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荀子의 사상은 무엇입니까?
주周나라 말기 전국시대의 유물론적 경향의 유가儒家,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에 대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것으로 잘 알려진 순자荀子(기원전 298~238)는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고 있던 중국 통일의 과제에 몰두하여, 군거화일群居和一이라고 하는 질서를 지향하고 예의禮義라는 수단을 제기했습니다. 군거화일이란 천자, 제후, 사대부, 관인백리官人百吏, 서민이 직분에 따라 일을 하고 각각 그 직분職分에 만족하는 질서를 말합니다. 예의는 이 분分을 결정하는 기준, 즉 귀천지등貴賤之等, 장환지차長幻之差, 지우능부능지분知愚能不能之分이며, 선왕先王의 제작制作에 따른 것입니다. 이 예의의 분은 천인天人의 분分을 전제로 하고 있고, 인간의 자연에 대한 공통성이 이것에 의해 크게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리하여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문제도, 인재를 양성하는 문제도, 모두 예의에 의거하여 해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의는 법가의 법法에 접근하고 있고, 인식론적으로는 도가의 영향이 농후합니다. 그는 유가의 입장을 지키면서, 진秦나라의 입장에 서서 제가諸家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선진사상先秦思想의 집대성자라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에 의하면 순자는 50세에 제齊나라의 직하 학궁學宮에 갔으며, 제나라 양왕襄王(기원전 283-265 재위) 때에는 직하 학자 중에서 최고의 관록을 인정받아 세 차례나 직하 학궁의 장을 지냈습니다. 직하 학궁에서는 전국시대 유가를 비롯하여 묵가, 도가, 법가, 명가 등에 속하는 다양한 학파諸子百家의 학자들이 모여들어 자유로이 자기 분야의 학문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을 중심으로 학문이 크게 번창했습니다. 순자는 제나라에서 모함을 받아 초楚나라로 망명하여 춘신군春申君의 도움으로 난릉蘭陵의 지방 수령을 지냈으나 춘신군이 죽자 그 자리에서 물러나 난릉에 살다 죽었습니다. 춘신군은 고열왕考烈王 재위기에 재상宰相으로 활약했으며, 주변 나라들과 연합하여 강국인 진秦나라의 진출을 저지하여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君 등과 함께 이른바 전국4공자戰國四公子로 불립니다.
<순자荀子>는 순자의 언론言論을 모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손경신서孫卿新書>로 불리었습니다. 현존하는 것은 20권 33편으로 되어있으나 원래 12권 322편이던 것을 전한前漢의 경학가이며 본명이 갱생更生, 자字가 자정子政인 유향劉向(기원전 77~6)이 중복을 정리하여 32편으로 만들고, 다시 당唐나라 때 양량楊倞이 20권 32편으로 개편, 주注를 달고 책명을 <손경자孫卿子>라 개칭했다가 후에 <순자>라고 간략히 불리게 되었습니다. 문헌학적으로는 편篇의 순서에 따라 수신파전승修身派傳承이 6편, 치국파治國派 9편, 이론파理論派 6편, 나머지는 순자 문인들의 잡록雜錄으로 유별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권학勸學, 예론禮論, 성악론性惡論이 중심을 이룹니다.
공자孔子 이후 맹자에 의해 정비된 유교는 내면적, 주관적인 입장만이 강화되었으므로 순자는 이에 반대하여 공자의 예禮의 사상을 내세워, 제자백가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객관적 입장에서 유교를 재정비했습니다. 먼저 공자나 맹자에서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어 온 천天의 권위를 부정하고 천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연의 천공天空에 불과한 것이라 하여 천과 사람과의 분리를 선언했습니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독립선언으로서는 귀중한 뜻을 지녔으나 유교의 전체적 역사에서 볼 때는 이단적이었습니다. 독립된 인간의 존엄성은 예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으로, 예는 순자의 경우 성인聖人이 정한 사회규범으로 뚜렷한 객관적 형식이었으며, 그것에 따르는 것만이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라 주장했고, 따라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가치도 발휘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수양修養은 맹자와 같이 인간의 심성心性을 선善으로 보아 그 선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니며 예의 형식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후천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인성人性은 악惡이며 날 때부터 이利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방치하면 쟁탈과 살육이 발생하기 때문에 악이라는 본성을 교정하는 사법師法의 가르침과 예의의 길인 위人爲에 의해서만 치세治世를 실현할 수 있다면서 여기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는 성악설性惡說이 태어났습니다. 송대宋代 이후 이 성악설과 천天, 인人 분리설로 인해 이단시되어 왔으나 그 논리학이나 인식론을 포함한 사상의 과학적 성격은 한대漢代 유교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 의의와 함께 높이 평가됩니다.
<순자>의 ‘성악性惡’편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그 본성이 착하기 때문이다.”
순자가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잘 알지 못하고 인간의 본성과 인위의 구별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이다. 본성이란 하늘이 부여한 것이니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으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예의禮義란 성인이 만들어낸 것으로 사람들이 배워서 할 수 있으며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배워서 될 수 없고 노력해서 될 수 없는 것으로 인간에게 갖춰져 있는 것을 본성이라 하고, 배워서 할 수 있으며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인간에게 있는 것을 인위人爲라 한다. 이것이 본성과 인위의 구별이다. 지금 인간의 본성이란,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음을 말한다. 볼 수 있는 시력은 눈에서 떠나 있는 것이 아니고, 들을 수 있는 청력은 귀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니, 눈의 시력과 귀의 청력은 배울 수 없음이 자명하다.”
맹자가 말했다.
“지금 사람들의 본성은 선한 것이나 모두 그 본성을 잃어버렸으므로 악한 것이다.”
순자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잘못된 것이다. 지금 사람의 본성은 태어나면서 그 소박함을 떠나는 것이다. 그 자질에서 떠나버렸다면 반드시 잘못되어 상실되어버린 셈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