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자들과 그들의 정신질환을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부르크휠츨리 병원의 조교로 일한 스물다섯 살의 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자들과 그들의 정신질환을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당시 다른 의사들과 달리 그는 환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들의 환상의 배경에 집중했으며 그들의 꿈에 관해 논의했고, 그 과정에서 단어연상검사를 개발했다.
나의 관심사와 연구는“ 정신병 환자의 내면에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궁금증의 지배적인 영향을 받았다 … 정신의학 교수들은 환자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 진단을 내리고 증상을 파악하며 통계자료를 수집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임상적인 관점에서는 환자의 인격과 개성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 환자를 병명으로 분류하고 서류에 고무도장을 찍는 것으로 거의 모든 일이 완료되었다. 여기서 정신병 환자의 심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환자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망상과 환각에 의미의 싹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병의 이면에는 그 사람의 인격, 살아온 역사, 일정한 형태의 희망과 소망이 있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사실상 정신병 환자들에게서 새롭거나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성 저변을 만나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책은 늘 개별적이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모든 환자를 개별적으로 대한다. 보편적인 규칙은 소금 한 톨처럼 가장 작은 단위에서 시작한다. 심리학적 진리는 반대로 뒤집을 수 있을 때에만 타당하다. 나에게는 전혀 소용없는 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답일 수 있다 …여기서 내가 환자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마주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모든 치료에서 문제는 증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에 있다. 우리는 인격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융은 대학병원에서의 의료강습이 내적 갈등이 일어날 때 평정심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융은 자서전에서 그의 본성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이해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본적인 심리가 주로 직관적이고 지적이라고 정의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실을 통해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의 삶을 특징짓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는 스물한 살 때 사교 모임에서 계단에 있는 땋은 머리의 열네 살 소녀를 어렴풋이 보았다. 그 순간 섬광과 같은 생각이 번뜩였다. “나의 아내구나!”
그녀를 본 것이 찰나였기에 그런 생각이 들자 크게 떨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내 아내가
될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순식간에 들었다. 그로부터 6년 후 엠마 라우셴바흐는 이 젊은 의사의 청혼을 거절했지만, 그가 두 번째 청혼했을 때 결혼을 승낙했다. 출간되지 않은 그들의 연애편지를 읽어본 사람에 따르면 그 편지들에는 “낭만적인 아름다움과 감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1903년 결혼한 그들은 딸 네 명과 아들 한 명을 낳았다.
조용하고 차분하며 명석하다고 묘사된 엠마는 결혼 초기부터 융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호감 가는 그녀의 태도와 자연스러운 유쾌함은 분명 사교적인 장점이었다. 부유한 제조업 가문 출신인 그녀의 지참금은 융의 경제난을 해결해주었다. 퀴스나흐트에 지은 그들의 집 입구에는 델포이 신탁의 문구 “불러내든 불러내지 않든 신이 함께하리라”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융이 엠마에게 쓴 편지 중 출간된 편지들을 보면 대부분이 그가 출장을 가서 만나거나 본 사람, 장소, 자연에 대한 선명한 인상을 유려하고 재치 있게 설명하고 있다. 증기선 “빌헬름 대제”를 타고 폭풍우 속에서 대서양을 건널 당시 융은 편지를 썼다.
밖에서는 때때로 천둥 같은 파도가 번개를 때렸소. 그럴 땐 내 선실의 물건들이 모두 살아났지. 반쯤은 어두운 가운데 소파의 쿠션은 바닥을 굴렀고 누워 있던 신발 한 짝은 벌떡 일어나 놀란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소파 밑으로 조용히 들어갔소. 서 있던 신발 한 짝은 피곤한 듯 옆으로 몸을 돌려 제 짝을 따라갔지. 이제 장면이 또 바뀌었소. 나는 신발이 내 짐가방과 서류가방을 가지러 소파 밑으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했소. 일행 모두가 침대 밑의 큰 트렁크를 향해 행진했소. 소파 위에 있던 셔츠의 소매 한쪽은 그들에게 간절한 손짓을 했고 상자와 서랍 속에서는 덜거덕, 덜컹덜컹 소리가 들려왔소. 갑자기 바닥 아래서는 달가닥, 와르르, 쨍그랑 심한 굉음이 났소. 내 방 아래에는 주방이 있었거든. 그곳에서는 죽은 것처럼 무기력했던 접시 오백 장이 충격 한 번에 깨어나 과감한 점프로 지긋지긋한 자신의 노예상태를 단번에 끝내 버렸구려. 근처의 모든 선실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메뉴의 비밀을 알려주었소. 숙면을 취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람이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는군 … 여기서, 특히나 대양과 별이 빛나는 밤 고독하게 있을 때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소? 조용히 밖을 보며 모든 거만함을 내버리니 많은 격언과 이미지가 마음속을 지나가오. 낮은 목소리가“ 부풀어 오르며 너울거리는 바다”, 여행에 지친 오디세우스를 위해 끓어오르는 파도 거품 속에서 나타나 진줏빛 베일을 내주어 포세이돈의 폭풍우에서 그를 구한 사랑스러운 여신 레우코테아의“ 바다와 사랑의 물결”의 오랜 세월과 무한함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있소. 바다는 영혼의 꿈을 모두 담아 그 소리를 전하는 음악과 같소. 바다의 아름다움과 장대함은 우리 존재를 정신의 풍요로운 저지대로 끌고 내려가 자신을 마주하고 재창조하도록 하오 …