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이슬라미카

서방세계에서 출간된 이슬람 정치 관련서적이 9・11테러 사태 이후 서점가를 강타했음에도 정치적 이슬람교에서 지하드운동이 차지하는 입지를 두고는 분석이 미흡하다. 단행본 중 상당수가 “거룩한 테러”는 옛말을 썼다. 혹자는 지하드운동의 기원을 부상한 오사마 빈라덴에게서 찾기도 한다. 거듭 말하지만, 역사적으로 지하드운동은 20세기의 정치적 이슬람교 사상에 깊이 뿌리 박혀 있으며 빈라덴보다는 수십 년이나 앞서 있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식 정치” 와는 별개의 것이다.
쿠틉이 “지하드를 영원한 이슬람의 세계 혁명” 으로 규정한 것은 그의 지성에는 못 미치는 알반나의 단순한 사상에서 한 발짝 진보한 것이다. 지하드운동의 포괄적인 목표는 이슬람세계로부터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정치질서로 알라 신의 통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 같은 질서는 서방세계의 세속적 베스트팔렌 시스템을 이슬람교식으로 대체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목표는 지하드운동과 제도적 이슬람주의의 공통분모다.
지하드운동과 제도적 이슬람주의의 차이점은 지하드운동이 신개념 전쟁을 덧붙였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테러에 중점을 두었으나 지하드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은 간과한 마크 세이지먼34을 비롯하여 서방세계의 권위자들도 이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지하드운동을 순수 테러로 취급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처사다. 문화적 및 종교적 토대는 글로벌 지하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를 정치적 이슬람교에 뿌리를 두게 하는 역할을
한다. 테러는 단지 팍스 이슬라미카pax Islamica(이슬람세계의 평화시대)의 비전을 실현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지하드 이후에 나타날 세계질서는 세속 국가들의 국제적 베스트팔렌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로써 이슬람교의 세계혁명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것이 바로 테러리즘의 이데올로기적 근간이다. 우리는 그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이 부족하다. “학술” 간행물을 보면 근간을 분석한 결과를 공격하는가 하면 저자를 이슬람혐오증 환자로 몰아세우는 등, 우려할 점이 많다.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자들은 “역사의 귀환” 을 비롯하여, 과거의 영화를 되찾자는 주장으로 이슬람교의 향수36를 불러일으키고는 있으나, 그들의 테러리즘에는 진정성이 부족하다. 이는 꾸며낸 전통에 토대를 두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의 비전은 엄밀히 현대적인 것으로, 신화적 과거가 아니라 탈양극체제postbipolar인 21세기에 내재되어 있다. 신성한 종교의 귀환과 세계정치에서 활약하는 비국가 주동세력의 부상 및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국적 조직의 출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귀환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고전 지하드가 이슬람교의 확장을 위해— 규정의 지배를 받던— 성전에서, 이슬람주의식 세계 혁명의 일환으로 개시된 규정이 없는 비정규전으로 변모한 것은 현대에 꾸며낸 발상이다. 이는 모두 정치적 이슬람교의 향수에 기원을 둔, 세계정치의 맥락에서 벌어졌으나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화된 종교가 국제정세의 주요 현안 중 하나가 된 경위를 이해하려면 기존의 지식을 버리고 참신한 추론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알라 신의 도리에서 지하드의 정당성을 인정한 정치적 종교는 테러가 아닌 세계의 질서를 둘러싼 문명의 분쟁을 역설한다. 쿠틉은 세계 혁명의 일환으로 지하드가 실현하는 이슬람식 평화로서, 세속주의 및 민주적 민족국가에 기반을 둔 칸트의 세계평화 개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