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절대로 읽어선 안 되는 ‘저주의 책’이 존재하고 있을까?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책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네크로노미콘>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선 비밀의 책이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등장한 가상의 책이다. ‘미치광이 시인’이라고 불리던 압둘 알하즈레드가 쓴 불길한 책으로 알려졌다. 물론, 압둘 알하즈레드도 러브크래프트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라는 제목의 페이크 논픽션을 남겼는데, 일부 독자들은 이 글을 근거로 <네크로노미콘>이 진본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보면 러브크래프트이 <네크로노미콘>이 번역되는 과정 그리고 보관된 장소까지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에 따르면, <네크로노미콘>이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유럽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 기관은 끔찍한 내용을 담은 책에 금서 처분을 내려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화염 구덩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네크로노미톤>은 총 11권. 이 중에 아랍어 원본에 가까운 책은 불과 다섯 권이다. 다섯 권의 원본이 있는 장소는 다음과 같다.

 

대영박물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하버드대학 위드너 도서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미스캐토닉 대학 도서관

 

이걸 진짜로 믿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정보 또한 러브크래프트가 진실처럼 꾸미게 한 트릭이다. 매사추세츠 주의 아캄이라는 도시에 있는 미스캐토닉 대학 도서관은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가상의 장소다.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에 정확히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는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책의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해준다. 비밀에 가까운 설정은 러브크래프트 추종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부추겼다. 이 가상의 책 한 권으로 러브크래프트 추종자들은 원작을 뛰어넘은 ‘크툴루 신화’를 만들어냈다.

 

가상의 금서 그리고 허구와 진실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이야기. 독자의 판단을 흐트러뜨리는 러브크래프트의 상상력은 독창적인 것은 분명하나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를 잊어선 안 된다. 로버트 윌리엄 체임버스. 러브크래프트의 명성에 가려진 미국 공포문학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노란 옷 왕》은 『The Repairer of Reputations』과 『The Yellow Sign』을 포함한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러프크래프트는 《노란 옷 왕》(The King in Yellow)을 ‘공포와 광기, 기괴한 비극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노란 표적'을 들고 있는 노란 옷 왕

 

『The Repairer of Reputations』, 우리말 제목으로 ‘명예 수선공’ 또는 ‘명예회복 해결사’로 부른다. 이 작품과 ‘노란 표적’으로 알려진 『The Yellow Sign』에는 공통적인 모티프가 등장하는데, <노란 옷 왕>이라는 불가사의한 책이다. 이 가상의 책은 희곡 작품이다. 그런데 어떠한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인다. 그리고 노란 표적을 가진 사람은 ‘노란 옷 왕’의 저주를 받는다. 노란 옷 왕과 노란 표적은 미지의 고대 도시로 알려진 카르코사에서 왔다고 전해졌을 뿐,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소설에 잠깐 언급되는 ‘하스티르(Hastur, ‘하스터’, ‘해스터’라고 부르기도 한다)’라는 단어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불가사의한 현상과 사물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설정은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효과는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에 부합한다.

 

그런데 《노란 옷 왕》에 나오는 ‘카르코사’, ‘하스티르’, ‘할리 호수’ 등과 같은 가상의 지명은 체임버스가 만든 것이 아니다. 앰브로스 비어스가 쓴 단편소설 『카르코사의 망자』와 『양치기 하이타』에 먼저 나왔다. 『양치기 하이타』에서 하스티르는 선량한 목신으로 등장한다. 『카르코사의 망자』는 인용문으로 시작되는데 그 인용문을 쓴 사람의 이름이 ‘할리’다. 체임버스는 『The Repairer of Reputations』에서 ‘할리’를 가상의 호수 이름으로 만들었다. 재미있게도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에 ‘하스티르’, ‘할리 호수’, 그리고 노란 부적을 언급한다. 러브크래프트 문학을 널리 알린 어네스트 덜레스는 세 사람이 사용한 공포 소재를 새로운 ‘크툴루 신화’에 편입시킨다. 이렇다 보니,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과 노란 부적이 러브크래프트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만든 창작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비어스의 『카르코사의 망자』와 『양치기 하이타』, 그다음에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순으로 읽어보면 세 사람이 공통으로 보여주고자 한 ‘공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비밀의 베일에 싸인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그들의 작품이 재미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공포영화가 등장하지 않은 시대에 활동했던 세 사람은 소설을 통해 미지의 세계가 전달하는 차원 높은 공포를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 이 글에 소개된 비어스, 체임버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이 수록된 책은 다음과 같다.

 

 

* 로버트 W. 체임버스

《노란 옷 왕》(아티초크, 2014) - 명예회복 해결사, 노란 표적

《세계 호러 걸작선》(책세상, 2004) - 옐로 사인

《러브크래프트 전집 6》(황금가지, 2015) - 명예 수선공

《The King in Yellow -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272》(eBook / 내츄럴, 2014) -

원작에 있는 열편의 작품 모두 수록되어 있음

《세계 호러 단편 100선》(책세상, 2005) - 장례 (Pompe Funebre, 189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집 <The Mystery of Choice>에 수록된 작품)

 

 

* 앰브로즈 비어스 『카르코사의 망자』

《노란 옷 왕》(아티초크, 2014)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더스타일, 2013) - ‘카르코사의 주민’

 

 

* 앰브로즈 비어스 『양치기 하이타』

《러브크래프트 전집 6》(황금가지, 2015)

 

 

*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1》(황금가지, 2009) -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러브크래프트 전집 2》(황금가지, 2009) -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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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9-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는 예전에 단편으로 살짝 맛을 보고 계속 읽어야지....하면서도 미루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가끔씩 공포소설이나 만화속에 크툴루 신화가 등장하거나 언급되면 빨리 읽어봐야지..하는데도 선뜻 손이 안갑니다. 이상하게 숙제같은 책이예요. 읽긴 읽어야하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어요. 이렇게 cyrus님의 페이퍼를 보면 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도 자꾸 피하게 되는것이 이상해요. ㅎㅎ

cyrus 2015-09-08 17:57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하자면, 책 읽기를 미룬다면 안 읽는 것이 낫습니다. 러브크래프프의 소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저처럼 옛날 호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러브크래프트를 즐겨 읽는다면, 현대 공포물에 익숙한 사람은 러브크래프트의 스토리텔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보슬비님의 마음을 믿고 따르십시오. ^^

보슬비 2015-09-11 00:26   좋아요 0 | URL
사실 그 단편이 전 좋았어요. ㅎㅎ
기묘하고 끈쩍끈적한 불쾌함이 좋았던것 같은데, 그 기분을 지속적으로 감당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계속 미루고 있나봐요. 한번 날 잡긴해야할것 같아요. 조금 더 스산해지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쯤... ^^

물고기자리 2015-09-0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클릭해보니 cyrus 님 리뷰가 많네요^^ 장르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언제 꼭 읽어봐야겠어요 ㅎ

cyrus 2015-09-08 17:57   좋아요 0 | URL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재미있다고 말은 안 하겠습니다. ㅎㅎㅎ

에이바 2015-09-0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루 디텍티브 시즌 1도 언급해주세요!! ㅎㅎ 카르코사 노란 옷 왕!!

cyrus 2015-09-08 22:49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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