았다 서너 번 반복한 그는 이윽고 결심한다. 엄지와 검지, 양 손톱 끝으로 봉지를 잡고 두 번째 산을 지난 골짜기 부근을 조심스럽게 뜯는다. 맞았어! 땅콩 캐러멜을 우물거리며 껍질을 반 바퀴 돌려 다른 귀퉁이를 뜯어본다. 깔끔하게 뜯긴다. 더 확인하고 싶다. 다른 봉지를 뜯어본다. 역시! 캐러멜을 먹는 것도 잊은 채 그는 다음 봉지를 집어 든다.

 

내용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껍질을 벗길 수 있는 적절한 시작점을 발견한 그는 진득하게 둘러싼 삶의 봉지에서 탈출한 캐러멜인 듯 희열마저 느낀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는 자전거처럼 봉지를 뜯는 그의 손길이 점점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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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햇살은 입자성을 띠고 있을 거야.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자잘한 비눗방울처럼 통통 튀는 햇살이 방울방울 흩날릴 것 같은 날이었다. 빛은 이중적이라던데. 어떨 때 파동성을 띠고 어떨 때 입자성을 띠는지 과학적으로 복잡한 원리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봄 같은 햇살이었다. 봄 같은 공기가 출렁거리며 간간이 봄을 닮은 바람을 만들어냈다. 해동된 듯 흐물거리는 가로수 사이로 손가락으로 찌르면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푹 들어갈 것 같은 자동차들이 느린 화면으로 지나갔다.

 

~ 날씨 앱을 한 번 보고 나올걸. 옷을 갈아입고 나올까. 오리털 패딩에 머플러를 칭칭 동여매고 길을 나선 그녀는 아파트 경비실 옆에서 주춤했다. 잠시 망설이다 머플러만 느슨하게 풀고 계속 걸었다.

느슨해진 옷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한 시간 뒤의 그녀는 와르르 풀어진 감정의 끈을 거슬러 올라와 처음 길을 나설 때의 옷차림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 시작은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뺨에 흘러내렸던 빛의 감촉이 너무 따스해서였는지도.

 

부드러운 바람을 뺨으로 느끼며 천천히 걷던 그녀의 마음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얼어붙은 심장에 동결건조된 건더기 수프처럼 쪼그라들어있던 생각이 물속에라도 들어간 듯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봄 같아서 좋아. 여름을 닮은 뜨거운 열정은 부담스럽고 가을은 쓸쓸하고 겨울은 추워서 싫은데 그 사람은 꼭 봄 같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해서 좋아.

봄이라는 욕조에 마음을 푹 담갔다 빠져나온 사람처럼 약간 상기된 얼굴의 그녀는 과거의 그를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녀가 봄에 빠져있는 동안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관계는 계절처럼 변화한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계속될 줄 알았던 봄은 낭떠러지 같은 겨울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변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둔감했던 그녀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조금씩 변해가는 온도를, 조금씩 증발해버리는 빛의 입자들을. 계절이 바뀌는 임계점을 놓쳐버린 걸지도 몰랐다. 변화의 원인조차 희미해진 관계의 끈을 붙들고 있는 그녀의 눈에 결과가 또렷이 보였다. 선명한 현실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심장을 쿡쿡 찔렀다.

 

오히려 봄에는 이런 상념에 젖어 들지 않았다. 겨울의 한복판에 갑자기 봄이 머무르는 날,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것 같은 날이면 그녀는 불 꺼진 성냥을 들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가 되곤 했다. 처량함과 서러움이 조금씩 섞인 마음을 품고 어정쩡한 공간을 서성였다. 빛의 파동에 실려 그럭저럭 견디다가도 입자의 감촉이 끼어들면 이글루의 에스키모인처럼 한기에 무감각했다가도 고요하게 잠재웠던 마음이 다시 들썩였다. 빛의 이중성처럼 과거와 현재의 그를 한꺼번에 불러와 온도 차를 감지하며 목적지 없이 마냥 먼 곳을 응시한 채 걷고 또 걸었다.

 

관계를 계절로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을지 모르지. 법칙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걸지도. 씨앗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언젠가는 다시 싹을 틔울 거라고?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계절이 다시 돌아오듯 봄 같던 그가 다시 올 거라고? 뭘 기대하는 거지? 뭘 기다리는 거야? 애초에 계절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 억지를 부리는 거잖아.

봄이었던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녀의 마음이 쟁반 위에 놓인 과일 껍질처럼 조금씩 말라갔다. 여전히 봄빛을 닮은 공간 속으로 으슬으슬한 기운이 스미는 것 같아 그녀는 머플러를 다시 동여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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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소설이라면 인물, 사건, 배경 등을 설정하고 전체적인 플롯에 따라 써 내려가야 하는 거 아냐?

 

-일반적인 문학작품의 장르에서는 그렇지. 근데 그 장르라는 게 말이야. 소설, , 수필 등으로 구분되는 틀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잖아. 어차피 문학은 창작이야. 세상에 없는 장르 하나쯤 추가되는 거, 썩 나쁘지는 않잖아?

 

-그래서 그, ‘조각 소설이란 게 뭔데?

 

-조각 케이크 알지? 비슷한 맥락의 문학 버전이랄까?

 

-문학? 뭐가 그리 거창해?

 

-카메라도 자동, 수동, 폴라로이드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 케이크도 원통형만 있는 게 아니라 조각 케이크도 있잖아. 조각 피자도 있고. 드라마 영상도 2~3분짜리 클립 영상이 있는 것처럼. 일종의 조각 글들이 담긴 소설집인데 아주 짧은 장면만 등장한다는 거지. 결정적인 장면을 뜯어낸 한 장의 페이지를 보여주는 거지.

 

-인물도 사건도 제각각이라면 그게 잡글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

 

-어차피 독자들이 한 편의 소설 전체를 다 흡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에 따라 전혀 다른 소설로 받아들이지. 모든 사람의 마음이 작가가 의도한 주제대로 움직이지는 않으니까. 주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소한 표현 하나가 어떤 이의 마음에는 선명한 자국을 남길 수 있거든. 글의 예측 불가능성이자 매력이지.

조각 소설이란 각기 다른 음식이 차려진 소규모 뷔페식당이라고 생각하면 돼. 양이 많다고 해서 모든 이들에게 만족할만한 식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니면 간편하게 먹는 디저트 정도의 개념일 수도 있고.

너는 우리의 기억이 디지털이라고 생각하니? 아날로그라고 생각하니?

 

-소설 얘기하다가 갑자기 기억은 뭔 소리야?

 

-갑자기가 아니라 다 아우를 수 있는 얘기야.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우리는 끝없이 살아가니까. , 아날로그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디지털적인 요소가 많아. 예전 생각을 하면 어떤 장면들이 단편적으로 조각조각 떠오르지 않니? 앨범 속에 끼워진 사진처럼 말이야. 그 사진이 짧은 동영상처럼 몇 분간 움직일 뿐이지.

우리의 기억이라는 거, 일종의 짤막한 소설 같은 거라 생각해. 과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비꼬아서 말할 때 이러잖아. 소설 쓰고 있네~ 하고. 그거 정말 적절한 표현이지 않니? 그 기억에는 자신이든 자신이 관찰한 제삼자이든 주인공이 등장해. 사건이 있고 당연히 배경도 존재하지. 기억을 보강하기 위해 더 오래전의 사건도 끌어오는 플롯을 만들기도 하고. 이게 흥미로운 건 똑같은 기억이라도 회상 시점에 따라 주제가 달라진다는 거지. 홀로그램처럼. 똑같은 사람의 것인데 해석하는 시점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순식간에 증오로 변신하기도 하지.

내가 쓰고 싶은 조각 소설은 그런 기억의 소설 버전이라고 보면 돼.

 

-그런 짤막한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책을 읽을 때마다 가끔 생각해. 책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 참 좋겠다 싶은 이들에게 독서의 세계란 게 너무 길고 어렵고 거대한 세계가 될 수도 있겠구나. 세상에는 삶을 펼쳐내느라 종이 한 장 펼치기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은데 말이지. 모든 사람에게 거대한 바닷물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아주 목마른 상태에서 황량한 사막을 걸어가는 이에게는 한 모금의 물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살아가기 급급한 사람들이 너의 글을 볼까? 책 한 장 펼치기 어려운 노곤함 속에서? 네가 쓰는 글이 무슨 의미가 될까?

 

-그렇긴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의 힘을 믿어보고 싶어서. 새벽에 갑자기 깨어났는데 마음 둘 곳이 없어 허허로운데 우연히 클릭해서 읽은 나의 글에 공명하기를 바라는 거지. 전자레인지가 물 분자와의 공명으로 음식을 데우듯이 누군가의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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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의 하얀 종이가 문득

내 마음 같아질 때가 있다

 

아득하게 펼쳐지는 여백에

마음 한 조각 던져놓지 못하고

마침표 하나 찍어보지 못하고

온통 공허로 가득한 공간이라니

 

아득한 눈밭을 걸어가듯

몇 발자국 떼어보다 되돌아오고

꾸역꾸역 다시 걷다 뒷걸음치고

투명한 맘으로 뒤덮인 공간이라니

 

내 앞의 하얀 종이가 문득

먹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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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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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거야. 사람들이 무심코 흘리는 문장이다. 끄트머리에 물음표를 붙여본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거야? 귀신과 맞서는 보건교사 안은영.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죽음 이후의 세상을 상상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내용이 있다. 출처도 희미해 어디서 읽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대략적인 얼개는 이렇다. 우주 어딘가에는 영혼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존재하는데 생명체가 죽으면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다나. 윤회와 차원적 개념이 결합 되어 이를테면 계단처럼 점차 높아지는 차원들이 존재하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드디어 가장 높은 차원의 계로 올라가게 된 존재는 육체조차 필요 없이 영적인 에너지의 뭉치로만 모여있다고. 꿈을 꾸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꿈꿀 때 그 공간으로의 순간이동이 가능해 잠시 거기에서 가져온 결과물이란다. 삼라만상의 해답이 거기에 있다나. 물리학 관련 도서였건만 사이비 종교의 냄새가 풍겨 황당하다며 웃어넘겼던 기억이 난다. 한데 과연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을까. 그 책에 등장하는 세계가 존재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까.

마차 바퀴를 굴리던 사람들이 막연히 그려보았을 미래의 모습은 어땠을까. 기록된 소수의 자료 말고 물속에 잠긴 빙산의 아랫부분처럼 꺼내어지지 못했던 상상들이 궁금해진다. 날개 달린 물체가 하늘을 넘치게 날다 못해 우주를 향하고, 걸어 다니면서 통화하는 미래 사람들의 모습을 과거의 그들이 본다면? 같은 맥락으로 우리 역시 앞으로 펼쳐질 세상의 모습을 단언할 수 없다.

작가 정세랑의 기발한 상상력과 만화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건들을 따라가며 생각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조차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가능성 제로인 일이 존재하기는 할까.

 

보통의 인간은 20~20,000Hz의 가청 진동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범위를 넘어서는 초음파나 초저파는 일부 생물들만이 감지할 수 있다. 빛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인 가시광선의 범위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조금만 확장해서 빛을 정의한다면 자외선, 적외선처럼 보이지 않는 빛도 있다. 들을 수 없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내가 모르지만 다른 세상은 이런 식으로 분명 존재하므로.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기 위해 잠시 멈춤의 의미를 지닌 현상인 걸까. 위로 던져진 공이 아래로 내려올 때 순간적으로 멈추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주인공 안은영은 죽었거나 살아있는 존재들이 뿜어낸다는 액토플라즘이라는 입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사립고등학교 보건교사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기운들을 없애는 정의의 퇴마사로 등극한다. 귀신과 얽힌 이야기인데도 섬찟하거나 음산하지 않다. 경쾌한 그녀의 성격처럼 살짝 유머러스하고 발랄한 에너지가 감돈다.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갖춘 에피소드들이 시트콤을 연상시킨다. 학생, 교사, 평범한 이, 다른 계통의 능력을 지닌 존재, 귀신 등 각각의 이야기에서는 핀 조명을 받는 대상들이 매번 달라진다. 이들과 얽힌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을 따라 몇 개의 동산을 넘어가면 어느새 <작가의 말>을 만나는 순간이 온다.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 쉴 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다소 맥이 빠지는 결말, 통쾌해지는 결말, 상상을 뛰어넘는 결말,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결말, 마음이 짠해지는 결말 등 각양각색의 버전이 있다.

소설에서는 그녀의 조력자이자 남주인공 한문 교사 홍인표가 등장하는데 첫 에피소드는 그들의 만남에서 시작하며, 마지막 에피소드는 두 사람의 러브러브가 시작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끝이지만 끝이 아닌 느낌이 있다. 요즘 핫하다는 <낭만닥터 김사부2>처럼 2, 3탄이 등장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학교라는 공간적 배경과 교사 또는 학생이라는 등장인물들 덕분에 학생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세계의 단단한 부분을 밟고 살아간다면 자신은 발이 빠지는 가장자리를 걸어야 함을 슬슬 깨달아가던 중이었다.(p45)’,‘자주 스스로를 누군가 버리는 걸 까먹은 채 구겨 놓은 영수증 같은 존재라고 여겼는데 한 번이라도 그렇게 구김살 없이 웃어 보고 싶었다.(p104)’, ‘어떤 나이에는 정말로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데 모두가 그걸 얻지는 못한다.(p125)’ 세 문장에서 아이들의 시린 모습이 연상되어 마음이 아팠다.

바깥은 죽어 있고 안은 살아 있는 걸로는 다 할 수 있어.(p118)’ 씨앗을 의미하는 이 문장에서 아이들이 떠올랐다. 무표정한 아이들, 반항하는 아이들, 비뚤어질 테다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이들. 겉에서는 굳어지고 차가운 벽으로 둘러싸인 듯 보이지만, 안에 있는 마음은 몰랑몰랑 살아있어 정성껏 물을 주고 적절한 환경만 주어진다면 씨앗처럼 싹을 틔우지 않을까.

아직 남아 있는 순수한 표정과 열려 있는 눈동자가 선생님들을 버텨 내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p38)’,‘아이의 눈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대흥은 그 반짝임 때문에 늘 희망을 얻었다.(p233)’ 이 문장들은 느슨해져 가는 마음을 팽팽하게 당겨주었다. 그래, 아이들에게서 빛을 보고 싶은 마음이, 민감한 빛을 감지하고 싶은 센서가 아직은 내 심장에서 꺼지지 않았구나.

 

어둠 속에서는 빛이 더 잘 보인다. BGM처럼 귀신이 깔린 이야기라 죽음이 주제일 것 같지만 귀신 이야기는 코팅지에 불과하다. ‘살아간다는 동사가 유달리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한 꺼풀 벗겨보면 곳곳에 삶이 보인다. 죽음의 충격파를 통과한 이야기들은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본능적인 이 아닌 살아가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건네어 준다.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p185)’,‘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p189)’,‘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 욕심이 나는 거구나.(p216)’,‘은영은 살아 내는 일이 버거워서 먼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모든 상황이 임시적이라는 걸 늘 암시했다.(p238)’ 나열한 문장들을 되짚어보니 삶만큼 위태위태하고 불안정한 일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p272)’ 이런 친절한 작가님 같으니라고! 그녀는 마지막 부분에서 회심의 한 방을 날림으로써 축 처져 가라앉은 문장들을 깔끔하게 갈무리한다. 막강 파워를 장착한 주인공들이 아니라 어딘지 불완전한 캐릭터를 설정한 깊은 뜻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죽음 이후의 세상이 존재하건 보이지 않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공간이 존재하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빛이 있는 곳에 머문다면 어둠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며, 어둠 속에 머문다면 빛을 바라보며, 기쁘다면 슬픈 이를 다독이며, 슬프다면 기쁨의 순간을 생각하며, 삶에 머무는 지금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어디에 있든 나 있는 장소에는 의지할 무언가 존재할 것이므로 그렇게 살아가면 충분하리라. ‘살아가는 일앞에는 더불어라는 세 글자가 곳곳에 숨어있으므로.

 

 

p57, 2째줄 : 박민우(본명보다~)박민우( )

p58, 마지막 줄 : 낡을 고무장화를 낡은~

p5, 차례, p89, 제목 : 원어민 교사 메켄지 ~ 매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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