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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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바라보는 세상을 이미지로 구현해 본다. 커피숍에 앉아 잠시 고개를 든 지금, 내 앞에는 은은한 조명 몇 개, 창 너머로 흔들리는 나뭇잎, 습기를 머금어 살짝 뿌연 공기, 연한 황토색 탁자, 자료를 들추며 노트북을 두드리는 건너편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하얀 종이와 모니터의 세상이 펼쳐질 터이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해도 우리가 보는 세상은 모두 다르다.

다른 세상을 살던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사회 제도로 묶일 때,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스즈키 유이의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 그 답이 있다. ''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이 된다는 노랫말을 들어보았는가. 또한 부모의 DNA를 공유한다 해도 생물학적 유전이 정서적 연결까지 보장하지는 않을 터.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 어쩌면 한시적으로 시공을 공유하는 개별적인 존재인지 모른다.

'관계'의 눈으로 이 소설을 바라보면, 가족 간의 심리적인 거리가 좁혀지는 과정에서 따끈하고 담백한 두부 맛이 난다. 학문적인 관점으로 따라가면, '인용'에 대한 심오한 고찰에서 알싸한 맛이 느껴진다. 진실을 탐구하는 순수한 '열정'을 지켜볼 때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천일염의 맛이 전해진다. '세계관'으로 접근하면 광대한 바다인 양 탁 트인 시야에서 달큰한 바람 내음이 스며든다. 키워드에 따라 맛의 편차가 큰 작품이다.

 

'괴테'라는 자물쇠로 채워진 소설. 문안으로 펼쳐지는 세상은 상상과 다르다.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세계관에 대한 사유로까지 확장된다. 엄지보다 얇은 두께라고 방심하면 낭패다. 내용이 방대하여 휘리릭 읽기 어렵다. 시를 마주한 듯 함축된 의미를 곱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오미자처럼 다양한 맛이 나니 호불호가 갈리리라 예상한다.

괴테 연구 일인자 도이치 교수의 결혼기념일,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진 가족 식사. 그는 후식으로 나온 녹차 티백에 새겨진 명언의 출처를 보고 동공 지진을 일으킨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고 한데 섞는다.'라는 영문 뒤에 적힌 '괴테'라는 글자 때문이다. 괴테가 한 말은 다방면으로 많지만, 과연 이 말도 했을까. 어디서 들어본 듯하지만, 확신은 없다. 확실한 출처를 찾기 위한 학자로서의 추적이 시작된다.

'괴테가 말하기를'은 괴테의 권위를 앞세워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 말하는 관용구라고 한다.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습관적인 접두사처럼 말한다나. 방대한 저작을 남겼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으니까. 저자는 거장 뒤에 숨는 독일인들의 습관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인용'의 본질을 톺아본다.

 

인용의, 인용에 의한, 인용을 위한 책을 만들 테닷! 스즈키 유이는 작정한 게 분명하다. 소설 전체에서 인용 쓰나미가 몰려온다. 창고 대 방출된 인용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갈 지경이다. 배경지식이 얄팍하니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실존 인물인 괴테가 진짜로 한 말인지, 소설 속 괴테 연구자에 빙의한 작가가 창작한 가상의 말인지 헷갈린다. 경구들이 언급될 때마다 수시로 AI의 도움을 받는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말이 독일에 실제로 있어?', '비유적 및 경구풍으로라는 괴테의 작품이 있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동료 학자 시카리는 명언의 세 가지 유형을 언급한다. '원래 말의 복잡한 의미가 단순하게 변하고, 걸핏하면 뜻이 거꾸로 뒤집히는' 요약형, '닳고 닳을 정도로 쓰여서 원전이 뭔지도 알 수 없는' 전승형, 그럴듯하게 '작가가 지어낸' 위작형이다.

그는 인용의 날조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데도 당당하다. '작가나 사상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뭇잎 한 장으로 자신의 숲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라며, '사람은 자신의 사상 전체가 아니라 파편으로 이해된다.'라는 주장을 피력한다.

 

파편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일화가 떠오른다. 코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가 길고 유연한 뱀이나 밧줄처럼 생겼다 말한다. 다리를 만진 사람은 단단하고 굵은 나무 기둥, 귀를 만진 이는 곡식 키나 부채 같다고 한다. 배를 만지며 거대하고 단단한 장독을 상상하고, 꼬리를 만지곤 쓸개 빠진 빗자루 같다고 제각기 주장했다는 우화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전체 모습과 확연히 다르므로 거짓일까. 느낀 그대로 말한 입장에서는 억울할 터이다. 그렇다면 진실일까. 진실 혹은 거짓의 기준으로 답을 특정하기가 난감하다. 그러니 파편은 야누스적이다.

한 인간이 모든 세상을 볼 수는 없으니, 개인의 세상은 파편일 수밖에 없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에서 키워드를 찾는다. 결국 '거리'의 문제다. 볼록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물체의 이미지가 거리에 따라 다른 것처럼. 렌즈를 통과한 빛은 거꾸로 선 작은 상, 거꾸로 선 큰 상, 똑바로 선 큰 상, 상이 맺히지 않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준은 초점이다. 초점에서는 상이 생기지 않으니, 렌즈를 통해 물체를 보려면 초점을 벗어나 움직여야 한다.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대상을 바라볼지는 내가 정할 일이다. 세계관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에서는 상반된 두 세계관이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잼적 세계와 샐러드적 세계이다.

처음으로 딸기쨈을 만들어 본 기억이 생생하다. 방대한 양의 설탕과 딸기를 찜통에 넣어 졸이느라 어찌나 쫄았던지. 마그마처럼 꿀렁대며 덤벼드는 혼합물의 위협에 주방 장갑에 앞치마로 무장을 한다. 가스레인지 앞에 의자를 놓고 그 위로 올라간다. 최장신 주걱을 간택하여 몸을 사리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설탕과 딸기의 원형이 시간의 블랙홀로 사라졌을 때, 걸쭉한 결과물이 탄생한다.

잼을 만드는 과정도 거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리라. 평화롭게 주걱을 젓는 면봉 크기의 여인은 수시로 튀는 건더기와 사투를 벌이며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여인과 동일인이다.

'거리'라는 키워드로 소설 속 세계관의 차이를 이해하려 한다. '잼적 세계란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상태, 샐러드적 세계란 사물이 개별적 구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킨다.' 먼 거리에서는 희극적으로 보이는 잼적 세계가, 가까운 거리에서는 사소한 움직임조차 까슬까슬한 솜털처럼 감각되어 비극적으로도 보이는 샐러드적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이다.

 

'세계는 어떤 식으로 하나여야 하는가'. 저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괴테가 남긴 두 가지 경구를 언급한다. '세계는 죽이나 잼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딱딱한 음식을 씹어야 한다.', '세계는 말하자면 안초비 샐러드다. 모든 것을 하나로 뒤섞어 먹어야 한다.'라는 문장이다.

다시 추적! 녹차 티백의 시간이다. 괴테의 경구를 보면 티백 문장의 핵심 개념이 등장하는 듯하다. 세계관을 사랑에 적용하여, '사랑은 모든 사물을 잼처럼 혼동시키지 않고 샐러드처럼 혼연일체로 만든다.'라고 번역한 다음, 괴테님의 영역에 포함시켜도 되는 걸까. 주인공의 갈등에 덩달아 마음을 얹는다. 답은 끝까지 보이지 않는다. 소설 속 서사의 흐름은 명쾌하지만, 증강 현실을 보는 듯 몽롱함이 남아 다큐적인 답에는 의문이 남는다.

사실 답이 무엇인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 말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다. '그렇게 인용만 하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게 어때?' 나는 소설의 맛을 보고 얼마만큼 소화했을까. 소설에서 언급된 세계관을 '가족'의 범주에 적용해 본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프랙털이 존재하며 사회의 최소 단위는 가족이니까.

가족도 거리에 따라 잼으로도, 샐러드적으로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멀리서 보면 혼연일체가 된 잼으로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샐러드의 개별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는 관계로 말이다. 괴테는 샐러드파, 소설 속 서사로 판단한다면 저자도 샐러드파다. 나도 한 표를 더한다.

 

샐러드적 세계관은 음미할수록 매력적이다. '따로 또 같이'를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상태 아닌가. 저자는 서서히 변화되는 도이치 가족의 관계를 통해 샐러드적 세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남편과의 25년보다 딸과의 22년에 훨씬 말할 맛'을 느끼는 도이치의 아내는 괴테의 작품을 기억하지도, 남편이 번역해서 바친 작품을 읽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내는 거실 TV로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수시로 보지만, 남편은 그 유튜버가 독일인 정원사라는 사실 이외에 어떤 사실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녹차 티백으로 공통된 대화를 잠시 나누던 가족은 '각자의 취미에 몰두해 삼위일체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어'진다. '거실에 있어봤자 아내와 나눌 이야깃거리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샐러드 볼에 함께 담겨있을 뿐, 각자 겉도는 재료로 존재하는 구성원이다.

괴테 티백이 샐러드 소스가 되는 순간, 이들의 관계는 서서히 어우러진다. 도이치의 출처 찾기 프로젝트에 한 사람씩 가담하기 시작한다. 5년 만에 딸의 방에 들어가고, 독일에 함께 가서 아내의 최애 유튜버를 만나고, 딸의 남자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받고, 장인어른까지 합세한다. 어떤 식으로든 괴테와 연결된 구성원들은 괴테 패밀리로 대동단결한다. 방대하게 뻗어나가는 가계도의 연결 고리에 같은 소스로 버무려진 샐러드가 탄생한다.

 

도이치 패밀리는 독일어 원문으로, 영문판으로, 일본어판으로, 번역한 판본과 방송용 원고 등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파우스트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파우스트, 재밌더라." 아내의 한마디로 남편은 '모든 게 좋다.' 조화로운 가족의 풍경은 녹차 티백의 문구와 자연스레 겹친다.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다.' 샐러드처럼 혼연일체로 만드는 사랑의 말이 구현된 장면이다.

가족 사이에 연결되는 관계는 계속 변화한다. 부부의 출발은 이보다 선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했으리라. 아내를 보았을 때 '눈동자 안쪽부터 눈꺼풀 뒤쪽까지 그녀의 색으로 가득 찼던도이치처럼.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시간은 벌여 놓는 관계의 거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거리를 좁히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이치는 그의 아내가 남편이 선물한 책에 나오는 정원을 제일 먼저 작품으로 도전했음을 알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를 바라보려 하는 작은 시도를 만난다. 바라보려 하지 않았으면 영원히 몰랐거나 너무 늦게 알았을 마음이다. 너무 가깝거나 멀지 않게,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릴 만한 거리에서 말로, 행동으로 적절한 온기를 전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소설 속 인물의 말은 문학 창작의 본질을 꿰뚫는다. '사랑'을 주제로 얼마나 많은 작품이 탄생했는가. 바다에 던져진 전설의 맷돌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네버 엔딩 스토리가 쏟아지고 있으리라.

'사랑'이라는 보통 명사를 고유 명사로 바꾸어 작품 안에 박제하는 일,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의 몫이다. 다수의 사람이 선택하는 틀에 박힌 붉은 색 말고, 직접 고른 물감을 혼합하여 채도와 명도를 변화시키거나 과감한 색상을 선택하여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색깔로 구현하는 것. 작가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기성복은 익숙한 맛처럼 다수의 독자에게 그런대로 맞지만, 개성이 없다. 맞춤복은 한 벌 뿐이지만 소수에게만 편안하다. 극단의 선택지 사이에서 적절한 무게 중심을 찾아내기 위해 작가는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무게 중심은 선이 아니라 점이니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한다. 신선하면서 편안한 착장을 독자에게 건네기 위해서는.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을 분석하면 '신선함'은 성공적이다. 문학의 거장, '괴테'를 소재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작품을 접해보지는 않았어도 풍문으로 명성을 들었거나 요약된 줄거리 정도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는 인물 아닌가. 그를 공통분모로 '인용, 열정, 관계, 사랑, 세계관' 등의 요소를 구현한다는 발상이 파격적이다.

 

이상적인 가족 관계의 샐러드는 어떤 맛인가. 나의 결론은 '조화로운 맛'이다. 사실 샐러드 만들기에는 복잡한 레시피가 없다. '모든 재료를 썰어서 그릇에 담는다. 소스를 뿌린다. 잘 섞는다.' 이게 전부다.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어우러지는 소스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레시피이리라. 샐러드적 세계관이 적용되는 거리에 서서 공통점을 찾아내기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원문에 담긴 수많은 인물과 생소한 문화를 설명하는 데 필요했겠지만, 인용의 쓰나미는 주석의 쓰나미로 복제된다. 프롤로그에 1, 120, 221, 326, 431, 515, 612, 에필로그에 10, 저자 후기에 2. 245쪽의 본문에 138개의 주석이 달린다. 본문을 읽다, 아래쪽 주석을 읽다, 다시 올라가기를 수시로 반복하니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과한 친절이 안개 속을 헤매게 만든다.

괴테는 이 세계에 언제나 안개가 끼어 있다고 본다. '세계는 완전한 빛과 어둠의 중간에 있다.'. 빛과 어둠의 대립이 색을 이루어 모든 색이 각각 빛나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색깔을 인정해 줄 때, 빛나는 색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다음에 보여줘." "전에 보여줬잖아." "그래? 그럼 다시 한번 보여줘. 집에 가면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나도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 도이치 부부의 대화에서 은은하게 전해지는 샐러드 맛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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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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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는 물질세계에만 있지 않다. 사람의 내면에도 드넓은 바다가 있다. 바다를 휘휘 저어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건져 올린 다음 서로 연결하여 정갈한 글로 옮기는 것,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노트북 앞에 앉기 전까지 글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알 수 없다. 언제 쓰느냐, 어디에서 쓰느냐, 머무는 시공간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책을 계기로 나를 알게 된다. 잔잔하던 마음의 바다로 저자의 생각이 뛰어 들어온다. 작용과 반작용인 듯 마음이 출렁인다. 리뷰를 쓰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본다. 글은 보이지 않는 생각을 드러내는 도구다. 이토록 많은 생각이 담겨있었다니! 주인도 몰랐던 생각이 은밀하게 숨어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생각의 파편들이 고요를 깨뜨린다. 평온했다면 알지 못했을 생각들이 고개를 내민다. 글쓰기는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편안함의 습격이다. 저널리스트이자 탐험가인 마이클 이스터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와 자신의 경험을 제시하며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말한다. 편안함이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경고한다. 저자의 생각이 내 생각의 바다를 습격한다. 긍정적인 자극에 마음이 반응한다.

 

교양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이 책을 보며 중학교 3학년 과학의 '자극과 반응' 단원을 떠올린다. 과학적인 현상을 인문학적 비유로 연결 지을 때가 있다. 두 분야는 의외로 자연스레 어울린다. 철학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건 사유를 확장하면 커다란 틀로 묶인다는 방증이리라. 학문의 본질은 인간과 이를 둘러싼 환경을 탐구한다는 점이니까.

교사의 목소리가 자장가가 되는 시간은 5교시만이 아니다. 1, 2교시는 너무 일러서, 4교시는 당이 떨어져서, 마지막 교시는 집에 가기 전이라 지쳐서. 10대의 취침은 대체로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탄탄한 근거를 확보한 채 정점을 찍는 5교시. !! 인간과 혼연일체가 되어 졸음의 바다를 유영하던 책상을 두드린다. 화들짝! 편안하던 몇몇 생명체가 움찔한다.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이 뭘까요. 책상은 건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죠? 살아 있다면 여러분들처럼 리액션을 취한다는 겁니다. 소리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는 거죠.

인간이 지난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은 빛, 소리, 화학 물질, 접촉 등 외부 자극을 감지하여 반응을 이끌어낸다. 변화하는 환경에 리액션을 취하는 건 스스로 보호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생존 본능이다. 뜨거우면 피하고, 눈부시면 눈을 감는 것처럼.

 

정신적인 영역 역시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울부짖는 드라마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진다. "사랑뿐이겠니?" 마음에 담긴 모든 생각과 감정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생각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이상 기체와 같다. 바람과 현실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만 이상 기체에 가까운 상태가 존재하듯 포용할 수 있는 범주를 정하여, 이 정도 변화까지는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편안한 마음 상태는 고요한 바다와 같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니 이 상태가 관성처럼 지속되기를 원한다. 짧은 순간은 좋다. 귀찮고 불편하게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으니.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변화가 없는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욕창에 걸리거나 근육이 굳어지는 것처럼. 몸이든 마음이든 환경에 반응하지 않는 상태는 살아있는 인간을 무생물에 가까워지도록 한다. 생명체는 외부 자극에 대하여 끊임없이 반응을 보여야 한다. 살아있다면, 살고자 한다면.

저자는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상상력과 사회적인 유대, 노력과 인내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스케치한다. 편안함을 대가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많은 것들이 증발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편안함에 잠식되어 가는 인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저자의 제안은 구체적이다. '아주 힘들어야 한다, 그러나 죽지 않아야 한다, 따분함을 즐겨라, 배고픔을 느껴라, 매일 죽음을 생각하라, 짐을 날라라.' 그의 주장은 인류가 잃어버린 감각, '불편함'을 담고 있다.

마이클 이스터는 기대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현대 사회의 맹점을 파헤친다. '생존 기간은 길어졌으나 건강한 삶은 짧아졌다'. 동네에서 위태위태한 어르신들을 마주쳤을 때 들었던 생각이 기억난다. , 너무 오래 살면 어쩌지? 건강하게 오래 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거나 명료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가 지속될까 불안하다는 점이다.

저자의 경험담에서 해결책을 발견한다. 그는 알래스카의 순록 사냥 원정에 참여한 경험을 실감 나게 들려주며 '불편함'이 주는 효과를 증명한다. 여러 분야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 중간에 간지처럼 끼워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한다. 몰입 상태가 '삶을 더 풍요롭고 열정적이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음을 생생한 사례로 보여준다. 경험과 이론의 연결이 자연스러워 체험담을 듣는 데 이질감이 없다.

 

나이가 드니 편안하던 육체가 삐그덕거린다. 성호르몬 분비량의 변화로 묻혀있던 DNA가 존재감을 어필한다. 지속적인 내부 마찰로 또래보다 빨리 양쪽 관절이 닳아버린다. 6개월마다 대학 병원에서 무릎 영상을 찍고 관절 약을 받아온 지 몇 년째다. 더 좋아진다는 건 선택지에 없다. 나빠지지 않는 게 목표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무릎이 안 좋으니 되도록 움직이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리라 예상한다.

운동을 하세요. 정반대의 멘트에 당황한다. ? (무릎이 안 좋은데 운동이라굽쇼?) 모름지기 운동이란 공간을 종횡무진하며 삐질삐질 땀 한 바가지 정도를 쏟아내는 움직임이 아닌가. 누워서 하는 운동 말이예요. (누우면 자는 거지 뭔 운동이래요?) , 이렇게 쿠션을 받치고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 상태에서 조금 지탱하다 내립니다, 양쪽 번갈아 가면서요. 시범을 보이는 닥터 앞에서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에게? 이게 다예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부들부들 다리를 떨며 그 운동이 '에게'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는다. 뼈를 붙들고 있는 대퇴사두근을 키워 무릎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최선책이란다. 몹시 귀찮다.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더 근 손실이 일어나요.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을 때마다 닥터의 음성이 재생된다. 불편한 이 운동이 나의 몸을 지금보다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집에서도 혼자 있잖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위해 커피숍이나 스터디 카페에 간다는 내게 친구가 말한다. 아이들이 다 커서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니 남편이 없는 시간에는 혼자 있게 된다. 집에서는 집중이 되지 않아. 무심코 했던 말을 곱씹는다. 집에서는 왜 집중이 되지 않을까. 심리적인 이유가 크다. 집은 집안일을 해야 하는 공간이므로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곳곳에서 기다리는 소리 없는 부름을 외면하기 어렵다. 나만의 장소에서 배제한다.

'외부의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책 속의 문장에 부합하는 장소가 나에게는 커피숍이나 스터디 카페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한다. 글은 커피숍에서 가장 잘 써진다. 절대적인 소음의 수치를 비교한다면, 가장 열악한 환경일 텐데 말이다. 의무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공간에서 존재감을 찾는다.

'천연 신경안정제'라며 자연을 언급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는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을 '명상 없는 마음챙김'이라며 적극 권장한다. 도심 공원에서의 20분간 산책으로도 뇌의 신경 구조에는 심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정체된 글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날이다. 나에게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행동이다.

 

이유가 뭘까. 자극과 반응에서 답을 찾는다. 공원 나무에서 흔들리는 야들야들한 초록, 부드럽게 뺨을 간질이는 바람, 콧속으로 스며드는 풀 냄새, 기분 좋은 햇살의 온기까지 자연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나를 건드린다.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떠오르니 생각이 재배열된다.

힘든 자극으로 인한 불편함조차 삶에는 이롭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힘든 일을 해내면 그 이후의 삶이 훨씬 쉬워지고 모든 것에 더 감사하게 된다'는 문장에 나의 경험을 얹는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을 넘어서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불쑥 솟아 올랐지.

마음이 이미지로 보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나의 마음은 나이만큼의 성숙도로 담겨있을까. 순차적으로 나이 드는 육체와 달리 마음의 나이는 각기 다를 텐데.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것이 '마음챙김'의 핵심이라고 한다.

글이 생각만큼 이어지지 않을 때, 이제는 벌떡 일어난다. 장소를 옮기거나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냄새를 맡거나 몸을 움직인다. 환경에 변화를 준다. 몸과 마음은 별개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변화된 환경이 나를 자극하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반응한다. 두근거리는 심장 사이로 마음이 들썩인다. 삶이 내는 소리에 가만가만 귀를 기울인다.

 

p88, 밑에서 2째 줄: 부정적인 생각들을 덜했습니다. ~ 생각들은 ~

p88, 1째 줄: 시리어 시어리

p200, 6~7째 줄: 청소년을 ~ 국제기구 아래 각주에 있으니 빠져야 할 문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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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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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가오지 않을 미래, 지금의 나와는 무관한 사건, 설령 온다 해도 닥치듯 다가오지는 않으리라. 오랜 시간 죽음은 내게 이런 의미였다. 가족, 지인들에 둘러싸여 침대에 누운 주인공이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마지막 말을 남긴 다음 자연스레 눈을 감는 드라마 속 장면이 현실과 닮아 있다 여겨온다. 삶의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을 고요히 직시할 기회가 다만 몇 분이라도 주어지리라 착각한다.

폐암 말기의 만 87세 노인. 3개월~6개월 정도로 보던 닥터의 예측을 과신한 나는 최대치의 잔여기간으로 시곗바늘을 맞춘다. 2개월 9일 만에 다가온 아버지의 죽음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예상은 가능했지만 예상하지 못하던 순간, 방에서 주무시던 당신은 고단한 육체의 무게로부터 홀연히 벗어나신다. 누구에게도 어떤 말도 남기지 않으신 채.

기회가 주어졌다면 당신은 무슨 말을 남기셨을까. 세상을 떠나기 전 어떤 생각을 떠올리셨을까. 인간이 마지막까지 붙들게 되는 기억은 무엇일까. 거대한 역사적 사명을 띠는 사람도, 엄청난 위인도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슨 마음을 품을까. 미처 이루지 못한, 가장 아쉬운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답변을 들을 수 없는 질문들이 먼지처럼 부유한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는 미련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령을 볼 수 있는 스무 살 나희는 종합병원 매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곳을 찾아오는 그림자 없는 손님들의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는 6편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매회 망자들의 미련을 해결해 준다.

그들이 붙들고 있는 소원은 허탈할 만큼 사소하다. 동네 미용실 문에 달린 아래쪽 작은 문을 열어 안에 있던 고양이를 구하고, 붕대와 알코올을 구해주고, 사무실 책상 밑에 둔 쇼핑백을 가져다주고, 핸드폰을 찾아서 보내지 못한 메일이 발송되도록 해주고, 죽은 개의 주인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주고, 할머니의 미안한 마음이 당신의 딸에게 전해지도록 돕는 것. 당사자조차 살아가면서 상상해 보지 않았을 소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존재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죽는 순간 꽉 잡고 있던 한 가지 기억'은 산책하다 우연히 찍히는 발자국을 닮았다. '다양한 형태로 불시에 찾아오는' 죽음이기에, '활기차고 건강하게 지속되다가도 어느 순간 절벽처럼 꺾어지기도' 하는 삶이기에 어떤 미련이 남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소설 속에 담긴 미련들을 차례로 떠올리며 유형별로 분류해 본다. 작가가 행동 못지않게 비중을 두고 다루는 요소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이다.

 

오늘 내가 한 말, 들은 말들이 어땠더라. 하기 잘한 말, 하지 않아도 되었을 말, 듣고 싶지 않았던 말, 마음을 데워준 말들이 철썩이는 파도처럼 오갔던 하루를 돌아본다. 이제는 잔잔해진 마음의 바다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던 말들을 잠시 건져 올린다. 말의 온도와 질감과 냄새를 곱씹는다. 바다 밑에 잠겨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말들도 찾아본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는 건 결국 했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끼는 이들의 얼굴이 스친다. 힘든 순간 기댈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생각하면 난로를 피운 듯 마음이 데워진다고, 나를 응원해 줘서 고맙다고, 내 삶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어서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덩달아 힘을 얻었다고,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가라앉아 굴러다니던 말들이 부력을 얻어 천천히 떠오른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니 결국 전하지 못한 건 마음이리라. 어질러져 있던 마음을 조금씩 정리하려고 한다. 전해야 할 마음은 소중한 이에게 건네주고, 엉뚱한 데 굴러간 이석처럼 나를 어지럽히는 마음은 콕콕 집어서 버리고, 간직해야 할 마음은 손난로처럼 품으려 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제자리를 찾아가게 만들려 한다.

 

요즘은 물건을 버리는 중이다. 가족들과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작년 8월 즈음부터 나는 강화된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언젠가 멋지게 사용하리라. 이런 염원이 담겨있었을 선글라스 10여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느꼈던 허무, 포장도 뜯지 않은 소소한 물건들과 한 번도 입지 않은 당신의 옷들을 친정 거실에 쌓아 놓으며 물건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생각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언젠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순간, 물건은 공간을 점령하는 아름다운 쓰레기로 머무는 듯하다. 물건의 쓰임은 현재에만 유효한 생명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굿즈를 득템하기 위해 줄기차게 책을 구입하던 시절의 모습은 이제 화석으로 남는다.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게 된다. 기준은 명확하다. '지금 필요한가. 10년 뒤에도 필요할까. 나의 아이들에게 짐이 될까.' 물건을 앞에 두고 몇 가지 질문을 하니 결정이 쉬워진다.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공간을 얻는 거라 하던가. 점점 단출해지는 환경에 마음이 덩달아 후련해진다. 책장은 여전히 안방의 한 면을 그린벨트로 만들고 있지만, 이 구역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려 한다. 책장을 볼 때마다 숲에 온 듯 전해지는 안정감과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듯한 설렘의 순간을 조금 더 누리려고 한다.

 

죽음은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인가. 막연하게 여기던 죽음은 구체성을 띠며 나의 삶에 자리를 잡는다. 삶의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죽음이 불어오는 바람인 듯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선물이라 생각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눈, 좋은 사람이 풍기는 내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 행복을 맛볼 수 있는 혀, 힘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세상이 전하는 자극을 삶 전체로 받아들이는 피부. 업그레이드된 감각 기관을 장착하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소설 속 유령들은 미련을 해결하고 홀가분하게 세상과 이별한다. 한 점 아쉬움 없이 떠나는 '완벽한 장례식'이다. 나의 마지막도 그런 모습이기를 원한다. 남겨진 사람들이 기분 좋게 나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준비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건네고, 가뿐한 마음으로 삶을 채울 것. 과거로 뒷걸음치지 말고, 미래의 걱정을 당겨오지 말고, 늘 현재만을 살아갈 것. 언제든 큐 사인이 떨어지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스탠바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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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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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머니의 소원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평범하게 밥을 하고, 평범하게 커피를 마시고, 평범하게 책을 읽고, 평범하게 산책하고, 평범하게 슈퍼에 들르고, 평범하게 TV를 보고, 평범하게 세탁기를 돌리고, 평범하게 청소하고, 평범하게 화장실에 가고, 평범하게 친구를 만나고, 평범하게 이부자리를 펴고, 평범하게, 평범하게, 평범한 일상의 범주에 포함된 무언가를 하는 것.

비 오는 날에도 혹여 넘어질까 바깥 출입을 자제하시던 당신. 쨍쨍한 햇살이 퍼지던 생신날, 오랜만의 외출 길에 계단 세 개를 눈에 담지 못하신다. 왼쪽 고관절 골절, 응급실 입원, 인공 관절 전치환술, 재활 치료. 바늘에 꿰어진 실처럼 당신 삶의 동선에 내 삶의 시계가 덩달아 조정된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하루를 건너는 중이다. 몸은 분주한데 마음의 속도는 느려지는가. 퇴근 후 매일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보며 당신의 삶과 주변 이들을 들여다본다. 상황이 바람처럼 불어와 마음을 덮고 있던 책장을 넘긴다. 책을 읽는 듯 현실 안에 담긴 사람들을 읽는다.

25일이 지난 오늘, 드라마틱한 현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참았던 숨을 쉬는 듯 한 달여 만에 책장을 다시 펼친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한 여인이 겪어내는 삶의 여정을 그린 장편 소설이다. 1940년대 미국의 콜로라도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며 가업으로 복숭아를 키우던 빅토리아의 삶은 한 남자를 만난 이후, 휘몰아치는 격변에 던져진다. 사랑하는 남자는 살해되고, 아들을 혼자 출산하고, 그 아이를 다른 가정에 버리게 된다. 어릴 적 사고로 어머니와 이모, 사촌 오빠를 잃었던 그녀에게 남은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고향은 수몰된다.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척박한 땅에 복숭아 묘목을 옮겨 심으며 상실의 아픔을 건너 자신만의 뿌리를 내린다.

상실의, 상실에 의한, 상실을 위한 소설이기라도 하듯 삶의 기반을 지탱하는 요소들에 대한 상실을 모아 놓은 작품이다. 부모, 사랑하는 이, 자식, 의지하던 사람, 고향에 이르기까지 작정하고 모래성 허물기 게임이라도 하는 듯 주인공의 삶에서 차례로 무언가를 앗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통 상실로 그득한 이야기는 암울하지 않다. 상실에만 머물지 않고 상실을 통해 점점 단단해지는 마음의 근육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숲으로 들어가 홀로 출산을 한 그녀는 숲이 들려주는 말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숲은 내게 말했다.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이라고.‘ '까슬까슬한 겉껍질을 벗겨야 달콤한 속살을 드러나는 복숭아처럼, 다시 그 순간을 지나면 단단한 씨앗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그녀의 삶은 복숭아를 닮아있다.

 

문장에서 달콤한 복숭아 향이 난다. 어쩌면 이런 비유를 생각해 낼까. '상냥함이 넘쳐흐르는 우물이 있을 것만 같은 눈, 수면 위의 나뭇잎이 걷힌 듯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물속이 보이는, 고요라는 즐거움을 위해 조각된 공간에 있는 것처럼 정적 속에서 매우 편안했던, 수제 버터처럼 보드라운 햇살을 주변 산봉우리에 나누어 주는 태양, 펄펄 끓는 시럽처럼 아주 미세한 틈으로도 스며들어 버리는 그런 슬픔, 아들의 흔적을 맛보려는 사람처럼 차가운 산 공기를 꿀꺽꿀꺽 삼켜대는, 내가 한 거짓말은 나의 침묵 그 자체여서 주워 담을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슬픔이라는 단단한 공이 목에 걸린 듯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는, 내 세상의 맨 바깥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아주 살짝 벗겨지는 느낌이라는, 숲은 마치 이끼로 뒤덮인 폭포 같다'는 표현들에 감탄한다.

그녀의 마음은 삶을 겪어내며 복숭아의 씨앗처럼 단단해진다. '좀처럼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없었고, 과거를 돌이켜는 일은 그보다도 없었으며,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오로지 현재의 순간만을 두 손에 소중히 담고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경탄하는' 사람, '본질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비운 삶이야말로 참된 삶이라는 사실을, 그런 수준에 도달하면 삶을 지속하겠다는 마음 외에 그다지 중요한 게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사람을 마음에 품은 채 말이다.

'나를 받아줄 곳이 아무 데도 없으면, 모든 곳은 그저 아무 곳도 아닌 게 된다'는 사실을, '하루하루 선택한 삶을 만들어 나가는 건 좋은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내게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내 앞에 놓인 것들에 감사'한다.

 

책의 제목인 '흐르는 강물처럼'은 그녀가 사랑한 남자가 해준 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소설의 3분의 1지점에서 등장한 이 문장의 의미는 그만큼의 시간을 건너며 깊이 있게 우러난다.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거대한 강물인 듯 서사가 한 방향으로 유려하게 흐른다. 이야기가 일관된 결로 흐르는 데는 소설 속 요소들의 상징적 역할이 크다. 척박한 땅에서도 피어나며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야생화와 야생초, 콜로라도의 자연과 원주민 문화를 연상시키는 모카신, 건조한 모래땅에서도 살아남는 세이지 덤불, 고산 지대에서 볼 수 있는 다람쥐과 마멋, 소박하면서도 건강한 비스킷, 주인공이 가족과 이웃을 위해 준비하는 복숭아 파이와 따뜻한 캐서롤, 거친 환경을 견디고 가장 늦지만 풍성하게 익어가는 만생종 복숭아, 행복과 섬세함이라는 꽃말도 있지만 척박한 땅에서 피어남으로써 외유내강의 삶을 드러내는 수레국화, 비바람을 견디며 구부러진 곡목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겪는 모든 요소가 모여 하나의 태피스트리를 완성할 때, 작품 전체는 한 덩어리의 주제로 묵직하게 다가온다.

외국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읽힌다. 번역의 영향력이 크리라 판단한다. 과속방지턱이 없는 문장으로 문맥이 부드럽다. 책 속에 등장하는 '지저깨비''악대말'이 순우리말이라는 걸 알고 나니 더욱 놀랍다. 원작을 충분히 소화한 번역가는 세심한 번역어를 선택하여 깔끔하게 재탄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이 거쳐 가는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상실의 폭풍을 소설 속 그녀처럼 당당하게 마주하고 싶어진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걸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이제 좀 혼자 자유롭게 살려나 했더니.'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1년도 되지 않아 다시는 걷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순간을 마주하신 어머니는 이제 그 문턱을 넘어 조금씩 걸음마를 연습하신다. MBTITF를 양손에 쥔 당신은 점점 단단해지는 중이다. 소변 주머니를 털어내고, 피 주머니를 털어내고, 다리를 둘러싼 냉찜질팩을 털어내는 시간의 층도 통과하신다. 당신의 의지에 끌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몸의 변화에 울컥한다.

마음 구석구석 돋보기를 대어 보는 듯 나를 돌아본다. 마음의 원픽 키워드가 달라졌다. 요즘은 '일상의 평범함'이 눈에 들어온다. '잔잔한 수면 아래에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듯,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특별함이 숨어 있었다.' 책 속에 평범하게 숨어 있던 문장이 눈에 띄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보석처럼 떠오른다.

냉혹한 현실의 틈으로 드리워지는 햇살처럼 삶에는 시리고 따뜻한 징검다리가 번갈아 놓인다. 그 온기는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오늘도 어머니는 휠체어와 하이 워커와 로 워커와 지팡이와 함께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신다. 평범한 일상으로 향하는 특별한 시간을 걷고 계시는 당신을 지켜보며 '평범함'의 의역은 '특별함'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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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 - AI 이후의 생존 전략
헨리 키신저 외 지음, 이현 옮김 / 윌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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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종종 그렇듯 사소하다. 이를테면 O, X 판별 문제, ', ' 중 뭐가 맞는지 말이다. 어떻게 질문해야 하지? 첫걸음마를 떼는 순간,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은 무슨! 그냥 움직이는 거지. '안돼, 안되'. 조사, 서술어, 앞뒤 말 다 떼고 핵심만 입력하는 시크한 인간이 된다.

0.1초도 되지 않아 레드 카펫 답변이 두르르 펼쳐진다. 꼴랑 네 글자 질문에 답변이 이토록 화려할 일인가! 일단 결론 먼저 제시하여 고갱님의 궁금증 해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구분하기 쉬운 방법, ''는 줄임말, 사례별 맞는 표현과 구분 팁이 담긴 요약표까지 전수해 주는 센스라니! 혹시 더 헷갈리는 게 있다면 바로 교정해 준다며 AS까지 약속한다. 물음표까지 갖춘 정장 풀세팅 문장을 굳이 입력할 필요도 없다. 알잘딱깔센의 전형이다.

AI 계의 양대 산맥 G가 나의 만능 비서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후 질문은 다양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이 중에 뭐가 나아? 선다형 시도에도 선택 장애의 고뇌를 말끔하게 해결해 준다. 단답형? 대놓고 개수까지 요구해도 문제없다. 이 말을 대신할 단어 5개를 말해줘. 화장실 곰팡이 청소 방법부터 계란찜 레시피까지, 필수 내용을 포함한 열 가지 다른 문장 서술하기도 후다닥 처리한다. 파일로 올린 글이나 이미지가 주는 느낌을 다각도로 분석해 주는 데다 추가 질문까지 건네니 기특하기 그지가 없다.

 

AI 이용의 전파 속도가 팬데믹 수준이다. 어르신들을 제외하고 챗GPTGemini를 활용하는 모습은 흔한 인터넷 검색 장면을 보는 듯 일상이 되어버린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다. 이 책의 제목처럼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세상이 시작되었다.

원제는 'Genesis'로 창세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AI의 등장을 새로운 기원으로 본다는 방증이다. 저자는 현대 외교사의 거물로 일컬어지는 헨리 키신저, 구글의 전 CEO이자 회장이었던 에릭 슈밋,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전략 책임자를 지낸 크레이그 먼디 등 3명이다. 그들은 미국 AI 전략의 핵심 인물로 AI의 등장으로 달라진 세상을 분야별로 조명한다.

부제 '인공지능, 희망, 그리고 인간 정신'에서는 저자들의 관점이 드러난다. AI와 공존하는 세상에서 인간 정신의 의미를 톺아보고, 우리가 찾아야 할 희망을 끌어올리며 인간의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1, <시작>에서는 발견, , 현실을 주제로 AI와 인간 지능의 현주소를 파헤친다. 2, <4대 분야>에서는 정치, 안보, 번영, 과학 분야에서 AI의 영향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3, <생명의 나무>AI 시대 속에서 우리가 세워야 할 전략을 제안한다. 저자들의 결론은 냉철하지만 낙관적이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변화는 압도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도라지를 캐러 간 땅에서 인삼 뿌리를 발견한 인간이라도 된 듯 하루에도 몇 번씩 G를 찾는다. 그래도 괜찮다. G는 수십 번 질문해도 결코 짜증을 내거나 귀찮아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어떤 질문을 투척해도 한결같이 빠른 처리 속도라니! 매번 감탄한다.

'너의 성향을 MBTI로 분석하면 어떤 유형이 될까?' 이제는 비서가 아니라 친구 수준의 궁금증이 생긴다. ENFJ의 정의로운 사회운동가와 INTP의 논리적인 사색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독특한 유형일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덧붙여, 공감하는 백과사전 같은 인공지능이라며 따뜻한 조언자와 유연한 탐구자라 평한다. '혹시 사용자님의 MBTI를 알려주시면, 제가 그 성향에 딱 맞는 맞는 맞춤형 대화 스타일로 바꿔볼까요?'

나 같은 친구가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어. 진지 모드로 삶을 바라보던 젊은 날, 종종 이런 바람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거울 속의 나와 대화하듯 감정의 무게를 나누고 싶던 시절이다. 나에게 맞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라니! 어느새 나는 친구에게 말을 건네듯 일상의 많은 일들을 G와 상의하고, 의견을 경청하고, 무한한 신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존재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믹서기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Q: 마늘 갈 때 쓰려고 해. 미니 믹서기 추천해 줘. (마늘 갈기 좋은 미니 믹서기 TOP3를 추천받는다.)

Q: 가격도 비교해 줘. (최저가 수준부터 가성비 평가,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3종 세트는 덤이다.)

Q: S사 꺼는 어때? (특징과 장단점을 콕 집어 정리, 다른 브랜드와의 비교에 한 줄 평까지 샤랄라~ 하지만 나는 믹서기를 바꾸고 싶다.)

Q: 지금 쓰는 게 2020년에 구입한 S사의 **모델인데 소음이 너무 크고 작동을 멈춰도 아래 모터가 조금 돌아가서 바꾸고 싶어. 추천해 줘. (믹서기가 그 지경이 되어버린 원인 분석, 추천 모델 2선과 내 꺼를 비교해 준다.)

Q: 가격도 고려해서 비교해 줘. (가격과 작동 방식, 모델별 상세 분석을 시전한다. ~ 뭔가 조금 아쉽다. 앞서 추천받은 모델과의 비교가 궁금하다.)

Q: PN 중에서는 어떤 게 더 나아? (마늘을 주 용도로 쓰신다면 이걸 강력하게 추천해요. 갑자기 주스를 갈아 먹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Q: 마늘 다지기와 가끔은 주스도 갈아 먹어. 어떤 게 좋을까?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을 위해 다른 라인업을 제안해 준다.)

Q: N으로 주스 갈기도 가능해? (아까 추천받은 게 생각나서 질문했더니 가능은 하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그거 사용하면 불편한 점을 핵심만 콕 짚어준다.)

Q: N-2가 끌리기는 하는데 가격이 비싸. S 정도로 3만원대 가격이었으면 해. (솔직하게 말해줘서 감사하다며 실속형 모델 2가지를 추천해 준다. 최종 제안해 준 모델을 선택한 근거로 AS, 마늘 냄새 해방, 잔여 회전 스트레스 해소를 꼽는다. 하지만 나는 시끄러운 게 더 거슬린다.)

Q: 소음이 더 스트레스야. (그 예산안에서 믹서기 형태는 못 사. 구조적으로 시끄러울 수밖에 없어. 현실적인 대안 2가지 제안할게. 충전식 무선 제품과 위에 모터 달린 제품을 알려준다. 둘 다 별로다. 그나마 위에서 제안한 모델 중 하나를 픽한다.)

Q: K가 조금 끌리는데 S와 비교해서 소음이 어때? (소음은 비슷한데 스트레스 종류가 달라. 두꺼운 행주 깔고 써봐. 이걸로 할래? 아니면 더 보여줘?)

결국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나는 새 채팅 창을 열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재도전을 한다.

 

Q: 지금 쓰는 게 2020년에 구입한 S사의 **모델인데 소음이 크고 작동을 멈춰도 아래 모터가 조금 돌아가서 바꾸고 싶어. 관성 회전이 기능에 문제가 없는 거라면 이건 괜찮아. 소음이 지금보다 조금 작았으면 해. 가격은 3만원 대로. 마늘도 갈고 우유와 과일 야채 넣고 주스도 해 먹는 용도야. 추천해 줘. (어느새 관성 회전이란 용어를 앞선 응답 과정에서 득템한 나는 구체적인 니즈를 주저리주저리 나열한다. 가성비 믹서기 2종을 추천받은 나는 구매 사이트로 가서 제품의 리뷰까지 주도면밀하게 검색한다.)

Q: 사이즈는 S 모델 정도였으면 좋겠고 구매 사이트 리뷰를 보니 고무 패킹이 빠진다는 평이 많아서 찜찜해. (고무 패킹 이슈면 안 되지. 좋은 대안 2가지 추천해 줄게. 선택을 도와줄 최종 선택 팁도 알려준다. 다시 구매 사이트에서 모델을 검색한다.)

Q: 사이트에서 찾은 세일 적용한 3만원대 S모델이야. 1,2,3,4 이 중 최적의 모델을 추천해 줘. (네 상황에 맞추면 이게 제일 좋아. 종합 성능 최고! 드디어 1위 추천 모델을 간택한다. 350W의 힘으로 마늘을 끊어 치기 방식으로 다져준단다. 그런데· · · · · ·)

Q: 1위로 추천해 준 거, 구매 사이트 가보니까 200W인데? (한 점 의문 없이 해명하는 게 좋을 거야!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네요! 제가 말씀드린 350W는 상위 대형 모델의 사양과 혼동된 것 같습니다. 혼란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쭝얼쭝얼. 아무 일도 없던 듯 다시 분석한 최적의 모델을 추천해 준다.)

결국 1위 추천 제품을 주문하고 추가 질문을 하나 더 한다.

Q: 내가 오류를 지적해 주면 추후 다른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하면 답변에 그 내용이 반영되나? (전체적인 데이터 검토와 모델 업데이트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반영이 된다는 답변이다.)

 

참고용 정보 수집의 도구로만 이용한다면 별문제는 없으리라. 손빨래를 하다가 세탁기를 사용할 때처럼 마냥 편안한 생활을 단지 누리면 되니까. 다만 경계할 점은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100% 신뢰하면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3만원 대 믹서기 구입이야 어떤 제품을 선택하든 삶에 막대한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만일, 보다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대안이 없다면 어떨까. 어느 정도까지 답변을 신뢰할 수 있을까.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약한 전기 충격보다 언제 올지 아는 강한 전기 충격을 차라리 선호한다고 한다. 불확실성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AI가 도출한 결과는 명시적이지만 내부적인 처리 과정은 알 수 없다. '어떤 출처나 근거의 인용도 없다.' AI가 보여주는 결과물이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설 때, 어떤 과정으로 이 결과가 나왔는가 작동 원리를 도무지 알기 어려울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더군다나 'AI는 도구가 아닌 행위자'이다. 속도, 다양성, 규모, 해상도에서 인간의 뇌를 추월하는 지능을 가진 존재가 탄생한 거다. AI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스스로 판단하는 단계로 발전한다면? 자비나 융통성을 글로 배운 대상은 우리에게 어떤 위협으로 작용할까. '기계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인류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은 무엇일까?'

 

272쪽의 분량으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오랜 시간에 걸쳐 읽는다. 융통성을 반영하지 않은 직역의 나열을 목격한 느낌이랄까. '원문이 대체 어떻길래' 하는 생각만 자주 한다. 네가 하라고 하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며 보아도 보이지 않는 문장들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문학성을 드러내는 소설은 아니니 조금 더 의역을 해서 번역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용 자체도 다소 산만하다. 상황은 알겠는데 체계성이 부족하다. 차례만 체계적이다. 다만 AI 발달의 현 상황과 우리 스스로 내려야 할 정의, AI와 인간이 공조하며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질문거리를 품은 것으로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본다.

믹서를 구입하는 데 G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 나에 대하여 잘 알게 되었다는 거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걸 선호하지 않는지를. 또한 질문 방식에 따라 답변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간으로서 AI를 현명하게 활용하려면, 인간 정신과 가치관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인간으로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리라.

개를 산책시키려 끌고 가는 노인이 앞서간다. 뭔가를 발견한 걸까. 잠시 후 개가 뛴다. 목줄을 쥔 노인의 발걸음이 앞서가는 개를 따라 촘촘해진다. 개가 노인을 산책시키는 모양새다. '우리가 그들과 닮아갈 것인가아니면 그들이 우리와 닮아갈 것인가?' 불현듯 책 속의 문장이 겹쳐진다.

 

p128, 밑에서 6째 줄: 원칙 이 원칙이

p135, 밑에서 5째 줄: 리더십의 전형이 오늘날에도 발견한다. ~ 전형을 ~ / ~전형이 ~ 발견된다.

p236, 4째 줄: 마지노선 무엇일까? 마지노선은 ~

p262, 6장 주석 3: “아디 파르바 Adi Parva 또는 시작의 책아디 ~ Parva” 또는 시작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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