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오일물감 이야기

레오나르도는 알레소 발도비네티의 작업장에도 갔다.
그는 발도비네티의 풍경화에 관심이 있었지만 아마 물감 비법에 더욱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발도비네티의 작업장에는 아궁이가 있었고 그는 계란 노른자위와 송진을 섞어 만들어 유역의 효과를 냈는데, 이것을 사용해 프레스코화를 그리게 되면 유화처럼 신선하고 밝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회화사에 혁명과도 같은 오일물감이 피렌체에 소개된 것은 폴랑드르 화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1441년에 사망)에 의해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사리에 의하면 플랑드르 대가들의 그림이 1530년대에 나폴리와 우르비노에 소개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화면이 매끈하고 빛났으며 색상과 투명한 효과는 전통적인 방법의 채색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었다.
이탈리아 화가들은 이런 북유럽 화가들의 비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바사리에 의하면 시실리 사람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가 비법에 대한 실험을 했지만 번번히 실패한 끝에 플랑드르로 가서 반 아이크로부터 방법을 알아냈다고 한다.
안토넬로는 베네치아에 안주한 후 친구들에게 이 비법을 가르쳤으며 도메니코 베네치아노가 이를 배워 피렌체의 작업장에서 소개했다.
베네치아노가 산타 마리아 누오바의 앱스(반원형 부분)들의 삼분의 일에 그림을 그릴 때 나머지 삼분의 이에 발도비네티와 안드레아 델 카스타그노Andrea del Castagno가 그렸다.
발도비네티와 카스타그노는 도메니코로부터 비법을 배우기를 원했지만 가르쳐주지 않자 카스타그노가 도메니코에게 다정한 척 대하면서 매일 밤 그와 함께 어울리면서 루트를 연주하고 예쁜 여자들에게 세레나데를 들려주는 등 노력을 다 하자 도메니코가 오일에 관해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카스타그노는 비법을 완전히 안 후에는 쇠몽둥이로 도메니코를 살해했다.
그는 살인을 숨겼으므로 아무도 누가 도메니코를 죽였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카스타그노가 죽기 전에 이 사실을 고백했다.
바시리는 카스타그노가 자신이 범인임을 고백한 시기에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을 예수를 배반한 유다모습으로 그렸다고 적었다.
이 이야기는 소설처럼 꾸며진 것이다.
안토넬로가 처음 베네치아로 간 것은 도메니코가 죽은 지 14년이 지난 후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