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초현실주의의 혼을 가진 살바도르 달리
초현실주의는 다행스럽게도 정치에 무관한 예술가들에 의해 확산되었다.
그들은 에른스트, 마송, 탕기, 마그리트, 미로, 그리고 달리였으며, 특히 달리의 활약이 현저하게 눈에 띄었다.
달리는 그림으로만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이론과 기괴한 행위, 옷차림, 코믹한 콧수염 등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그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브르통은 그를 가리켜서 “초현실주의 예술가의 혼을 가진 확실한 화가”라고 극찬했다.
달리는 1904년 5월 11일에 바르셀로나 근처 피구에라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증인이자 공화당원이었고 무신론자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달리는 어려서 인상주의 예술가 라몬 피초트로부터 회화를 공부하고 피초트의 권유로 12살 때 학문주의 예술가이자 로마 상을 수상한 누네즈로부터 드로잉을 배웠는데 달리는 그의 가르침을 고마워했다.
달리는 뮤지엄에 가서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그림을 발견하고 감동했으며, 엘 그레코, 뒤러, 레오나르도,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드로잉을 연구했다.
그는 1921년에 마드리드에 있는 아카데미에 입학했는데, 학교에서는 별로 배운 것이 없었지만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만났고, 훗날 영화감독이 된 루이스 부누엘을 만나 평생 친구가 되었다.
그는 1923년에 아카데미로부터 1년 동안 정학처분을 받았으며, 집권자 프리모 데 리베라의 독재정치에 항거하는 무정부시위에 가담했다가 1달 동안 투옥된 적도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점묘주의 화법을 실험했는데, 가족들의 별장 카다쿠에즈에서 바닷가 장면을 그린 <라네의 일광욕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이 그림에는 쇠라의 영향 외에도 세잔과 드랭의 영향이 발견되는데 드랭의 영향이 더 뚜렷하다.
그는 같은 나라 사람 피카소의 입체주의 화법을 받아들여 실험하며 <왕 알폰서스의 초상>, <자화상>, 그리고 <피에로와 기타>를 제작했다.
그의 분석입체주의와 합성입체주의에 관한 관심은 1927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프랑스 전통주의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앵그르와 그의 스승 다비드의 그림을 연구하면서 앵그르의 화법으로 1925년에 <창가에 선 소녀>를 그렸다.
달리는 프로이트가 1900년에 발표한 『꿈의 해석』을 읽은 후 “이 책은 내 생애에 가장 큰 발견이었다.
이 책이 나로 하여금 꿈뿐만 아니라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자아 해석의 실제 부덕까지도 사로잡히게 했다”고 했다.
그는 1926년에 아카데미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쫓겨났다.
졸업을 앞둔 구두시험에서 자신이 세 교수보다 아는 것이 더 많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1828년에 파리로 가서 평소에 존경한 피카소를 방문하고 네덜란드로 가서 베르미어의 그림을 연구했다.
이 시기 그의 그림에서는 초현실주의 영향이 나타나며 탕기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는 부누엘을 통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와 함께 놀랄 만한 야만적인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를 제작했다.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영화를 배척한 순수 미학적 영화로 영화 첫 17분 동안 사람의 눈을 면도칼로 긋는 등의 공포스러운 장면이 등장한다.
그 영화는 1928년 10월 1일부터 12월 23일까지 상영되다가 결국 사람들의 시위를 자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