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드운동의 폭력은 테러행위이다

 

 

 

 

 

 

폭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는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의 기본 특성이긴 하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목표는 단연 이슬람교의 질서가 될 것이다. 지하드운동은 진정한 지하드로 규정된 비정규전이 종교적으로 정당하다는 점에 근거하여 활동한다. 사실, 지하드운동의 폭력은 테러행위이므로 고전 지하드의 윤리와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성 이슬람교의 종교기관은 지하디스트 원리주의자들을 대놓고 규탄하지 못한다. 평화적인 무슬림과 그들을 구별할 수 있을 텐데 선뜻 그러지 못하는 까닭은 기회주의와 두려움 때문이다. 지하드운동과 테러리스트가 이슬람교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한데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는 소수 이슬람 집단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젊은 무슬림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들이 신병 모집에 몰리는 까닭은 지하드운동이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암울한 현실에서 위안과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에서의 대안은 이슬람교를 유럽식으로 바꾸든지, 유럽을 이슬람교의 대륙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을 유럽인이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방관과 무관심 속에서 신앙의 자유와 지하디스트들의 전쟁을 혼동하면 은연중에라도 지하드운동의 국제주의를 지지하겠지만 말이다. 이슬람세계와 서방세계 및 유럽의 소수 무슬림 집단 문화로 조성된 삼각구도에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가르는 경계선은 결국 흐릿해질 가능성이 크다.
일부 유럽 국가(이를테면 독일)는 시민권 문화를 제한하여,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여권은 발행하나 공동체의 일원으로는 수용하지 않는다. 중산층에 합류할 수 있는 특권층도 평등한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고 “방문 근로자”로 취급할 뿐이다. 나 역시 학계의 차별로 독일인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 현지의 보편적인 사정이 그렇다. 유럽에서 합법적으로 독일 여권을 소지하긴 했으나 실질적인 시민은 아니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50여 년을 살고 본토어로 28권의 책을 썼지만 달라진 것이라고는 없었다. 이슬람교를 꾸준히 배우고 지식을 습득한 덕에 서양을 배격하는 지하드운동 이데올로기에는 빠져들지 않았으나,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무슬림 이민자의 입장을 감안해볼 때, 디아스포라diaspora에서 벌이는 이슬람주의 운동과 유럽의 인종차별주의는 알카에다 전사가 되라는 구호에 매력을 더할 것이다. 『뉴욕 타임스』지에 따르면, 그 결과로 독일에서 태어난 젊은 무
슬림들이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지하디스트 단체들에 합류했다고 한다. 유럽 사회에서 무슬림을 남남인 양 “배척한다면”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자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슬람세계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하드운동의 유혹에 대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사원에서 실시하는 교육은 국가가 통제하지 않는 데다 지하디스트 이데올로기를 오히려 장려하고 기존의 치안활동도 이를 진압할 수가 없다. 무슬림 젊은이들의 삶은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현상유지만으로는 자유와 민주정치를 수호하기가 어렵다. 이슬람세계의 민주화와 효과적인 개발정책, 그리고 독재국가와 대립되는 시민 사회 원칙을 이룩할 제도가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에 대처하는 수단이 되나, 이슬람과 서방세계의 문화가 달라져야 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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