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는 분석, 상기, 재생, 변형의 과정을 뜻한다
패러다임보다는 덜하지만 아직도 포스트모던이란 말이 논문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말이 마치 모던 이후를 가리키는, 즉 모던과는 별개의 뜻으로 사용되는 예를 자주 본다.
이런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미술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한 개념의 이해를 넘어서 미술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므로 나는 이 말을 하나의 장으로 충분히 정리하고 싶었다.
이 말을 철학에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리오타르인데 그는 1979년 『거대한 이야기들 Grands Recits』에서 이 말을 사용하여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파리 8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국제 철학원 원장으로 활동하는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유럽의 지성을 대표할 만한 그가 처음 이 말을 사용했고, 그 밖의 저술에서도 이 개념에 관해 서술했으므로 그를 통해 포스트모던의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오타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포스트’는 단순한 연속이란 의미에서 각각의 시대가 분명하게 확인될 수 있는 통시적인 계열을 뜻하며, ‘포스트’는 이전의 것 다음의 새로운 방향, 즉 전향과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12)으로 이해한다면서 이런 직선적 연대순의 사고는 진부한 것임을 지적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시계바늘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면서 그는 모던이란 “개념 자체가 전통과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유방식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연적이라는 원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오늘날 ‘단절’이 과거를 망각하는 방식 혹은 억누르는 방식이 아닌지, 즉 과거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복하는 방식이 아닌지 불분명한데 그는 “이전 시대의 건축에서 새로운 건축으로 넘어온 요소들의 인용은 -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 Traumdeutung』에서 설명하듯 - 꿈의 활동에 있어 과거의 삶에서 유래한 낮 찌꺼기의 활용과 유사한 방식으로 행해진다고 생각”13)했다.
그는 포토게시Portoghesi가 건축에 있어서 유클리드 기하학에 부여된 헤게모니가 폐기된 데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립이 있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고, 그레고티Gregotti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를 모던적 건축 기획과 사회적·개인적 인류 해방의 점진적 실현이라는 이념 사이의 밀착관계가 소멸된 데서 찾은 것에 의미를 부여했는데, 즉 포스트모던 건축이 모던으로부터 물려받은 공간에 일련의 미세한 변형을 가하고, 인류가 거주하는 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재구축을 포기한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보편성이 건축가의 눈에 제공될 수 있는 지평을 형성해 주지 않음을 뜻한다.
그레고티는 합리성과 해방이라는 자유에서의 진보이념이 사라짐에 따라 포스트모던 건축의 독특한 기질과 양식이 설명된다고 했는데 리오타르는 이를 일종의 ‘응급수리 bricolage’로 보았고, 이전anterieurs, 고전classiques 혹은 모던의 시대나 양식으로부터 차용해온 요소들의 풍부한 인용들 - 예를 들면 환경에 대한 약간의 고려 - 로 보았다.
인류를 위한 진보를 표방한 이념들을 지난 2세기에 난무했지만 결과적으로 진부해졌음을 지적한 리오타르는 그런 가능적·개연적 혹은 팔연적 진보 이념들은 예술, 기술공학, 인식, 자유의 발전이 전반적으로 인류에게 이익을 줄 것이란 확신에 그 근거를 두었지만 발전되지 못했음으로 해서 희생당한 주체 즉 빈민, 노동자 혹은 무식한 자에 대한 반성이 19세기와 20세기에 늘 있어왔음을 지적했다.14)
그러다 보니 이념의 발의들initiatives, 발견들, 제도들이 인류 해방에 기여할 때만 그 정당성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발전이 곧 진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기술과학의 발전이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 불안감을 확산시킴을 예로 들었다.
기술과학이 우리와는 무관하게 자율적인 신축기능에 의해 발전하고 있다면서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간주했다.15)
보편성의 실현이라는 모더니즘의 기획은 파멸되고 청산되었으며, 오히려 탈정당화delegitimation의 과정을 촉진시켰다고 본 그는 새로운 실천, 사유대상을 축적하는 과정을 추구해야 할 상황에 우리가 봉착했음을 주장했다.16)
모더니티를 사유, 언술행위 및 감수성의 한 형태로 본 그는 19세기와 20세기에 있어 사유와 행위가 해방의 이념17)에 의해 규제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반문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세계로부터 발생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인류 보편사의 이념에 종속시킴으로써 계속해서 체계화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대답은 가능성뿐만 아니라 능력을 암시한다.
모더니즘의 기획을 계속 수행할 만한 능력, 힘 그리고 역량이 있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아마도 이런 요소들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근대적 주체의 소멸에 대한 문제라서 사실들을 통해서나 최소한 징표들을 통해 입증되어야 할 것인데 리오타르에게 이런 사실과 징표는 얼마든지 있다.
“휴머니스트는 보편역사를 전제하고 인류 공동체라는 보편적 과정 속의 한 계기로서 개별 공동체를 보편역사 속에 삽입시킨다.
대략적으로 이는 또한 사변적 거대한 이야기의 공리이며, 이것은 인류 역사에 적용된다.”18)
그러나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 역사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대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념이 진부해졌으므로 새로운 실천·사유대상을 축적하는 과정을 추구해야 하는 데 포스트모더니즘의 둔 그는 포스트모더니티의 문제를 예술, 문학, 철학, 정치와 같은 사상의 표현들에 관한 문제로 구체화했다.
진정한 아방가르디즘의 과정은 실제로 일종의 길고, 집요하며, 극도의 책임성 있는 작업이었지만19) 오늘날 일반적으로 말하면 한물간 모더니티의 표현들인 아방가르드 운동은 예술 전반에서, 특히 시각예술과 조형미술에서 조소거리가 되었다고 했다.
마네에서 뒤샹 혹은 바네트 뉴만까지의 아방가르드 운동을 정신분석학적인 치료의 의미에서 ‘상기 anamnese’와 비교되는 데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