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테인들이 만든 여신
 

크레테인들이 만든 여신으로 <동물의 여왕 Mistress of Animals>로 불리우는 것이 있는데 사냥의 여신을 묘사한 것이다.
이것이 소아시아의 위대한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의 기원이 되었다.
기원전 16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여왕' 두 점이 현존한다.
그중 하나를 보면 풍만한 젖가슴을 드러내어놓은 여신의 양손에는 뱀이 쥐어져 있다.
뱀은 신성한 동물로 신화에 등장하며 구약성서 창세기에도 뱀은 이브를 유혹하는 신성한 동물로 등장하는데 고대 종교에서 뱀은 남성의 수정능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신의 노출된 풍만한 젖가슴은 여성의 수정능력을 상징한다.
크레테에는 뱀이 별로 없는 데다 여신의 눈이 크고 눈섭이 유난히 진한 것으로 봐서 여신에 관한 문화는 소아시로부터 수입된 것이 아닌가 학자들은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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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테 문화를 미노스 문화 
 

크레테 문화를 미노스 문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왕 미노스Minos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전설로 알려진 미노스 왕은 실재했던 인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훗날 그리스인들은 미노스가 크레테의 노소스에 살았던 위대한 왕이었다고 믿기 시작했다.
전설에 의하면 미노스는 신들과 담판하여 태양의 신의 딸 파시패Pasiphae와 결혼했다.

뉴욕 추상표현주의의 간판스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56)이 그린 완전추상화에 <파시패>가 있다.

크레테의 문화는 이른 청동시대Bronze Age의 문화였다.
크레테인들의 예술품들이 이집트에서 발견되며 그것들을 보면 그들이 여신 혹은 여신들을 섬겼음을 알 수 있다.

크레테의 미노스 문화는 기원전 1600년경 그리스 본토에 소개되었으며 기원전 900년경 본토에서 만연되었다.
그리스 본토에 상륙한 문화를 미세내Mycenae 문화라고 부르는데 이 문화는 구전으로만 전해온다.
그리스인은 선사시대 이전의 크레테 문화를 늘 동경하고 있었음을 기원전 500년에 제작한 도자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미노타우르Minotaur(사람의 몸에 소 머리가 달린 괴물)를 퇴치하기 위해 영웅 테세우스Theseus가 칼을 들고 서 있고 미노타우르는 둥근 바위를 들고 테세우스를 공격하려는 자체를 취하는 그림이다.

크레테 문화는 호메로스Homer에 의해 그리스인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저서 <일리아드 Illiad>와 <오디세이 Odysey>는 그리스 문화의 최초의 상징이 되었다.
버트란드 럿셀Bertrand Russell은 저서 <서양철학 역사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서 호메로스의 저서들은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기원전 750년경부터 550년까지 약 200년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는 호메로스의 작품 년대를 기원전 8세기로 어림한다.
호메로스의 시가 아테네에 유입된 것은 기원전 550년부터 527년까지 아테네를 통치한 페이시스트라투스Peisistratus에 의해서였으며 아테내의 젊은이들은 호메로스의 시를 암송하며 즐겼다.
호메로스의 시에는 올림피아에 거주하는 신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리스인들이 섬긴 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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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화 속의 이집트, 중동, 동양

 
루브르 뮤지엄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가면 그리스인이 제작한 다양한 질그릇들을 볼 수 있는데 기원전 800년경에 제작한 것들로 그들의 용기에서 사람과 동물이 기하적으로 묘사되어 있음을 본다.
기원전 725년과 650년 사이에 제작한 것들과 기원후 8세기에 제작한 것들을 비교하면 그들이 이집트, 중동, 그리고 동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도자기의 근본이 되는 기하의 형태는 달라지지 않았고 손잡이의 모양과 아랫부분이 작아졌음을 본다.
전체적으로 유연하게 둥글게 달라졌고 그림을 좀더 크게 대담하게 그렸으며 그림은 이야기를 전하려는 내용인데 동양의 두드러진 요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도자기에 신화와 전설들이 삽화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런 신화와 전설들은 도리아인Doric과 아이오니아인Ionic의 신과 영웅들이 올림피아의 신들이 되어 호메로스가 전한 이야기와 일치한다.
헤라클레스Herakles의 경우 역사적으로 실재한 왕이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신들의 후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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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도공들은 예술적으로

 
그리스의 도공들은 예술적으로 혹은 기술적으로 훈련을 받은 장인들이었다.
그들은 도자기에 사람의 모습들을 검정색으로 묘사했는데 기원전 540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직경 12인치되는 술잔에 그려진 '배를 탄 박카스 Dionysus in a Boat'를 보면 배와 박카스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를 검정색으로 묘사했으며 돛은 나무처럼 줄기로 하고 포도를 주렁주렁 매달아 박카스가 주신임을 나타냈다.
디오니소스Dionysus는 박카스의 또 다른 명칭이다.
철학자 니체가 디오니소스적 예술 어쩌구저쩌구 했는데 바로 박카스적 혹은 열광적 예술 어쩌구저쩌구란 뜻이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니체는 아폴로적 예술 어쩌구저쩌구 했는데 아폴로는 태양의 신으로 조화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아폴로적 예술은 조화를 뜻하는 데 반해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반조화적 혹은 조화를 무시하고 열광을 나타내는 예술을 뜻한다.

박카스가 배를 탄 모습은 신화에서 가져온 주제로 호메루스에 의하면 박카스는 한때 해적들에게 유괴된 적이 있었고 그는 배 전체를 포도줄기로 채워 포도가 열리기 했으며 해적들은 공포에 질려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그들은 고래가 되었다는 것이 신화가 전해주는 내용이다.
질그릇에 그려진 박카스가 탄 배 주변에 있는 고래들은 바로 해적들의 화신인 셈이다.
7마리의 고래와 7송이의 포도는 박카스의 항해에 행운을 비는 듯한 것들로 보이는데 7이란 숫자는 온전한 수를 상징한 것으로 성서에도 7은 온전수로 사용된다.
7이 온전수란 말은 7일 동안 기도했다고 할 때 꼭 일주일을 기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기간 동안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7은 온전수의 마지막 수로 우리가 사용하는 10에 해당한다.
10 다음에 다시 11, 12 하고 사용하듯 7이 끝나면 다시 셈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의 개념에 이런 것도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40의 수가 있다.
예수가 40일 동안 광야를 헤맸다고 할 때 40일은 한 달 하고도 열흘이라기보다는 아주 오랫동안이란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모세가 광야를 40년 동안 헤맸다고 할 때 39년 하고도 1년을 더 헤맸다고 하기보다는 아주 아주 오랜 세월을 헤맸다고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41년 혹은 49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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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 산에 거주하는 신들만 섬긴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은 올림푸스 산에 거주하는 신들만 섬긴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는 대중적이며 야만적인 종교도 갖고 있었다.
이런 원시종교는 세계 도처에 흔했다.
그들은 의식을 통해 열광적이 되어 동물을 잡아먹었고 기분이 내키면 사람도 잡아먹었다.
이를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고 한다.
사전에도 이 말이 남아 있어 그들의 오래전 풍습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인의 다신론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복잡한데 아시아로부터 종교를 수입해다 썼으므로 그리스인들에게 종교적 상품은 매우 넉넉한 편이었다.
그들의 남신과 여신들이 노는 꼴은 가관이었는데 하는 짓들이 요즘 가장 못된 졸부들의 하는 짓보다 더 심했다.
신들은 도둑질했고, 간통했으며, 사악한 짓들을 골라 했고, 한결같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면서 서로 힘겨루기에 여념이 없었다.
신들의 이야기를 분석해 보면 당시 영웅들의 치고박고하던 이야기들 같으며 세월이 지나면서 이야기가 부풀고 또 부풀어져서 아주 엉뚱한 이야기로 진전된 것 같다.

그러니까 신들은 다름아닌 당대의 영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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