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세계의 종말과 기독교 미술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가들 로렌조 기베르티Lorenzo Ghiberti와 조르지오 바자리Giorgio Vasari는 콘스탄틴 대제의 등극과 더불어서 고대세계가 종말을 고했다고 했다.
기독교는 급격히 확산되었으며 392년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에 의해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이 두드러진 세계에 등장한 기독교 미술은 서양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남게 된다.
기독교 미술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3세기의 첫 50년 이탈리아와 로마 제국 동쪽에서였다.
로마제국 내 크리스천은 3세기에 이방인들의 미술 양식을 사용해 만남의 집Meeting-Rooms(혹은 Churches)과 무덤을 장식했는데 그리스와 로마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다음의 연대를 참고하는 것이 기독교 미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로마 공화국과 제국
로마 공화국: 기원전 510~27년
로마 제국: 기원전 27년~기원후 395년
서 제국: 395~476년
동 제국: 395~1453년
주요 로마 황제들
아우구스투스Augustus: 기원전 27년~기원후 14년
티투스Titus: 79~81년
트라잔Trajan: 98~117년
하드리안Hadrian: 117~217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61~180년
카라칼라Caracalla: 211~217년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284~305년
콘스탄틴Constantine: 306~337년
로마가 네 왕국으로 나뉘져 서로 으르렁거렸는데 콘스탄틴 대제가 이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황제에 즉위한다.
그는 정치적 이유로 기독교에 호감을 가졌고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기독교는 더이상 지하에서 숨어지내지 않아도 되었다.
콘스탄틴에 의해 팔레스타인의 폐허에 훌륭한 성당, 수도원 등 여러 종류의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콘스탄틴, 콘스탄틴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Santa Helena, 유독시아Eudoxia, 유스티아누스Justianus 황후 등의 노력과 협조로 예수님의 탄생, 생애, 사망으로 인해 성지가 된 지역들이 특색 있는 건물들로 창건되었다.
시온의 산, 베들레헴의 들, 요단 계곡, 유대 사막 등 여러 지역에 수도자와 크리스천들이 거주했으며 순례자들이 사방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맹렬한 이교도들의 습격이나 박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지는 이 기간에 많은 성인들의 땅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614년 파사의 코스로스 2세Chosroes II에 의해 황폐케 되는 수난을 겪게 되고 628년 헬라구리우스Helagurius가 복구사업을 펼쳤지만 십 년 후 성지는 이슬람교도 아랍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콘스탄틴(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어느 해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280년대 후반인 것 같으며 2월 27일 현재 유고슬라비아의 모에시아Moesia 북쪽 비잔티움Byzantium으로 통하는 나이수스Naissu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인 지휘관 플라비우스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Flavius Valerius Constantinus였고 그의 아네이거나 혹은 첩concubine(다처주의에서 제2부인 이하를 말 함)은 헬레나Helena였다.
콘스탄틴 대제
293년 콘스탄틴이 소년이었을 때 아버지는 시저Caesar의 작위를 받아 서 로마 황제Augustus 맥시미안Maximian의 제2인자 대리인이 되었다.
이때 아버지는 맥시미안의 의붓딸과 결혼하기 위해 헬레나와 헤어졌다.
콘스탄틴은 동로마 제국에서 성장했는데 동로마의 황제는 니코메디아Nicomedia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이었다.
콘스탄틴은 소년시절부터 가이사랴의 주교 유세비우스를 알고 있었고 디오클레티안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경유해 이집트에서의 전쟁을 참관했다.
303년 디오클레티안이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으며 기독교는 동로마의 주요 문제거리가 되었다.
당시 기독교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는데 콘스탄틴 가족 중에도 크리스천이 있었던 것 같다.
콘스탄틴의 어머니 헬레나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으며 콘스탄틴의 의붓여동생 아나스타시아Anastasia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
305년 두 황제들 디오클레티안과 맥시미안 모두 퇴임했고 대리인 황제들이었던 칼레리우스Galerius(311년에 사망)와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었다.
나중에는 맥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ia와 세베루스Severus가 각각 동로마와 서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갈레리우스의 요청으로 콘스탄틴은 아들과 함께 영국으로 가서 전쟁을 했으며 아버지는 306년에 욕York에서 사망했다.
군인들에 의해 갑자기 황제로 옹립된 콘스탄틴은 로마에서 모반한 서로마 황제 맥시미안의 복잡한 동란에 끼어들게 되었고 황제 대리인 세베루스는 리치니우스Licinius로 교체되었다.
아들의 배척을 받은 맥시미안이 가울Gaul에서 콘스탄틴과 합세해 아들로 하여금 31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
콘스탄틴은 307년에 맥시미안의 딸 파우스타Fausta를 둘째 주인으로 맞았으며 312년에 이탈리아로 진군해 로마 근처 밀비안 다리에서 처남 맥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리치니우스는 맥시미누스 다이아를 무찌르고 동로마의 황제가 되었지만 316년의 전투에서 발칸스Balkans 지역을 콘스탄틴에게 빼앗겼다.
콘스탄틴은 324년 리치니우스와의 두 번째 전투에서 아드리아노플Adrianople과 크리소폴리스Chrysopolis까지 추격해 멸했다.
콘스탄틴은 337년 사망할 때까지 유일한 황제로 군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