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칙천武則天의 미용비방

 

 

 

무칙천武則天의 성은 무, 이름은 조이다. 당나라 고종高宗(649683)의 황후皇后로 중국 역사상 홍일점 여황제가 되었다. 14세에 입궁하여 태종太宗(626649) 이세민李世民의 재인才人(비빈妃嬪의 칭호, 정오품正五品)이 되었다.

무칙천은 태종이 죽은 뒤 감업사感業寺로 들어가 비구니比丘尼가 되었다. 후에 고종의 입궁하라는 어명을 받고 소의昭儀(정이품正二品)의 관직을 얻었다. 무칙천은 정치에 야심이 불타는 여자였으므로 고종의 황후를 폐하는 음모를 꾸며 성공한 후 황후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고종에게 열두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 여섯 명을 무칙천이 낳았다. 무칙천은 평생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보양에 힘쓴 결과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신당서新唐書>에 수춘추고雖春秋高 선자도택善自塗澤 수좌우불오기쇠雖左右不悟其衰라 하였다.

무칙천의 나이는 비록 많지만 스스로 화장을 잘하여 좌로 보나 우로 보나 늙은 곳을 찾아볼 수 없다.”

무칙천이 고령에도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미용비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용비방은 <신수본초新修本草>, <외대비요外臺秘要>, <어약원방御藥院方> 등에 수록되어 있다. 미용비방으로 천후연익모초택면방天后煉益母草澤面方과 신선옥녀분神仙玉女粉 등이 있다. 미용비방의 조성이 간단하고 익모초 한 가지로 제성되었다.

매년 단오절端午節에 익모초 전주全株를 채집하여 직접 아궁이 속에 집어넣어 태워서 절구 속에 넣고 찧은 뒤 체로 쳐서 가는 가루를 뽑아낸다. 다음 물과 함께 섞어 반죽하여 달걀만한 크기로 만든다. 다음 네 면에 구멍이 뚫린 아궁이에 두 층을 만들어 위층과 맨 밑층에 숯불을 피우고 중간층에 달걀만한 크기의 익모초 잿덩이를 놓고 말린다. 익모초 잿덩이를 절구 속에 넣고 옥곤玉棍(옥으로 만든 절굿공이)과 녹각鹿角으로 찧어 부셔 다시 가루로 만든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에 두 차례 소량의 익모초 가루를 물속에 넣고 끓인 물로 얼굴을 씻는다. 익모초는 얼굴에 윤기가 나게 만들며 옥곤과 녹각의 떨어진 가루 부스러기는 피부를 촉촉하고 희게 만들어 준다.

이는 후세 의가에서 임상을 통해 증명되었는데, 장기간 이 처방을 사용할 경우 50세가 넘은 여성의 얼굴에 주름살이 없어지고 희어지며 광택이 나 훨씬 젊어 보인다.

무칙천의 또 다른 미용비방은 도가에서 실시하는 일종의 공법功法이다. 당태종 이세민이 서거한 후 무칙천은 장안長安에 있는 감업사感業寺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무칙천은 비구니로 있는 동안 도가의 양생미용공법養生美容功法을 습득하였다. 즉 내관법內觀法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정서를 안정하게 하며 심기를 화평하게 하고 모든 잡념을 제거하며 숨을 가늘게 쉬고 심신을 안정시키며 두 눈을 감고 인체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자기 신체 일부를 상상으로 본다. 즉 어느 한 경락, 혈위, 장부, 진기眞氣의 운행을 상상으로 보며 양생미용 목적에 이용한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내관법은 혈액순환을 양호하게 해주며 내분비선의 공능을 조절해주고 피부를 젊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칙천은 내관법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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