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세계에 맞선 반란과 신세계 무질서

 

 

 

 

 

 

이슬람주의의 지하디스트 분파를 둘러싼 정치적 아젠다는 경쟁문명에 대항하는 전쟁이라는 문화적 맥락에서 제기된다. 적대감의 명분이 서방세계 패권주의의 토대가 된 비대한 정치적 권력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의 가치관과 지식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데카르트 사상의 합리주의를 “인식론적 제국주의” 를 표현한 것으로 간주한다. 지하드운동의 지적 기반에는 세계의 탈서양화가 있으며, 세계질서의 개념과 더불어 이슬람주의자들은 문화적 내러티브를 강요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나는 헤들리 불의 전통과 새로 부각되고 있는 스탠리 호프만의 “세계의 무질서” 사상을 참고하도록 하겠다. 이슬람주의의 위협은 그들이 이상적인 질서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무색해질 뿐이다. 즉 폭력에는 의존하나 그들이 말한 것을 성취할 힘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드운동은 무료할 여유가 없이 국제적인 동요를 일으킨다. 지하드운동의 비정규전은 이슬람주의자들이 기술 면에서 우월한 적에 대해 보상을 얻을 수는 있으나, 이처럼 균형이 잡히지 않은 분쟁은 그들을 동요와 무질서 밖으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알라 신의 통치” 질서는 추종자들을 동원할 명분이 되더라도 늘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나, 글로벌 지하드를 내세우는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는 탈양극성 정치의 세계 혁명 운동이자 이데올로기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알카에다41에 관한 쟁점은 단순한 테러리즘에 국한되지 않는다. 알카에다는 질서를 둘러싼 두 가지 개념 사이에서 문명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새뮤얼 헌팅턴이 조만간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본 “문명의 충돌” 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종교가 이미 세계정치로 귀환했다는 점은 국제안보가 당면한 문제를 시사하므로, 국제관계의 새로운 접근법이 될 것이다. 정치화된 종교를 현 질서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들 가운데 하나로 풀이하는 것이다.
세계질서를 둘러싼 문명의 경쟁을 이해하기 위해 서양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세계화가 서양 가치관의 보편화를 자동적으로 불러일으키진 않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편, 개발은 비서양적인 방어 문화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치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가치관의 서양화를 배제한 구조의 세계화는 지구촌 전역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신성한 종교가 정치의 탈을 쓰고 귀환한다는 것은 탈서양화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서방세계는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서양 문화의 상대주의는 해결책이 아니라 몰이해를 부추기는 걸림돌에 불과하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상대주의는 이슬람주의가 타협을 모르는 절대주의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상대주의와 절대주의가 만나면 패배자는 문화의 상대주의자들이다.
현 국제정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레몽 아롱과 헤들리 불의 작품이 도움이 될 것이다. 기존의 세계질서에 이슬람주의식 부흥이 문명적으로 도전한 데는 정치적・문화적・종교적 쟁점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슬람교를 겨냥한 “유대・기독교인의 모략” 42을 직감한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자들은 “서방세계에 맞선 반란” 이— 이 주제와 관련된 불의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정당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하드를 동원하여 탈서양화를 도모하고 있으므로, 이슬람주의의 세계관이 달라지지 않는 한 세계의 평화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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