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에 대한 융의  “아들” 역할은 변하고 있었다

 

 

 

 

 

프로이트에 대한 융의  “아들” 역할은 이미 변하고 있었다. 1909년은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가 정점에 이르는 동시에 전환점을 맞이한 해였다. 봄에 융과 엠마가 프로이트의 집에 닷새 동안 머문 것이 그들이 집에서 가진 세 번째 만남이었다. 융이 자서전에서 당시의 방문을 기록한 부분을 보면 닷새 중 마지막 날 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그들의 견해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프로이트의 예지precognition와 초심리학parapsychology 전반에 대한 의견을 흥미 있게 들었다. 1909년 빈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그 두 가지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유물론적 편견이 있는 그는 그 질문들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답을 하지 않았다. 나의 실증주의는 너무 얄팍해서 그의 날카로운 반응에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초심리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주술적” 현상이 실재함을 인정하기 몇 년 전 일이다. 프로이트가 그런 식으로 반응할 때 나의 몸에서 흥미로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횡격막이 마치 철로 되어 있기라도 하듯 붉게 달아올라 새빨간 하늘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우리 옆에 있던 책장에서 아주 큰 폭발음이 들렸다. 깜짝 놀란 우리는 책장이 우리 쪽으로 쓰러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프로이트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이것이 소위 촉매에 의한 구체화 현상의 예입니다.” “그런 허튼소리 그만하게”라고 그가 소리쳤다. “허튼소리가 아닙니다”라고 내가 대답했다“. 교수님이 착각하고 계신 겁니다.” “제가 곧 또 한 번 굉음이 날 거라고 말씀드리면 제 주장이 증명되겠지요.” 그 말을 내뱉자마자 아까와 같은 폭발음이 책장에서 발생했다.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확신한 까닭을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소리가 다시 나리라는 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알고 있었다 … 프로이트는 겁에 질려 나를 바라보았다 … 그 후 그는 나를 불신하게 되었고 나도 그를 거역하는 어떤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논쟁은 퀴스나흐트에서도 계속되었다. 융은 프로이트의 집에서 떠날 때가 되자 “나는 교수님의 가부장적인 권위에서 비롯된 압박감에서 벗어났습니다”라고 썼고 그 답으로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친구에게,
자네를 나의 장남이자 … 나의 후계자로 삼은 바로 그날 밤 자네가 아버지로서의 나의 위엄을 떨어뜨린 것이 참 이상하네. 내가 자네를 그렇게 대한 것과는 반대로 자네는 그렇게 나의 권위를 빼앗은 것에 즐거워하는 듯하네. 내가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악취와 소음이 나며, 물건들이 날아다니는 등의 괴현상]에 대해 느낀 바를 이야기하려면 지금도 아버지 역할에 의지해야 해서 유감이군. 하지만 내 태도는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네. 자네의 이야기와 실험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네 … 처음엔 … 자네가 여기 있을 때 그렇게 자주 들리던 소리가 자네가 떠나고 나서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면 그 현상의 증거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네. 하지만 그 후로도 그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네. 그 현상은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일어났고 더욱이 자네나 자네의 그런 특이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라네 … 자네의 존재라는 마법이 사라지자 나의 흔들림, 적어도 믿으려는 나의 의지가 사라졌지. 딱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떤 내면적인 이유로 나는 그런 현상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 …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뿔테 돋보기안경을 다시 끼고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에게 냉정해지라는 경고를 하고 싶네. 큰 희생을 감수하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해하지 않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지 … 나는 이 흥미로운 착각에서 손을 떼겠지만 자네의 유령 콤플렉스 조사에 대한 소식은 앞으로도 관심 있게 듣도록 하겠네.
프로이트로부터

 

그날 밤 두 사람이 충돌한 주제는 초자연적 현상만이 아니었다.

 

 


프로이트가 나에게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친애하는 융, 성 이론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주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네. 우리는 그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방파벽이 될 신조를 만들어야 하네.” … 나는 좀 놀라 그에게 물었다“. 방파벽으로 무엇을 막는다는 겁니까?” 그는“ 검은 진흙의 밀물과 썰물이지”라고 답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바로 신비주의occultism 말일세.” … 나는 과학적 판단과는 전혀 관계없이 개인적인 권력욕만을 의미하는“ 신조”와“ 방파벽”이라는 말에 놀랐다. 그 말은 우리 우정의 중심에 일격을 가했다. 나는 내가 그런 태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신비주의”라고 말한 것은 사실상 떠오르는 현대 학문인 초심리학을 포함하여 철학과 종교가 정신에 관해 규명한 전부였기 때문이다.

 

 


6개월 후 융과 프로이트는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고 융이 보는 앞에서 프로이트가 졸도하는 일이 두 번 발생했다. 프로이트가 처음 졸도했을 때 융은 아버지의 “유언”으로 간주될 수 있는 말을 듣고 불안감을 느꼈다. 이 여행은 둘의 관계에 치명타가 되었다.

 

 


우리는 매일 함께 지내며 서로의 꿈을 분석했다. 당시 나는 중요한 꿈을 몇 번 꾸었는데, 프로이트는 그 꿈을 전혀 해석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최고의 분석가라도 꿈의 수수께끼는 풀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실수를 하기도 하므로 그가 꿈을 분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서로의 꿈을 분석하던 일을 멈추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꿈의 분석은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었고 나는 우리의 관계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프로이트가 연장자인 만큼 나보다 더 성숙하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점에서 나는 아들의 입장에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 관계 전체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다. 프로이트가 꿈을 꾸었다. 그의 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 꿈을 분석하면서 사생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면 더 많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은 프로이트는 의아한, 아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위신을 망칠 수는 없어!” 사실 그 순간 그는 위신을 잃어버렸다. 그 말은 내 기억 속에 깊이 남았다. 그 일은 우리 관계의 끝을 암시했다. 프로이트는 진리보다 자신의 위신을 우선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융에게는 두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내적으로는 수수께끼 같은 상징적인 꿈들이 그를 정신 깊은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개인적인 무의식의 차원을 넘어 그가 나중에 “집단 무의식의 차원”으로 표현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신화학, 고고학, 영지주의 기독교, 원시문화, 점성학 등 새로운 학문에 빠져들었으며 프로이트와 사상적 차이가 드러나는 운명적인 저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명성을 얻은 융은 프로이트의 승인을 받아 국제정신분석학회의 초대 회장겸 학회지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클라크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후 뉴욕에서 강의를 몇 차례 했으며 『리비도의 변용과 상징』을 출간했다. 프로이트가 융의 집에 나흘간 방문한 후 둘의 관계가 흔들리는 전조를 발견한 것은 엠마 융이었다. 그녀는 융 모르게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보냈다.

 

프로이트 교수님,
제가 교수님께 이런 편지를 쓸 용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 교수님이 저희 집을 방문한 이후로 교수님과 제 남편의 관계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하기에 제가 힘이 닿는 데까
지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교수님이『 리비도의 변용과 상징』에 그다지 동의하고 있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물론 교수님이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으셨지만 카를과 함께 제대로 토론을 한다면 두 분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친애하는 교수님, 만약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체념한 교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으며 교수님의 체념은 교수님의 친자식뿐만 아니라 … 영혼의 아들과도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체념하실 리가 없겠지요.

 

프로이트 교수님,
교수님이 카를에 대해 보여주신 신뢰에 제가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러웠는지 짐작하시겠지요. 하지만 교수님이 때로는 카를에게 지나치게 마음을 쏟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수님이 바라는 이상으로 그가 교수님을 추종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안 보이십니까? 그렇게 마음을 쏟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그동안 거둔 명성과 성공을 누리는 대신 왜 벌써 포기를 생각하십니까? 교수님은 너무나 오랫동안 애쓰셨으니 그만큼 승리의 행복을 만끽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성장하고 나는 쇠약해지지”라는 아버지의 감정으로 카를을 보지 마시고 그를 교수님처럼 자신의 원칙을 실천해야 하는 한 사람으로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제 말에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따뜻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 엠마 융 드림

 

이 주제와 관련된 일련의 편지 중 마지막 편지를 보면 융 부부의 관계에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프로이트 교수님께,
편지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난번 편지를 썼을 때처럼 항상 절망적인 상태는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 저는 제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잘 알고 있으며 보통 제 운명의 짝에 대해 말을 아끼지만 카를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갈등을 느끼며 괴로울 때도 종종 있습니다. 저는 친구도 없고 저희가 어울리는 모든 사람은 카를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저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제가 따분하게 생각하거나 흥미가 없는 몇몇 사람뿐이지요.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저는 한 사람의 아내로, 또는 친구로 남성들과 거리를 둡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귀고 싶은 강한 바람이 있고 카를도 저에게 그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집중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그러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자체성애autoerotism(자신의 몸으로부터 성적 만족을 얻는 행동)가 강한 상태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 저는 절대 카를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점 때문에 저는 보통 사람들과 있을 때 더욱 바보처럼 이야기하게 됩니다 … 교수님이 저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제가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지 이제 아시겠지요. 저는 카를이 무언가를 눈치챌까 봐 겁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는 교수님과 제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교수님이 저에게 보내신 편지를 한 통 보고 그가 놀라긴 했지만 제가 그에게 알려준 내용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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