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 거미집이 된 전시장
뒤샹은 파리에서 만난 적이 있는 알렉산더 칼더를 만났는데 칼더는 그때 브르통의 그룹에 속한 유럽 예술가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칼더를 위한 전시회가 1932년 파리의 비용 화랑에서 열렸을 때 뒤샹은 화랑에서 움직이는 그의 조각을 관람한 후 “원동력 가공물”이라고 불렀다.
뒤샹이 그렇게 부른 이유는 운동과 동기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였다.
그때 다른 평론가들은 “자동미술” 혹은 “기아변속”이라고 불렀다.
칼더는 모두 30점을 소개했는데 15점에 작은 모터를 부착했으므로 조각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쇳조각들에 밝은 색을 칠한 후 균형 있게 철사에 매달았다.
그는 조각에 운동을 더했다.
칼더는 조각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조각가였으며 그는 필라델피아의 스티븐스 공대를 1919년에 졸업했다.
그 학교는 우수한 학교였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 존 슬론으로부터 회화를 공부했는데, 정치적으로 과격한 태도를 취한 슬론은 제자들에게 선의 중요함을 누누히 강조하면서 “선은 온전히 표적이 되며 정신적 창조가 된다”고 가르쳤다.
슬론의 가르침은 칼더의 조각에서 역력하게 나타났다.
칼더는 1923년부터 1926년까지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수학하면서 로댕, 마티스, 피카소의 미학을 배웠으며, 피카소가 1918년에 종이에서 연필을 한 번도 떼지 않고 드로잉한 <광대>를 보고 철사를 가지고 그 같은 방법으로 실험하기도 했다.
그가 파리에 도착한 것은 1926년 6월이었다. 몽파르나스에 거주하면서 만 레이를 만났고, 만 레이를 통해 뒤샹을 만났다.
그는 몬드리안의 화실을 방문하여 그가 단순한 구성에 기본색인 빨강, 노랑, 파랑으로 한정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대단히 감동했으며, 검정색과 흰색을 함께 사용하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는 몬드리안으로부터 조형주의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그는 화실을 나오면서 “내가 움직이는 몬드리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움직이는 몬드리안”은 1932년의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었고, 뒤샹은 그의 조각이 마음에 들었다.
브르통은 뉴욕에서 가장 큰 규모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뒤샹에게 자문을 구했다.
전시회의 타이틀은 ‘초현실주의의 첫 서류들’이었는데 그것은 미국 시민권을 이민국에 신청하는 서류를 의미했다.
전시회는 1942년 가을 매디슨 애비뉴 451번지에 있는 와잇로 라이드의 저택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뒤샹은 전시회를 위한 카탈로그를 디자인했다.
전시회를 후원한 엘사 시아파렐리가 전시회를 위해 가능한 한 최소한의 돈을 사용하고자 함을 알고 뒤샹은 16마일에 달하는 긴 로프를 구입했다.
브르통과 그의 아내 재클린, 에른스트, 칼더, 그리고 젊은 미국 조각가 데이비드 헤어의 협조를 받아 뒤샹은 라이드의 저택 내부를 거미집처럼 만들었다.
그는 작품들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을 정도로 로프로 가렸는데 마치 현대미술의 모호한 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뒤샹은 로프를 전구 가까이 감았다가 불이 나자 다시 설치했는데 그가 사용한 로프는 1~2마일 정도였다.
그는 봉제공장으로 성공하여 미술계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시드니 재니스의 11살 난 아들 캐롤에게 전시회 첫날 10여 명의 친구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전시회 첫날 초대 손님들이 정장을 하고 저택으로 왔을 때 10여 명의 소년·소녀들은 그곳에서 공을 차고 줄넘기를 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누구든지 아이들이 노는 것에 불평하면 아이들은 “뒤샹씨께서 우리들더러 여기서 놀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하도록 시켰다.
뒤샹은 자신의 방침대로 그날 그곳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