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견해는 공리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다

칸트의 윤리학은 자율적인 개인에게 똑같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똑같이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뜻한다. 개인들 사이에 경계선이 있음을 인정해야 함을 말한다. 각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독립적이고,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행위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적인 개인은 그에 대해 책임을 진다. 따라서 이 절의 첫 대목에 나온 주인공들이 그리던, 칸트 윤리학의 기본 구도와 그것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는 모든 행위자가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각각의 개인이 독자적인 권리 영역 안에서 자신만의 권위를 누리며 다른 사람들이 침범할 수 없는 세상에서만 실현될 것이다. 물론 각 개인이 스스로 바라는 모든 것을 할 자유를 지닌 건 아니다. 타인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 사상은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위할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자율적 존재인 인간이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곧 인간이 지닌 존엄성의 일부다. 개인의 존엄은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비슷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전제 아래서 존중된다. 이들이 이러한 자유를 누리는 건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할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칸트의 견해는 공리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행위가 가져오는 행복이나 불행의 크기로 행위의 옳고 그름을 가린다. 불행을 뒤덮고도 남는 행복의 양이 클수록 옳은 행위인 것이다. 여기서 공리주의자들은 의문스러운 결론으로 나아간다. 예컨대 소수를 노예화하여 사회 전반의 행복을 최대화할 수 있다면, 공리주의자들은 그것을 옳은 행위라 말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칸트는 설령 최대의 행복을 실현한다 하더라도, 노예제는 나쁜 것이라고 (매우 직관적으로) 생각한다. 칸트가 볼 때 노예제는 노예들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처럼 희생물로 삼아 그 사회의 나머지 부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에 나쁘다. 노예제는 노예를 자율적 결정능력이 없는 존재로 취급하기에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다. 노예들은 단순히 사람들의 재산이 될 뿐이다. 노예제는 인간의 자율을 무시하기에 그 결과가 어떠하건 간에 나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건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