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자체가 사라졌다

 

<예술의 종말 이후>에 대한 해석은 이선종님의 질문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렇잖아도 도움이 되는 번역자로서의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다가 어려워서 이해를 하지 못하는 독자 그리고 이 책을 읽지는 않았더라도 이런 주제에 관해 궁금한 독자를 위해 쓴다는 생각으로 제5장 이후를 설명합니다.
단토의 예술철학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으로 매우 밝고 희망적이지만 그가 상대로하는 독자는 미술사 전반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고 나아가서 철학적 문제까지도 이해하거나 제기하는 학자급이기 때문에 문장이 난해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이해하고 어려운 부분은 훗날 다시 읽을거리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미술사에 대해 좀더 지식이 싸일 때 다시 읽으면 이해의 즐거움을 다시금 맛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특히 미술 관련 창작하는 사람들은 단토의 이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창작을 점검하고 방향을 새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아서 단토는 제8장에서 '회화, 정치, 그리고 탈역사적 미술'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예술철학을 말한다.
그는 이 책을 펴내기 전에 '예술의 종말 이후 30년'이란 논문을 발표했는데, 다분히 그린버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의 성격이 짙다.
그린버그는 컬러필드color-field(이를 색면 추상이라고 한다) 이후부터 1992년 현재까지 팝아트를 시작으로 30년 동안의 일련의 미술을 마치 미술사에서의 퇴행의 시기로 보고 "지난 3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어느 모임에서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를 데카당스로 전망하며 절망했다.
그러나 단토는 오히려 지난 30년이 미술사상 예술가들이 가장 자유를 구가한 때였을 뿐만 아니라 미술이 본연의 자리를 회복한 것으로 보고 매우 희망적임을 주장한다.
좀더 근원적인 점은 미술사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주장이다.

역사는 자유를 위해서 있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게 되면 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 밖에 없다는 단토의 주장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비롯한다.
예술만 종말을 맞은 것이 아니라 역사도 종말을 맞았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울타리가 사라진 오늘날 각 나라의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세계의 역사가 존재할 뿐이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라도 발생하는 사건은 이제 그 나라의 사건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역에 보도되면서 세계사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따라서 과거 각 나라의 역사의 개념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다원주의는 역사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토는 탈역사를 말하는데 이는 곧 역사 이후를 뜻한다.
그린버그는 역사를 진보의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에 지난 30년을 퇴행의 시기로 보고 곧 새로운 양식이 미술을 제 궤도로 되돌려놓을 것으로 막연히 기대했지만, 단토는 그러한 과거의 역사적 개념은 이미 붕괴되었으며 미술의 열차는 종착지에 도달했으므로 또 다른 궤도를 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단토는 1990년대 초 현제의 시각으로 팝아트 이후 30년을 딴 장르도 마찬가지이지만 회화가 자기 자신에 대한 타당한 정의를 점점 더 많이 발견하고자 노력한 시기로 본다.
그는 이러한 노력은 실재에 있어서 철학의 과제라면서 예술가들은 자유를 만끽하는 가운데 창작에 몰두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이론은 순수성에 기반을 둔다.
각 장르의 특질이 유지되어야 한다.
회화는 회화의 특질이 있고 조각은 조각의 특질이 있으며 그 밖의 장르는 그 나름대로의 특질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그린버그는 주장했다.
오늘날 각 매체의 특질은 사라졌다.
보기에 따라서는 동시에 여러 장르에 속할 수 있는 작품이 얼마든지 있다.
이것만 봐도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내러티브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고 단토가 이를 지적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에게는 회화를 절멸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 시대에 전통적인 의미의 미술은 설 자리가 없으며, 그것이 존재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것은 기괴한 것이 되어버렸다. 신지식계급은 그것을 완전히 절멸시키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회화의 종말은 일찌감치 예견되었던 일로 그린버그조차 194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젤화의 위기를 언급했다.
미술에서 회화가 차지하는 것은 거의 절대적이므로 회화의 종말은 곧 미술의 종말을 의미한다.
더글라스 크림프는 1980년대 초에 회화의 종말을 선언했다.


회화에 대한 종말이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 초에 갑자기 회화가 성행하는 징조가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줄리앙 슈나벨과 데이브드 살레를 선두로 한 신표현주의Neo-Expresionism였다.
단토는 이를 '한 몫 챙기기'의 현상으로 본다.
추상표현주의 작품의 값이 급등하기 전 '돈 벌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들 혹은 재산이 될 정도로 급등한 작품을 싼 값으로 살 수 있었을 때 미술시장 언저리를 기웃거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때늦게 작품에 투자하기 시작하자 이를 노린 화가들이 마구 그림을 양산해낸 것이다.
슈나벨과 살레는 갑자기 돈을 벌었는데 이는 미술사의 종말 이후의 당연한 징조가 아니라 미술품 투자를 노린 지각생 구매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기회주의 화가들의 돈벌기였을 뿐이다.
모더니즘 내러티브가 종료된 마당에 신표현주의자들은 회화를 단순히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지속될 내러티브가 없자 자기표현을 한 것이다.
그린버그의 모더니즘론에는 표현이 금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의 이론이 붕괴되자 표현이 허용된 것이다.
단토는 이를 철학자들이 의무상의 양태들이라 부르는 것의 구조에 어떤 심대한 혁명이 발생한 것이 비유한다.

1970년대 후반 파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였고 미셀 푸코,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장 프랑수아 료타르, 자크 라캉, 그리고 엘렌 식수와 루스 이리가래 같은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의 텍스트가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 널리 보급되었다.
이들의 저서는 우리말로도 번역되었는데 료타르에 의하면, 거대 내러티브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제로 본다.
그리고 해체론의 정신은 내러티브를 진리나 허위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권력과 억압의 견지에서 바라본다.
어떤 이론이 받아들여진다면 과연 누가 이득을 보게 되며, 그 이론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제기되는 표준적인 물음이 되게 됨에 따라, 이런 물음이 모더니즘 자체에까지 확대되어 적용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단토는 일련의 예를 들어 해체론에 타당성은 있지만 문제의 핵심이 되는 컨템퍼러리 미술사의 심층구조에는 육박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그가 말하는 심층구조란 다원주의를 말한다.
다원주의는 매체들의 열린 연접성에 의거해야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며 단토는 이 열린 연접성이 한때 예술적 동기들의 연접성에 상응했고, 또한 바자리와 그린버그의 내러티브에 의해 예증되는 종류의 진보발전적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봉쇄했음을 지적한다.
그는 말한다.

"이제 발전을 끌고갈 선호되는 운반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내가 보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회화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버렸으며 미술의 철학적 본성이 마침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예술가들이 해방되어 그들 마음대로 다양한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술활동의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난 주목할 만한 연접성이 단토로 하여금 미술사의 종말을 감지하게 했다.
연접성이란 퍼포먼스와 설치, 사진, 대지미술, 공항작품, 섬유작품, 온갖 띠무늬와 질서의 개념적 구조물 등이 회화의 동료가 된 것을 말한다.
탈역사적 미술에는 엄청난 메뉴가 있고 예술가들 자신들은 원하는 대로 이런 많은 선택을 골라내는 데 방해를 받지 않는다.
이런 호의적이고 신축성 있는 연접성 속에는 회화를 위한 추상 회화와 모노크롬 회화의 여지도 있다.
모더니즘으로부터 해방된 회화는 현재 많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많은 양식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단토가 말한 수많은 양식들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양식 자체가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양식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양식이 질적 가치 혹은 유일한 지고의 가치로 인식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양식이란 단순히 수단 그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함을 지적한 말이다.
예를 들어 그린버그는 컬러필드를 미술사의 필연적 귀결로서 미술사의 과정으로 인식했지만 오늘날 컬러필드는 단순히 하나의 가능성으로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화가는 바로크 양식으로 혹은 인상주의 양식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으며 그런 것에 실증이 나면 표현주의를 표방할 수 있다.
양식이 미적 우월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하는 것은 모더니즘이 붕괴된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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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영님에게,

우선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고 있다니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매우 중요한 책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토의 미학을 알아야 contemporary art에 관해 자신있게 논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아서 단토의 저작은 전문 철학서와 예술철학 및 미술비평서로 양분할 수 있는데,
전문 철학서로는
<Nietzsche as Philosopher>, <Mysticism and Morality>, <Narration and Knowledge>, <Connections to the World: The Basic Concepts of Philosophy> 등이 있습니다.
예술철학 및 미술비평서로는 <예술의 종말 이후> 외에도
<Beyond the Brillo Box: The Visual Arts in Post-Historical Perspective>, <Encounters & Reflections: Art in the Historical Present>, <Playing with the Edge: The Photographic Achievement of Robert Mapplet!horpe>, <The Artworld>(이것은 논문), <The Philosophical Disenfranchisement of Art>, <The State of the Art>,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Philosophizing Art>, <The Madonna of the Future> 등이 있습니다.
2000년에 발간된<The Madonna of the Future>는 다원주의 미술세계에 관한 에세이들을 묶은 책으로 이것이 박혜영님이 궁금해 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987년에 출간된 <The State of the Art>는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이 담긴 책으로 1958~64년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 그리고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반 고흐, 레온 갈럽Leon Golub, 리 크래스너Lee Krasner(잭슨 폴록의 아내입니다),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 로버트 머더웰Robert Motherwell, 카라바조Caravaggio, 드 쿠닝De Kooning, 칸딘스키Kandinsky, 앙리 루소Henri Rousseau,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등등 많은 작가들의 위상과 작품에 관한 예리한 비평입니다.
단토의 예술철학 및 비평서로는 <예술의 종말 이후>가 한국어 첫 번역서입니다.
우선 한 권이라도 나와서 다행합니다.
단토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셈이니까 말입니다.

박혜영님,
단토에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습니다.
아니 박혜영님이 내게 고마워해야 하겠지요?
그분의 대부분 원서는 내게 있으므로 혹시 읽다가 궁금한 점 있으면 질문하세요.
능력이 되는 대로 답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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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양에게


<예술의 종말 이후>를 원서와 대조해서 읽고 있다니 제대로 공부한다고 생각됩니다.
단토는 미국 철학학회 회장과 미학학회 회장을 엮임했고 컬럼비아 대학 철학과 교수였습니다.
지금은 연세가 이른에 다달아 은퇴하셨습니다.
맨하튼에 살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발간되는 예술철학 관련 서적에서 유럽 학자들이 단토를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거의 20년째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 김주영씨의 말로는 책방에 가면 단토의 책이 여러 권 잔뜩 쌓아 있어 그분의 영향을 실감한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프랑스어로 번역된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우리말 번역서를 읽고 있습니다.

정화양,
이 책을 열심히 읽고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난 16일 아내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3주 정도 지내다 돌아오려고 합니다.
부모 형제가 그곳에 계시므로 내게는 뉴욕이 고향이나 다름 없습니다.
내게는 고향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이번에도 신간을 많이 구입하려고 합니다.
연례 행사이지만 신간 중에서 일부는 우리말로 번역됩니다.
작년에 거져온 신간 중 일부는 곧 번역되어 나올 예정입니다.
한양대 반성완 교수님이 거의 탈고 상태인데, 그분의 번역은 완벽하고도 아름답습니다.
문학 전공자라서 우리말로 옮기는 데 그분을 따라갈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그분이 백낙청씨와 함께 번역한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꼭 읽도록 하세요.
창작과 비평사에서 4권으로 출간한 고전입니다.
두 분의 번역이 완벽해서 자신을 갖고 권할 수 있는 책입니다.
예술을 사회학적 입장에서 본 책인데 하우저가 처음 그런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술을 흔히 독자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술도 사회적 산물입니다.
우리나라 예술이 우리나라 사회의 산물이듯이 모든 예술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단토의 또 다른 저서를 이미 계약했는데, 그동안 번역자를 물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없다고 모두 물러섭니다.
나는 번역보다는 내 저서를 쓰는 것이 더 좋아 번역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뉴욕에서 돌아오면 아무래도 단토의 저서 한 권을 번역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의 예술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중요해서 우리나라 독자가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지요.

하우저, 단토 등 대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세요.
대가를 이해하면 시시껄렁한 이론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사회 각 분야가 그러하듯 학문에도 사이비 이론이 난무합니다.
그런 걸 귀담아 듣다가는 혼란에 빠지게 되지요.
좋은 책을 선별해 읽을 줄만 알아도 학문의 정도를 걷는 출발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쪼록 학업에 성과가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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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종말 이후 -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아서 단토 지음, 이성훈 외 옮김 / 미술문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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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종말 이후> 제7장 팝아트와 지나간 미래

제7장 앞부분에 2차세계대전 전후의 미국 미술 계보가 나온다.
특히 토마스 이킨스, 로버트 헨리, 에드워드 호퍼의 이름이 나온다.
헨리는 이킨스의 제자였고, 호퍼는 헨리의 제자로서 미국 미술의 직선적 계보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서부의 미술과 뉴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동부의 미술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 미술의 주류는 주로 동부에서 이루어졌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부에서 볼 때 서부의 미술은 비주류로 보인다.
앞에 언급한 세 화가들은 미국 전통회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피카소와 마티스를 앞세우고 몰려드는 유럽의 현대 회화로부터 자신들의 고유한 지역 회화를 지키고 미국식 회화의 장점을 알리려고 했다.

파리 아카데미 보자르에 유학했던 이킨스, Ash Can School을 창설한 헨리, 호퍼 모두 유럽 화가들이 여자의 누드를 그릴 때 프리네스, 비너스, 님프, 헤르마프로디테, 하우리 등으로 불릴 만한 이상화된 누드의 모습을 그린 것에 반대하면서 평범한 여인이 지금 막 옷을 벗었을 때의 실재 모습을 그렸다.
화가가 연출한 에로틱한 상황에서 몽상에 잠긴 여인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옷을 벗은 여인을 그렸다.
미국 화가들의 그림이 모던하게 보이지 않고 19세기 후반의 그림으로 보였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단토는 1933년경의 미국의 모더니즘 회화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1960년경에 발표한 <모더니스트 회화>와는 크게 달랐던 점을 지적했는데 그 당시 모더니즘이 거의 종료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1933년 당시의 시각에서 본 '모던'은 다양한 미술을 용인했는데,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여기에 앙리 루소의 환상의 세계, 초현실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등도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추상과 절대주의, 비구성도 포함되었다.
주지할 점은 호퍼를 비롯한 미국 주류 화가들은 사실주의 그림을 그리면서 모더니티가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는 예쁜 아내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리면서 마치 영화 연출가가 배우에게 주문하듯 자신이 원하는 그림에 포즈를 취하게 했다.
그의 그림은 주로 소외된 인간의 모습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평야의 주유소에서 차에 개스를 넣는 늙은 주유소 주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거리를 이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 등이다.
이런 사실주의 그림은 그 자체 훌륭했지만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성행하자 추상을 선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또는 협소하게 정의된 모더니즘 이론에 의해 궁지에 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미국 전통주의 화가의 입지가 갑자기 좁아진 것이다.
호퍼를 비롯한 그들은 추상을 "딱딱한 표현 gobbledegook"이라고 부르면서 모마MoMA가 추상을 선호하는 데 반발했다.
그들은 1959~60년 휘트니 연감에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이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사실에 경악해 했다.
구상과 비구상의 반목이 매우 심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단토는 당시의 추상과 사실주의 사이의 구분에 대해 양측이 얼마만큼의 도덕적 에너지를 갖고 관여했는지 의구심을 표한다.
당시의 상황은 거의 신학적 강도였으며 문명의 다른 단계였더라면 분명히 화형감이었을 정도로 심했었음을 지적한다.
사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거의 이단적 행위로 보일 정도였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대립보다 더욱 더 심했다고 보면 된다.
대학의 교수들은 사실주의에 관한 강의계획서를 제출했다간 강의가 배정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미국 미술계에서 그린버그의 영향을 컸으며 사실주의에 대한 추상의 우월주의는 그에 의해 더욱 더 가속화되었다.
그린버그는 1939년에 추상을 일종의 역사적 불가피성으로 보았다.
에세이 '더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에서 주장했듯이 그에게 추상은 "역사로부터 나오는 명령"이었다.
1959년에 발표한 '추상미술의 옹호'에서 그린버그는 재현이란 부적합하다며 "티치아노의 그림이 갖고 있는 추상적 형식적 통일성이 그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특질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린버그의 불공평한 특질 부여를 단토는 문제 삼는다.
단토는 그린버그가 호퍼를 비롯한 사실주의 회화를 역사적 진화의 낮은 단계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분통을 터뜨린다.
그린버그의 독선은 그 수위를 넘었는데,
1961년에는 추상마저도 역사적 운명의 분위기를 상실했다고 추상표현주의의 조각적 분위기를 비판했으며, 추상표현주의는 1962년 거의 종결되고 말았다.

오늘날 구상과 추상의 차이는 없다.
둘 다 회화의 양식에 속하는 것이지 그린버그가 말한 대로 좋고 나쁜 것의 차이도 아니며 역사적 진화와는 무관하다.
제7장의 제목에서 말하는 '지나간 미래'란 호퍼를 비롯한 미국 전통 미술이 그린버그에 의한 모더니즘론의 등장과 모마를 비롯한 뮤지엄들의 추상 전시회 선호로 인해 지나간 미래가 되었음을 지적한 말이다.
미국 회화의 미래는 모마에 의해 정의된 모더니즘의 초기에 추상이 차지했던 자리에다 온갖 회화를 죄다 쑤셔넣은 그런 꼴의 미래였다.
추상을 수많은 예술적 가능성들 가운데 하나로 보지 않고 유일한 역사적 진보의 개념으로 본 것은 그린버그의 큰 오류였다.
게다가 조각 및 그 밖의 장르들이 엄연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회화를 사실상 동의어로 취급한 것은 변명하기 어려운 과오였다.


단토는 이런 미국 미술의 상황에서 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팝아트를 꼽는다.
그는 팝아트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미술운동으로 본다.
팝아트는 1960년대 초 부지불식간에 시작되었는데, 그가 부지불식이라고 말한 이유는 추상표현주의 회화에 나타난 물감흘리기와 떨어뜨리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팝아트가 이런 충동적 동기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때가 1964년이었다.

한편 1964년 휘트니 뮤지엄이 호퍼의 회고전을 개최했다.
이는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회화를 옹호하고 추상에 대해 끈질지게 투쟁한 노력의 댓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들은 뮤지엄 앞에서 피켓을 들고 뮤지엄이 추상만을 선호하는 데 반대시위를 했고 일간신문 뉴욕타임즈에 추상표현주의를 공격하는 글을 쓰는 등 집단적으로 반발해 왔었다.
호퍼의 회고전은 이런 의미에서 사실주의의 승리로 보아야 한다.
그때 막 성행하기 시작한 포토리얼리즘 운동도 사실주의 회화에 대한 옹호에 일익을 담당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추상표현주의자들 중에도 호퍼에 대해 관심을 나타낸 사람이 있었는데 폴록과 단짝이었던 드 쿠닝이 호감을 나타냈다.
드 쿠닝은 사람과 사물의 형상을 그렸다는 이유로 추상표현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았는데,
폴록은 드 쿠닝에게 이렇게 비난한 적이 있었다.

"너 구상을 하고 있잖아. 아직도 똑같이 빌어먹을 짓을 하고 있다니. 너는 구상화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거다."

드 쿠닝이 회화에 있어서 추상적 혁명의 배신자로 몰린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저서 <폴록과 친구들>에 소상히 나와 있다.

단토는 미국 미술에 변화를 일으킨 팝아트를 좀더 철학적 방식으로 생각해야 함을 주장한다.
단토의 내러티브 혹은 그의 논리적 이야기에 근거하면,
팝아트는 미술의 철학적 진리를 자의식으로 가져옴으로 해서 서양 미술의 위대한 내러티브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팝아트에 대한 이런 고견을 갖고 있었던 그가 파리로부터 뉴욕으로 올아와 1964년 4월 스테이블 화랑에 가서 엔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았을 때 큰 자극을 받은 건 당연했다.
그 작품을 보는 순간 뉴욕 미술의 장면을 정의하고 있던 논쟁의 전체 구조가 적응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호퍼와 그 밖의 주류 사실주의, 추상이나 모더니즘 따위의 이론들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이론이 요구된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마침 그때 단토는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철학회에서 미학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고, 그는 <예술계 The Art World>란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는 미술을 다루는 최초의 철학적 노력이었다.
그의 논문은 예술계와 철학계가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서로 멀리 떨어져 왔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단토는 팝아트가 고대의 가르침, 즉 플라톤의 가르침을 뒤집어 엎는 방식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술을 모방으로 보고 상상할 수 있는 실재의 가장 낮은 등급으로 좌천시킨 플라톤의 사상이 서양 미술의 근간을 이루어왔는데 이것이 워홀을 비롯한 팝아트 예술가들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것이 단토의 주장이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훌륭한 목공의 솜씨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미술과 실재 사이의 차이를 이제 더 이상 순수하게 시각적인 견지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시각예술이 시각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또한 '예술작품'의 의미를 실례들을 보여주면서 가르친다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주었다.
워홀과 팝아트 예술가들은 철학자들이 미술에 관해 쓴 글 모두를 거의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었거나 아니면 국지적인 중요성만을 갖는 것으로 만들었다.
단토는 팝을 통해 비로소 미술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철학적 물음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물음이란 다름 아닌 예술작품과 예술작품이 아닌 어떤 것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단토는 미술에 관한 철학적 문제가 미술사 내부로부터 해명되었으며 역사가 종말에 도달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단토가 말하는 종말이란 미술이 죽었다거나 화가들이 그림 그리기를 중단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적으로 구성된 미술사가 종말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이는 같은 시기에 독일인 한스 벨팅이 주장한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러티브적이란 바자리와 그린버그의 역사관 혹은 두 사람에 의한 미술사 구성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팝아트란 말은 단토 이전에 미술잡지 <네이션>의 미술비평을 담당했던 로렌스 앨러웨이가 만든 말이다.
단토는 팝이란 말이 썩 좋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사용되고 있고, 앨러웨이가 그러한 말을 사용하게 된 동기를 이해한다.
다만 여기에 몇 가지 구분을 첨가하고자 했는데 다음과 같다.

"고급 미술 속의 팝, 즉 고급 미술로서의 팝과 팝 미술 자체 사이에는 하나의 차이가 있다. 팝의 선구자들을 추적하고자 할 때에는 특히 이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더웰이 자신의 몇몇 콜라주에 골와즈Gauloise 담배갑을 이용했을 때, 혹은 호퍼와 호크니가 팝과는 거리가 먼 그림들에다 광고계로부터 나온 요소들을 이용했을 때, 이런 것이 바로 고급 미술 속의 팝에 해당한다. 대중적인 미술들을 진지한 미술로 취급하자는 것이 앨러웨이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단토는 변용에 관해 언급했는데 이는 이선종님의 질문에 답할 때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삼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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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양에게


<예술의 종말 이후>를 원서와 대조해서 읽고 있다니 제대로 공부한다고 생각됩니다.
단토는 미국 철학학회 회장과 미학학회 회장을 엮임했고 컬럼비아 대학 철학과 교수였습니다.
지금은 연세가 이른에 다달아 은퇴하셨습니다.
맨하튼에 살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발간되는 예술철학 관련 서적에서 유럽 학자들이 단토를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거의 20년째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 김주영씨의 말로는 책방에 가면 단토의 책이 여러 권 잔뜩 쌓아 있어 그분의 영향을 실감한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프랑스어로 번역된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우리말 번역서를 읽고 있습니다.

정화양,
이 책을 열심히 읽고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난 16일 아내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3주 정도 지내다 돌아오려고 합니다.
부모 형제가 그곳에 계시므로 내게는 뉴욕이 고향이나 다름 없습니다.
내게는 고향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이번에도 신간을 많이 구입하려고 합니다.
연례 행사이지만 신간 중에서 일부는 우리말로 번역됩니다.
작년에 거져온 신간 중 일부는 곧 번역되어 나올 예정입니다.
한양대 반성완 교수님이 거의 탈고 상태인데, 그분의 번역은 완벽하고도 아름답습니다.
문학 전공자라서 우리말로 옮기는 데 그분을 따라갈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그분이 백낙청씨와 함께 번역한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꼭 읽도록 하세요.
창작과 비평사에서 4권으로 출간한 고전입니다.
두 분의 번역이 완벽해서 자신을 갖고 권할 수 있는 책입니다.
예술을 사회학적 입장에서 본 책인데 하우저가 처음 그런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술을 흔히 독자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술도 사회적 산물입니다.
우리나라 예술이 우리나라 사회의 산물이듯이 모든 예술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단토의 또 다른 저서를 이미 계약했는데, 그동안 번역자를 물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없다고 모두 물러섭니다.
나는 번역보다는 내 저서를 쓰는 것이 더 좋아 번역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뉴욕에서 돌아오면 아무래도 단토의 저서 한 권을 번역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의 예술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중요해서 우리나라 독자가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지요.

하우저, 단토 등 대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세요.
대가를 이해하면 시시껄렁한 이론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사회 각 분야가 그러하듯 학문에도 사이비 이론이 난무합니다.
그런 걸 귀담아 듣다가는 혼란에 빠지게 되지요.
좋은 책을 선별해 읽을 줄만 알아도 학문의 정도를 걷는 출발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쪼록 학업에 성과가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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